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 ③은행이 ‘결제 혁명’ 두려워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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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왜 핀테크 기업이 싹트기 어려운지 지난 기사에서 살펴봤습니다. 규제 중심인 정부의 접근 방식과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긴 ‘자율규제’가 주된 원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한편에서는 금융업계의 보수성이 진취적인 IT 기업을 품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한 국내 핀테크 스타트업 대표는 “은행은 위험성을 분산하는 식으로 운영되는 반면, 스타트업은 위험성을 떠안는 존재이기 때문에 은행이 핀테크 스타트업과 손잡기 쉽지 않다”라고 풀이했습니다.

돈을 다루는 곳이니 안정성을 중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국경 너머로 눈을 돌려 보면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보수적인 금융기업 역시 핀테크 물결에 속속 올라탑니다. 이번에는 바다 건너 이들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영국 핀테크 투자 규모, 해마다 74%씩 ↑

먼저 핀테크 천국이라 불리는 영국입니다. 영국은 2008년 금융위기 뒤에 금융업계와 IT업계를 적극적으로 융합해 핀테크 선도주자로 발돋움했습니다. 핀테크 분야 투자 규모는 13%(2013년 전세계 핀테크 투자액 중 차지한 비중)로 32%를 차지한 실리콘밸리에 못 미치지만, 영국 핀테크 시장은 2008년 이후 매년 74%씩 성장했습니다.

영국에서 핀테크가 빨리 꽃핀 까닭은 영국이 세계 금융 중심지이기 때문입니다. 세계 10대 은행 중 4곳이 런던에 본사를 둡니다. 이를 바탕으로 뻗은 금융망은 영국에서 핀테크가 뿌리 내릴 토양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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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스타트업부트캠프 소개 영상)

300년 넘은 바클레이즈그룹, 모바일 금융 앱 ‘핑잇’ 내놔

1690년 문 연 바클레이즈 금융그룹은 핀테크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습니다.

바클레이즈는 지난 2012년 2월 ‘핑잇’이라는 모바일 금융 앱을 내놓았습니다. 영국 은행 계좌와 스마트폰만 있으면 핑잇 앱을 이용해 간단히 돈을 주고받도록 했습니다. 바클레이즈은행 고객이 아니어도 전자지갑 서비스 ‘페이엠’에 가입하면 핑잇을 사용해 송·수금 업무를 스마트폰으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16세 이상이라는 사실만 인증하면 상대방 전화번호로 바로 돈을 쏠 수 있습니다. QR코드를 사용해 핑잇 앱에서 바로 물건값을 치르는 것도 가능합니다. 2014년 2월말 기준으로 250만명이 넘는 사용자가 내려받았습니다.

▲밥값 7천원(4.25파운드)을 갚으라고 엄포를 놓는 귀여운 고리대금업자 (핑잇 광고 영상)

다른 금융회사가 단순히 인터넷 은행 서비스를 모바일로 옮기는데 집중할 때 바클레이즈는 모바일에 최적화된 사용자 경험(UX)을 제공하는 데 방점을 찍었습니다. 스마트폰 특성을 살려 복잡한 인증 단계를 걷어내고 문자메시지(SMS)를 보내듯 돈을 주고받도록 했습니다.

금융회사가 직접 핀테크 앱을 만든 점도 독특합니다. 보통은 기술 스타트업이 앱을 만들고, 금융회사가 서비스에 적용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대런 풀즈 핑잇 제품 디렉터는 <인디펜던트>에 “고객은 스마폰으로 매일 송금하듯 결제도 모바일에서 하고 싶어한다”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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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BNP파리바 ‘헬로뱅크’

프랑스 최대 은행 그룹인 BNP파리바는 2013년 모바일 전용 은행 ‘헬로뱅크’를 열어 바클레이즈와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헬로뱅크는 ‘모바일로 태어났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은행에서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를 모바일로도 이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계좌번호 대신 휴대폰 번호나 QR코드를 사용해 돈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 트위터를 활용해 고객 불편사항에 재빨리 대처합니다.

‘커뮤니티 은행’ 꾸린 독일 피도르은행

독일 피도르은행은 가장 혁신적인 온라인 은행으로 손꼽힙니다. 오프라인 지점 없이 은행 웹사이트와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 온라인 채널로만 영업을 벌이며 파죽지세로 성장하는 중입니다.

피도르은행은 ‘커뮤니티 은행’임을 내세웁니다. 고객을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신상품 기획부터 기존 상품 평가, 다른 고객의 재테크 상담 등 은행 업무에 직접 뛰어드는 ‘프로슈머’로 활용합니다. 고객이 질문을 올리면 10센트, 다른 사용자에게 조언을 건네면 25센트를 주며 고객 참여를 이끌어냅니다. 고객이 제안한 상품이 실제로 상품으로 만들어지면 보너스로 100유로를 줍니다. 페이스북 계정과 은행 계좌를 연동하면 페이스북 ‘좋아요’ 수가 1천번 늘어날 때마다 예금 금리를 0.1%씩 더 얹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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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핀테크 기업 인수·육성에도 나서

은행이 직접 핀테크 서비스를 만들기 힘들다면, 그런 서비스를 만든 회사를 사들여도 되겠지요.

스페인 은행 BBVA는 올 2월 미국 온라인 은행 심플을 1억2천만달러에 사들인 데 이어 지난 10월 미국 지급결제 스타트업 드올라와 제휴를 맺고 온라인 간편결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 디지털 자산관리 스타트업 퍼스널캐피탈에 투자하는가 하면, 12월 들어서는 스페인 빅데이터 스타트업 마디바솔루션즈를 인수했습니다.

미국 금융그룹 캐피털원은 2012년 네덜란드 온라인 은행 ING다이렉트를 인수했습니다. 캐피털원은 인터넷에 ‘오렌지카페’를 만들어 고객과 소통하며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바클레이즈는 핀테크 스타트업 10곳을 뽑아 13주 동안 집중 육성하는 엑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을 지난 6월 시작했습니다. 마스터카드와 라보은행, 로이드은행, 스코틀랜드은행 등도 핀테크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스타트업부트캠프’에 핀테크 부문을 꾸렸습니다.

국내 은행은 핀테크 도입 힘들어

이쯤 되면 국내 은행은 놀고 먹느냐는 비판이 나올 만도 합니다. 외국 은행은 앞다퉈 핀테크 시장에 뛰어드는 마당에 손 놓고 있느냐는 지적일 겁니다.

반은 맞는 얘기지만, 반은 틀렸습니다. 한국 은행이 핀테크 시장에 손 놓고 있다는 지적은 맞습니다. 국내에는 은행과 연계한 핀테크 서비스가 별로 나오지 않았으니까요. 최근 ‘뱅크월렛카카오’로 탈바꿈한 금융결제원의 뱅크월렛 서비스 정도가 있으려나요.

하지만 왜 그런지 들여다보면 마냥 은행만 손가락질하기는 어렵습니다. 국내 법은 전자결제에서 문제가 생기면 금융회사가 책임지도록 규정했습니다. 이것이 은행에 족쇄가 됩니다.

전자금융거래법 9조 1항을 볼까요. 해킹 같은 사고로 이용자에게 손해가 생길 경우 금융회사 또는 전자금융업자가 배상 책임을 지도록 못박았습니다. 2항처럼 이용자에게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없다면 말이죠. 외국 은행처럼 핀테크 기술을 도입했는데 사고가 나면 법적으로 가장 먼저 금융회사에 책임을 묻도록 규정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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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는 이런 법이 없습니다. 은행과 핀테크 기업이 서로 계약을 맺어 책임을 나눠 지면 됩니다. 은행이 큰 부담 없이 핀테크 기술을 채택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박소영 한국핀테크포럼 의장(페이게이트 대표)은 “보안 사고가 나면 금융회사에 책임을 묻는 법 조항 때문에 금융회사도 발목 잡힌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한국 정부, “내년부터 핀테크 은행 육성 나서겠다”

다행스러운 점은 뒤늦게라도 한국 정부가 금융회사의 목줄을 풀어주려 한다는 겁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12월19일 ‘핀테크 혁신과 금융정책’이라는 주제로 출입기자단 송년세미나를 열고 핀테크 기술 도입에 장벽이 됐던 제도를 손볼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실명인증 절차를 간소화해 인터넷 전문은행을 세울 수 있도록 하고, 전자결제 기술을 사전에 검사했던 보안성 심의제도를 폐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금융회사가 기술 스타트업과 제휴해 서비스를 내놓을 경우 소비자 피해를 어떻게 보상할지 법적 책임범위도 확실하게 다시 설정하기로 했습니다.

신제윤 위원장은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핀테크 육성에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금융감독원 산하에 11월13일 설치된 핀테크상담지원센터가 깃발을 들게 됩니다. 내년 이맘때면 공인인증서, 액티브X 없이 PC와 스마트폰에서 간편하게 돈을 주고 받을 수 있을까요.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지켜봐야겠습니다.

※ 이 기사는 좋은 기사를 십시일반 후원하도록 돕는 서비스, 다음 ‘뉴스펀딩’(http://m.newsfund.media.daum.net/project/132)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블로터>는 6회에 걸쳐 국내 모바일 결제 서비스의 현황과 문제점, 바람직한 방향을 짚어볼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따뜻한 후원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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