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핀테크] 금융 리스크 막는 한-프랑스 합작 인공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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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았죠. 2014년 8월 스타트업을 시작했는데, 당시만 해도 핀테크는 염두에 없었어요. 그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가장 시장성이 좋은 일을 택하다보니 이쪽으로 왔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우리 사업을 한마디로 정의해보니 빅데이터를 기계학습 기술을 활용해 핀테크 영역에 적용하는 거더라고요. 빅데이터, 기계학습, 핀테크 세 분야도 모두 각각 뜨는 분야인데 우리가 모두 하고 있잖아요. 덕분에 업력이나 팀 크기에 비해 주목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엄수원 솔리드웨어 공동대표

엄수원 솔리드웨어 공동대표

엄수원 솔리드웨어 공동대표가 멋쩍게 웃으며 입을 뗐다. 솔리드웨어는 컴퓨터가 스스로 데이터를 인식하고 이를 학습해 스스로 알고리즘을 발전시키는 기계학습(머신러닝) 전문 스타트업이다. 기계학습 기술을 금융 분야에 적용해 다양한 예측 모델을 만들어 금융회사의 의사결정을 돕는 솔루션을 제공한다. 솔리드웨어는 부부 사이인 두 공동대표, 올리비에 듀셴과 엄수원 사이에서 자연스레 태어났다.

핀테크는 내 운명

올리비에 듀셴과 엄수원 두 공동대표는 유학 중이던 2007년 처음 만났다.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에서 석사 과정을 밟던 올리비에 대표와 서울대에 다니다 어학연수 겸 여름 계절학기를 들으러 온 엄수원 대표가 국제 기숙사인 세계인의 집 6층과 3층에 각각 기거했다. 유학생끼리 교류하는 자리에서 서로를 눈여겨 본 두 사람은 이내 연인이 됐다.

짧은 인연은 곧 국제 연애로 발전했다. 엄수원 대표는 한국으로 돌아오고, 올리비에 대표는 프랑스로 박사 학위를 따러 돌아갔다. 3년 동안 장거리 연애 끝에 두 사람은 결혼했다. 엄수원 대표가 대학교를 졸업한 2010년이었다. 결혼한 뒤 엄 대표는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이 때까지만 해도 두 사람이 스타트업을 함께 꾸리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저는 제가 사업가 기질이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금융을 전공하고 은행가가 되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을 뿐이죠. 그런데 막상 살면서 보니까 남들이 좋다고 여기는 보편적인 길만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갔더라고요. 이런 삶이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반면 올리비에는 편한 직장에 취직하거나 교수가 되는 데는 흥미가 없었어요. 두 사람이 이런 걸 느낄 때 올리비에는 박사후 과정을 밟으러 카네기멜론대 인공지능연구소로 갔고, 저는 한국에 돌아와서 컨설팅 일을 시작했죠.”

프랑스 고등경영대학원에서 재무금융학 석사 학위를 받은 엄수원 대표는 한국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금융 컨설턴트로 일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 올리버와이만 한국지사에서 금융부문 컨설턴트로 일하다 글로벌 보험 그룹인 AXA(악사) 한국지사로 자리를 옮겼다. AXA코리아에서 엄 대표는 전략기획 업무를 맡았다. 2년 동안 임원진에게 리스크 예측 같은 복잡한 통계·기술을 설명하며 엄수원 대표는 금융회사가 운영되는 방식을 전반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한 가지 한계가 엄수원 대표 눈에 띄었다. 세계에서 제일 큰 보험회사인 AXA도 위험도 예측에 선형함수 같은 기본적인 통계 기법만 활용하는 것이 아닌가. 인텔코리아에서 차장급 연구원으로 일하던 남편 올리비에 듀셴 대표에게 이런 문제를 이야기하니 바로 기계학습을 적용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발상이 나왔다.

“보험 분야에 기계학습을 적용하는 일(machine learning for insurance)은 필연적이었어요. 제가 보험사에 있었고, 올리비에 대표는 데이터 분석을 잘 하니까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걸 하다보니 마침 불모지였던 거죠. 덕분에 투자자도 고객도 좋아하는 아이템으로 사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아직 콘셉트 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신기술 도입에 적극적인 AXA코리아 지사장 앞에서 발표할 기회를 얻었다. 프리젠테이션을 시작하고 15분 만에 지사장은 솔리드웨어 솔루션을 시범 도입하자고 손 내밀었다. 다만 이런 기술을 회사 안에서 만들기는 힘드니 회사를 그만두고 나가서 별도 솔루션을 만들어 납품하는 식으로 일을 진행해야 한다고 지사장은 조언했다. 엄 대표는 지사장과 몇 차례 줄다리기를 하다 AXA코리아를 나와 솔리드웨어를 차렸다. 2014년 8월이었다.

실제 데이터로 가능성 검증

회사를 차리자마자 기계학습 알고리즘을 보험 분야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9월부터 두 달 동안은 한 미국 보험사 데이터를 재료로 보험 사고율을 예측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또 보험사 내부 분석가가 복잡한 기계학습 알고리즘을 간편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사용자 인터페이스(UI)도 만들었다. 전자는 기계학습 알고리즘 묶음 솔루션인 ‘솔리드코어’, 후자는 각종 모델링을 간편하게 해보고 직관적으로 결과를 볼 수 있는 ‘솔리드스튜디오’다. 솔리드웨어는 두 제품을 솔루션 형태로 금융회사에 제공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금융사 내부 분석가가 기계학습 알고리즘을 손쉽게 활용하도록 만든 UI 솔리드스튜디오 (솔리드웨어 제공)

금융사 내부 분석가가 기계학습 알고리즘을 손쉽게 활용하도록 만든 UI 솔리드스튜디오 (솔리드웨어 제공)

2014년 11월 AXA코리아에서 3년치 고객 데이터를 1천만건을 넘겨받았다. 2011년과 2012년 데이터로 알고리즘을 학습시키고 예측값을 뽑아냈다. 2013년 데이터를 새 데이터인 것처럼 비교해보니 예측값과 실제 데이터가 잘 맞아 떨어졌다. 내친김에 2011년~2013년 데이터를 모두 알고리즘에 입력하고 2014년도 예측값을 추출해 AXA코리아에 넘겼다. 충분한 데이터가 주어진 항목에서 솔리드웨어 솔루션은 평균제곱오차를 기존 모델보다 줄이는 성능을 보여줬다. 금융분야에서는 예측 오차를 조금만 줄여도 큰 돈을 아낄 수 있다.

AXA코리아는 계약 갱신율과 고객 성향 예측에도 솔리드웨어 솔루션을 적용해보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엄수원 대표는 다음주부터 2차 프로젝트가 시작된다고 밝혔다.

AXA코리아에서 분석 기술의 가능성을 검증받은 덕에 솔리드웨어는 저축은행과 생명보험사, 신용평가회사 등에서도 ‘러브콜’을 받고 있다. 엄수원 대표는 본격적인 계약을 맺는 것보다 창업하며 그린 사업모델이 작동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점이 더 의미 있다고 풀이했다.

“여러 곳에서 저희한테 관심을 보이시는 걸 보니 우리가 생각한 게 틀리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어요. 금융회사에 정말 필요한 기술이지만, 금융사가 외부 도움 없이 내부에서 팀을 만들어 하기엔 어려운 일이라는 거죠.”

솔리드웨어 제공

솔리드웨어 제공

기계학습, 최적화, 알고리즘 3박자 갖춰

솔리드웨어 솔루션이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엄수원 대표는 3가지 장점을 꼽았다.

첫째, 기존에 분석할 수 없던 데이터도 기계학습을 통해 활용한다. 예를 들어보자. 금융회사 콜센터에서 상담사는 대부분 상담 내용을 메모장에 적는다. 이걸 데이터베이스(BD) 양식 안에 넣으면 훌륭한 상담 자료가 될 수 있지만 그렇게 가공하는 금융사는 거의 없다. 대부분 그냥 텍스트 파일로 쌓일 뿐이다. 팩스로 받은 서류는 어떤가. 글씨가 아니라 그림이기 때문에 그냥 빅데이터 분석에는 재료로 쓰기 어렵다. 엄수원 대표는 솔리드웨어 솔루션을 쓰면 녹취록이나 팩스로 받은 그림 파일도 컴퓨터가 인식할 수 있는 정형데이터로 변환해 분석에 밑거름으로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로, 다양한 변수 사이에 관계를 모두 고려해 각 변수에 최적회된 모델을 만들 수 있다. 자동차 보험료를 산정한다고 치자. 나이와 운전 경력이라는 2가지 변수만 놓고 보면 나이가 어릴수록 사고날 가능성이 높으니 보험료를 비싸게 받고, 운전 경력이 길수록 사고날 가능성이 줄어드니 보험료를 할인해준다. 2가지 변수 사이에 어떤 상호관계가 존재하는지 분석해 새로운 고객에게 보험료를 얼마나 받아야 하는지 계산하는 게 기존 보험사의 분석 기법이다.

하지만 변수가 2개가 아니라 수만개에 이른다면 어떨까. 사람이 분석하기는 어려울 테다. 이런 데이터를 알고리즘에 학습시켜 변수 사이에 상관관계를 도출하는 게 솔리드웨어의 기술이다. 각 변수를 노드에 넣으면 다른 변수 사이에 관계를 분석해 비선형 함수를 뽑아낸다. 덕분에 집어넣은 데이터에 꼭 맞는 예측 모델을 만들 수 있다. 솔리드웨어는 딥러닝 뿐 아니라 부스팅, SVM 등 다양한 기계학습 알고리즘을 활용해 고객사에게 맞춤형 예측 모델을 만들어 준다.

솔리드웨어 기술을 설명 중인 엄수원 공동대표

솔리드웨어 기술을 설명 중인 엄수원 공동대표

세 번째로 거칠게 구간을 나눠 경계선에 있는 고객이 위험도를 과소평가 또는 과대평가 받는 일이 줄어든다. 기존 분석 방식은 수능 등급을 나누듯 고객을 무리짓고 무리별로 리스크 점수를 매긴다. 이런 분석법은 경계선에 있는 데이터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수능이 쉬울 때는 한 문제만 틀려도 2등급이 아니라 3·4등급을 받는다. 엄수원 대표는 모든 변수를 고려해 유동적인 함수를 그릴 수 있기 때문에 그룹이 아니라 고객 개개인에게 최대한 가까운 리스크값을 매길 수 있다고 자신했다. 엄 대표는 “스무스한 함수를 그릴 수 있기 때문에 인터벌 문제가 없어 개별적인 행동 계획을 만드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솔리드웨어 제공

솔리드웨어 제공

솔리드웨어가 만든 기계학습 알고리즘이 만능은 아니다. 성능만 놓고 본다면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MS)가 공개한 기계학습 알고리즘보다 떨어질지 모른다. 그런데도 왜 솔리드웨어 기계학습 알고리즘을 써야 하냐는 질문에 엄수원 대표는 “전세계 어느 알고리즘보다 금융사가 건넨 데이터에 맞아 떨어지는 알고리즘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구글이나 MS가 만든 기계학습 기술은 어느 정도 기술을 이해하고 개발도 할 줄 아는 사람이 쓸 기계학습 플랫폼입니다. 우리가 상대하는 금융회사는 쓰기 힘들죠. IT를 잘 하는 신용평가사도 MS ‘애저’는 못 써먹겠다고 하더군요. UI도 쓰기 힘들거든요. 우리는 금융사가 준 데이터에 가장 꼭 맞는 알고리즘을 찾을 때까지 시험하고 수정하는 식으로 일합니다. 올리비에 듀셴 대표는 다양한 기계학습 알고리즘을 만들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솔루션 개발을 책임지는 올리비에 듀셴 대표는 프랑스 최고 공과대로 인정받는 ENS파리에서 컴퓨터비전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쓴 논문은 500회 이상 다른 논문에 인용될 만큼 학계에서도 인정받는 기계학습 전문가다. 2009년에는 컴퓨터 비전 및 패턴 인식 국제학회에서 최고논문상을 수상했다.

핀테크 분석 도구, 일반 인공지능으로 키우고파

솔리드웨어가 그린 그림은 크다. 특정 용도에만 쓰는 인공지능이 아니라 진짜 사람처럼 스스로 생각하는 일반 인공지능을 만드는 게 궁극적인 목표다. 엄수원 대표는 지금이 연구개발 단계라고 평했다. 그래서 고객사에게도 그리 많은 대가를 받지 않는다.

“지금은 학습하는 단계입니다. 당장 수익을 바라는 게 아니라 프로젝트를 하나하나 하면서 데이터를 모아 알고리즘을 학습시켜 진짜 일반 인공지능을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이런 발상은 인공지능이 발전한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사람처럼 생각하는 인공지능은 개발 비용이 많이 드는 반면 딱히 쓸 데가 없다. 그래서 주목 받은 분야가 기계학습이다. 기계학습은 특정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온 기술이다. 이미지나 목소리처럼 컴퓨터가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데이터로 변환하려는 응용 분야다. 기계학습이 발전하며 딥러닝이나 SVM 같은 알고리즘이 점차 발전했다. 엄수원 대표는 금융 분야에서 시작한 솔리드웨어도 인공지능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탤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가면 종국에는 진짜 인공지능이 생겨난다고 믿어요. 마찬가지로 솔리드웨어가 금융 분야에서 시작했지만, 하나하나 영역을 넓혀가면 일반 인공지능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다면 뜻깊을 것 같아요. 이게 우리의 꿈입니다.”

솔리드웨어는 국내에서 가능성을 점쳐본 뒤 해외 시장에도 적극 뛰어들 계획이다. 올리비에 듀셴 대표의 고향인 프랑스나 두 공동창업자가 공부한 미국에도 인맥이 있다. 최근 합류한 옐로파이낸스그룹(YFG)의 도움을 받아 아시아권에 진출할 수도 있다. 엄수원 대표는 “해외 시장에서 열심히 업력을 쌓는 것이 앞으로 3년간 계획”이라고 말했다.

솔리드웨어 팀원. 왼쪽부터 오창용 개발자, 올리비에 듀셴·엄수원 공동대표, 박원표 인턴 개발자, 김태섭 개발자

솔리드웨어 팀원. 왼쪽부터 오창용 개발자, 올리비에 듀셴·엄수원 공동대표, 박원표 인턴 개발자, 김태섭 개발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엄 대표는 기계학습 전문가와 개발자를 찾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스마트하고 실행력 괴물이면 됩니다. 해보고 안 된다고 같은 문제를 붙잡고 늘어지는 게 아니라 왜 안 될까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찾든 주변에 묻든 해결책을 찾아내는 사람이면 저희 회사와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업무 단위로 일하기 때문에 일 잘하는 사람은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회사라고 장담합니다.”

한국 핀테크 스타트업 ‘K핀테크’ 릴레이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