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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께 ‘콘텐츠’는 어떤 의미?”

2015.02.11

콘텐츠가 경쟁력이라고 말한다. 곳곳에서 ‘한류’와 ‘글로벌 콘텐츠’를 입버릇처럼 주문한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난다긴다하는 콘텐츠 업체를 분석한다. 애플의 성공 배경을 말할 때도 콘텐츠는 빠지는 법이 없다. 제품으로 이용자의 발길을 이끄는 매력의 원천, 서비스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붙잡는 힘의 샘터. 콘텐츠는 그런 존재다.

국내에서도 콘텐츠가 제 역할을 하게 될 날이 올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헌데, 아무리 둘러봐도 좀처럼 모양이 나오지 않는다. 콘텐츠에 대하는 기업의 인식은 남루하고, 콘텐츠를 어떻게 서비스해야 좋을지 제대로 경험한 곳도 찾아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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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의 밀크 페이스북 페이지 사진

최근 페이스북에서 논란이 된 삼성전자의 ‘밀크 막말 사건’을 떠올려보자. 밀크는 삼성전자가 서비스 중인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다. 요금을 내고 음악을 듣는 다른 업체의 서비스와 달리 무료다. 페이스북 밀크 공식페이지 관리자도 그 부분을 강조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넌 아직도 돈 내고 음악 들어?”, “무조건 공짜” 등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문구로 입방아에 올랐으니 말이다.

문제가 된 그림은 페이스북에서 촌극 정도로 끝났을 일이다. 다만, 콘텐츠를 보는 삼성전자의 관점이 어떠한지가 이번 일로 드러났다는 점은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음악은 과연 삼성전자에 어떤 의미였을까. 어쩌면 스마트폰 판매를 촉진하기 위한 단순한 마케팅 소스에 그쳤던 것은 아니었을까. 음악가 협동조합 ‘뮤지션 유니언’이 지난 2월8일 삼성전자 사옥에서 사과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까닭도 바로 이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만난 음악은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전락했다. 수단이 된 음악은 무력한 공짜로 치환됐다.

음악인 노동조합 뮤지션 유니온은 성명에서 “밀크뮤직 서비스의 경우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판매 촉진을 위한 마케팅 수단으로 기능하는, 끼워팔기 상품으로 음악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가지기에 충분한 서비스”라며 “음악인들은 이러한 무료 스트리밍 라디오 서비스가 소비자들에게 ‘음악은 공짜다’라는 인식을 고착화시키는 것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품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2014년 종료된 ‘삼성북스’ 서비스도 더듬어보자. 삼성전자는 전자책 서비스 삼성북스를 종료하며 기존에 사용자가 구입한 전자책을 더이상 볼 수 없도록 했다. 삼성북스 전자책을 다른 전자책 서비스로 옮겨주려는 노력도, 계속 볼 수 있도록 하려는 배려도 없었다. 전자책은 삼성전자에 그저 일회용 콘텐츠가 된 셈이다. 서비스 종료와 함께 날아가 버린 전자책 앞에 사용자가 느낀 감정은 배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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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의 게임 중독 공익광고

삼성만의 문제도 아니다. ‘콘텐츠 홀대’ 정신은 기업과 정부를 가리지 않는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제작해 송출을 시작한 ‘게임 중독’ 공익광고를 보자. 공익광고에서는 게임 중독을 자가진단할 수 있는 4가지 체크리스트를 제공한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게임 배경음악이 환청처럼 들린 적이 있다. △사물이 게임 캐릭터처럼 보인 적이 있다. △게임을 하지 못하면 불안하다. △가끔 현실과 게임이 구분이 안 된다. 이 중에서 하나라도 해당하면 게임 중독을 의심하라는 게 광고의 핵심이다.

만약 보건복지부가 광고에서 예로 든 현상 중 어느 것 하나라도 경험해본 적이 있다면, 당장 의사와 상담해야 한다. 게임 중독이 아니라 정신질환이 의심되기 때문이다. 현실과 게임을 혼동한 쪽은 게이머가 아니라 오히려 보건복지부다.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음악을 보며, 음악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느날 갑자기 즐겨 보던 전자책을 잃어버린 사용자의 마음은 또 어떠할까. 보건복지부의 공익광고를 본 게임 개발자도 황당한 마음을 감추긴 어려웠을 것이다. 국내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들이다. 사례는 모두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콘텐츠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말은 구호에서 그친다.

‘도탑전기’를 개발한 중국의 호우 쥐엔 룽투게임즈 부사장, 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를 연출한 마티 아델스타인 감독 등이 2월11일부터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콘텐츠 인사이트 2015’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인기 게임을 만든 제작자, 유명 드라마 감독에게 콘텐츠 개발 비법을 듣겠다는 취지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콘텐츠가 아니다. 콘텐츠를 대하는 철학이 부재한 마당에 비법만 배운다고 좋은 콘텐츠가 탄생할 리 없다. 콘텐츠를 부르는 목소리는 크지만, 메아리 없이 그치는 게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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