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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 기기 춘추전국시대의 ‘전국 7웅’

2015.02.26

중국 역사에서 춘추전국시대는 서양 달력이 시작되기 200여년 전을 말한다. 다양한 나라가 등장해 자웅을 겨루던 시대. 경쟁이 영웅을 만들었는지, 유독 명장이 많은 시기였는지, 아직도 춘추전국시대의 소용돌이는 많은 이들의 이야기로 회자되고 있다.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 기기도 전국시대를 맞았다. 값비싸고, 무겁고 별 쓸모 없는 머리에 쓰는 기기(HMD)를 값싸고, 가볍고, 3D 콘텐츠를 체험할 수 있는 기기로 바꾼 작은 아이디어 하나 덕분이다. 삼성전자와 엔비디아, 소니와 마이크로스프트(MS), 미국 게임 개발업체 밸브와 GPU 기술업체 엔비디아까지. 어떤 업체가 가상현실 춘추전국시대의 중원에 자리잡을지 관찰하는 것도 새로운 시장을 재미있게 보는 방법 중 하나다.

1. 이야기의 시작, 오큘러스VR

오큘러스가 처음 내놓은 아이디어는 무척 간단했다. 준비물도 단촐하다. 5인치 정도 크기의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디스플레이와 영상을 반으로 나누는 기술, 나뉜 화면에 하나씩 필요한 렌즈다. 디스플레이가 출력하는 2개의 영상은 렌즈를 통과해 사람의 양쪽 눈에 따로 들어간다. 덕분에 기기 가격을 30만원 선으로 끌어내릴 수 있었다. 기존 HMD의 가격이 수백만원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혁신이다. 양쪽 눈에 필요한 영상을 따로 내보내는 간편함 덕분에 3D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도 쉬워졌다. 3D 콘텐츠 저변을 확대하는 일이 쉬워졌다는 의미다. 스마트폰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동작감지, 가속도센서도 들어가 있다. 머리를 돌리면 가상현실 속 시점도 바뀐다. 3D 안경을 쓰고 3DTV를 보는 것 보다 훨씬 몰입감있는 3D 가상현실을 체험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2012년 오큘러스가 처음으로 소개한 첫 번째 개발자버전을 거쳐 두 번째 개발자버전 ‘오큘러스 리프트 DK2’가 등장했다. 2014년에는 세 번째 시제품 ‘크레센트 베이’도 나왔다. 정식 제품도 아니면서 세대를 거듭하며 위치감지 기술이 추가됐고, 고해상도 디스플레이가 적용돼 현실감을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춘추전국시대가 주나라의 천도를 기점으로 시작됐다면, 작은 아이디어로 이룬 오큘러스 VR의 혁신이 현재 가상현실기기 시대를 이끈 셈이다. 오큘러스VR는 2015년 정식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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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전국7웅’ 중 선두, 소니

소니가 재빨리 오큘러스VR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였다. 콘솔 게임 시장의 강자다운 면모다. 소니가 공개한 가상현실 기기의 이름은 ‘프로젝트 모피어스’. 영상뿐만 아니라 ‘플레이스테이션(PS)4’ 등 게임을 즐기는 데 알맞게 개발된 가상현실 기기다.

프로젝트 모피어스 안에는 5인치짜리 풀HD 디스플레이가 들어가 있다. 화면을 절반으로 나눠 양쪽 눈에 따로 전달한다는 점은 오큘러스와 같다. 가상현실 게임 체험에 사실감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3D 사운드도 구현돼 있다. 모피어스를 쓰고 고개를 돌리면,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도 바뀐다.

소니의 게임 콘솔용 동작인식 센서 ‘PS4 아이’와 연동해 게이머의 동작을 읽을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나,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콘솔 전용 게임패드 ‘듀얼쇼크’나 동작인식 컨트롤러 ‘PS 무브’를 활용해 조작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 등 게임에 최적화된 가상현실 기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프로젝트 모피어스에 기대되는 부분은 소니가 직접 만든 가상현실 기기라는 점이다. 소니는 게임 콘솔 전용 게임 타이틀 등 PS를 중심에 둔 방대한 게임 생태계를 갖고 있는 업체다. 소니가 가진 게임 개발 스튜디오와 협력 관계인 유명 게임 개발 업체 등도 프로젝트 모피어스의 전망을 밝게 한다. 춘추전국시대 강자 중 선두의 자리에 소니가 자리할 수 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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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유통망이 강점, ‘중원’의 밸브

미국 게임 개발업체 밸브는 가장 최근 가상현실 기기 분야 진출을 선언한 업체 중 하나다. 밸브는 미국 현지시각으로 오는 3월3일부터 5일까지 미국에서 열리는 ‘게임개발자컨퍼런스(GDC) 2015’에서 가상현실 기기를 공개할 예정이다. 밸브의 가상현실 기기 이름은 ‘스팀VR’다. 밸브는 현재 스팀VR를 위해 가상현실 콘텐츠 개발자와 논의 중이다. GDC 2015 동안 스팀VR 시연도 약속했다.

밸브의 스팀VR에 기대가 쏠리는 까닭은 밸브가 가진 게임 유통 채널 ‘스팀’ 덕분이다. 스팀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게이머가 이용하는 온라인 유통 플랫폼이다. 전세계 유명 게임 개발업체가 스팀을 통해 게임을 출시한다. 개인 게임 개발자나 인디게임 개발 스튜디오도 스팀을 통해 게임을 낸다. 소니가 게임 콘솔을 위한 타이틀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면, 밸브의 스팀은 PC용 게임 세상에서 강자다. 스팀VR에서 이용할 수 있는 콘텐츠도 스팀을 통해 유통될 가능성이 높다.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고, 전세계 누구나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가상현실용 소프트웨어 생태계가 완성될 것으로 기대된다.

스팀 게임을 PC가 아닌 거실 TV에서 즐길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PC 게임용 콘솔 ‘스팀머신’도 스팀VR와 연동할 것으로 보인다. 스팀머신은 ‘스팀OS’를 활용해 전세계 다양한 제조업체에서 만드는 제품이다. 마치 구글의 안드로이드 OS를 활용해 전세계 제조업체가 스마트폰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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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갤럭시’ 스마트폰이 무기, 삼성전자

소니는 게임 소프트웨어,  밸브는 게임 유통망을 강점으로 하는 업체라면, 삼성전자는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스마트폰 브랜드를 갖고 있는 업체다. 소니와 벨브가 콘솔이나 PC용 게임을 주도하는 업체라면, 삼성전자는 모바일게임과 모바일 기기용 콘텐츠 영역에서 중요한 업체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가 발표한 ‘기어VR’는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노트4’와 함께 쓰는 제품이다. 기어VR 장비에 갤럭시노트4 스마트폰을 끼우면 완성이다. 갤럭시노트4 화면이 가상현실 기기를 위한 디스플레이가 되는 셈이다. 국내에서도 지난 2월16일 출시됐다. 가격은 24만9천원이다. 오큘러스VR의 개발자 버전과 비교해 비슷하거나 더 싼 가격이다. 갤럭시노트4를 갖고 있는 사용자라면, 가상현실 기기를 선택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제품이 아닐까.

스마트폰과 연동하는 제품인만큼, 삼성전자에서는 모바일 기기용 가상현실 콘텐츠 수급이 한창이다. ‘오큘러스 스토어’를 통해 ‘오큘러스 시네마’ 등의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고, 국내에서는 KT의 모바일 기기용 TV 서비스 ‘KT 미디어허브’에서 제공하는 가상현실 전용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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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우리도 간다, 저렴하게”, 구글∙LG전자

구글이 2014년 개발자 컨퍼런스 ‘구글 IO’에서 ‘카드보드’를 소개했다. 두꺼운 종이로 만들어진 우스꽝스러운 제품에, 가격은 단돈 2만원 선이다. 종이로 제작된 덕분에 조립도 사용자가 직접 한다. 종이접기 공작 시간을 떠올리면서 종이에 그려진 홉을 끼워 맞추면 완성이다. 가성현실 기기 가격에서 가장 큰 비용을 차지하는 부분은 디스플레이다. 구글의 카드보드는 디스플레이를 스마트폰에 맡기고 몸체를 종이로 바꿔 가격을 낮출 수 있었다. 구글은 카드보드에 쓸 수 있는 콘텐츠로 구글 ‘스트리트뷰’와 ‘유튜브’를 실험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LG전자가 2월 공개한 ‘G3 VR’도 구글 카드보드와 비슷하다. 머리에 완전히 쓰도록 디자인 된 기어VR나 오큘러스 리프트와 달리 G3 VR는 눈 앞에 대고 보도록 설계됐다. 구글의 카드보드를 플라스틱 버전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쉽다. LG전자의 스마트폰 ‘G3’와 연동해 쓰면 된다. LG전자는 전용 앱을 제공해 G3 스마트폰 사용자가 가상현실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가상현실 기기 대중화에 앞장설 저렴한 제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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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개발부터 기기까지”, 수직통합의 엔비디아

GDC 2015 기간 가상현실 기기 공개를 약속한 업체는 밸브뿐만이 아니다. 그래픽 기술 전문 업체 엔비디아도 가상현실 기기를 공개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하다. 가상현실 기기에 관한 소식을 전문으로 전하는 해외 IT 매체 <VR포커스>가 다수의 정보원으로부터 엔비디아가 첫 번째 가상현실 기기를 출시할 것이라는 점을 확인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공개된 정보만 보면, 엔비디아의 가상현실 기기 이름은 ‘타이탄VR’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5년 이상 개발한 제품으로 미래 게임 환경을 다시 정의할 것”이라고 호기롭게 말하기도 했다.

가상현실 기기 출시 소문과 별개로 엔비디아는 가상현실 콘텐츠 시장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엔비디아의 최신 그래픽처리장치(GPU) 아키텍처 ‘맥스웰’에 가상현실 콘텐츠 개발에 적합한 기술이 추가됐다. 지연시간이 발생한다는 점이 오큘러스 리프트 등 가상현실 기기가 가진 문제인데, 엔비디아의 맥스웰 아키텍처를 활용하면, 120ms(1ms는 1천분의 1초) 수준인 가상현실 기기의 지연 시간을 25ms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

만약 엔비디아도 가상현실 기기 시장에 뛰어들면 GPU 기술부터 게임 개발 환경, 사용자를 위한 기기까지 수직적 통합을 이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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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PC 환경 바꾼다”, MS

가상현실 기기 업체가 게임이나 영상 등 가상현실 소비용 콘텐츠 시장에 집중하고 있다면, MS는 가상현실 기술을 생산의 영역에서 바라보고 있다. 미국 현지시각으로 1월21일, MS가 ‘윈도우10’ 발표 현장에서 공개한 ‘홀로렌즈’가 흥미롭다. MS는 홀로렌즈가 앞으로 사용자의 PC 활용 습관을 바꿀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용 시나리오는 다른 가상현실 기기와 비슷하다. 홀로렌즈도 머리에 쓰고, 콘텐츠를 감상하 수 있도록 설계됐다. 단, 홀로렌즈에는 반투명 디스플레이가 들어가 있다. 거실의 탁자를 보면서도 가상현실에 등장하는 콘텐츠를 함께 볼 수 있다. 가상현실 기기이기도 하고, 증강현실(AR) 기기이기도 하다.

홀로렌즈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없이 독립적으로 작동한다는 점도 특징이다. 홀로렌즈 속에 중앙처리장치(CPU)와 GPU가 탑재돼 있어 스스로 콘텐츠를 구동할 수 있다. 컴퓨터와 연결할 때는 무선으로 하면 된다.

PC 모니터 속에서 디자인이 한창인 미완성인 제품을 거실 테이블로 꺼내올 수도 있고, ‘마인크래프트’ 게임을 침대 위에서 즐길 수도 있다. 콘텐츠 소비는 물론, 3D 디자인 등 생산성 측면에서도 홀로렌즈가 쓰일 것으로 예상된다. MS는 윈도우10에 홀로렌즈를 지원하기 위한 기술도 탑재할 예정이다. 윈도우10에는 ‘홀로그래픽 API’가 추가된다. 홀로그래픽 API를 이용하면, 개발자가 홀로렌즈를 활용할 수 있는 응용프로그램(앱)을 만들 수 있다. 홀로렌즈용 앱 개발을 돕는 ‘홀로스튜디오’도 함께 지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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