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미래, ‘터미네이터’보단 ‘HER’에 가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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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은 공학의 영역인 동시에 철학의 대상이다. 뇌과학이 깊숙이 발을 담그면 법학과 사회학은 경계의 눈초리로 접근한다. 어쩌면 인공지능 연구에서 배제될 수 있는 분야는 단 하나도 없을지 모른다. 기술적 난이도는 높으면서 이해관계는 복잡하다. 그만큼 사회에 미칠 파장도 핵폭탄 그 이상이다.

인공지능

인공지능의 위협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건 그래서 자연스럽다. 일단 그 파장을 가늠하기 어려워서다. 또 각 분야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인공지능을 정의하고 개발하는 탓에 현재의 기술 수준을 파악하기조차 쉽지 않다. 인공지능 유토피아론과 디스토피아론은 이런 혼란스런 상황을 무대로 서로 엉키고 부딪힌다. 이 현실을 거시적으로 조망해줄 수 있는 학자를 찾기보기가 어려운 이유다.

유신 영국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 교수는 조금은 특별하다. 아니 특이하다. 그의 전공은 소프트웨어공학이지만 관심은 기술사회 전반으로 뻗어 있다. 공학과 사회과학을 넘나들며 인공지능의 미래를 들여다본다. 기술을 바라보는 시각도 균형이 잡혀 있어 기술주의의 함정에 빠뜨리지 않는다. 2014년 12월 출간된 ‘인공지능은 뇌를 닮아가는가’를 두고 한 말이다.

그의 책 ‘인공지능은…’은 개론서면서 입문서다. 덤으로 유신 교수의 기술을 바라보는 통찰을 얻을 수 있다. 그의 통찰엔 공학연구자들에겐 발견하기 어려운 철학의 향이 묻어 있다. 그를 e메일로 불러내 인터뷰를 요청하게 된 배경이다. 유신 교수와의 인터뷰는 지난 1월10일 e메일로 진행됐다.

“인공지능, 가까운 시간 내 인류 위협 확률 낮다”

유신 영국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 교수(사진 : 유신 교수 제공)

유신 영국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 교수(사진 : 유신 교수 제공)

최근 인공지능을 둘러싼 화두는 그것의 위험성에 집중돼 있다.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는 “핵보다 위험하다”고 말하고 있고, 스티븐 호킹 박사는 “인류의 종말을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유 교수는 이 두 전문가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머스크와 호킹 모두 직접 인공지능 연구에 관여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연구 현장과는 다소 이격돼 있는 이들이라는 얘기다.

유 교수는 오히려 “인공지능이 가까운 시간 내에 인류 전체의 실존에 위협을 가할 확률은 매우 낮다”고 말했다. 나아가 “인공지능이 사람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오는 실존적인 위협이 아니라 고전적인 사회경제적 위협의 형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런 측면에서 “어떤 기술이든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고 말한 레이 커즈와일 구글 엔지니어링 디렉터의 전망에 힘을 실었다.

인공지능이 초래할 위협의 실체에 대한 유 교수의 입장은 거시사회학자 랜들 콜린스 교수의 견해와 맥이 닿아 있다. 랜들 콜린스 펜실베니아대 교수는 최근 국내에 번역된 저서에서 “미래의 진정한 위협은 프랑켄슈타인 로봇들의 반란이 아니라 로봇을 소유한 극소수 자본가 계급을 위한 노동의 기술적 대체”라고 전망했다.

유신 교수는 특이점(Singularity) 도래 이후에도 인간과 기계가 맞서는 영화 속 풍경은 등장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미래의 삶이 어떤 모습을 하느냐는 특이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인류가 하는 선택에 달려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편리함을 어디까지 추구할 것인가, 얼마만큼의 정보량이 의미있는 것인가, 에너지는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경제적 균형을 고려할 것인가, 뭐 이런 결정들이 떠오르네요. 인류의 실존을 걸고 기계와 싸우기보다는 당연하게 여겼던 기존 가치를 재검토하고 조정해야 하는 일이 많이 생길 것입니다. 영화를 빌려 말하자면 ‘터미네이터’ 시리즈보다는 스파이크 존스 감독의 ‘그녀(Her)’의 인간 등장인물들이 겪는 문제가 더 현실적일 것 같아요.”

그런 그에게도 염려는 있다. 머스크나 호킹 박사와는 다른 맥락의 염려다. 그는 공학의 미션 혹은 특성이 가져올 우울한 내일을 걱정했다. 공학 연구는 효율성 증대를 지향한다. 완전 자동화를 실현해 노동력을 줄이는 것이 공학 연구의 중요한 본질이다. 그런 만큼 공학 연구자는 사회적 책임에 염두에 둬야 하지만 그렇다 않다는 것이 유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저 자신, 그리고 주변을 봤을 때 (사회적 책임에 대한) 고민이 그리 깊지 않은 것 같다”고 고백했다.

이는 비단 인공지능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했다. 컴퓨터화(computerisation)가 진행되면서 IT 영역 전반에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라는 얘기다. 그는 “기술 이면에 감춰진 사회경제적인 맥락과 책임을 읽어내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공학자라고 비켜나 있지 않다는 점을 그는 강조했다.

유신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 교수 인터뷰 전문 보기

인공지능이 왜 필요할까

영화 '허'의 한 장면.(출처 : 워너브러더스)

영화 ‘그녀’의 한 장면.(출처 : 워너브러더스)

유신 교수는 책에서 “인공지능을 왜 만들어야 하지? 지구상에 자연 지능이 70억개나 있는데 대부분은 별다른 일은 안하고 놀고 있잖아”라고 한 동료 교수의 농담을 인용한 바 있다. 그래서 물었다. ‘왜 인간은 인간보다 더 높은 지능을 만들려고 애쓸까’라고. 그의 답변은 간명했다. “상업적 가치가 매우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 교수는 “어떤 면에서는 인공지능이라는 개념이 탄생한 1950년대 무렵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다”고도 했다. 결국 돈을 향한 욕망이 인공지능 기술을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구글이 자연어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인공지능을 개발하려는 것도 껍데기를 벗겨보면 돈과 관련이 깊다. 페이스북에도, 바이두에도 인공지능은 더 많은 돈을 벌어오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메뉴가 됐다.

그렇다고 돈만이 유일한 욕망을 대변하지는 않는다고도 했다. 살아 있는 존재를 만들려는 역사적 열망이 인공지능 개발에 깃들어 있기도 하고 종종 보존의 욕구가 기계라는 도구와 만나 새로운 형태로 발현되는 방식이 인공지능일 수 있다는 색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미디어는 오감의 확장이라 했던 마샬 맥루한식 접근을 가져와 인공지능은 두뇌의 확장이라는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책이 눈의 확장이듯 인공지능은 두뇌가 확장된 새로운 미디어로 바라볼 수도 있게 된다. 유 교수는 “두뇌의 능력을 확장하는 방법으로서 인공지능이야말로 가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규제와 학자적 양심, 사회구성원이 견제 균형 이뤄야”

인공지능으로 운행되는 구글 자율주행 자동차 시제품.

인공지능으로 운행되는 구글 자율주행 자동차 시제품.

어찌됐든 인공지능 기술은 지금 위협와 희망 사이에서 줄을 타고 있다. 위협을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조금 더 커진 국면이다. 오죽하면 세계적 과학자들의 모임인 삶의미래연구소 회원 150여명이 지난 1월12일 공개편지를 써서 “인류에 해악이 되지 않는 인공지능을 연구하자”고 했을까. 그들이 전체 과학계를 대변할 수는 없겠지만 위협을 실체에 다가갈 수 있는 이들이기에 귀를 닫아서는 안 된다.

유신 교수도 “사회적 함의를 지니는 기술에 대해서 지금보다 더 꼼꼼한 윤리적 제어장치가 필요하다는 근본적 문제의식에는 동의한다”고 했다. 또한 주식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알고리즘에 의한 불법거래처럼 법적으로 규제돼야 하는 부분도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규제와 학자적 양심 그리고 사회 구성원 간의 건강한 견제는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주문했다. 모든 것을 규제로 풀 수도 그렇다고 양심에만 맡길 수도 없기에 적절합 타협 지점에서 만나야 한다는 지적이다.

2015년은 인공지능이 우리 삶에 더 깊숙이 들어오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스마트폰에서도 스마트홈 기기에서도 우리는 인공지능과 만나고 있고, 또 만나게 된다. 분명한 사실은 인공지능 기술은 영리기업이 칼자루를 쥐고 있다는 점이다. 유 교수도 밝힌 바와 같이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중요한 동인이 바로 상업적 가치다.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작가인 제임스 배럿은 인공지능을 “우리의 마지막 발명품”이라고 표현했다. 물론 과장일 수는 있다. 과장이 과장으로 끝나기 위해 인류는 끊임 없이 인공지능 개발 과정을 견제할 필요는 있다. 인공지능이 인류의 마지막 발명품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덧붙임]

BOK0001813729611유신 교수와 e메일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마지막에 ‘꼭 읽어볼 것을 권하는 인공지능 관련 서적’을 <블로터> 독자에게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흔쾌히 응해줬다. 유신 교수는 2012년 국내에 소개된 브라이언 크리스찬의 저서 ‘가장 인간적이 인간’을 꼽았다. 그는 “튜링테스트 대회에 인간 대표로 출전한 필자가 자신의 경험과 함께 인공지능과 인간됨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재미있는 책”이라고 추천사를 남겼다. 유신 교수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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