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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스테이션’과 함께한 20년

2014.12.18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어디까지 기억하시나요. 지난 12월3일은 플레이스테이션의 20살 생일이었습니다. 1994년 12월3일,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에 있는데 벌써 20주년이라니 대단하다는 말과 함께 시간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다 듭니다.

보통 게임기의 세대교체 주기는 5~6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플레이스테이션은 20년 동안 3번의 세대 교체를 했고, 4번째 세대는 꽤 성공적인 1년을 보내는 중입니다. 그 20년을 되돌아보니 플레이스테이션은 늘 제 곁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일기처럼 20년의 기억과 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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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의 CD롬 드라이브로 출발

플레이스테이션이 처음 소개됐을 때는 사실 기대 반, 걱정 반이었습니다. 90년대 초반만 해도 가정용 게임기 시장은 절대 강자 ‘닌텐도’와 그에 맞서는 ‘세가’가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두 회사 모두 ‘마리오’, ‘동키콩’, ‘소닉’ 같은 각자의 캐릭터를 앞세운 프랜차이즈 게임이 있었고, 게임 스튜디오들은 양쪽 진영으로 나뉘어서 게임을 만들어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스퀘어와 에닉스였습니다. 이 두 회사가 내놓는 ‘파이널판타지’와 ‘드래곤퀘스트’ 시리즈는 한 편이 나올 때마다 일본 전체가 들썩였습니다. 당시에는 게임 시장이 굉장히 호황이었기 때문에 이 두 회사에 맞서는 게임 플랫폼 경쟁자도 많았습니다. 네오지오는 비교적 성공했던 회사고, 용량과 비디오를 앞세워 CD를 쓴 ‘3DO’나 레이저디스크를 쓴 ‘레이저액티브’같은 게임기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게임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CD는 차세대 게임 매체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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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는 몇 MB밖에 기록하지 못하고 생산 단가가 높던 롬팩을 대체하기 가장 좋은 매체습니다. NEC의 PC엔진은 일찌감치 CD를 적극적으로 썼고, 세가도 메가드라이브에 CD를 붙였습니다. 롬팩과 CD가 공존하던 게 90년대 초중반의 게임 흐름이었습니다.

닌텐도도 그 사업을 놓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직접 모든 게임기를 만드는 것보다 소니와 협력하는 방안을 고려했습니다. 소니는 CD-ROM이라는 규격을 만든 회사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잘 나가는 두 전자회사가 각자의 원천 기술을 기반으로 손을 잡은 사례입니다. 하지만 두 회사는 디스크 라이선스에 대한 복잡한 문제로 한창 개발 중이던 프로젝트가 엎어졌습니다.

이후 닌텐도는 차세대 게임기로 여전히 롬팩을 쓴 ‘닌텐도64’를 내세웠고, 소니는 다른 파트너를 찾는 듯하더니 직접 플레이스테이션이라는 이름의 게임기를 들고 시장에 나옵니다. 플레이스테이션은 자칫 닌텐도 게임기의 애드온 플랫폼이 될 뻔했던 것이지요.

처음에는 플레이스테이션이 닌텐도의 경쟁자가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CD 매체가 자리를 잡았고, 소니는 이 시장에 엄청난 투자를 합니다. 소니가 잘 나갈 때였거든요. 결국 1990년대 중반을 책임질 차세대 게임기는 닌텐도의 ‘닌텐도64’, 세가의 ‘새턴’, 그리고 이 레드오션같은 시장에 뛰어든 애송이같은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 있었습니다.

# 1994 – 플레이스테이션

초기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은 썩 인기를 끌진 못했습니다. 지금이야 게임을 여러가지 게임기에 다 맞춰서 만들지만 그 당시에는 여러가지 게임기로 나오는 게임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만큼 게임기 개발사의 입김이 셌지요. 플랫폼을 한번 정하면 중간에 바꾸기 어려운 환경은 결국 닌텐도와 세가로 자리를 잡는 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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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플레이스테이션은 그 자체로 성능이 매우 뛰어났습니다. 지금 보면 스마트폰만도 못하지만 3D 그래픽을 중심에 두고 게임을 만든 첫 게임기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도 이어지는지는 정확히 확인할 수 없지만 플레이스테이션에서는 3D 게임을 만드는 게 2D 스프라이트 게임을 만드는 것보다 쉽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2D 그래픽을 처리하는 환경이 썩 좋지 않아 3D로 판을 만들고 그 한 면에 ‘스트리트파이터’같은 게임을 2D로 그려내는 방식을 썼다고 합니다.

결국 3D를 앞에 내세운 남코의 ‘릿지레이서’ 같은 게임은 오락실에서나 보던 영상을 집 TV에서 보여주었습니다.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아무래도 ‘파이널판타지7’이었을 겁니다. 제가 실제로 플레이스테이션을 처음 본 것도 1996년 ‘토발 넘버1’에 끼워주었던 ‘파이널판타지’ 프리뷰였습니다. 스퀘어가 ‘파이널판타지7’을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만들기 위해 시험삼아 만들었던 게임인데 이것과 함께 플레이스테이션이 본격적으로 부각됩니다. ‘파이널판타지’는 소니로서는 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파트너를 얻은 셈이고, 닌텐도로서는 가장 뼈 아픈 90년대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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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그 첫 화면의 감동을 잊지 못하겠습니다. 그 동안 해 왔던 1~6편까지의 ‘파이널판타지’와 전혀 다른 폴리곤 기반의 ‘파이널판타지’는 짧은 데모에도 놀라움을 주었습니다. 1997년 정식으로 발매된 ‘파이널판타지7’은 플레이스테이션이 자리 잡는 촉진제가 됐습니다. 많이들 기억하시겠죠? 더구나 CD만 해도 놀라운 용량인데 이걸 무려 3장이나 쓴 괴물 게임기는 ‘롤플레잉 게임을 3D로 할 수 있다’는 것과 ‘디스크를 갈아 끼우는 게임 볼륨’ 등의 의미를 남겼습니다.

플레이스테이션은 1997년 들어 완전히 자리를 잡습니다. 남코는 ‘릿지레이서’ 시리즈와 함께 ‘나가세 레이코’라는 걸출한 캐릭터를 키워냈고, 그 화려한 오프닝 화면을 베껴 만든 뮤직비디오가 국내에 나오기도 했습니다. 오락실을 점령한 ‘철권2’도 플레이스테이션에서 완성됩니다. 저는 이때 ‘그란투리스모’ 시리즈를 접하고 나서 레이싱게임의 또 다른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에이스캠뱃’, ‘바이오 하자드’를 비롯한 3D 게임의 시리즈들은 대부분 이때 플레이스테이션에서 태어났습니다.

# 2000 – 플레이스테이션2

소니는 재빨리 차세대 기기를 준비했습니다. ‘플레이스테이션2’죠. 이 플레이스테이션2만큼 말이 많았던 게임기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2000년 3월4일 일본에서 처음 발매됐습니다. ‘디자인의 소니’ 시절이었던 만큼 그 디자인은 지금 봐도 화려하지만 진부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 게임기를 세워서 쓸 수 있다는 발상은 놀라웠습니다.

이 플레이스테이션2는 DVD-ROM 드라이브를 달고 있었고, CPU를 이모션엔진(EE)과 그래픽신디사이저(GS)라고 부르는 등 멋도 부렸습니다. 그래픽 메모리는 4MB로 당시에도 매우 작다는 평을 받았지만 입출력 속도가 매우 빨라서 속도로 용량을 덮는 기현상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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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기로서 성능이 좋다는 점이 초기에 큰 화제가 되었는데 이를 수백 대 연결해서 수퍼컴퓨터를 만들었던 적도 있고, 911 직후로 세계가 테러에 예민해져 있던 상황에서 플레이스테이션의 칩들을 미사일에 달아 요격하는 데 쓸 수 있다고 해서 특정 국가에 수출금지 품목으로 찍혔던 적도 있습니다. 국내에는 2002년 초에 정식으로 출시됐고, 이때부터 한글화된 게임들도 유통됐습니다.

이용자들로서는 DVD 플레이어로서의 가치도 꽤 컸습니다. 당시 플레이스테이션2와 DVD플레이어의 가격이 거의 엇비슷했는데 보통 DVD 플레이어들이 하드웨어 칩으로 영상을 처리하던 것을 플레이스테이션2는 강력한 프로세서를 기반으로 소프트웨어 재생기를 얹는 방식으로 풀어냈습니다.

이제는 아예 플레이스테이션에 둥지를 튼 ‘스퀘어에닉스’는 이전만큼 인기를 누리진 못했지만 ‘파이널판타지’ 시리즈를 내놓았고, 반다이남코, 캡콤 등도 기존 시리즈를 모두 플레이스테이션2로 옮겼습니다. 그래픽 성능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아졌고, 그 결과물도 그랬습니다. 다만 개발이 어렵다는 이슈는 계속해서 이어졌습니다. 비교적 성능에 대한 봉인이 늦게 풀린 편입니다. 대개 황혼기에 절정의 게임이 나온다고 하는데 바로 이 플레이스테이션2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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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에 경쟁자로 나온 세가의 ‘드림캐스트’와 비교되기도 했는데 결국 세가가 드림캐스트 사업을 정리하면서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서기도 했습니다. 닌텐도는 뒤늦게 CD 기반의 미디어를 올린 ‘게임큐브’로 도전장을 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맞았고, 이때 마이크로소프트가 ‘X박스’로 세가의 빈자리를 채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두 세대째 ‘플레이스테이션을 사면 실패하진 않는다’는 명제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플레이스테이션2는 가장 성공한 콘솔게임기였고, 수명도 길었습니다. ‘플레이스테이션3’가 마무리돼 가던 2012년 말에야 단종됐고, 그 동안 플레이스테이션3로 이전을 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기도 했지만 지금의 플레이스테이션이, 그리고 어려운 시절 소니를 버틸 수 있게 해 준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기도 했습니다.

# 2006 – 플레이스테이션3

2006년 등장한 플레이스테이션3은 블루레이 드라이브와 풀HD 해상도를 앞에 내밀었습니다. 디지털TV에 대한 준비이자, 강력한 성능을 뿌리에 둔 가정용 미디어 서버 역할을 하고자 했습니다. 플레이스테이션2와 마찬가지로 웬만한 블루레이 플레이어와 비슷한 가격에 3D 블루레이까지 재생할 수 있었던 것이 강점이긴 했습니다.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비슷한 시기에 나온 2세대 X박스인 ‘엑스박스360’은 DVD와 옵션으로 HD-DVD를 내세웠는데 표준화 전쟁에서 블루레이에 밀리는 바람에 이 외장형 HD-DVD 드라이브가 단돈 몇 만원에 팔리기도 했습니다.

플레이스테이션3이 나올 시기에는 세상이 꽤 많이 달라졌습니다. PC와 온라인게임이 시장의 중심으로 흘렀고, 콘솔게임기는 발붙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온라인 서비스, 온라인게임 마켓 등이 함께 열리긴 했는데 온라인으로 구입하는 것보다 디스크가 더 싼 경우가 많았고, 이미 콘솔게임기의 인기도 시들해지던 시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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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는 이 고성능 게임기 안에 큰 하드디스크를 달아 사진과 음악 등을 보관하는 가정용 홈네트워크를 이루고자 했습니다. 물론 그게 만만치는 않았지요. 플레이스테이션을 서버처럼 상시 켜놓기에는 100W 정도의 소비전력은 높은 편이었고 소음도 꽤 컸습니다. 초기 제품은 최대 400W까지 전기를 끌어쓰기도 했습니다. 이는 X박스360도 똑같이 갖고 있는 문제였습니다.

소니로서도 플레이스테이션은 1대 팔면 그대로 적자가 늘어나는 구조였습니다. 블루레이 드라이브는 비쌌고, 하드디스크와 여러가지 기능들이 더해지면서 원가는 쑥쑥 치솟았습니다. 200~300달러를 넘기기 어려운 게임기 시장에서 초기 플레이스테이션은 500~600달러를 받았지만 원가가 800달러를 넘겼다고 합니다. 게임기 시장이 기기를 이윤 없이 판 뒤에 게임 소프트웨어를 팔아 수익을 메우는 식의 플랫폼 비즈니스였는데, 이 플레이스테이션3는 그 적자폭을 메우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원가를 낮추기 위해 기존 플레이스테이션1·2의 게임을 돌아가도록 돕는 EE와 GS칩을 떼어버렸고, 단자도 줄였습니다. 하드디스크 용량도 여러가지로 조정했고, 슬림 모델을 2가지나 내놓으면서 세대 교체를 해 왔습니다. 초기에 나왔던 몇 종의 제품을 제외하고는 옛날 게임을 돌리지 못하게 됐지요. 대신 이를 PS네트워크에서 온라인으로 재판매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플레이스테이션3은 성능이 아직까지도 부족하지 않기 때문에 게임 개발사들은 최신 플랫폼인 플레이스테이션4보다도 3에 우선적으로 게임을 내놓고 있습니다. 저는 솔직히 아직까지 풀HD TV에서는 플레이스테이션3으로도 충분한 것 같습니다. 물론 4가 좋은 건 불변의 사실이지만 ‘GTA5’나 ‘그란투리스모6’, ‘라스트오브어스’ 같은 게임만 봐도 요즘 게임에 뒤지지 않아 보입니다.

# 2013 – 플레이스테이션4

하지만 이 플레이스테이션3도 올해로 벌써 8년째입니다. 세대교체를 해야 할 필요는 분명하죠. 지난해 11월 출시한 ‘플레이스테이션4’는 언뜻 보면 고성능 플레이스테이션3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판매량은 어마어마합니다. 올 8월 판매량 1천만대를 돌파했고, 이는 플레이스테이션2보다 빠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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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소니도 새 플레이스테이션이 왜 이렇게 잘 팔리는지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저도 잘 모르겠지만 고성능 PC에 대한 수요가 점차 줄고 게임이 모바일과 콘솔 게임기로 양분화되는 것이 이유로 보입니다. 잘 팔리고 있다고 해서 웃고 넘어갈 것은 아니고 현재 콘솔 게임기에 중요한 것은 온라인게임에 대한 도전과, 또 다시 홈 네트워크의 중심에 게임기를 올리는 것, 그리고 결과적으로 소니의 ‘PS비타’나 스마트폰, 태블릿 등과 연결해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내는 방향성을 찾아야 할 겁니다. 그게 플랫폼 비즈니스이고, 소니를 비롯해 일본 기업들이 다소 방향성을 못 찾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차분히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좋은 게임은 시간을 벌어주겠지요.

플레이스테이션4는 내년이 본격적인 시작점이 될 듯 합니다. 리마스터 수준의 게임이 아니라 플레이스테이션4만의 오리지널 게임들이 쏟아지지 않을까요.

얼마 전까지 당장 무너질 것만 같던 콘솔 시장이 다시 살아나는 분위기입니다. 우려나 쓸쓸한 분위기가 아닌 기대에 부푼 20번째 생일을 맞은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축하할 일입니다. 어려운 경기 때문에 여러가지 한정판이나 특별판 기기의 출시가 줄어든 상황에서 20주년을 기념하는 한정판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제 플레이스테이션은 하나의 게임기가 아니라 그 자체로 기억의 한켠을 차지하는 20년의 역사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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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ove@bloter.net

프리랜서 IT 컬럼니스트, 기술과 사람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e메일 work.hs.cho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