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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저귀 회사가 왜 디지털 카메라 만들었냐고요?”

2014.12.23

이제 막 돌이나 지났을까요. 아기가 아장아장 앞서 걸어갑니다. 뒤뚱뒤뚱 그 모습이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위태위태합니다. 행여 넘어지지는 않을까. 엄마는 두 팔을 뻗어 아이의 허리를 잡아줍니다. 상체를 잔뜩 웅크리고 아이의 뒤를 졸졸 따라가는 엄마의 모습, 상상이 되나요. 엄마는 아이가 처음으로 두 발로 제 몸을 지탱하던 그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조금은 윤색될지언정, 잊지는 않았을 겝니다. 엄마 아빠의 기억은 아이의 소중한 순간을 담기 위한 그릇을 따로 만들어 뒀을 테니까요.

유한킴벌리의 기저귀브랜드 ‘하기스’에서 카메라를 만들었습니다. 이름은 ‘모멘트캠’입니다. 일반 사용자에게 판매하기 위해 개발한 카메라는 아닙니다. 마케팅에 활용하기 위해 몇 벌만 따로 만들었을 뿐이지요. 그래도 유한킴벌리는 지난 10월 말께 모멘트캠의 기술특허까지 획득했답니다. 엄마의 가슴에 하나, 아이의 배냇저고리에 또 하나. 엄마와 아기가 하나씩 나눠 갖는 모멘트캠은 둘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자동으로 영상을 기록하도록 고안된 특수 카메랍니다. 아이를 보는 엄마의 눈빛과 엄마가 보는 아이의 표정을 동시에 담을 수 있도록 말이지요. 펄프 회사, 기저귀 회사 혹은 육아용품 회사인줄로만 알았던 유한킴벌리. 무슨 사연이 있길래 카메라를 만들고 특허까지 따냈을까요. 유한킴벌리의 얘기를 들어보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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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킴벌리 디지털마케팅팀 장미나 사원, 정진향 팀장, 류민경 차장(왼쪽부터)

“엄마들이 자주 찾는 대형 인터넷 카페가 많아요. 그곳에서 엄마들이 서로 주고받는 내용을 빅데이터로 분석해보니 육아와 행복이 일상 속에서는 잘 어울리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엄마가 육아를 하며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 중 90%는 부정적인 것이더라고요.”

유한킴벌리의 모멘트캠 프로젝트는 빅데이터 분석 기술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엄마들이 자주 찾는 대형 인터넷 카페를 선정해 3년치 게시물을 끌어모으는 과정이 출발점이었죠. 유한킴벌리가 엄마들의 속마음을 엿본 셈입니다.

약 500만건의 게시물에서 유한킴벌리가 형태소 분석으로 뽑아낸 키워드는 무엇이었을까요. 퍽 무거운 단어들이 많았습니다. 책임감이 불러오는 압박, 육아에 대한 두려움 등. 아이와 하루를 보내는 엄마의 일상은 뜻밖에 부정적인 감정으로 뒤덮여 있었지요. 아이를 키우는 일, 보통 일은 아니니까요. 일상에서 엄마들이 겪는 어려움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정진향 유한킴벌리 디지털마케팅팀 팀장은 “아이가 예쁜 짓을 하는 모습을 캡처해 엄마가 일상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순간을 찾아보자는 아이디어에서 모멘트캠을 만들게 됐다”라고 부연했습니다.

모멘트캠의 작동 원리는 간단합니다. 모멘트캠은 두 개가 한 세트로 구성돼 있습니다. 하나는 엄마가 갖고, 다른 하나는 아이에게 채웁니다. 두 카메라에 똑같이 렌즈가 달려 있는데, 카메라와 카메라 사이가 가까워지면 자동으로 녹화를 시작합니다. 엄마와 아이 사이의 거리가 3m 이내로 가까워지면 녹화가 시작됩니다.

카메라끼리 거리를 재기 위해 무선 주파수(RF) 기술도 쓰였습니다. RF 센서가 상대방 카메라를 인식해 자동으로 녹화합니다. 녹화가 시작되는 순간을 동기화하는 것, 화면을 2개로 나누고 하나로 편집해 보여주는 것 모두 모멘트캠의 몫입니다. 유한킴벌리가 특허를 출원한 부분도 이겁니다. 모멘트캠의 독특한 아이디어를 특허로 정리하는 데는 류민경 차장의 역할이 컸습니다. 유한킴벌리에서 디지털마케팅팀에 합류하기 전 변리사로 활동한 경험을 살린 겁니다.

류민경 차장은 “사실 우리 기저귀나 ‘크리넥스’ 등 우리 제품에도 기술이 들어갈 수 있는 부분이 많다”라며 “제품의 가치를 높일 연구개발을 지속하고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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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멘트캠’ 프로젝트 영상 보러가기(링크)

모멘트캠 프로젝트를 직접 경험한 엄마들은 생각보다 더 많은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인터넷에서는 노상 육아의 고충만 털어놓기 바빴던 엄마들이 사실은 아이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아이의 저고리와 엄마의 셔츠에 달린 모멘트캠은 엄마의 활짝 웃는 표정과 아이의 앙증맞은 모습을 동시에 찍었습니다. 엄마들은 바로 그 순간을 보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죠.

“실제로 촬영을 할 때는 영상을 만들 것이라고 알리지 않았어요. 그냥 써보시라고만 했거든요. 나중에 모멘트캠이 찍은 영상을 보여드리니, 엄마들 대부분이 눈물을 흘리더라고요. 본인들이 행복했던 순간을 영상으로 보고 감동을 받으신거죠. ‘아, 내가 아이와 있을 때 저렇게 행복해했구나’, ‘내가 마냥 힘들어했던 것만은 아니었어’ 하고요.”

모멘트캠 프로젝트에 참여한 엄마들을 현장에서 직접 만난 장미나 사원은 “가족이 잊고 있던 행복을 발견하게 된 것이 뿌듯했다”라며 소감을 밝혔습니다.

육아를 막 시작한 엄마는 스마트폰 카메라나 디지털 카메라로 아이의 사진을 담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프로필 사진도 아기 사진으로 바꾸지요. 결혼 전에는 ‘셀카’를 올리던 이들의 SNS는 온통 아기 사진으로 바뀝니다. 아이의 예쁜 행동은 기록으로 남기되, 정작 그 아이를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에는 다소 소홀했던 것은 아닐는지요. 두 개가 한 세트인 모멘트캠이 기록하는 것은 어쩌면 잠시 잊고 있던 엄마의 행복한 모습입니다.

“마케터 입장에선 제품 이상의 가치를 전달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래서 선택한 도구가 기술이 됐던 거죠. 새롭거나 어려운 기술은 아니지만, 일상의 경험을 살려 결합하면 무엇이든 가능할 것이라고 봤어요. 웨어러블이나 사물인터넷(IoT) 등이 대표적이죠. 기술과 기술을 엮는 것이 열쇠였던 것 같아요.”

정진향 팀장은 “기술이라고 하면 유한킴벌리의 강점이 아닐 수 있지만, 사용자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기술과 함께 고민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웨어러블과 IoT가 별건가요. 디지털 카메라와 RF 같은 흔한 기술이 한데 섞여 모멘트캠이라는 따뜻한 아이디어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기술이 사람에게 다가간 만큼, 감동으로 바뀌어 돌아온 것입니다.

유한킴벌리의 모멘트캠 프로젝트는 유튜브에서, 페이스북에서 소소한 감동을 전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써보고 싶다는 요청이 쇄도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제품으로 양산해 판매해 보는 것은 어떻겠냐는 제의도 많이 받았다지요. 유한킴벌리 쪽에서는 아직 그런 계획은 없다고 하네요. 아쉽지만, 먼저 체험한 이들이 올린 영상을 보며 자신과 아이의 일상을 돌아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지난 10월29일부터 시작된 모멘트캠 프로젝트는 오는 1월 말까지 진행된다고 합니다. 그때까지는 좀 더 많은 체험단 엄마들의 감동적인 영상이 추가로 만들어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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