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사회 위험, 현명하게 뛰어넘는 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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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공간 혹은 사회는 정말 위험할까? 아니 페이스북 사용은 위험할까? 위험하다면 우리는 왜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네이버에서 검색을 할까? 뻔하고도 단순한 이 질문에 속시원한 답을 내놓기란 녹록지 않다.

연구자들에겐 더 곤혹스런 질문이다. 게다가 터잡고 있는 전공 영역이 사회과학이냐 공학이냐에 따라 시각과 답변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사회과학 분야 연구자들은 디지털 사회의 위험을 ‘파놉티콘’이라는 상징어로 비판의 날을 세운다. 반면 공학 분야 연구자들은 ‘기술적 유익’을 근거로 위험 공간이라는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다.

 사람과디지털연구소가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회관에서 개최한 '스마트 시대, 이제 디지털사용자 주권이다' 포럼.

<한겨레> 사람과디지털연구소가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회관에서 개최한 ‘스마트 시대, 이제 디지털사용자 주권이다’ 포럼.

12월18일 서울 여의도에서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주최로 열린 ‘디지털사용자 주권’ 포럼도 예외는 아니었다. 비록 공학 분야 연구자가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디지털 위험’을 경계하는 사회학 연구자와 디지털 위험 자체를 재정의해야 한다는 경영학 연구자의 시각이 뚜렷하게 엇갈렸다.

“디지털 사회에서 위험은 피할 수 없다”

윤명희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연구원은 “위험은 이미 보편적 상황”이라고 규정했다. 여기서 위험은 선택하지 않은 위험(Danger)가 아닌 선택한 위험(Risk)라는 전제에서다. 윤 연구원은 디지털 사회에서 위험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SNS를 통한 소통이 필수인 것처럼 그에 따른 위험도 회피하기 어렵다는 맥락이다.

그는 한국 디지털 사회의 문제는 위험을 인지하고도 저항하지 않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디지털 사회의 위험은 감각과 인지가 중요한데, 한국 사회만큼 위험에 대한 민감도가 높은 곳도 없지만 정작 저항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고 했다. 매일매일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상황을 경험하면서도 이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움직임은 크지 않다는 얘기다.

윤 연구원은 “디지털 공간이 위험할 수 있다는 인식, 위험하다는 감각은 일정 정도 진행되고 있지만 대안적 모색에 대한 논의는 미진하다”라며 보다 광범위한 위험 인식의 공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렇지 않으면 디지털 위험이 드러날 때마다 정부나 국가가 규제하는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강정수 오픈넷 이사는 디지털 위험을 전파하는 내러티브가 너무 낡았다고 비판했다. 위험의 당위만 설명해봐야 사용자의 저항을 이끌어낼 수 없다고 했다. 위험 사회니 위험 공동체니 하는 말로 사용자 집단을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디지털 위험을 설파하며 동원되는 논리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디지털화로 인해 탈정치화가 진행됐다는 주장은 근거가 빈약하며 오히려 전세계적으로 저항의 확산이 더욱 커졌다고 말했다. 빅데이터 분석으로 감시 체제가 구축됐다는 논리는 역으로 범죄의 발생 빈도를 낮추고 교통사고율을 낮추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말로 비판했다. ‘페이스북=빅브라더‘라는 기계적 인식을 넘어서지 않으면 대안의 모색도 쉽지 않다고 했다.

“위험 당위 설명해봐야 저항 못 이끌어내”

때문에 위험이냐 유익이냐에 대한 대립적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했다. 개인정보의 제공, 빅데이터 분석, 사용자 데이터의 추적 기술로 사용자가 얻어갈 유익이 상당한데 위험과 감시사회라는 말로 설득이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카카오톡 감청 논란으로 사이버 망명 논의가 들끓었지만 결국 실패로 끝이났다. NSA 감청이 폭로됐지만 유럽 선거에서 감시사회를 이야기한 쪽 후보는 대부분 낙선했다. 감시성을 강조해서는 시민들을 설득할 수 없다.”

강 이사는 무엇보다 위험을 강조하는 새로운 내러티브의 개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페이스북은 감시사회다’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감시는 우리를 공격적으로 만든다’라고 바꿔야 한다는 식이다. 감시에 대한 대항 논리로 페이스북 사용을 거부하자고 선언할 것이 아니라 ‘비밀을 가질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더 세련된 내러티브라고 했다.

그는 ‘메이커 문화‘로 감시사회에 대한 저항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리터러시와 같은 계몽적 교육 방식을 택할 것이 아니라 이용자가 직접 코딩에 참여하고 오픈소스 하드웨어를 제작하면서 감시의 위험을 스스로 깨닫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두 연구자는 디지털 공간의 ‘감시 위험성’에는 대체적으로 공감했지만 설득 구조와 해법에 대해선 인식이 크게 갈라졌다. 윤명희 연구원은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을 대안으로 꺼내놓았고 강정수 이사는 사용자들의 메이커 문화 확산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윤 연구원은 디지털 공간 전반을 감시사회, 위험사회로 두루뭉수리 분류했지만 강정수 이사는 모든 디지털 공간을 빅브라더라고 규정짓는 도식적 접근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표시했다.

두 연구자 간 인식은 개발자와 기획자, 이과생과 문과생의 언어만큼이나 그 괴리가 크고 멀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