[핀테크] ①“1년째 관공서만 쫓아다니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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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오래 걸릴 거라고는 생각 못 했죠. 7~8월에는 서비스할 수 있을 줄 알았거든요. 앱은 4월에 다 만들어놨는데….”

12월 한국NFC 사무실에서 만난 황승익 대표는 답답함부터 텋어놓았습니다. 황승익 대표가 차린 한국NFC는 모바일 신용카드 결제를 딱 2단계로 줄인 ‘NFC 간편결제’ 솔루션을 만든 ‘핀테크’(Fin-tech) 스타트업입니다.

[용어설명] 핀테크

‘핀테크(FinTech)’란 금융(Financial)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다. 말 그대로 기술을 접목한 금융 서비스를 뜻한다.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에 남긴 글을 분석해 대출 신청자의 신용도를 평가해 부도율을 10% 이상 낮춘 온라인 대출 서비스 등이 그 예다.

올해 초 개발은 마무리했지만, 한국NFC는 한 해가 다 가도록 서비스를 내놓지 못했습니다. 규제기관을 쫓아다니느라 바빴기 때문이죠. <린스타트업>을 쓴 에릭 리스는 스타트업은 1년에서 1년6개월 사이에 성공 여부가 갈린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대로라면 한국NFC는 중요한 시기를 절반 이상 흘려버린 셈입니다.

황승익 대표는 지난 1년 동안 무슨 일을 겪었을까요. 흘러온 시간을 황 대표 눈으로 재구성했습니다.


 

# 2013년 11월

‘아기다리고기다리’던 특허를 받았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쉽고 빠르게 온라인에서 물건값을 치를 수 있는 ‘셀프 카드 결제 시스템’을 드디어 선보일 수 있게 됐다.

한국 인터넷쇼핑, 얼마나 복잡한가. 결제할 때마다 어김없이 ‘액티브X’를 설치한다. 웹브라우저를 껐다 켜면 30분 동안 애써 쇼핑몰을 뒤지며 장바구니에 선별해둔 물건이 날아가기 십상이다. 게다가 접속하는 쇼핑몰마다 이런저런 플러그인을 깔라고 아우성을 쳐대는 탓에 컴퓨터는 늘 거북이 걸음이다.

모바일은 또 어떤가. 내 돈 쓰겠다는데 이런저런 앱을 설치하고 신용카드를 등록하고 인증을 받으란다.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고도 결제하려면 또 다른 앱을 설치해야 한다. 7단계에서 15단계는 족히 지나야 하는데도 이름은 ‘간편결제’란다. 도대체 뭐가 간편하다는 얘기일까.

이미 해외에선 클릭 한 번에 결제가 끝나는 게 상식 아닌가. 한국에는 이런 간편 결제 서비스가 안 나오는 게 답답했다. 이것부터 뜯어고치자고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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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승익 한국NFC 대표

3개월 동안 기술 개발에 매달렸다. 특허를 신청해서 등록될 때까지 또 11개월을 기다렸다. 그렇게 십수단계에 이르는 복잡한 모바일결제를 단 2단계로 줄인 ‘NFC 간편결제’를 선보일 준비를 마쳤다.

어떻게 결제 단계를 2단계로 줄였냐고? 스마트폰을 결제 단말기(POS)처럼 활용하는 거다. 스마트폰에서 쇼핑을 하다 결제 방식으로 신용카드나 휴대폰 소액 결제 대신 ‘NFC 간편결제’를 선택한다. 이제 신용카드를 스마트폰에 갖다대고, 카드 비밀번호 앞 2자리를 입력한다. 그럼 결제가 끝난다.

한국에서 대다수 스마트폰 사용자가 쓰는 안드로이드폰에는 NFC가 들어 있다. 신용카드에도 교통카드에 쓰도록 NFC 기능이 들어간다. 이 둘을 활용해 신용카드를 스마트폰에 갖다대고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단 2단계만으로 온라인으로 물건값을 치를 수 있는 ‘진짜’ 간편결제를 만들었다.

쇼핑몰·카드사는 반색

반응이 어떨까. 심장이 쿵쾅거렸다. 간편결제 서비스가 절실해 보이던 곳, e쇼핑몰을 먼저 찾아갔다. 몇 곳을 찾아가니 자기 웹사이트에 먼저 붙여달라고 아우성이다. 우리한테 추가 수수료를 내줘야 하는데도 상관없단다.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고도 결제가 너무 복잡해서 구매를 포기하는 고객 30~50%를 다시 붙잡으면 더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일 게다. 또 쓰기 편하다는 이유로 많은 이들이 쓰는 휴대폰 소액결제에 비하면 수수료가 절반 정도에 불과하니, 오히려 수수료를 아낄 수 있어 이득이다. 그들이 오히려 더 적극적이었다. 온라인 결제는 신용카드를 통해 이뤄지니 카드회사도 만나보란다.

▲‘NFC 간편결제’ 흐름도

▲‘NFC 간편결제’ 흐름도

신용카드 회사도 좋단다. 실물 카드를 활용하고 통신사에 얽매지 않으니, 결국 신용카드 사용자를 늘리는 서비스라고 판단한 것 같다.

# 2014년 3월

그런데 서비스를 시작하려면 먼저 보안성 심의를 받아야 한단다. 이때는 미처 몰랐다. 이 일에 이렇게 오랫동안 발목 잡힐 줄은.

시험 보려면 응시 자격 먼저 갖춰라?

보안성 심의를 해주는 금융감독원(금감원)을 찾아갔다. 담당자는 보안성 심의를 신청하려면 먼저 신청 자격을 갖춰야 한다며 사업자 자위를 확인해 오라고 말했다. 은행이나 카드사, 전자결제대행업체(PG)만 보안성 심의를 신청할 수 있단다.

시험에 응시하는데도 자격이 필요하다니, 왜 그런지 알 순 없지만 제도가 그렇다니 따를 수밖에. 시험 볼 자격을 가리는 곳은 금융위원회(금융위)다. 금융위로 발길을 돌렸다.

▲애플 페이

▲애플 페이

금융위에 우리 회사가 보안성 심의를 신청할 자격이 있는지 질의서를 넣었다. 답변 시한을 꽉 채운 4월18일 저녁, 회신이 도착했다. 우리 회사는 보안성 심의를 신청할 자격이 없단다. 한국NFC는 PG와 계약을 맺고 전자결제 솔루션을 제공하는 사업자, 법률 용어로 ‘전자금융보조업자’란다.

한달 남짓 걸려 얻은 소득은 우리 회사의 법적 지위를 알아낸 것뿐이다. 한달째 제자리 걸음이다.

수익 절반 떼주기로 하고 PG 통해 심의 신청

직접 보안성 심의를 받을 수 없으니, 한 다리 건너 맡기는 길밖에. 이름을 빌린 대가로 PG에 수수료 절반을 내눠야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보안성 심의를 통과하지 않으면 전자결제 서비스는 시작도 할 수 없으니까.

PG를 통해 드디어 보안성 심의를 신청했다. 그런데 금감원이 보낸 접수 양식을 보니 무릎이 꺾였다. 우리같은 작은 스타트업은 도저히 채워넣기 어려운 항목이 100개 넘게 빼곡히 적혀 있었다.

# 2014년 4월

나는 너무 순진했다.

이제야 깨달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좋은 서비스를 만들어 내놓으면 사용자가 판단해줄 거라고 믿은 게 잘못이랄까. 내 실수라면 고칠 수나 있을 텐데. 우리 회사 능력이 부족하다면 더 노력해서 서비스를 보강하면 될 텐데. 전혀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벽을 만났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저 관공서에서 시키는 대로 따르는 것 뿐이다. 무력감이 밀려왔다.

애초에 한국에서는 간편결제 서비스를 내놓을 길조차 없었다. 그래서 그동안 불편한 결제 서비스가 ‘간편결제’라는 이름을 달고 난립한 게다.

금감원이나 금융위에 해결 방법을 물어봐도 대답을 듣기 힘들었다. 만나자고 부탁해도 좀체 만나주지 않았다. 질의서를 작성해 제출해도 답을 듣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뭘 얘기라도 해 줘야 서비스를 시작하든 접든 할 텐데.

자신 있게 창업할 때 날 믿고 밑천을 대준 투자자들 얼굴이 스쳐갔다. 특허를 받고 개발을 마칠때만 해도 금방 서비스를 내놓을 줄 알았는데. 늦어도 7~8월께면 진짜 간편한 모바일 결제 서비스를 선보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투자자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NFC 간편결제’

▲‘NFC 간편결제’

“플랫폼 사업은 자리잡기 어려운 대신, 일단 기반이 잡히면 빨리 성장할 수 있잖아요. 장기적으로 보셔도 됩니다. 자금이 모자라면 추가로 투자해드릴 수 있으니 염려 마세요. 그 대신 멀리 내다보고 꼭 성공시키세요.”

낙담한 나를 오히려 투자자가 격려했다.

# 2014년 8월

답답함에 가슴을 칠 무렵, 구원의 손길을 만났다. IT전문 법무법인 테크앤로다. 한국에서 핀테크 스타트업을 하기 어려운 까닭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곳이었다.

테크앤로는 거의 무보수로 우리를 도와줬다. 금감원과 금융위에 질의서를 작성하는 것부터, 미팅을 주선하고 방문하는 일까지 함께했다. 복잡한 보안성 심의 신청서도 테크앤로 덕분에 3달 만에 작성해 제출할 수 있었다.

핀테크 초짜였던 나는 6개월여 만에 ‘규제 빠꼼이’로 거듭났다. 규제기관과 빨리 소통하는 요령도 터득했다. 국민신문고에 질문을 올리는 거다. 국민신문고에 질문을 올리면 답변 기한이 정해진다. 기한 안에 담당 공무원은 무엇이든 답변을 줘야 하니, 문서로 질의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대답을 들을 수 있다. 꼼수를 써야 한다는 사실이 씁쓸하지만, 어쩌겠는가. 바늘 허리에라도 실 꿰서 써야 할 판인데.

# 2014년 12월

나는 지금 보안성 심의 통과 여부를 기다리고 있다. 연말이나 내년 초면 결과가 나올 듯하다. 내가 만든 서비스를 세상에 내놓는 일도 끝이 보인다. 창업을 준비한 게 2013년 12월이니, 꼬박 1년이 걸렸다. 이 가운데 9개월은 관공서를 드나드는 데 온전히 바쳤지만.

☞‘NFC 간편결제’ 시연 동영상 보기


뜨는 핀테크 번번이 발목 잡는 금융규제

황승익 대표만 겪은 일이 아닙니다. 한국에서 핀테크 사업에 뛰어든 수많은 스타트업이 번번이 규제에 발목 잡히곤 합니다.

PG사 페이게이트는 아무 것도 깔지 않아도 어떤 웹브라우저에서든 바로 신용카드로 물건값을 치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지만, 끝내 국내에 내놓지 못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해외 신용카드사와 손잡고 국내 규제를 에둘러 간 뒤에야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비바리퍼블리카는 복잡한 모바일 송금을 서너단계만에 문자메시지(SMS)로 간편하게 처리해주는 서비스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국내 법 때문에 국내 투자자에게서 자금을 끌어모으지 못했습니다. 해법은 이번에도 해외에서 찾았죠. 국내 법에 구애받지 않는 해외 투자자를 만나고 나서야 투자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세계 핀테크 시장이 뜨겁지만 한국은 이번에도 ‘갈라파고스’입니다. 각종 규제가 금융산업 혁신을 가로막는 탓입니다. 몇몇 스타트업이 과감히 뛰어들었지만, 이내 좌절하기 일쑤입니다.

반면 해외 핀테크 스타트업은 파죽지세로 커나갑니다. 알리바바 자회사인 ‘알리페이’와 ‘페이팔’ 등 각종 해외 간편결제 서비스가 국경을 넘어 한국에 진출했습니다. 이러다간 국내 전자결제 시장을 송두리째 빼앗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정책당국은 마냥 손 놓고 있어도 될까요.

왜 한국 누리꾼은 불편한 결제 방식을 써야만 할까요. 왜 한국에는 ‘진짜’ 간편결제 서비스가 나오지 못할까요. 이제부터 무엇이 문제인지 조목조목 따져보고 우리가 나아갈 길을 찾아보겠습니다.

※ 이 기사는 좋은 기사를 십시일반 후원하도록 돕는 서비스, 다음 ‘뉴스펀딩’(http://m.newsfund.media.daum.net/project/132)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블로터>는 앞으로 6회에 걸쳐 국내 모바일 결제 서비스의 현황과 문제점, 바람직한 방향을 짚어볼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따뜻한 후원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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