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이 날더러 실명만 쓰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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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씨’는 온라인 매체 <슬로우뉴스>의 편집장이다. 가명이다. 민노씨 편집장은 2005년부터 온라인에서 민노씨로 활동해왔다. 햇수로만 11년째다. 페이스북이 등장하기 전에도 인터넷으로 연결된 온라인 세상이라면 어디에서나 민노씨는 그냥 민노씨였다. 페이스북의 ‘노모뎀’도 실명이 아니다. PC 통신 시절 처음으로 e세상에 로그인한 이후 지금까지 쓰고 있는 온라인 별명이다.

생각해보자. 그 누구도 자신의 법적인 이름을 선택할 수 없다. 다른 이가 갓난아이에게 일방적으로 주는 이름이 법적인 이름이다. 말하자면 이는 우연이다. 온라인 별명은 다르다. 스스로 원하는 이름을 고를 수 있다는 점에서 법적인 이름과 달리 필연적이다. 페이스북이 비실명이라는 이유로 이 두 사람을 강제로 몰아내기 전까지 이들은 민노씨로, 노모뎀으로 페이스북에서 잘 지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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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쫓겨나는 가명 사용자들

민노씨 편집장은 지난 1월30일 페이스북 친구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네 계정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는 친구의 문자에 스마트폰에서 페이스북을 켰다. 평소와 달리 로그아웃 상태로 페이스북 응용프로그램(앱)이 실행됐다. 다시 로그인하려는데 안 됐다. 민노씨 편집장이 마주한 것은 익숙한 타임라인이 아니라 낯선 메시지였다.

“회원님이 페이스북에서 사용하는 이름은 실명이 아닌 것 같습니다. 페이스북에서는 서로 교류하는 대상을 알 수 있도록 실명을 이용해야 합니다.”

실명이 아니라며 결론을 내린것도 아니다. 아닌 것처럼 보인단다. 이건 무슨 뜻일까. 민노씨는 진짜 이름이 아니지만, 민노씨라는 이름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누가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페이스북이 이를 자의적으로 판단해도 되는 걸까. 게다가 일방적으로 계정이 비활성화 된 탓에 그간 쌓아온 사진과 게시물 등을 한순간에 잃어버렸다. 수많은 페이스북 친구들은 또 어떻고. 민노씨 편집장의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페이스북의 실명 정책을 몸소 체험한김에 민노씨 편집장은 직접 페이스북을 취재하기 시작했다. 계정은 어떻게 됐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페이스북 관계자와 몇 번 통화한 이후인 지난 2월4일 정상으로 복구됐다. 비실명 계정이라는 이유로 계정을 비활성화 할 때는 언제고, 취재를 시작하자 원칙과 다른 판단을 내어준 셈이다.

“지난주 금요일 오후 제 계정의 안부를 묻는 문자를 받고 확인했어요. 모바일에서 접속을 했더니 로그아웃 상태로 뜨더라고요. 이후 어찌된 일인지 취재를 시작했고, 취재 과정에서 지난 2월4일 계정이 복구됐어요.”

민노씨는 “내가 겪은 일 자체가 페이스북의 실명 정책에 일관성이 없음을 드러낸 표본이 된 셈”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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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 되찾으려면 민증 까”

이번엔 노모뎀의 경험담을 따라가보자. 민노씨와 같은 날인 지난 1월30일 저녁, 노모뎀도 페이스북 계정이 비활성화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노모뎀은 곧바로 페이스북 고객센터에 접속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찾기 위해서다.

계정을 다시 활성화하려면, 법적 효력이 있는 문서를 보내면 된다. 국내에서는 주민등록증이나 여권 등이 대표적이다. 이밖에 혼인증명서나 의료기록, 급여명세서 등이 페이스북이 인정한 법적 효력이 있는 문서다.

노모뎀은 페이스북이 명시한 법적인 문서 대신 명함을 스캔해 보냈다. 주민등록증을 스캔해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명함에도 노모뎀이라고 적혀 있었다. 페이스북은 다시 이를 꼬투리잡았다. ‘비즈니스 브랜드’, 혹은 ‘연예인’. 페이스북이 노모뎀이라는 이름에 내린 최종 결론이다. 본인의 이름을 페이스북이 마음대로 연예인식 가명이라고 판단한 셈이다. 페이스북 정책에 따라 노모뎀 개인 계정은 페이지 계정으로 전환됐다. 마치 연예인의 팬 페이지처럼.

노모뎀은 끈질기게 페이스북을 귀찮게 했다. 총 6통의 e메일을 주고받은 후에야 개인 계정 노모뎀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쯤 되면 의아해진다. 페이스북의 계정의 주인은 과연 누구일까. 원래 쓰던 계정을 되찾고 싶었을 뿐인데, 허비한 날짜만 닷새가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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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이 밝힌 법적 효력이 있는 문서의 종류

원칙 없는 페이스북의 ‘강제 실명제’

민노씨 편집장과 노모뎀은 그나마 운이 좋은 경우다. 비실명 계정이라는 이유로 부지불식간에 페이스북 접속이 가로막힌 이들은 쉽사리 계정을 다시 복구할 수 없다. 페이스북 쪽에 백기를 올리고, 계정을 실명으로 바꾸는 게 보통이다.

비실명 계정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페이스북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도 문제다. 페이스북의 ‘오원석’은 실명 계정일까 아닐까. 실제로 성이 ‘민’이고 이름이 ‘노씨’인 사용자는 별명으로 민노씨를 쓰는 사람과 같은 문제로 페이스북과 다퉈야 하는 것일까. 게다가 실명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는 페이스북의 설명에 아연실식할수밖에. 페이스북의 자의적이고 모호하며 일방적인 판단 때문에 비실명 계정 사용자들이 적잖은 불편을 겪고 있다.

페이스북의 실명 전환 방식이 국내법에 저촉되는 점은 없는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국내에서는 지난 2007년 여름 처음으로 인터넷 실명제가 시행됐다. 2012년 8월 헌법재판소는 인터넷 실명제에 위헌 결정을 내렸다. 당시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을 보자. 인터넷 실명제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는 게 헌법재판소 결정의 핵심이다.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위축시키고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외국인의 인터넷 게시판 이용을 어렵게 한다는 점, 게시판 정보의 외부 유출 가능성이 증가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불이익이 공익보다 작다고 할 수 없어 법익의 균형성 역시 인정되지 않는다.”

페이스북이 강제로 비활성화한 비실명 계정을 복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주민등록증이나 여권을 스캔해 보내야 한다. 주민등록증이 없는 미성년자는 출생증명서를 보내야한다. 비실명으로 페이스북을 쓰고 싶을 뿐인데, 지나친 요구다.

실명 강요 사과했으면서…변함 없는 페이스북

“드랙퀸(여장남자), 드랙킹(남장여자), 그리고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커뮤니티 등 페이스북의 실명 정책으로 상처를 받은 이들에게 사과합니다.”

크리스 콕스 페이스북 최고제품책임자(CPO)가 지난 2014년 10월1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사과문이다. 크리스 콕스는 페이스북의 실명 정책으로 가명을 주로 활용하는 성소수자들이 피해를 본 것에 유감을 표했다. 트랜스젠더는 자신의 현재 성과 성별이 다른 이름이 알려질 경우 추가 피해를 받을 수도 있다. 페이스북의 실명 정책을 공론의 장으로 이끈 이 역시 ‘시스터 로마’라는 가명을 쓰는 성소수자였다. 크리스 콕스는 사과문을 올린 이후 페이스북의 실명 정책을 보완할 것을 약속했다.

크리스 콕스 CPO는 “우리의 정책은 절대로 모두에게 법적인 이름을 쓰도록 강요하고자 한 것이 아니다”라며 “우리 정책의 본래 정신은 페이스북 사용자가 실제 생활에서 쓰는 신뢰할만한 이름을 쓰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비실명 계정을 허하라”

“가명은 온라인에서 쓸 이름을 스스로 선택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봐요. 가명을 쓰는 목적이 오프라인의 나를 숨기려는 의도이거나, 무언가 책임을지지 않을 일을 하고 싶기 때문은 아니거든요. 익명성 뒤에 숨는 것이 아니라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아이덴티티를 분리할 뿐인 거죠.”

익명성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방법의 하나가 아니다. 오히려 온라인에서 정체를 드러내는 방식 중 하나라는 게 노모뎀의 주장이다.

크리스 콕스 CPO는 사과문에서 계정 이름의 신뢰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신뢰성은 단순히 이름이 법적 실명인지 여부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관계가 신뢰를 담보한다. 페이스북은 가장 대표적인 사회관계망 서비스 아닌가. 수백에서 수천명에 이르는 페이스북 친구와의 실질적인 관계가 계정의 신뢰를 실증한다. 실명을 강제하는 페이스북의 정책은 페이스북 스스로 서비스의 정체성을 흐릿하게 만들고 있다.

민노씨 편집장도 같은 의견이다. 민노씨 편집장은 “만약 페이스북이 사람들이 실명을 쓰길 원한다면, 사용자 스스로 실명으로 바꾸도록 권유하는 선에서 멈춰야 한다”라며 “실명은 온라인 상에서의 투명하고 안전한 소통과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 실명을 강제해서 안 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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