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지 마세요, 핀테크는 다단계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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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테크 열풍이 부니 역풍도 인다. 핀테크를 빙자한 다단계 사업이 횡행한다는 제보가 잇따랐다. 제보를 바탕으로 국내에서 핀테크를 아이템으로 다단계 사업을 벌이는 곳을 취재했다. 법망 밖에서 불법적으로 다단계 사업을 벌이는 곳이 많았다. 2회에 걸쳐 핀테크 다단계 현황을 살펴볼 예정이다. 이 기사는 그 중 첫 번째 글이다.

4월22일 오후, 서울 선릉역 인근 한 빌딩에 들어섰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복도부터 적지 않은 인파가 눈에 띄었습니다. 사무실로 비집고 들어가니 한창 강연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정보의 우위를 가진 자가 그 정보를 나누기로 마음 먹는 순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라는 명제에서 정보의 우위를 가진 자의 동참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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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보니 200명에 가까운 인파가 어두운 거실에서 강의를 듣고 있더군요. 노트를 꺼내 들고 받아 적는 이도 심심치 않게 보였습니다. 아기를 업고 온 여성부터 연세 지긋한 어르신까지, 많은 사람이 강사의 말에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인터넷에서 ‘핀테크’를 검색하면 가장 많이 보이는 곳, 주식회사 핀테크 사무실입니다. 핀테크라는 일반 용어와 헷갈리지 않게 이 업체를 가리킬 때는 ‘(주)핀테크’라고 쓰겠습니다.

※ 서울 여의도에 사업자등록한 (주)핀테크는 진짜 핀테크 업체입니다. 15년 동안 금융권에 시스템을 개발해 온 (주)핑거에서 2014년 말 꾸린 핀테크 전문 자회사입니다. 이 기사에 나오는 (주)핀테크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핀테크가 부업거리라고?

네이버나 다음에서 ‘핀테크 재테크’라고 검색하면 핀테크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게시물이 쏟아집니다. 특히 블로그와 카페에 이런 게시물이 많이 보입니다. 재택 근무로 꾸준히 돈을 벌 수 있는 알짜 사업이고, 정부에서도 밀고 있는 진짜 노다지라며 가입을 재촉합니다. 돈 받은 내역이라며 통장 사진을 올린 곳도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어렵지 않게 수십분에 달하는 강의를 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핀테크가 주목받자 이를 간판으로 내세우고 다단계 조직이 활개치는 모습입니다. (주)핀테크는 이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입니다. 이름을 잘 지은 덕분(?)일까요.

핀테크가 요즘 뜨는 분야라는 건 맞습니다. 저도 IT 전문매체 <블로터>에서 전자결제 분야를 담당하다 핀테크로 분야를 재정립했죠. 하지만 핀테크가 손쉽게 돈 벌 수 있는 분야라고 물으신다면, 저는 결코 아니라고 대답할 겁니다.

핀테크는 금융(Finance)과 기술(Technology)이 결합해 지금까지 없었던 혁신적인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분야입니다. 제대로 서비스하려면 금융과 IT라는 고도로 발달한 두 분야 모두에 전문성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또 알리바바나 페이팔 같은 글로벌 서비스를 능가할 세계적인 경쟁력도 갖춰야 하죠. 한국 금융시장은 워낙 작아 해외 시장으로 나서야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주)핀테크는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핀테크 분야를 마치 부업거리처럼 설명합니다. 남보다 앞선 정보를 바탕으로 빨리 뛰어들면 금방 돈을 벌 수 있다고 유혹하죠. 이들이 이야기하는 것만 들어보면 혹할 만합니다.

(주)핀테크는 11만원만 내고 하루에 한 번씩 모바일 앱에서 광고 미션을 수행하면 건당 2천원씩 수당을 계속 돌려준다고 합니다. 주 5일 미션을 받을 수 있으니, 성실히 일하면 11주만에 원금을 회수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소득원이 이것만 있는 게 아닙니다. 내 밑으로 좌·우로 각각 1명씩 모두 2명이 가입할 경우 내게 5만원을 돌려준답니다. 단 11만원만 내면 돈이 굴러들어오는 구조입니다.

여기다가 26만원을 더 내면 ‘아바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진짜 가입자가 아니라 가상 아이디를 만들어 내 밑에 조직 구조를 채우는 겁니다. 가입자당 받는 돈은 5천원으로 적지만, 아래로 피라미드를 20단계까지 만들 수 있습니다. 20단계 안에 사람 또는 아바타가 들어올 경우 5천원씩이 계속 들어옵니다. 돈이 더 내면 돈이 돈을 버는 속도를 재촉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전체 강의가 끝나고 따로 마케팅 플랜을 설명한 다른 강사는 자기 아래로 20단계를 꽉 채울 경우 꼭지점에 있는 사람은 하루에 3억원을 번다고 설명했습니다. 20단계를 다 채우지 못해도 괜찮답니다. 10분의 1만 채워도 하루 3천만원, 1%만 채워도 300만원, 0.1%만 모아도 하루 30만원이 들어온답니다. 이렇게 돈이 굴러들어오게 만드는 데 필요한 건 2가지. 현금 37만원과, 계속 미션을 수행하는 성실함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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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훌륭한 돈벌이를 왜 정보 습득에 상대적으로 어두운 중·장년 어르신들만 하실까요. IT 쪽에 눈 밝은 젊은이나 사내유보금을 수조원씩 쌓아둔 대기업도 여기다 돈을 투자하면 금방 돈을 불릴 수 있을 텐데 말이죠.

여기에 함정이 숨어 있습니다.

핀테크 이름 내건 다단계

(주)핀테크는 전형적인 다단계 회사였습니다. 핀테크는 간판에 불과했죠. 금융이나 기술이 아니라 다단계 마케팅이 핵심 사업 아이템이었습니다.

다단계 사업이 모두 불법은 아닙니다. 미국에서 암웨이가 들어오면서 ‘네트워킹 마케팅’이라는 개념이 국내 제도에도 자리잡았죠. 합법적으로 국내에 등록하고 사업하는 다단계 업체는 공정거래위원회 웹사이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2014년 기준으로 전국 106곳에 이릅니다. 여기에 (주)핀테크는 없습니다.

방문판매등에 관한 법률(방문판매법)에 따르면 3단계 이상으로 판매원이 하위 판매원에게 가입을 권유하고 수당을 받을 경우 각 지방자치단체에 등록해야 합니다. 등록하지 않고 다단계 사업을 벌이면 7년 이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핀테크는 통신판매중개사업자로 인천에 등록했습니다. 통신판매중개사업자란 e쇼핑몰이나 홈쇼핑처럼 점포 없이 미디어를 통해 상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소매사업자입니다. 자기 물건을 직접 파는 게 아니라 다른 회사 물건을 대신 팔아주는 중간책입니다. 11번가나 G마켓 같은 곳이 대표적인 예죠. 통신판매중개사업자로 사업자 등록을 하고선 다단계 사업을 벌이면 불법입니다.

글머리에 200명 앞에서 강사로 나서 마케팅 공동체를 조직해야 한다고 소리 높여 얘기하던 (주)핀테크 관계자는 저와 만난 자리에서 (주)핀테크가 불법 다단계 회사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지금이 과도기라고 말했습니다. 혁신적인 사업 모델을 한시바삐 도입하느라 규제가 정한 선을 넘기는 했지만, 문제가 되는 부분을 정리하고 변호사 자문을 받아 조만간 합법적인 모습으로 조직을 개편하려는 중이라고 설명하더군요.

배당금 챙겨줄 수익 구조 미지수

설명을 듣고도 2가지 궁금증이 남았습니다. 불법 다단계 조직을 판단하는 기준은 크게 2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방문판매법에 따라 등록했는지 여부입니다. (주)핀테크는 회원을 다단계 방식으로 모집하면서도 다단계 사업자로 등록하지 않았습니다. (주)핀테크 쪽 설명대로라면 4만2천명이 회원으로 가입했습니다. 이미 법망 밖에서 거대하게 자란 조직을 어떻게 합법적인 구조로 탈바꿈할 생각인지 궁금했습니다. 그 관계자는 “다단계 업체로 등록한 회사와 제휴를 맺는 식으로 조직을 양성화할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두 번째 의문은 수익원이 무엇이냐는 겁니다. 회원에게 하루에 3억원씩 수당을 챙겨주려면 적지않은 매출을 올려야 할 겁니다. 이 관계자는 “‘온라인 산업박람회’를 열고 여기에 부스를 유치할 때 입점비를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지금은 모바일 광고 앱만 운영하지만 나중에는 상품권, 배달 앱 등 다양한 분야로 사세를 넓히고 여기서 얻은 수익을 회원에게 나눠준다고 했습니다.

온라인 산업박람회는 무엇일까요. 킨텍스 같은 곳에 박람회를 연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한창 공사 중인 (주)핀테크 웹사이트에 들어가보니 그냥 e쇼핑몰이더군요. 이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고 이벤트에 참여하거나 포인트를 쓰려면 역시 37만원을 내고 회원으로 등록해야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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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합니다.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바이럴 마케팅을 벌여 거둔 광고 수익을 돌려주는데 왜 입장료가 필요할까요. ‘캐시슬라이드‘ 같은 리워드 앱이 돈을 받으려면 먼저 돈을 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e쇼핑몰에서 물건을 사서 포인트를 적립하려면 가입비를 내라고 하는 곳도 드물죠. 신규 가입자가 낸 돈을 먼저 가입한 사람에게 몰아주는 전형적인 다단계 사기, 즉 폰지 사기로 의심되는 대목입니다.

1920년대 폰지 사기, 핀테크 열풍 타고 한국서도 활개칠 조짐

폰지 사기란 찰스 폰지라는 이탈리아인 이름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다단계 금융 사기를 뜻하죠. 찰스 폰지는 1919년 미국에서 국제우편쿠폰을 유통해 수익을 내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습니다. 1차 세계대전 때문에 달러 환율이 급변했는데, 국제우편 요금을 낼 때 쓰는 국제우편쿠폰은 전쟁 전 환율로 교환되는 점에 착안해 해외에서 이를 대량으로 사들여 미국에서 팔아 차익을 내겠다는 구상이었죠.

다단계 폰지 사기 수법을 처음 내놓은 희대의 사기꾼 찰스 폰지 (출처 : 위키미디어커먼즈 CC PD)

다단계 폰지 사기 수법을 처음 내놓은 희대의 사기꾼 찰스 폰지 (출처 : 위키미디어커먼즈 CC PD)

찰스 폰지는 45일 뒤 원금의 50%, 90일 뒤엔 원금 100%에 이르는 수익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사업 초기에는 약속대로 투자금이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초기 투자자가 번 돈을 다시 투자하는 한편, 주변 지인에게까지 폰지의 사업을 소개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기였죠. 당시 보스턴우체국은 폰지가 주장한 것 같은 사업을 승인한 적이 없었습니다. 폰지는 나중에 투자한 사람의 돈으로 먼저 투자한 사람에게 수익을 지급하는 식으로 사업이 제대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게 꾸며냈을 뿐입니다.

의심을 품은 투자자가 투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하자 밑장 빼서 윗돌 괴던 폰지의 사업은 순식간에 주저앉았습니다. 1920년 8월 폰지는 파산 신고했습니다. 사기혐의로 구속된 폰지는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5년 뒤 플로리다주에서 부동산 버블이 일자 같은 방식으로 사기를 벌이다 징역 9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런 파란만장한 사기 행각 때문에 찰스 폰지는 금융 피라미드 사기를 가리키는 보통명사로 이름을 남기게 됐습니다.

확실한 수익원이 있어서 약속한 대로 회원에게 돈을 지급할 수 있다면 (주)핀테크 사업이 폰지 사기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지 늦게 움직이는 규제보다 조금 앞선 첨단 사업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주)핀테크가 그런 수익모델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회원제 바이럴 광고 플랫폼이나 e쇼핑몰에서 얻는 수익으로 10만명한테 약속한 만큼 수익을 계속 돌려줄 수 있을까요. 참, 10만명이라는 숫자는 (주)핀테크에서 투자자를 모집할 때 늘 거론하는 수치입니다. (주)핀테크 쪽에 설명을 듣고자 인터뷰를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끝내 취재를 진핼할 수 없었습니다.

(주)핀테크 관계자는 “아직 조직을 개편하는 중이니 나중에 자세한 사항을 밝힐 수 있을 때 공식적으로 인터뷰를 하자”고 얘기했습니다. 제가 기자임을 밝히지 않고 사업자인척 사무실에 와서 인터뷰를 했기 때문에 이때 들은 내용은 보도할 수 없다며 으름장도 놓았습니다. 제가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기자임을 밝히고 책임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했던 점은 애써 기억에서 지우셨나 봅니다.

어쨌든 (주)핀테크는 정식 인터뷰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이 관계자가 처음 인터뷰를 약속한 때는 4월27일 오전이었습니다. 이날 사무실에 방문하니 사무실 직원을 통해 날짜를 미루자는 말을 전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목요일에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블로터> 편집국 일정상 더이상 시간을 미루기 어려웠습니다. 전화상으로라도 인터뷰를 하자고 해 다시 받은 일자가 29일(수) 저녁 6시였습니다. 때맞춰 다시 통화를 시도했지만, “지금은 바쁘니 40분 뒤에 연락 주겠다”는 말만 남기고 연락이 끊겼습니다. 다음날인 30일 새벽 7시20분 문자메시지로 아래 같은 답변이 왔습니다.

“주식회사 핀테크는 기존의 영업방식에서 핵심이었던 광고와 연계된 ◦◦코인 교환이라는 시스템을 더이상 유지할 수 없고 완전 포기하여 결별하는 사유가 발생하였기에 사업을 자정하여 정리키로 결정난 바 인터뷰할 내용이 없음 ㅡ 아울러 귀하가 시도했던 인터뷰는 적법한 절차를 밟지 않은 것으로 인정할 수 없음 ㅡ “

핀테크는 다단계가 아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십니까. 제 우려가 지나친 걸까요. 다단계 사기는 실제로 피해자가 나와서 신고하기 전까지는 수사기관이 나서기 어렵습니다. 사업이 잘 돌아가는 와중에는 피해자가 안 나오니 사기도 성립하지 않는 셈이죠. 문제가 드러난 뒤에는 늦습니다.

핀테크 생태계가 국내에 건강하게 뿌리 내리길 바라는 핀테크 담당기자로서 부탁드립니다. 주변에 핀테크라는 이름으로 부업하라는 분이 계시다면 말려주세요. 핀테크는 다단계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