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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테크, 인터넷 전문은행에 목매지 마라”

2015.02.26

“왜 그렇게 인터넷 전문은행에 목매는지 모르겠어요. 정부도 뭔가 성과를 보여야 하니 큰 걸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자꾸 인터넷 전문은행을 얘기하는데, 한국은 이미 시중은행 거래 90%가 비대면으로 이뤄져요. 절반 이상은 모바일이고요. 이미 인터넷에서 예금 새로 가입할 수 있고요. 거의 인터넷 은행이 된 셈이죠. 이런 상황에 인터넷 은행을 만들어서 누가 크게 성공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이 2월26일 서울 강남 엔스페이스에서 열린 '2015 인터넷 빅트랜드, 그 허와 실은' 패널 토론에서 발언했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이 2월26일 서울 강남 엔스페이스에서 열린 ‘2015 인터넷 빅트랜드, 그 허와 실은’ 패널 토론에서 발언했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센터장은 인터넷 전문은행에 파묻힌 당국의 시선을 지적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2월26일 아침 서울 강남구 엔스페이스에서 연 ‘2015 인터넷 빅트랜드, 그 허와 실은’ 패널 토론 자리였다. 임정욱 센터장은 핀테크 전문가로서 강단에 섰다. 그는 국내 핀테크 열풍을 풀무질한 주인공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임 센터장은 핀테크 스타트업은 기존 금융회사가 손대지 않던 틈새시장을 노려야 한다고 말했다.

“핀테크 핵심은 틈새시장이예요. 어제 피터 틸 강연에서 왜 트랜스퍼와이즈나 스트라이프 같은 회사에 투자했냐고 물어봤어요. 자기는 큰 곳보다 작은 틈새시장을 먼저 공략해 거기서 확실히 성공하는데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투자했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은행 같은 큰 금융기관이 혁신하기 힘든, 소비자의 작은 불편을 스타트업이 들어가 (해결하려고) 시도하고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갈 수 있는 영역이 굉장히 많아요.”

국내에서 핀테크 이야기를 할 때 빠지지 않는 게 규제다. 이 자리에서도 국내 규제환경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정부가 핀테크 종합 육성대책을 발표하며 관련 규제를 풀어내겠다고 발표했지만 아직 일반 사용자에게는 변화가 와닿지 않는다.

정부가 올해 말까지 액티브X를 없애겠다고 천명했지만, 은행은 액티브X 대신 실행파일(exe)로 플러그인을 설치하라고 요구한다. 금융권이 현실적인 문제를 들어 액티브X 폐지 시기를 오는 3월로 미뤄달라고 요청한 결과다. 그 사이 과도기에 은행은 ‘exe’ 방식으로 보안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방안을 설치하는 미봉책을 내놓았고, 정부는 이를 용인했다.

최성진 인터넷기업협회 사무국장은 “플러그인 방식 보안프로그램을 안 쓰자고 했던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라며 “다들 해결됐다고 하지만 이용자는 여전히 불편한 상황을 눈에 불을 켜고 찾아 지속적으로 얘기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임정욱 센터장은 사회적인 맥락 없이 하향식으로 몰아붙이는 상황에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기 때문에 바뀌는 게 없다고 설명했다.

“(혁신은) 누군가 책임져야 하니 모두 그걸 두려워합니다. 다 풀어준다고 해도 결국 실무자가 책임진다거나 금융기관이 책임져야 하는데, 사고 나면 죄다 사장을 갈아치우는 상황에 누가 총대를 매려고 하겠어요. 그래서 (보안 플러그인을) 못 없애는 겁니다. 보안에 대한 단련도 안 돼 있고 훈련도 안 된 마당에 정부 규제와 액티브X 같은 우산 속에서 (사고책임을) 면책 받던 상황에 (규제를) 모두 풀어줬다고 해도 사고나면 아무도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없으니 못 바꾸는 겁니다. ”

임정욱 센터장은 대통령이 하향식으로 지시하고 정부 기관이 따르는 점은 못미덥지만, 이렇게라도 혁신이 이뤄지는 편이 다행이라고 평가했다.

“안 하는 것 보다는 낫죠. 1~2년 전에는 액티브X 없앨 방법이 전혀 안 보였는데, 갑자기 바뀌었잖아요. 이게 한국의 장점일 수도 있어요. 이런 분위기를 타고 빨리 성공사례가 나와주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2월26일 아침 7시30분에 서울 강남 엔스페이스에서 열린 '2015 인터넷 빅트랜드, 그 허와 실은' 패널토론. 왼쪽부터 최성진 인터넷기업협회 사무국장,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안병익 씨온 대표, 김유신 SKT 부장

▲2월26일 아침 7시30분에 서울 강남 엔스페이스에서 열린 ‘2015 인터넷 빅트랜드, 그 허와 실은’ 패널토론. 왼쪽부터 최성진 인터넷기업협회 사무국장,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안병익 씨온 대표, 김유신 SKT 부장

김유신 SK텔레콤 컨버전스사업부 부장은 아예 국내에서 만들되 서비스는 해외만 하는 식으로 국내 규제를 피해가는 쪽은 어떻냐고 제안했다. 김 부장은 “SKT와 삼성전자 주가가 10년 전에는 비슷했는데 지금은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라며 “SKT가 국내 이동통신시장이라는 면허사업 영역에 안주하는 동안 삼성전자는 글로벌로 나갔기 때문에 지금처럼 결과가 갈라진 게 아니냐”라는 의견을 냈다.

안병익 씨온 대표는 O2O 덕분에 핀테크가 발전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핀테크도 O2O 때문에 발전할 걸로 생각합니다. 오프라인과 온라인 결제를 연결하니까요.”

임 센터장도 핀테크가 침체된 국내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핀테크가 “새로운 기회를 많이 만들어줄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한국 스타트업은 시작하는 분야가 굉장히 편중돼 있어요. 배달 앱이나 SNS 같이 눈에 보이는 B2C만 하지 B2B나 하드웨어, 위치기반 등 규제에 걸리는 사업은 잘 못해요. 이건 다들 치킨집 차리는 것과 마찬가지죠.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막힌 게 많아서 눈에 쉽게 보이는 일만 하는 겁니다. 그건 망하는 지름길이죠. 피터 틸도 경쟁은 패배자나 하는 거라고 비판합니다. O2O 등 새로운 분야가 열리면 창업이 일어나 새 회사가 성장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많은 자영업자가 더 잘 할 수 있는 새 기회를 열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미국 경제가 잘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걸 너무 막으면 경제의 신진대사를 막는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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