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엉이 사나이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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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N0055우리가 죽인 부엉이 사나이.

블로터닷넷에 보낼 글의 소재를 찾던, 말 그대로 지성적인 고민으로 충만했던 어느 날 밤의 이야기다. 내가 그날 만난 사내가 정말 ‘부엉이’였냐고 의심하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어떻게 착각할 수 있겠는가. 좀 뚱뚱한 몸집과 구부정한 어깨, 그리고 피곤한 듯 자꾸만 눈을 껌뻑이는 버릇이나 장황하고 어눌한 말투는 그의 전매특허 아닌가. 한때 시민들의 광장에서 얼굴없는 예언자로 칭송받던 인물이 확실했다. 더구나 이제는 ‘부엉이’를 사칭하는 거짓 예언자도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교보문고를 나설 때 하늘에는 싸락눈 자락이 날리고 있었다. 바람이 낚아챈 작은 눈송이들은 땅위에 쌓이지 못하고 자꾸만 공중으로 솟구쳤다. 가족과 연인끼리 짝을 지은 사람들이 옷깃에 얼굴을 묻고 바쁜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꼬리에 꼬리를 문 차량들의 행렬은 자꾸만 더뎌졌다. 광화문 광장에 설치된 대형 엘이디 전광판에서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영상과 문자가 반짝거렸다. 광장을 가로지르는 신호등이 파란색으로 바뀌었을 때, 나는 횡단보도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부엉이 사나이의 외투자락을 급하게 잡아당겼다.

나는 어색하게 악수한 그의 손을 놓지 않은 채로 세종문화회관 뒤편 골목까지 그를 끌고 갔다. 광화문 대로에서 경제 예언자와 딱 마주치는 경험을 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에게 묻고 싶은 것이 너무도 많았다. 다행히 우리가 들어간 카페 ‘하나의 환상’에는 손님들이 붐비지 않았던 까닭에 ‘은밀한’ 대화를 나누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무엇부터 물어야 하나. 문득 동생이 그동안 부어두었던 적금을 깨고 내달 초에 아파트를 사려 한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이제는 강남 부동산 불패신화가 깨지고 대폭락이 오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부엉이 사내는 느릿느릿 고개를 가로저었다. “확언컨대 강남 부동산 가격은 최소 2010년까지 2008년과 같은 급격한 폭락은 없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부엉이 사나이는 2009년 6월 수도권 고가 아파트의 경매 낙찰률이 높아진 점, 정부가 추가적인 부동산 규제에 나서더라도 강남 3구는 이미 규제를 받고 있어 무풍지대라는 점 등을 들었다. 이런 판단의 가장 결정적 근거로는 서브프라임 사태 당시 미국의 연체율이 5%대였던 데 반해, 2009년 6월말 현재 한국의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0.43%에 불과한 점을 꼽았다. 부동산 거품 붕괴론자들이 누적된 부동산 가격의 과도한 상승과 지나친 가계부채를 폭탄의 뇌관으로 꼽는 반면, 부엉이 사나이는 ‘아직 아파트를 사느라 은행에서 꿔다 쓴 돈을 갚을 능력이 있으니 괜찮다’는 설명이었다.

부엉이 사나이는 2008년 광장에서 정부의 환율정책을 비판하면서 예언자로서 본격적인 유명세를 탔다. “이제 더 이상 환율사태는 없는가”라는 질문에 부엉이 사내는 “미국의 저금리 상황 때문에 달러가 대량으로 국내 주식과 채권시장에 유입됐고, 엄청난 수출실적을 올린 대기업들의 달러 매도 대기물량 등을 고려하면 2010년 원-달러 환율은 1100원대 아래에서 머물 것”이라고 말했다. 부엉이 사내는 자꾸만 시계를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쓸데없는 걸 질문하는군요. 거시경제는 어떻게 보면 아무 의미가 없는지도 몰라요. 정부는 이번 금융위기를 OECD 회원국들 중 가장 먼저 벗어났다고 자랑하지만, 대부분의 서민들은 지금 너무나 호주머니가 가볍잖아요. 지금 한국인들의 진짜 문제는 ‘당신들의 월급통장이 안녕하지 않다’는 점이에요. 개인이 살아야 나라도 사는 법인데, 한국에선 그 반대 꼴이죠.”

부엉이 사나이는 앞으로 서민들을 괴롭힐 핵심적인 경제문제로 전세가격 폭등을 꼽았다. “한국에는 세계 유일의 ‘전세’라는 제도가 있잖아요. 그런데 이 전세가 참 요물인 게, 부동산 가격이 오를 땐 전세 가격도 당연히 오르지요. 하지만 부동산 가격이 떨어질 경우에는 전세가 월세물량으로 빠지면서 공급부족이 생겨 또다시 전세가격이 올라가게 됩니다. 이 경우가 현재의 케이스이지요. 현재의 전세값 폭등은 3년 이상 유지될 겁니다. 2010년부터 2년간 서울 뉴타운 재개발로 인해 13만가구가 전·월세 시장으로 쏟아져 나오는데, 신규공급물량은 4만여 가구에 그칩니다. 전세가격 상승은 하반기부터 2010년 상반기를 거쳐 강북권 전역으로 확산돼 부동산가격의 추가상승을 부르겠지요. 지금 정부는 이런 악순환을 막을 의지가 없는 것 같아요.”

누가 대화를 엿들을까 걱정되는지 카페에 들어선 뒤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부엉이 사내는 정부의 물가발표, 잡쉐어링, 유류세 관련 정책 등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목소리를 잔뜩 낮췄다. 카페에서 한 시간쯤 시간이 흘렀을 때, 사내는 “이젠 떠나가야 할 때”라며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그랬을까. 아직 그에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남은 듯했고, 친절해 보이는 카페 주인은 식어버린 커피 잔을 기꺼이 다시 채워줄 터였다. “다시 광장에서 예언자 부엉이로 나설 수 없나요?” 소매를 붙잡고 부탁하는 나에게 부엉이 사나이는 쓴웃음을 지었다.

“당신은 정말 바보 같군요. 저를 더 이상 예언자 부엉이라 부르지 마세요. 당신들이 부엉이를 죽였잖아요. 거대 신문들은 ‘미네르바의 가짜학벌에 속은 대한민국’이라는 기사를 1면에 내고, 기득권자들은 저의 예언을 사회 부적응자의 투정쯤으로 왜곡하고, 검찰이 허위사실 유포죄로 저를 기소했을 때 부엉이는 이미 죽었습니다. 지난날 광장에서 저를 비롯한 다양한 예언자들이 한국경제의 미래를 들려주던 때, 우리의 목표는 사실 현실을 바꾸는 것이었지요.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시민들에게 현실경제를 자기 나름의 안목으로 판단할 힘을 길러주고 싶었던 거예요. 그러나 이제 광장은 막혔고, 내 등 뒤에는 늘 저격병이 도사리고 있어요. 광장에 순수하게 나서지 못하는 부엉이는 더 이상 지혜의 부엉이가 아니지요. 저는 아예 무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의 꿈이요 그림자지요. 제가 세상에 다시 태어나기 위해선 억만 겁의 시간을 저 고독하고 차가운 골짜기에서 기다려야 할 겁니다.”

잠에서 깼을 때 마감뉴스까지 마친 티브이는 홀로 붕붕거리고 있었고, 침대 머리맡에는 <미네르바의 생존 경제학>(박대성 지음, 미르북스 펴냄)이 펼쳐져 있었다.

고백하건대 나는 책에 적힌 내용에 100% 동감하지 않는다. 솔직히 그의 책은 담긴 내용에 비해 값비싼 느낌이고, 혹시 있을지 모를 오류를 경계하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게다가 재테크 카페를 만들거나 강연회를 다닌다는 요즘 박대성씨의 모습은 낯설고 불편하다.

그러나 이점만은 분명히 밝혀둘 필요가 있다. 나는 미네르바가 한창 왕성하게 환율에 대한 글을 인터넷에 올릴 때 그의 안목과 식견에 감탄했고 두 차례 다음 쪽에 인터뷰 요청을 하기도 했다. 물론 그런 행동은 내가 너무 무식했던 탓일 수도 있다. 그러나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도 그를 “온 국민의 경제스승”이라고 치켜세우지 않았던가. 아직 충분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박대성씨 덕분에 ‘몰라서 속고 살던’ 지난 세월과 어느 정도 작별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