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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우드펀딩? 1만원만 빌려줘도 국내선 불법”

2015.03.10

“지금은 규제 공백 상태입니다. 정부가 크라우드펀딩 사업을 못하게 탄압하는 게 아니에요.”

신현욱 팝펀딩 대표는 규제에 발목 잡혀 핀테크 사업이 힘들다는 주장에 일침을 가했다.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이 3월9일 오후 서울 강남구 디캠프에서 한국크라우드펀딩기업협의회와 함께 마련한 디파티 자리였다.

신현욱 팝펀딩 대표가 3월9일 오후 서울 강남 디캠프에서 열린 디파티에서 대출형 크라우드펀딩에 관해 발표했다

▲신현욱 팝펀딩 대표가 3월9일 오후 서울 강남 디캠프에서 열린 디파티에서 대출형 크라우드펀딩에 관해 발표했다

팝펀딩은 2007년 문 연 대출형 크라우드펀딩 서비스다. 신용 등급이 8등급 아래로 매우 낮아 대부업체에서도 거부한 취약 계층에게 크라우드펀딩 방식으로 돈을 모아 빌려준다. 신현욱 대표는 핀테크 시장 환경이 척박하던 당시 ‘전국민을 대부업자로 만든다’는 밑도끝도 없는 비판을 감수하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규제 당국을 쫓아다니며 사업 가능성을 타진하기만 1년6개월. 지금은 2가지 사업모델(BM) 특허를 갖추고 8년째 사업을 이어오는 업력 있는 회사가 됐다.

신현욱 대표는 현행법의 허점이 크라우드펀딩 사업이 국내에 자리잡지 못하게 가로막는다고 꼬집었다. 무슨 얘기일까. 신 대표의 설명을 자세히 들어보자.

“대한민국에 대부업자는 없다”

신현욱 대표는 국내에 대부업자가 없다고 말했다. 어떤 현행법도 대부업자를 정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원래 그런 건 아니다. 2005년 8월까지는 대부업법 시행령이 대부업자를 간접적으로 정의하고 있었다. 애초에 대부업법 시행령은 이랬다.

대부를 업으로 하려면 등록해야 한다. 등록하지 않고 대부업을 벌이면 처벌한다. 단, 다음 요건에 해당하면 등록 안 해도 처벌 안 한다. 빌려준 돈이 5천만원 이하이고 광고를 안 하며 20인 이하에게 빌려준 경우.

이 규정은 대부업에서 예외가 되는 기준을 정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대부업자를 정의했다. 이 규정을 뒤집어 보면 다음처럼 해석할 수 있다. 이 조건만 지킨다면 대부업자로 등록하지 않고도 개인끼리 마음껏 돈을 빌려줄 수 있다는 뜻이다.

빌려준 돈이 5천만원이 넘거나, 광고를 하거나, 20명이 넘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려면 대부업자로 등록해야 한다.

이런 정의는 해외에도 있다. 2005년 조파라는 크라우드펀딩 서비스가 나온 영국은 대출 금액이 2만5천파운드가 넘을 경우 대부업자로 등록하라고 규정한다. 이런 조건을 활용하면 손쉽게 크라우드펀딩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다. 한 사용자가 2만5천파운드 이상 빌려주지 않도록 운영하면 개인간 대출을 중개해주는 식으로 사업을 벌이면 되기 때문이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적어도 2005년 8월까지는.

대부업을 정의하던 규정을 없앤 곳은 역설적으로 대부업을 관리·감독하는 금융감독원(금감원)이었다. 대부업자가 저 규정을 악용해 대출금액을 5천만원 아래로 쪼개 고리대금을 받아도 법으로 손댈 도리가 없어지자 금감원은 대부업법 시행령에서 대부업의 정의를 규정하던 항목을 삭제했다. 그 뒤로 국내 법에선 대부업이 무엇인지 설명할 길이 막혔다. 신현욱 대표는 “친구한테 1만원만 빌려주고 어묵 하나 얻어먹어도 범법 행위가 됐다”라고 뼈 있는 농담을 던졌다.

정치인이 하면 합법, 일반 국민이 하면 불법?

법 규제의 사각지대를 확실하게 드러내는 사례가 있다. 정치인 펀드다. 2012년 18대 대선 당시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등 3대 대선후보는 모두 정치인 펀드로 선거자금을 모았다. 선거 비용을 지지자에게 빌려 쓰고, 득표율이 일정 비율이 넘으면 선거관리위원회가 돌려주는 돈을 받아 이자와 함께 돌려주겠다는 얘기였다.

여기에 돈을 빌려준 지지자는 대부업자로 등록하지 않았다. 이들 가운데 5천만원 넘게 빌려준 사람이 없을까. 그동안 돈을 빌려준 사람이 20명이 넘지 않을까. 그래도 괜찮을까. 신현욱 대표는 지금까지 이 부분을 문제삼은 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18대 대선 3대 후보가 정치인 펀드로 선거자금을 모았다 (신현욱 팝펀딩 대표 제공)

▲18대 대선 3대 후보가 정치인 펀드로 선거자금을 모았다 (신현욱 팝펀딩 대표 제공)

규제 공백 상태, 비즈니스 모델로 풀어야

신 대표는 국내 크라우드펀딩 시장이 “규제 공백 상태”라고 풀이했다. 신현욱 대표는 창업하고 1년6개월 동안 12번 유권해석을 요청하며 국내 규제 환경에서 크라우드펀딩 사업을 합법적으로 벌일 수 있는 길을 찾았다고 밝혔다. 그는 법적으로 대출 자격이 있는 저축은행과 제휴하는 식으로 사업을 꾸렸다.

투자자가 저축은행에 대출 원금을 넣으면, 대출은행은 그 돈을 대출 고객에게 빌려준다. 대출 원금은 담보가 된다. 저축은행은 자기 돈을 빌려주는 게 아니니 대출 고객이 돈을 갚지 않아도 손해 볼 일이 없다. 대출 고객은 돈을 빌려준 투자자에게 이자를 주는 게 아니라, 내가 대출받을 수 있게 담보를 제공해준 대가로 담보제공수수료를 준다. 이런 구조를 만든 덕분에 신현욱 대표는 크라우드펀딩 서비스 팝펀딩을 국내 규제 환경 안에서 합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금융기관과 제휴해 국내 규제상 합법적으로 P2P 대출 사업을 벌일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 (신현욱 팝펀딩 대표 제공)

▲금융기관과 제휴해 국내 규제상 합법적으로 P2P 대출 사업을 벌일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 (신현욱 팝펀딩 대표 제공)

“전통 금융시장 틈새를 노려라”

“렌딩클럽처럼 은행 고객을 타깃으로 하면 죽습니다.”

신현욱 대표는 한국에서 대출형 크라우드펀딩 서비스를 하려면 기존 금융회사가 손대지 못하는 시장을 노리라고 조언했다. 그는 “은행 등 기존 금융기관이 돈 못주는 데가 정말 많다”라며 “이 시장도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크다”라고 말했다.

팝펀딩은 기존 금융권이 백안시하는 저신용 고객을 노린다. 은행과 저축은행, 다시 말해 1·2금융권이 상대하는 고신용 고객이나, 대부업자가 상대하는 중·저신용 고객은 논외로 한다. 신현욱 대표는 “대부업자에게도 탈락한, 금융기관이 사람으로 안 보는 8·9·10등급이 우리가 서비스하려는 계층”이라고 말했다. 이 정도 신용등급은 거래 내역이 전혀 없거나 어예 신용도를 평가할 근거가 없다는 뜻이다.

이런 고객은 신용도라는 걸 평가하기조차 어렵다. 그럼 어떻게 대출을 해줄까. 신현욱 대표는 거꾸로 접근했다. 신용도가 없다면 신용도를 만들어주면 되지 않느냐는 게 신 대표의 발상이다. 처음 가입한 고객에게 한번에 큰 돈을 내주지 않는다. 적은 돈을 조금씩 빌려주고 갚도록 한다. 거래 내역을 쌓으면서 신용도를 만들어나가라는 뜻이다.

금융소외계층, 신용도부터 만들어준다

위기청소년 자립을 돕는 예비사회적 기업 자리는 팝펀딩에서 도움을 받은 덕에 사업을 궤도에 올렸다. 신바다 자리 대표는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기 힘든 가출청소년이 먹고 살기 위해 청소년 범죄자가 되고, 다시 성인 범죄자가 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싶어 자리를 꾸렸다고 설명했다.

신 대표는 카페를 차렸다. 위기청소년에게 바리스타 교육을 제공해 일자리를 얻도록 돕는다. 또 게스트하우스형 무료 쉼터도 열었다.

자리를 차리는 마중물은 팝펀딩에서 빌렸다. 신바다 대표부터 위기청소년이었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는 대출을 받기 어려웠다. 신바다 대표는 중고 로스팅기를 사겠다며 팝펀딩에서 1천만원을 모금했다. 첫 번째 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에 성공하자 3천만원을 모았다. 이 역시 성공했다. 이 돈은 자리가 사회적기업으로 자라는 밑거름이 됐다. 신바다 대표는 “자리의 30%는 팝펀딩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팝펀딩을 추켜세웠다.

신바다 자리 대표

▲신바다 자리 대표

신현욱 팝펀딩 대표는 “대출을 받기 힘든 금융소외계층이 돈을 빌릴 수 있는 것뿐 아니라, 돈을 빌리고 갚는 과정을 거치며 신용도를 쌓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팝펀딩은 사회적으로도 기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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