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언가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가장 즐거운 일은 내가 ‘상식적’으로 맞다고 생각했던 일이 틀렸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한 관습적 지혜(conventional wisdom)가 붕괴될 시점에서야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나고, 좀 더 정확해진 프레임을 통해서야 세상을 왜곡(버블)없이 더 정확하게 볼 수 있게 된다. 정확한 시야를 확보한다면 해당 문제에 대한 판단력과 해결책 역시 개선될 것도 전망해볼 수 있다.
중국 경제발전에 대해 얘기할 때 흔히 거론되는 것이, 상하이 푸동지구의 하늘을 덮을 것 같은 빌딩들로 대변되는 ‘상하이의 신화’다.
상하이는 과연 중국의 부를 보여주는 도시인가?
몇 년 전의 자료이긴 하지만 중국 상하이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매년 상하이에 유입되는 인구는 약 27.8만명에 달한다. (자료출처 링크 : http://china.naeil.com/news/news_view.asp?nnum=3521)
홍콩 교환학생 시절 친하게 지냈던 상하이 지아오통 대학의 친구가, 자신은 상하이 토박이지만 상하이가 싫다고 이야기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곳에는 발전의 빛 뿐만 아니라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사실 비슷한 일은 홍콩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홍콩과 이웃 중국 광동성의 션저우를 통해 막대한 인구가 매일 유입되고 있다. 필자가 처음 중국 광저우를 방문했을 때의 느낌도, 급속한 발전과 도시화가 눈부시기보다는 극심한 환경오염과 빈민층의 증가에 대한 불안한 감상이었다.)
결국 상하이는 소수의 부유층과 다수의 저소득층이 공존하는 도시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 저소득층의 상당수가 유입되온 배경인 중국의 농촌. 이곳은 과연 무기력하고 가난한 자들의 도시일까? 사실 이 곳은 중국의 경제발전, 그 30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기적의 모태라는 것이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였다가 현재는 MIT 슬론경영대학원의 교수로 전직한 중국경제 전문가 황야성(Yasheng Huang) 교수는 2007년 10월 파이낸셜타임즈에 기고한 글에서 중국 경제 발전의 실제 원동력으로서, 그리고 그 뿌리로서 중국 농촌 지역의 혁신가들, 기업가들을 소개했다.
1990년 후진따오 주석이 중국의 경제 5개년 개발계획을 구상할 때, 특별 초청받았던 인물가운데 왕리라는 사람이있다. 그는 1979년 덩샤오핑에 의해서 개혁개방이 실시됐을 때 당시 중앙의 감시가 상대적으로 약한 중국 농촌지역에서 암암리에 약동하고 있던 기업가 정신을 수면 위로 올려 합법화하고 정책적으로 전국으로 확대해 중국 경제발전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공을 세웠다.
1978년 10월 씨아오강 마을의 18가구가 비밀결의를 맺고 그들의 농작물을 시장에 내다 팔기로 했을 때 그들은 보안을 위해 혈서까지 썼다. 왕리는 그들의 행위를 적발한 후 그들을 처벌하지 않고 오히려 활동을 독려했다. 그에 따라서 발족된 가구계약시스템(household responsibility system)은 안회이성에서 약 98% 수용됐고 이후 중국 전역으로 확대됐다.
이처럼 자발적인 기업가 행위가 경제발전과 직결되는 양상을 보였던 것이 1980년대 중국 경제개발 구조였고 그 핵심을 이루었던 것이 농촌개혁, 농촌지역의 혁신가, 기업가들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 GDP 성장률은 실질가계 소득의 증가와 직결됐다.
그러나 이러한 1980년대 중국경제발전은 1990년부터 세계화의 영향, FDI(Foreign Direct Investment : 해외직접투자)의 증대, 그리고 무엇보다 그러한 외적 영향과 자본 유입을 자발적으로 성장하는 자본주의를 억제하고 자신들의 목적에 맞는 경제발전을 유도하려는 중국 정부의 계획과 맞물려 왜곡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1990년대부터 상하이를 비롯한 도시지역에 편향된 정책이 실시되기 시작했고 중국의 농촌지역은 재정지원의 공급이 약화되면서 굶주리기 시작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두 자리 수로 증대하던 농가의 소득증대는 1990년대 들어 4%로 감소되었다가 그나마 후진따오의 지도력으로 6%로 향상됐다.
위 이야기는 오늘날 상하이로 편입되는 헐값 노동력 중에는 사실 10년 전 중국의 경제발전을 이끌었던 견인차들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산업구조 조정의 결과로 만들어진 상하이의 신화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
중국 농촌지역은, 1차산업의 중심지라는 측면도 있지만 동시에 중국 경제발전 초기보다 기업가 정신과 혁신적 활동이 활발한 본산지가 되어왔다. 정부의 간섭도 적고 기업가 활동이 새로운 기회를 주는 측면도 많았기 때문이다.
상하이가 중국 정부의 ‘쇼룸’이라고 한다면, 중국 농촌지역은 중국 벤처의 개발창고인 것이다. 따라서 황야성 교수는 중국 정부가 편향된 도시중심 정책대신 중국 벤처의 본산, 농촌지역을 살리는 데 더 많은 관심과 투자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황야성 교수는 그 주장의 근거를 다음과 같은 가정들을 통해서 설명한다.
만약 중국이 베이징과 상하이에만 신경쓰고 중국 농촌지역의 기업가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중국의 대다수 인구를 차지하는 가난한 농민들은 의료와 교육비를 지출하는 데 돈을 다 써서 소비에 힘쓰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수요 측면의 문제다. 공급 측면에서는 만약, 중국 농촌지역의 저수준 기술을 가진 기업들이 발전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그들이 도시의 고급기술을 가진 기업들이 더 혁신하도록 촉진하지 않는다면, 기술강국으로서 중국의 성장은 어둡다는 설명이다.
즉 농촌의 경쟁력 향상이 도시의 경쟁력 향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 주요 논지다.
상하이의 신화 혹은 신기루를 깨고 중국경제발전의 기원, 농촌지역과 그곳의 기업가 정신, 혁신활동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까닭은, 현상에 주목하지 않고 그 이면의 펀더멘털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보이는 것은 상하이의 마천루라 할 지라도, 그것을 이끌었던 것은 목숨을 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상업행위를 하려했던 농촌의 기업가들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이 소수에 의한 부의 독점 그것으로 인한 사회적 불만과 위기의식의 팽배로 나아가지 않고, 균형적이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통해서 주변 지역에 안정적 설득력을 제공할 수 있는 국가로 발전하려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이슈가, 이 중국 경제기적의 숨겨진 주인공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상하이의 신화가 아니라 그 그늘에 가려진 대중의 지혜였다. (왕리는 1980년대 경제발전 당시 관료들에게 만약 자신들과 농부들의 발전에 대한 의견이 다르면, 그것이 틀렸다 말하지 말고 왜 다른 지를 고민하고 그들을 따르라고 권고했다.)
여기서 그 모델을 ‘대중의 지혜’라 하는 까닭은 그것이 높은 수준의 지식, 많은 경험, 혹은 탁월한 권위에서 나온 발전모델이 아니라 주어진 현실에서 다수가 힘을 합하여 (가구계약시스템과 같이) 자발적으로 만들어낸 대안들이 실제 경제발전에 기여하는 결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것은 에릭 본 히펠이 말한 ‘혁신의 민주화’와 비슷하다. 필요를 아는 사용자들은 여건과 능력만 주어지면 기업의 대형 연구개발센터에서도 하지 못하는 실질적 혁신을 해내는 것이다.
경제발전 과정에서 농부들은 무기력해보이지만 사실상 그들이 누구보다도 발전의 필요와 자신들에게 맞는 발전의 방법이 무엇인 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정부의 역할이란 그것을 찾기 위한 그들의 실험 중 성공적인 것을 발굴하여 정책적으로 제도화하고 확대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1980년대 중국정부였고, 그들의 경제발전이었고, 농촌의 기업가와 혁신가에 의한 GDP성장률과 가계소득률의 동반성장, 그리고 성장과 분배의 조화를 이룬 발전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상하이 빌딩숲의 그늘에 가려 중국이 잃어가고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위에서 소개한 내용의 상당 부분은 황야성 교수의 파이낸셜타임즈 기고문을 참조한 것이다. 링크 참조 : http://www.ft.com/cms/s/0/93fa7a40-7fdb-11dc-b075-0000779fd2ac.html?nclick_check=1)
최근 두바이가 무너졌다. 화려한 외양으로 외국 자본을 유입해서 발전하는 방식은 사실 ‘지속가능한 경제발전 모델’과는 거리가 멀다. 자생적인 힘, 지속적인 기업가 정신과 혁신 활동의 유지, 발전을 위한 시스템을 마련하지 못하면 안정적이고 신뢰할 만한 경제 활동의 장일 수 없다.
이것은 거듭되는 버블에 대한 경고, 그리고 펀더멘털의 집중에 대한 요청이다. 그 메시지를 이번 글에서는 중국 경제발전의 사례에 적용해보았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의 경제는 얼마나 든든한 성장의 모델에 근거하고 있는가. 녹색성장, 사회적 기업, IT와 미디어의 융합 등등. 많은 아이템들이 있지만 그 아직 검증되지 않은 가능성에 함부로 귀중한 자원을 ‘위험부담을 고려하지 않고’ 낭비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투자 자체는 바람직하지만 위험관리가 있어야 하고, 이를 통해 내실있는 경제발전의 왜곡을 막아야 한다.
화려한 건물이 아니다. 지속적인 혁신 활동을 기반으로 내실이 튼튼한 기업가 정신이 있는 분야와 영역을 정확한 데이터의 측정을 통해 찾아내고, 그곳에 부족했던 재정지원을 쏟아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
황야성 교수도 상식과 대치되는 결론을 신빙성있게 내놓을 수 있던 까닭은 그가 통계적인 방법을 통해서 방대한 자료를 엄밀하게 계량화했기 때문이다.
대중의 지혜를 택할 것인가. 상하이의 신화를 택할 것인가.
이소룡의 절권도 첫 장에 나오는 질문과 일맥상통한다. 실전에서, 폼은 그럴 듯한데 쓸모없는 무술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폼은 엉성해도 능히 이길 수 있는 무술을 택할 것인가. 그런 점에서 무술과 경제발전도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화려한 외양이 아니라 꽉 찬 내실이, 그리고 그것을 통해 담보된 ‘지속가능성’과 ‘버블제로’가 성장의 최대 안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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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게 있습니다. 답변해 주실꺼죠?
글을 읽다보니, ‘농가소득이 4%로 감소 하였다가 후진타오의 지도력으로 6%으로 상향되었다.’라는 말이 있던데 후진타오가 어떤식으로 리더쉽을 발휘했는지 자세히 알고 싶네요.ㅎ
이건 그냥 사견입니다. 마오쩌둥-덩샤오핑-장쩌민-후진따오의 중국 지도자 계승체계를 생각해볼때.. 마오는 말할 것 없이 대장정 전후로 해서 경쟁할 수 없는 지도자였고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의 상징 그 자체였습니다. 장쩌민 역시 덩샤오핑이 지목한 인재였지만.. 후진따오는 그와 같은 강력한 정치적 후과 없이 등장한 인물입니다. 그래서 마오 같은 카리스마적 리더십 혹은 덩샤오핑 같은 시대적 심볼, 장쩌민 같은 정치적 지지기반이 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네요. 그래서.. 더욱 실질적인 국민지지가 필요하단 생각이 들고. 그래서 급속한 경제성장책(덩샤오핑의 선부론 이후) 이외에도 사회안정책에도 어느 정도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성.. 이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명분이 얼마나 실질적으로 이루어졌는 가는 좀 더 깊은 분석이 필요한 영역이지만요. 4%에서 6% 성장은.. 그 전에 두 자리수에서 떨어졌던 걸 생각해볼 때. 그러한 필요와 명분에 따른 지원책의 의미와 한계를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네요.
저도 후진따오에 관한 언급은.. 황야성 교수의 기고내용을 제가 정리해서 재전달한 거라서.. 구체적으로 그게 어떤 내용인 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위에서는 그냥.. 그 수치들이 어떤 배경으로 만들어졌을 지, 그리고 그 의미가 무엇일 지에 대한 제 생각을 적어 보았습니다.
아무쪼록 부족하나마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