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 ⑥“금융결제, 책임 지웠으니 자유도 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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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테크’(Fintech)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습니다. 핀테크는 금융(Financial)과 기술(Technology)을 합친 말입니다. 정보기술(IT)이 금융산업에 스며들어 보수적인 금융 서비스를 혁신하는 일 또는 그런 일을 하는 회사를 일컫습니다.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이 ‘천송이 코트’로 불을 댕긴 핀테크 열풍은 이제 보수적인 금융위원회마저 “핀테크를 적극 지원하겠다”라며 팔 걷고 나서게 만드었습니다.

덕분에 을미년 들머리부터 많은 언론이 핀테크에 주목합니다. 기사가 쏟아지죠. <블로터> 역시 특집 기사로 핀테크 열풍의 현재와 미래를 들여다봤습니다. 그런데 핀테크 기사를 훑다보면 늘 아쉬움이 남습니다. ‘해외는 앞서가는데, 한국은 후진적이다’라거나 ‘한국은 규제 때문에 핀테크 안 될 거다’란 식의 병리 진단만 많고 병의 원인을 제대로 보여주는 글은 별로 없는 탓입니다. <블로터> 역시 맥 짚는 시늉만 하고 처방은 못 하는 돌팔이 의사에 지나지 않았나 반성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핀테크 시장을 잘 파악하고 진단을 내려줄 전문가 세 분을 모시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시중은행 개발팀에서 온라인 송금 시스템을 개발했던 한국 인터넷뱅킹 1세대 고용기 오픈트레이드 대표, 법보다 늘 한발짝 앞서가는 IT업계에 법리적 자문을 제공하는 기술전문 법무법인 테크앤로 구태언 대표변호사, 정부 핀테크 육성 정책의 최전선에서 핀테크 스타트업과 규제 기관 사이에 디딤돌을 놓는 금융감독원 핀테크상담지원센터 손정환 선임검사역 이렇게 세 분입니다.

  • 일시 : 2015년 1월7일 오후 4시~
  • 장소 : 서울 마포구 합정동 블로터아카데미
  • 참석자 : 고용기 오픈트레이드 대표, 구태언 테크앤로 대표변호사, 손정환 금융감독원 핀테크 상담지원센터 선임검사역, 안상욱 <블로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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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기 오픈트레이드 대표, 손정환 금융감독원 핀테크 상담지원센터 선임검사역, 구태언 테크앤로 대표변호사(왼쪽부터)

안상욱 블로터 기자 : 핀테크 열풍이 거세다. 박근혜 대통령이 ‘천송이 코드’ 발언한 뒤로 정부가 하루가 머다하고 핀테크 육성 정책을 내놓는다. 관련 보도도 쏟아진다. 거품이 아닌가, 또 다른 관치 금융이 아닌가 하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 핀테크 시장이 제대로 자리잡기 위해서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지, 바람직한 모습은 또 무엇인지 한수 배우고자 이 자리를 청했다.

고용기 오픈트레이드 대표 : 핀테크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는 금융기관이 아니더라도 금융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는 측면에서 나온 거니, 금융업과 다른 요건으로 탄생했다.

예를 들면 전자결제대행회사(PG)를 들겠다.전자금융이 태어날 때는 PG라는 업태가 없었다. 전자금융법도 없었다.

지금은 지불결제 쪽에 허들이 존재한다. 금융업이라고 하면 큰 자본을 갖고 하는 건데, 그것과 핀테크는 시각을 달리봐야 하지 않냐는 얘기가 나오는 거다.

구태언 테크앤로 대표변호사 : 은행은 자본금 1천억원이 있어야 사업할 수 있다. 그러니 핀테크 회사가 금융업자가 되는 게 바람직할지 아니면 이들을 위해 제도를 손봐야 할지 앞으로 이야기 나눠봐야겠다.

핀테크라고 해도 간편하게 이체만 하려는 회사도 있을 테고, 자기가 여신을 행사하려는 업체도 결합할 수 있다.

고용기 : 여신을 직접 행사하면 금융업자가 될 것이다. 세계적으로 금융 산업이 발전하는 방향이 예금과 대출금 이자 차이만 노리던 데서 점점 송·수금 중심으로 옮겨가는 것 같다.

저는 시중은행에서 일한 적도 있는데, 부서 이름이 ‘트랜잭션뱅킹부’였다. 그만큼 거기 집중한다는 얘기다. 여기에 쓰이는 기술은 은행에서 직접 개발하기보다 외부 기술 회사가 만들어 제안해 쓰는 거다.

그렇게 송·수금 중심으로 움직이니 독자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꾸릴 시장이 열리는 것이다. 그런 일을 하는 회사가 다 금융회사냐고 보면 애매하다. 일각에선 벤처기업이라고 하기도 하고.

지금 핀테크가 다시 조명받는 건 모바일 시대에 가장 편리한 결제 방법이 경제를 변화시킬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러려면 그동안 구축한 전통이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개선하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 아닌가.

내가 알기론 이런 걸림돌이 사실 전자금융 발전 과정에서 잘 하려고 만들었던 거다. 그래서 보안 기술이 등장했고, 금융 규제나 금산분리 같은 원칙이 나왔다.

전자상거래 시장 연 개국공신, 이제는 보내주자

고용기 : 기술적인 부분만 우선 집중해서 보자. 보안성 심의 때문에 금융감독원에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고 하는데, 그런 부분도 교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보안성 심의가 생긴 배경이 미국 펜타곤에서 보안 기술 강도를 클래스로 나눠서 비대칭키는 이렇게 쓰고 암호화는 이렇게 쓰라는 게 있었는데, 우리가 이걸 도입하면서 생긴 것이다.

넷스케이프 웹브라우저에서 128비트 암호화 기술을 쓸 수 있는데, 우리는 40비트짜리밖에 못쓰니 128비트짜리 암호화 알고리즘 시드(SEED)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걸 웹브라우저가 못 쓰게 하니 액티브X를 만들어 플러그인으로 붙였다. 여기에 공인인증서를 덧붙이고 해서 보안 4종세트가 나왔다. 지금은 보안 4종 세트가 한국 전자금융이 발전하지 못하게 발목 잡는다고 지적받고 있다. (http://ko.wikipedia.org/wiki/SEED 참조)

손정환 금융감독원 핀테크 상담지원센터 선임검사역 : 핀테크 상담지원센터(이하 ‘센터’)를 만든 데는 금융 산업 선진화라는 목표가 있었다. 해외는 페이팔이나 알리페이 같은 성공 사례가 있는데 국내에는 아직 그런 사례가 없었다. 한국 금융산업을 더 선진화해서 세계적으로 키운다는 취지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보다 위에 있는 건 금융소비자 보호와 이들의 편의를 증대하는 일이다.

핀테크를 지원하는 것도 결국 금융소비자인 국민을 보호하고 그들의 편의를 증대시킨다는 측면에서 하는 거다. 그러다보니 금융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부분을 항상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 점이 현재 규제를 개혁하는데 가장 고민이 많은 부분이다.

안상욱 : 보안 4종 세트가 여전히 필요하다는 말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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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태언 테크앤로 대표변호사

구태언 : 사실 보안성 심의와 보안 4종 세트, 금감원 전자금융법 등이 국내 전자금융 시장이 안전하게 발전하는 데 기여한 건 분명해 보인다. 크고 나니 왈가왈부하는 거다. 만약 공인인증서 같은 게 없었다면 우리가 핀테크 시장을 글로벌 수준으로 넘볼 나라가 못 됐을 거다. IT 선진국이 하는 걸 그냥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해야겠지. 우리가 핀테크 선진국으로 도약할 기반을 만들어줬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10여년 동안 금융 감독 당국이 선진국 핀테크 산업을 넘볼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2000년대에 만들고 개정하며 금융회사 책임 구조도 강화했는데, 앞단에 무슨 구체적인 보안 기술을 쓰고 이런 걸 강요할 필요는 없다. 책임을 부여하고 있으니 금융업에 종사하는 당사자가 알아서 하는 게 필요한 시점 아닌가.

국내 규제 탓하기 앞서 해외 규제 어떤지 살펴야

구태언 : 한국이 금융 규제가 많다는 언론 보도가 많은데, 선진국 규제가 어떤데 여기에 비춰 부당하다는 얘기는 없다. 우리 것만 보면 부당해 보인다. ‘한국형 불행’이라고 하던가? 규제가 실제로 부당한지 아닌지 평가하려면 막연히 부당하다고 비판할 게 아니라 실증적인 연구나 평가를 통해 부당성을 꼬집고 개선책을 구체적으로 봐야 생산적인 논의가 진행될 것 같다.

주요 나라들이 금융회사에 책임을 지도록 하는 규제를 국내 문헌을 통해 살펴봤다. 전자금융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은 선진국이 더 엄격하게 묻는다. 전자금융거래법 9조에 금융회사가 원칙적으로 책임을 지게 하는 건 1978년도 전자자금이체법(EFTA) 규정을 모델로 한다.

미국도 사고가 난 걸 2영업일 안에 알리면 고객이 50달러까지만 책임을 진다. 통장을 잃어버리거나 공인인증서를 분실해도 60일 안이면 최대 500달러까지만 책임진다. 책임을 일부만 묻는 거다. 60일 이후에 사고가 나면 통지하기 전까지 생긴 피해를 모두 고객이 부담해야 한다. 그래서 60일 이내 신고가 긴요하다.

호주는 사고가 난 걸 통지하면 최대 150달러까지만 책임을 묻고, 통지 안 하면 고의나 중과실이 있을 경우 전체 피해액을 떠안도록 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13개월 안이면 고객 책임을 면제해 준다. 금융회사가 뒤집어 쓴다는 얘기다. 물론 보험으로 처리하겠지만.

진입장벽 낮추고 자유와 책임 명확히 구분해야

구태언 : 외국도 한국과 금융회사 책임을 묻는 정도에선 큰 차이가 없다. 이렇게 책임을 지웠으면 이제는 금융회사가 알아서 하도록 놔둬도 된다. 자기 책임이니까. 굳이 4종 세트 깔아라 말라 강제할 필요가 없다. 너희 할 일을 더 잘 하라고 가이드는 할 수 있겠지만.

손정환 : 나도 공감한다. 이미 아시겠지만, 금융위에서 법 개정을 추진하는 방향이 지금처럼 사전에 진입장벽을 높이 세우기보다 사후 책임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는 걸로 안다.

구태언 : 금융산업은 진입장벽이 가장 높은 산업이다. 시설도 시설이지만, 특히 자본 요건이 강하다. 규모가 작다는 사실이 고객에게 투명하게 알려지기만 한다면 고객이 알아서 거래를 가려서 하게 될 것이다. 이용자 권리를 보장한다면 자본 규모나 설비에 맞는 서비스만 하게 당국이 통제하면 진입장벽을 높게 세울 필요는 없지 않나. 동네 슈퍼이면 하루 100명만 받고, 대형 마트면 1천명 받으라고 하면 된다. 동네 슈퍼더러 소매업 하지 말라고까지 간섭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손정환 : 상담하다보면 그런 업체가 많다. 전자자금 이체업 비슷한데 전자지금 이체업이라고 정확히 말하기 어려운 유사 서비스를 하고 싶다는데, 유사하니까 전자금융업자로 등록해야 하는 상황인 거다. 자본금 규제가 있고 거기에 걸맞은 자본금은 없는 상황이라 실제로 사업을 추진하기 어려운 경우를 봤다.

고용기 : 업계는 막 달려나가서 앞에 벽이 있으면 블루오션 찾아 새로운 걸 만드는, 말 그대로 경제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 그렇게 부딪히면 구멍을 뚫어보거나 이래저래 해봐도 막히면 그때서야 당국에 얘기를 꺼내게 되는 거다.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뭔가를 만드는 것이지 ‘기존에 다른 나라는 어떻고 비교해보니 이렇게 고쳐달라’라고 말하는 전문가는 아니라는 말이다. 결국은 학계와 협력해서 발전시킬 부분도 있는 것 같다.

또 한가지 좋은 말씀 해주셨는데, 저는 규제 내지 법 구조 자체에도 어느 정도 맹점이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해외에서 처음 운전해보면 당황스럽다. 유턴이나 좌회전이 없기 때문이다. 유턴 금지라는 표지판은 있는데, 유턴해도 된다는 표지판은 없는 거다. 해외는 원칙적으로 허용하고, 안 되는 것만 알려주는 식으로 한다. 우리는 허용되는 것만 하고 나머지는 원칙적으로 금지다. 만리장성을 쌓아두고 일단 다 막고 시작하는 거다. 이런 구조가 어려 어려움을 낳는다고 본다.

해외에서도 책임을 물을 때 사후책임을 묻는다. 그게 발전방향이다. 그게 무서우니 금융회사가 알아서 조심하는 것이고. 금융소비자 수준이 이제는 상당히 올라왔고, 과거에 규제나 시스템을 만들 때와 지금은 우리 상황이 퍽 다르다. 스스로 인터넷과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능력이 많이 올라왔으니 사용자 책임도 알려주고 책임을 나눠질 필요도 있다고 본다.

규제 기관, 국민 의식 변화에도 나서야

고용기 : 저는 크라우드펀딩 회사를 운영한다. 금융당국이 투자자 보호를 신경쓰는 건 당연히 맞는 일이다. 정부가 할 일이다. 또 한 가지 금융당국이 할 일은 금융소비자도 스스로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도 있다고 알려주는 것이다. 전통 융자 중심 금융에서 투자 중심 금융으로 옮겨가며 새로운 경제를 창출하고 재미있는 활동이 많이 벌어질 수 있다. 그런데 인지 수준이 변화를 못 따라가면 문제가 생긴다. 투자 금융이라면 분명히 내 책임이라고 알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미국에서 크라우드펀딩이 성공하는 건 자기 책임 아래 기부하고 투자하는 문화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구태언 : 정말 바람직한 방향이다. 검사 시절, 투자해놓고 사기라고 고소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믿고 맡겼는데 손해 나면 사기라는 거다.

고용기 : 고속 압축성장하면서 생긴 진통이라고 본다. 정부 주도 하에 국민을 끌고 올라오니 국민이 온실 속 화초가 된 거다.

구태언 : 아직도 새마을 운동 중이다. 뉴타운으로 이름만 바꿨을 뿐….

고용기 : 젊은 세대는 인식이 상당히 달라졌다.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은 눈 뜨자마자 네트워크와 연결돼 있다. 한참 사회생활 하다가 컴퓨터 배운 구세대와 굉장히 다르다.

구태언 : ‘디지털 네이티브’라고 한다. 엄마와 아기가 서로 목에 카메라를 들고 화면을 SNS로 공유하면 아이가 2살만 돼도 엄마와 자기가 본 장면이 찍힌다는 걸 안다더라. 네트워크 효과를 알고 큰다.

고용기 : 그러니 특정 정부만 과잉보호하고 끌고 올 시대가 아니다. 핀테크 분야뿐 아니라 사회 전반을 보호하는 일이 이제는 과잉보호로 자립하는 데 오히려 걸립돌이 됐다.

구태언 : 금융당국에 큰 패러다임 변화를 주문하는 말씀으로 들린다. 금융은 원래 허가 사업이고 자격 가진 사람만 그 안에서 활동할 수 있게 해서 소비자를 보호하도록 한다. 관치금융이라기보다 후견금융, 국가 감독 금융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개방형 자율 금융으로 문호를 열자는 얘기다.

어떻게 열지 구체적인 방법까지 논의하기는 어려운 문제다. 신종 융합 분야도 많으니 금융업 분야를 없애야 할까? 감독당국 개입 시점을 인허가 초입부터 하는 기존 시스템은 그대로 놔둬도 될까? 일정 요건이 맞으면 알아서 사업 시작하고 나중에 문제가 되면 사후에 감독당국이 개입하는 쪽이 맞을까? 이건 전혀 다른 접근법이다.

법 규정을 다 정리하지는 못하겠지만 크게 나누면 자본 규제, 업태 규제, 기술 규제 등으로 나눌 수 있겠다.

업태는 신종 업체가 많이 등장한다. 금융업이 전자금융법에 정해져 있으니 그 중 하나로 보고 자본요건을 맞추라고 요구하니 아예 사업을 못하게 되는 문제가 생긴다. 자본 규제는 어느 정도 자본이 있어야 사고가 터졌을 때 책임을 질 수 있기 때문에 만든 거다. 그래서 은행은 충당금도 쌓게 하고 BIS(자산 대비 부채 비율)도 보는 건데, 핀테크 스타트업은 이걸 맞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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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기 오픈트레이드 대표

고용기 : 금융업으로 보면 핀테크는 전통 금융업과 다르다.

구태언 : 저도 그렇다고 본다. 감독당국 입장에서는 새로운 것을 기존 프레임으로 가두려고 하니 이 안에 들어오게 하는 거다. 이걸 변화시키는 건 관점의 변화가 필요한데, 각론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금융업계가 규제에 익숙해져 있는 규제 의존적인 정서를 극복하는 것도 중요하다. 자율이라는 게 무거운 책임이 따르는 얘기니까. 금융회사든 핀테크 스타트업이든 이런 구조 아래 거쳐야 할 관문인데, 금융소비자를 보호하면서 핀테크 산업을 육성하는 토끼 두 마리를 한 번에 어떻제 잡을지가 관건이다. 이건 법으로 해결 안 되니 결국 자율 규제가 될 것이다.

책임만 지우지 말고 자유도 함께 줘야

고용기 : 기술 규제 문제는 핀테크 기술회사가 가장 많이 문제삼는 부분이다. 보안성 심의를 중심으로 한 기술 규제 말이다. 특히 전자금융업자만 보안성 심의를 신청할 수 있도록 규정해 심의 자격 자체를 부여하지 않아 스타트업이 기술만 갖고 사업을 시작한 업체가 불만이 많다고 뉴스도 크게 났다. 보안성 심의는 장기적으로 폐지하겠다고 얘기했는데, 아직 개정은 안 됐다.

같은 전자금융거래법에서 한국은 사업자나 금융회사에 해외보다 엄격한 책임을 부여한다. 이용자 보호에 취약하다는 평가 받는 미국은 60일 이후에 통지하면 고객 보호 안 한다. 유럽은 13개월 안에는 모두 보호해준다. 우리는 기간에 상관 없이 전자금융업체가 일단 책임지고, 예외로 면책하게 한다.

그러니 기술 규제는 사후 감독으로 과감하게 전환해도 된다. 다만 실질적으로 금융소비자가 보호받을 수 있도록 전자금융업법을 잘 운용하는 건 다른 문제다. 최근 법원에서 금융소비자가 전자금융 이체 사고를 당해 소송을 걸면 소비자가 패소하는 쪽으로 판례가 흐르고 있다. 판례마다 달라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예외 사유인 고의·중과실을 확대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핀테크 성공 관건은 금융소비자가 선진국 수준으로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사고 당해서 보상 못 받고 개인이 몇 년 동안 소송을 어떻게 하겠는가. 국민 불안이 커지면 다시 감독당국 규제가 들어올 것이다. 핀테크가 성장하려면 소비자 보호가 최우선이다. 구조를 잘 갖춘 뒤에 사후 보호로 돌리고, 소비자 보호가 잘 이뤄지도록 감독하고, 그 안에서 각 금융회사나 전자금융 업체가 어떤 기술을 쓰든 놔두면 감독당국도 책임에서 자유로워지면서 법 제도적 프레임이 형성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술 규제가 금융산업에 지나치게 개입해

고용기 : 당국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빠른 변화에 발맞춰 주는 거라고 본다. 미국, 영국, 유럽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개별 서비스가 나오니 자꾸 좇아간다. ‘이 기관이 감독하는 게 맞냐, 조정하라’라는 식으로 빨리 결정해서 P2P 대출도 증권거래소가 관리하는 식으로 빨리 각자 역할을 조정한다.

P2P 대출이 한국에서 안 되는 이유는 투자자한테, 그러니까 대출 원금을 빌려주는 사람한테 이자소득세가 27.5% 부과되기 때문이다. 세금이 이자의 3분의 1이죠. 이 이상 수익이 나야 하니 이자율을 높게 요구할 수밖에 없다. P2P 대출이 긍정적으로 운용되려면 서로 입출도 붙고 해서 이자율을 낮춰줘야 하는데, 보전해줘야 할 이자율이 높으니 돈을 빌리려는 사람에게 이자율을 높게 요구할 수밖에 없다. 손실 보전은 없는데 이자 버는 건 소득세를 많이 떼니 잘 안 되는 거다.

공인인증서도 과도하게 많이 나간 사례다. 기술 규제가 과도하게 금융산업에 개입해서 무겁게 만들어진 것이다. 가장 좋은 대안은 OTP(일회용비밀번호)카드다. 이거 잃어버리면 내 책임으로 가는 게 맞다. 구간을 잘라주고 소비자가 필요하다면 알아서 바이러스 백신도 깔고, 키보드 보안 프로그램도 깔도록 놔두는 게 맞다. 그걸 다 하도록 규제로 강요하니까 외국인이 한국에서 천송이 코드를 못 사는 거다.

구태언 : 공인인증서 요구하는 의무안은 곧 없어지는데, 전통 금융업자가 스스로 갇혀서 못 나가는 상황이다. FDS(부정거래탐지시스템) 대비가 안 돼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진 공인인증서가 부정 사용을 그나마 많이 막고 있었다. 좀비 PC로 해킹하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그렇게 큰 비중이 아니었다. 불편하긴 했지만 안전했는데, 이제 이체도 고도의 전자금융으로 바꾸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 OTP를 가진 고객 비율도 굉장히 낮다. 일회용 OTP 생성기를 쓰려면 5천원이라도 비용을 내야 하는데 금융소비자가 과연 사려고 할지도 문제고.

고용기 : OTP는 고객이 사게 해야 한다.

구태언 : 문제는 전자금융거래법 때문에 고객이 OTP를 선택하지 않아도 고객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고용기 : 저가항공 나오듯 가볍게 들어가는 대신, 책임을 지도록 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구태언 : 해외에서 핀테크 산업이 발전하는 이유 중 하나가 규제가 예측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평가하더라. 규제하면 또 많은 나라가 미국인데, 되고 안 되고가 명확하다는 게 장점이다. 미국은 법이 명확하지 않으면 시행규칙이라도 내려줘서 투명성을 높여준다.

한국에도 ‘비조치의견서’라는 제도는 있는데, 2001년 이후에 12건만 나왔다고 한다. 엄격한 책임은 부과돼 있는데, 금융당국에서 비조치의견서를 받기 어렵다 보니 뭐가 되고 안 되고 판단하기 힘들다. 그래서 쉽게 투자하기도 어렵다. 핀테크 상담지원센터 같은 데서 상담 내용이나 가이드한 걸 기준으로 공유해주면 좋겠다. 법 개정은 어렵고 기간도 오래 걸리니 비조치의견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된다, 안 된다고 지침을 알려달라는 얘기다.

안상욱 : 비조치의견서를 내는 데도 자격이 있는 듯하다. 한 핀테크 회사 대표에게 얘기를 들었는데, 금융업자가 아니면 비조치의견서를 내달라고 신청도 못 한다고 하더라.

손정환 : 센터에서 다양한 의견이나 불편사항을 접수 중이다. 예측이 잘 안 되는 부분에 대해 정부에 이런 문제가 있다고 건의해서 정책 운영에 참고가 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우리 모델은 영국에 있는 ‘이노베이션허브’다. 우리가 하는 상담 내용이 센터 안에서 100% 해결할 수 있는 내용은 거의 없다. 상담업체가 직접 연락하기 힘든 여러 부서나 관련 부처에 대신 질의를 받고 원스톱으로 답변 드리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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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정환 금융감독원 핀테크 상담지원센터 선임검사역

고용기 : 보다 많은 금융 가치 이동이 이뤄지는 것, 그게 특정 거대 금융기관을 통해서만 움직였던 게 동시다발적으로 모바일로도 하고 대중이 모아서 민간 재원을 투자하는 등 다양해지는 것이고, 송수금이 많아지는 방향이니 결국 경제를 활성화할 수밖에 없다.

또 구글이 API를 열어서 지도 위에 다른 정보를 올릴 수 있게 했듯이 금융도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보안과 책임성이 덧붙어야 하겠지만. 미국에서는 ‘오픈파이낸셜익스체인지’(OFX) 표준이 나와서 허가 받은 외부 업체가 금융기관의 송수금을 자기 기술로 다른 서비스로 만들 수 있게 했다. 우리나라는 이런 게 개방이 잘 안 되니 웹사이트에서 긁어오는 편법이 나타나고, 이걸 막으려고 다른 기술이 나오고, 이런 식으로 엉뚱하게 시간을 낭비한다.

손정환 : 저도 질문드리고 싶은데, 핀테크를 바라보는 시각이 금융기관과 스타트업이 많이 다른 것 같다. 스타트업은 기존 금융회사가 할 수 없는, 손대지 못한 영역을 해보겠다는 취지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은데, 기존 금융회사는 핀테크 팀도 만들고 부서도 만들어서 주도권을 자기네가 가져가려고 하는 것 같다. 어느 모델이 핀테크 산업 발전에 더 맞는 모델이라고 생각하는가?

고용기 : 자본력이 많고 기술력이 훌륭한 새 강자가 나오면 시장이 옮겨갈 수도 있을 거다. 경쟁이 돼야 전체가 발전한다. 스타트업은 혁신하고 기존 금융기업 등 대기업은 시장과 플랫폼을 갖고 있으니 두 영역이 경합할 수도 있다고 본다. 혁신성이 강하면 따로 움직일 수도 있을 거고, 인수합병으로 흡수될 수도 있을 테고.

손정환 : 결국은 상생하는 게 중요하다.

고용기 : 문을 열어주는 게 맞다.

구태언 : 지난해 말 금융위가 비공식 행정지도 95%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는 보도를 봤다. 공식 지도 이외에 구두지도 등 비공식 행정지도를 많이 운용했는데, 95%를 폐지한다고 했다. 사실상 폐지다. 이것도 중요한 변화인 것 같다.

또 업무 매뉴얼은 꼭 알아야 할 분야로 축소하겠다는 얘기도 했다. 여신금융협회나 금융투자협회 같은 곳을 통해 만든 게 거의 법처럼 운용되는데, 이런 가이드도 줄이겠다는 거다. 금융당국이 변하는 느낌은 든다.

고용기 : 자율성과 다양성이 인정되려면 이용자가 책임을 인식할 수 있는 문화부터 조성해야 한다. 금융소비자가 어떤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지 알게 해주는 건 핀테크 업계와 정부가 함께 노력해야 할 일이다.

손정환 : 책임이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누구에게 책임 소재가 있는지 명확히 법이나 규정 개선을 통해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또 책임 질 능력이 있는지, 반드시 자본금이 아니더라도, 명확히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고가 나면 벌칙을 받게 해서 사전에 조심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면 핀테크 산업이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고용기 : 전자금융 쪽 관점에서 보면 구간에 대해 책임 범주를 정확히 구분 짓는 게 필요하다. PC는 내 책임이고, 서비스 구간은 누가 서비스를 제공했느냐에 따라 책임을 지게 하는 거다.

안상욱 : 서로가 서로의 책임을 나눠지도록 하는게 중요하다는 말씀이다.

구태언 : 시스템상 문제를 소비자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 금융소비자에게 책임을 지워서는 핀테크 산업이 성장할 수 없다. 자기와 상관 없는 이유로 사고가 났는데도 책임을 지라고 하면 안 된다. 사업자 책임을 보자면, 너희가 책임을 지는 대신 사후 감독으로 바꿔줄 테니 책임 진다는 전제 아래 자유롭게 해보라고 하는 게 맞다. 큰 틀 안에서 자율성 보장하는 식으로 핀테크 산업 규제가 바뀌는 게 바람직하다.

다만, 금융감독당국이 약간 뒤로 후퇴하면서 기존 허가 사업자 단체가 자율 진입규제를 만드는 움직임이 나오는데, 이것은 부당한 공동행위이기 때문에 불공정 거래행위가 된다. 답합이다. 기존 사업자가 담합해서 새로운 스타트업 진입을 막고 독과점 구조를 만들면 안 된다. 기존에 허가 받았다는 이유로 독과점 구조를 만들 근거는 없다.

고용기 : 속도도 중요하다. ‘알리페이’나 ‘애플페이’도 있고, 우리가 분명히 핀테크를 주도할 기술력과 인프라가 있는 나라인데 외국계 핀테크 회사가 들어오면 시장을 빼앗길까 우려된다.

구태언 : 멍석 갈아주니 외국인이 잔치 벌이는 상황이 될 수 있다.

고용기 : 알리바바 같은 회사가 최근 개미금융을 만들었고, 텐센트는 위뱅크를 세웠다. 그 영향력이 한국까지 오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래서 더욱 서둘러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구태언 : 아이폰이 출시 2년반 만에 한국에 들어온 탓에 모바일 시장을 미국 따라잡는데 4~5년이 걸렸다. 핀테크 시장도 그렇게 될 수 있다. 네트워크 효과가 있기 때문에 1년 격차로도 글로벌 기업에 다 넘어갈 수도 있다.

손정환 : 센터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전달하고 좋은 의견을 모아 건의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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