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프린터] ①제조업 혁신의 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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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프린팅은 프린터로 물체를 뽑아내는 기술을 말한다. 종이에 2차원 글자를 인쇄하는 기존 프린터와 달리 3D프린터는 입체형 물체를 만들어낸다. 보통 프린터의 소모품인 잉크 대신 플라스틱을 비롯한 경화성 소재를 쓰고, 문서나 그림 파일이 아닌 3차원 모델링 데이터를 출력 소스로 활용한다. 적게는 1~2시간에서 길게는 십수 시간 정도면, 3D프린터에 입력한 3D 모델 속 데이터를 물체로 받아볼 수 있다.

3D프린팅 기술을 수식하는 찬사는 다양하다. ‘제조업의 혁신’, ‘산업의 혁명’과 같은 것들이다. 3D프린팅 기술은 기업의 소품종 대량생산에 초점을 맞춰 발전해온 제조업을 개인이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이끌 주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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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제품 뽑아볼까, 더 빨리”

3D프린터의 탄생은 놀랍게도 30여년 전인 19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의 3D프린팅 기술 전문업체 3D시스템즈를 공동으로 창업한 찰스 W. 헐이 주인공이다. 찰스 헐은 실제 제품을 완성하기 전 단계에서 시제품을 빨리 만들기 위해 3D프린팅 기술을 고안했다. 제조업에 있어서 시제품 제작에 드는 시간을 단축하는 일은 그때나 지금이나 풀어야 할 과제였다.

찰스 헐이 처음으로 고안한 방식은 지금까지도 3D프린팅 분야에서 널리 쓰인다. ‘스테레오리소그라피(Streolithography, SLA)’라는 이름의 기술이다. SLA 방식은 캐드 등 3D 모델링 도구로 만든 입체 물체 데이터를 여러 개의 얇은 층으로 나누는 기술을 말한다. 얇은 층을 하나씩 쌓아올려 물체를 출력하는 것이 3D프린터의 기본 원리다. 액체 수지를 도포하고, 자외선을 비춰 굳힌 후 다음 층을 쌓아 물체를 완성한다. 지도에서 등고선이 모여 산을 표현하는 것을 상상하면 이해하기 쉽다.

3D프린팅 기술은 제조업 분야에서 유용하다. 특히, 찰스 헐이 3D프린팅 기술을 생각해낸 본래 목적대로 실제 제품을 만들기 전 디자인을 미리 보기 위한 ‘목업’ 제조 단계를 혁신한다. 일반적으로 목업 제작에 걸리는 기간은 수 주에서 한 달이 넘게 걸린다. 3D 모델링 자료를 목업 제작 업체에 전달하고, 디자인이나 세부사항을 수정해 최종 결과물을 받아보는 데 시간이 소요되는 탓이다.

이같이 길고 지루한 과정을 3D프린팅 기술은 사무실 안에서 단 몇 시간 안에 끝낼 수 있도록 돕는다. 처음 찰스 헐이 고안한 SLA 방식이 ‘레피드 프로토타이핑’ 기술로 주목받은 까닭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목업 제작에 드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제품 디자인이 외부로 유출되는 사고도 방지할 수 있다는 특징은 3D프린팅 기술이 추가로 가져다주는 부가가치다.

찰스 헐의 발명은 다양한 3D프린팅 기술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이 때 완성된 기술 대부분이 지금의 3D프린팅 시장을 규정하는 뼈대가 됐다. SLS(Selective Laser Sintering)와 FDM(Fused Deposition Modeling) 방식의 3D프린팅 기술이 대표적이다. SLS는 분말을 도포해 굳히는 식으로 물체를 만들고, FDM은 플라스틱 소재 필라멘트를 열로 녹여 압출한 후 상온에서 굳혀 물체를 쌓아올리는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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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W. 헐 3D시스템즈 공동창업자

대중화 걸음마 시작한 3D프린터 시장

30여년 역사의 3D프린팅 기술이 오늘날 대중화를 위한 날개를 편 것은 핵심 특허가 만료된 덕분이다. 2014년을 기준으로 대형 3D프린터 기술업체 3D시스템즈와 스트라타시스 등이 보유한 3D프린터 특허 90여 건이 만료됐다. 만료된 특허 분야는 SLS와 FDM, SLA 등 다양하다. 오는 2016년까지 추가로 50여건에 이르는 특허가 만료될 예정이다. 앞으로 3D프린터 개발자와 사용자는 더 싼 값에 다양한 종류의 3D프린터를 만나게 될 전망이다.

특허 만료는 오픈소스 프로젝트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3D프린터를 대중의 영역으로 나오도록 한 일등 공신이다. 3D프린팅 기술을 ‘메이커’ 운동의 중심에 서도록 이끈 것도 오픈소스 프로젝트다.

2005년 영국 바드 대학의 아드리안 보이어 기계공학과 교수가 시작한 ‘렙랩(RepRap)’ 프로젝트가 주목할만 하다. 렙랩 프로젝트는 ‘빠른 프로토타입 장비 복제(Replicating Rapid Prototyper)’를 줄인 말이다. 개방형 디자인으로 누구나 3D프린터를 만들 수 있도록 했고, 3D프린터에 쓰이는 부품도 3D프린터로 만들어낼 수 있도록 고안했다. 이를 활용해 새로운 3D프린터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3D프린터를 복제하는 오픈소스 3D프린터 운동인 셈이다. 렙랩 프로젝트에서 2008년 오픈소스 3D프린터 ‘다윈’을 내놓은 이후 ‘멘델’과 ‘헉슬리’ 등 기능을 개선한 오픈소스 3D프린터가 꾸준히 개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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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렙랩’이 만든 오픈소스 3D프린터 ‘다윈'(왼쪽)과 ‘멘델’ (사진: 위키미디어, ‘CharlesC’, CC BY-SA 3.0)

국내에서도 3D프린터를 만들어 사업을 모색 중인 개인 개발자나 소규모 스타트업이 늘어나는 추세다. 렙랩 프로젝트처럼 FDM 방식의 3D프린터를 다루는 것이 보통이다. 국내 S3D와 같은 소규모 업체에서는 FDM 방식의 3D프린터 중 원형 모델 출력에 적합한 델타 방식의 3D프린터를 개발해 판매하기도 한다.

3D프린터에 걸려 있던 특허가 만료됐다는 점, 이를 중심으로 메이커 운동이 세계 각지에서 일어났다는 점은 3D프린터 산업을 대형 업체 주도형에서 대중주도 영역으로 끌어오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시장 규모 측면에서 3D프린터 시장은 아직 여명기다. 시장조사 전문업체 가트너가 지난 2014년 하반기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2014년 전세계 3D프린터 시장 규모는 10만8151대 수준이다. 3D프린터 시장은 하드웨어 제조업 분야다. 제조업에서 10만대 남짓한 판매 대수는 대수롭지 않은 숫자다.

성장률은 높게 평가받고 있다는 점에서는 고무적이다. 가트너는 2015년 전체 3D프린터 시장을 21만7천대 수준으로 관측했다. 매년 두 배 이상 성장을 거듭해 2018년까지 전세계 230만대 시장을 형성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피규어, 음식 넘어 교육까지

3D프린팅 기술을 응용한 다양한 시장이 열리고 있다. 개인 개발자는 가정에서 실제 활용할 수 있는 액세서리 시장에서 기회를 보고 있고, 우주항공 분야에서는 우주식량과 우주건축 기술에 3D프린터를 적용하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부엌의 식품 조리 영역에 3D프린터 기술을 도입하려는 독특한 움직임도 주목할 만 하다.

국내 3D프린터 전문업체 셰에라자드웍스가 3D프린팅 기술을 활용해 피규어 사업을 시작한 대표적인 업체다. 남성 피규어에는 턱시도를, 여성 피규어에는 웨딩드레스를 입혀 결혼을 앞둔 이들을 주요 고객으로 삼는다. 핸드스캐너로 피규어 의뢰인의 얼굴을 스캔해 3D 데이터로 만들고, 3D프린터로 제작하는 방식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박근혜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박근혜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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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프린터’가 출력한 쿠키와 초콜릿

캘리포니아 예술대학에서 하이브리드랩을 운영 중인 앤드류 맥스웰 패리쉬는 치즈를 짜는 ‘이지 치즈 3D프린터’를 개발하기도 했다. 플라스틱 필라멘트 소재 대신 치즈를 원료로 활용해 먹을 수 있는 입체형 물체를 인쇄해주는 아이디어다.

음식을 뽑는 3D프린터가 우스꽝스럽게 비출 수 있지만, 음식 조리 3D프린터는 이미 상용화를 코앞에 두고 있다. 대만의 3D프린터 전문 업체 XYZ프린팅은 오는 가을 대만에서 음식을 뽑는 3D프린터를 출시할 예정이다. 이른바 ‘푸드프린터’다. 쿠키 반죽을 원료로 활용해 쿠키를 구워주거나 액체 상태인 초콜릿을 인쇄해 3D 모델링 형태로 초콜릿을 만들어주는 제품이다.

현재 3D프린터 업체가 군침을 흘리는 시장은 교육 분야다. XYZ프린팅은 지난 2014년 한국에 지사를 세운 이후 경성대학교와 산학협력 모델을 만들었고, 서울의 미래산업고등학교와도 연계해 3D프린터를 활용한 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이밖에 다양한 교육 시설에서 3D프린터 수요가 늘어나는 추세다. 미래창조과학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3프린팅 산업 인력 육성을 골자로 한 ‘3D 프린팅 산업 발전 계획’을 2014년 발표했고,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운영하는 ‘무한상상실’이 전국에서 3D프린터 무료 체험장 42곳을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