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작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는 명배우 로빈 윌리암스와 당시 풋풋했던 에단 호크를 보는 즐거움 말고도, 내용 자체가 좋은 영화였다.
영화 배경인 명문 웰튼 고교는 명문대 제조기로 유명한 학교인데, 산업시대의 공장 모델을 그대로 가져온 학교의 명품 제조방식은 지루하고 답답하기 그지없다. 개성과 창의성이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학교에 과거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시낭송 비밀써클을 주도했던 키튼 선생이 부임해 몇몇 학생들과 함께 과거의 써클을 부활시킨다. 그리고 그들과 창작극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중심적 학생 중 하나인 녹스가 사랑에 빠지고, 집안에 반대에 부딪힌 그의 활동과 사랑은 결국 녹스의 권총자살로 결말을 맺는다. 이에 학교측은 모든 책임을 키튼 선생에게 전가시키고, 키튼이 떠나는 가운데 학생들 모두가 책상 위에 올라와 “마스터 키튼, 마스터 키튼”을 외치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이를 최근 국내에서 방영이 시작된 ‘공부의 신’과 비교해봐도 재미있을 것이다.
‘공부의 신’은 일본 TBS에서 2005년에 방영한 ‘드래곤 자쿠라’가 원작인데 그 내용 역시 평균 100점 만점에 32점을 기록하는 ‘꼴통학교’로 부임한 폭주족 출신 변호사 사쿠라기 겐지가 사회적으로 ‘지진아’, ‘낙오자’, ‘패배자’로 낙인 찍힌 학생들 다섯 명을 일본 사회 엘리트의 심볼인 도쿄대에 입학시키는 구조로 되어 있다.
즉, 다른 점에서 보자면 현실 사회에 대한 저항과 수긍이라는 큰 차이가 존재하지만, 마스터 혹은 멘토에 의한 학생들의 자각, 그로 인한 새로운 인생의 출발이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그리고 그들의 철학 중 어느 쪽이 더 현실적인 실효성이 있는 지, 각자 자신의 입장과 처지에서 생각해보는 것도 유의미할 것이다.
물론 마스터 키튼도 사쿠라기 겐지도 각각 웰튼과 류잔고교를 떠나야만 한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실패일까?
그렇다고 보기 어렵다. 남겨진 사람들, 바로 학생들은 이전과 결코 같은 사람이 아니다. 과감히 책상 위를 올라갔던 웰튼 고교 학생들이나, 비록 2차에선 미역국을 마셨지만, 도쿄대 1차시험 합격이라는 쾌거를 이룬 류잔의 문제아들이 앞으로 결코 같은 길을 걷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쩐의 전쟁’의 명사대 중 하나가 “남자는 떠나면 상처를 남기지만, 돈은 떠나면 이자를 남긴다”는 것. 그 말을 패러디하자면 “멘토는 떠나도 교훈을 남긴다.”
서론이 길었다.
실제로 현실은 마스터 키튼과 사쿠라기 겐지 어느 쪽도 쉽게 발을 붙이기 어려운 곳이다.
인문학적 감수성은 중요하다.
디지털 시대의 콘텐츠나, 상품의 경험성을 만들어내는 디자인적 요소는 모두 인문학적인 배경을 그 기초로 하고 있다. 문학과 미술에 대한 이해, 음악과 영상에 대한 감각, 그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기본적 인식과 소견을 갖추는 것, 감상안을 기르는 것과 실제 그것을 전공하고 그것을 밥벌이로 삼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인문학적 수요가 사회에 분명히 존재하긴 하지만, 순수하게 그것만으로 움직이는 시장은 순수문학, 순수미술, 고전음악, 예술영화 등으로 극히 한정되어 있다고 봐도 좋다. 그리고 여기는 분명한 승자독식의 세계, 더욱 냉정한 비즈니스의 세계다.
인문학적 수요가 존재한다고 해도, 그것은 ‘순수’의 타이틀을 따르기보다는 경제, 경영적인 시스템과 결합되어 나타날 것이다. 상품의 디자인, 매장의 설계, 그리고 수치와 이론으로는 잡을 수 없는 상상과 통찰력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인문학적인 감성과 지성이 시장의 보다 광범위한 수요와 맞물릴 수 있는 영역이다.
따라서 이것이 마스터 키튼의 한계다.
현실적인 기술은 중요하다.
사쿠라기 겐지의 길을 따라가면 도쿄대에 입학할 것이다. 그가 류잔고교 학생들의 패배주의를 격파하고 그들에게 새로운 성공의 문을 열어줬다는 점에서는 의의가 깊다. 그러나 수험의 대가가 새로운 시대의 성공인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새로운 수요, 기회를 창출하지 않고서는 생존하기 어려운 초경쟁의 사회에서 기업 전략이란 ‘차별화’와 직결된다. 그 차별화를 창출할 수 있는 인재들이란, 조직에 길들여지지 않는 ‘전문가 집단’이다.
입시 제조기에 의해서 기획된 상품들이 과연 이 마스터 집단으로 상승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사회를 주도할 수 있는 혁신가의 일부가 될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분명하지 않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도쿄대 입학만이 경쟁력을 담보할 수 있는 사회는 아니라는 것이다. 나를 남과 다르게 만들 수 있는 것, 그것을 시장의 변화하는 수요와 연결시켜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이 부재하고서는, 특별히 지금 시점에서는 상상력의 영역과 결합시키는 과정이 부존하고서는 그 목표 달성은 어렵다.
그렇게 본다면, 결국은 마스터 키튼과 사쿠라기 겐지가 손을 잡는 것이, 그들의 기지와 훈련이 융합된 인재가 이상적이라는 답이 나온다.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Daniel Pink)의 말을 빌리자면 ‘하이컨셉, 하이터치’라고 할까. 이성과 감성의 전략적 조화, 균형적 발전을 이룬 인재가 답이라는 것이다.
결국,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인가.
르네상스맨이 가고 분업화에 따른 전공인의 시대가 왔고, 이제는 교양적 전문인(general specialist)의 시대가 오고 있다.
문득 구스 반 산트 감독이 연출해 2000년에 개봉된 영화 ‘포레스터를 찾아서’(Finding Forrester)가 생각이 난다.
농구 천재로 명문 고교로 전학을 가, 역시 명문대학의 입학이 보장된, 동시에 흑인 빈민 가정에서 태어나 자란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자말 월래스는 숨겨진 문학신동이다.
그의 재능은 우연히 개인적 상처로 문학계를 떠나 은둔생활을 하고 있던 포레스터의 눈에 띄게 되고 둘은 사제의 연을 맺게 되어 서로의 상처를 보듬게 되고 각자가 성장하는 데 발판이 되어 준다.
‘죽은 시인의 사회’, ‘드래곤 자쿠라’와 마찬가지로 또 다른 멘토, 성장 드라마다.
다만 여기서 내가 기억난다고 하는 것은 그 플롯의 유사함이 아니라, 영화의 한 장면이다.
주인공 자말 월래스가 사랑에 빠진 소녀에게 BMW의 하늘색과 흰색이 직교하는 방패모양 엠블럼의 상징적 의미를 설명해주는 대목이 있다.
본래 비행기 엔진을 생산하던 BMW는 독일의 2차대전 패전 이후 협정에 따라서 비행기 생산이 금지되게 되자 자동차를 생산하게 된다. 그러나 BMW가 생산한 자동차는 곧 세계적 명차가 됐다.
그 때 그 장면을 보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
명차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 차에 담긴 엔진이, 비행기의 것이라면, 하늘을 나는 심장이라면. 비록 지상을 날아도 하늘을 꿈꾸는 것이라면, 명차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영화 감상이라서, 다소 감성적인 평일 수도 있지만.
그와 같은 이해는 하이컨셉&하이터치의 시대에 IT와 브랜드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하나의 길이 될 수 있다.
기술만으로는 2% 부족하다.
물론 독보적인 차별적 기술을 개발해야 하지만, 그것에 대한 사회적 필요, 개인적 감성과 연결성이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다. IT기업체에서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에 막대한 예산이 투자되는 것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다.
그렇다면 우리의 결론, 이어받을 교훈이란 무엇일까.
IT와 브랜드 사이, 사쿠라기 겐지와 마스터 키튼의 사이, 하이컨셉과 하이터치의 사이, 제대로 된 감성과 이성의 융화와 조화, 감성과 이성의 앙상블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넘쳐나는 제품의 홍수 속에서, 기술 경쟁력이 제품 경쟁력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브랜드의 고리가 필요하다는 것, 즉 감성적 연결성이 중요하다는 것이 결론일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기본적 기술 경쟁력이 없이는 그 감성적 연결성도 나올 수가 없다. 즉 이 둘은 상호 의존적이다.
되살아난 시인의 사회, 서비스 산업에 이어 경험 산업이 중심축을 이루는 산업 구조의 변화 과정에서 IT와 브랜드 사이.
우리는 시를 읽는 공학자를, 그리고 통계를 볼 줄 아는 화가를 꿈꾸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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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시인의 사회 마지막 장면을 잘못 알고 계신듯한데요
키튼선생이 어떤 시에 나온 것처럼 학생들에게 자신을 캡틴이라고 부르라고 하고…
그래서 떠날때 학생들이 “오 캡틴 마이 캡틴” 이라고 했던걸로 기억하는데…
마스터 키튼은 너무 쌩뚱맞네요
마스터 키튼은 만화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인데
각색을 하셨군요.
글 잘 읽었습니다.
다만 아쉬웠던 점이 몇가지 있네요.
죽은 시인의 사회, 참 좋아하는 영환데요.. 키팅선생님(키튼x)이 과거 비밀 써클이었던 죽은시인의 사회를 부활시킨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녹스가 사랑에 빠진 것은 사실이지만 집안에 반대에 부딪혀 결국 자살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녹스가 아니라 닐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드라마, 영화로부터 이야기를 이끌어내면서 각 프레임에서의 멘토를 언급하셨지만 글을 읽어갈수록 IT 업계에서 요구되어야 하는 개인적 감성, 감성과 이성의 융화/조화 등으로 내용이 흘러가 전혀 관련성이 없는 내용을 언급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영화, 드라마에서의 멘토들이 주는 감성적인 메세지들로부터의 발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최근 이슈가 되는 드라마, 명작영화로부터 이야기를 이끌어내며 현재 IT 기술의 발전에 있어서 고려되어야 할 일 문제점을 언급하는 시도가 좋았던 글인것 같습니다.
아 맞네요.
드래곤자쿠라 (x)드래곤사쿠라에도 마지막에 동경대 붙고도
대학에 들어가지않고 다른 공부를 하러 가는 학생도 있으며
그 선생도 동경대에 운운하는 사회를 싫어한다고 나중에 강조합니다.
마지막 내용을 보면 결국 여러가지 답안중 선택하게 하는 길로 학생들을
선택하게 합니다. 동경대는 그냥 애들의 목적이 없기 때문에 그 목적을 달성하게
하는 선택지중 하나였을뿐입니다.
드래곤자쿠라가 맞는데..;;
아는 척하다가 더 무식한 티내네…
드래곤사쿠라가 맞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 일본어 발음대로 읽으면 도라곤자쿠라 인데
이걸 한국식으로 말한다고 한다면 드래곤사쿠라겠죠.
(왜 도라곤만 드래곤으로 바꾸나요… 바꿀꺼면 다 바꿔야죠.)
그리고 언근 안할려고 했는데 위에 미묘하게 틀린게 많은 느낌이 드네요.
5명이 아니고 6명이고, 32점이 아니고 36점이고 등등…
뭐 이런것은 별로 중요한것들이 아니니 굳이 따지진 않겠지만
뭔가 예시를 들어서 쓰기에는 깊이가 부족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는 합니다.
Oh, Captain. My Captain! 이라고 합니다, 마스터가 아니죠.
ㅋㅋㅋㅋㅋㅋㅋ
마스터 키튼은 만화책이잖애효…
죽은 시인의 사회 끝에 마스터 키튼이… ㅋㅋㅋ
죽은 시인의 사회의 내용이 하나도 안맞네요.
우선 죽은 시인의 사회 서클은 학생들이 부활시킨 거지,
키팅 선생이 함께 참여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역할극을 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습니다.
사랑에 빠지는 사람은 녹스가 맞지만 자살을 하는 사람은 닐이었죠.
그러게요. 빵 터질 일을 자초했네요. 자숙하겠습니다. ㅜ_ㅠ
캡틴 마이 캡틴~ 이라고 했었는데
ㅋㅋ… 젤 명장면 설명을 잘못하셨네요.
“마이캡틴”을 우라사와 나오키만화의 전혀 다른 “마스터키튼”이라고 한던가. 사쿠라를 자쿠라로 기억하고 사용한다든가(여러번 동일하게 표기하는 걸보니 오타는 아닌듯..) 뭔가 길게 적었지만, 근거는 부족하다던가…종국에는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인점…이 지나가다 굳이 글을 쓰게 만드네요.
죄송합니다만 손발이 오글거리는 글이네요.
그냥 지나가면 되는데 굳이 글을 적는 이유는 악플 달려고 시비걸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비전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을 쓰시려면 좀더 갖추시는게 어떤 실까 조심스레 권해봅니다…..비전디자이너나 이런 칼럼을 읽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비전을 주시려면요.. 저도 그걸 기대했으니까요.
착안점이 좋은 글인데, 글쓴이의 생각들이 정리되지 않고 나열되어 있어서 읽기어렵네요.
글 전체를 여러번 읽어야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론’을 부각시키는데 초점을 맞추고 서론 부분을 좀더 간결히 하면 호소력 있는 글이 될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가 그 깊이나 방향을 넘어
그냥 하나의 식견으로 받아드리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저도 윗분 동감합니다. 문장이 세련되고 인용되는 텍스트들도 수준이 높은 데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주제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 느껴져 불편함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모두가 읽는 인터넷에서 쓰는 글인 만큼 어깨의 힘을 빼시고 내실을 더 단단히 하는 게 어떠실까 합니다.
이건 스포일러야……………
저는 이제 현장에 뛰어들 예비디자이너입니다. 기술적 발전만 광고하는 모습에 다소 실망했던 대기업으로 디자인 자체에 실망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후 학부의 몇년을 세계적으로 좋다하는 (다양한 이유에 의한)다양한 디자인을 보고, 시를 쓰고, 서양미술사에, 한국 고건축에, 철학 토론 동아리에 참여 하고 논리적인 형태공부와 공대적 지식을 갖기위해 노력해왔습니다. 말씀하신 교양적 전문인이되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러나 당장의 취업에 너무 얇고 다양한 공부를 한게 아닐까 싶었는데 글을 읽고 그 얇고 다양하게 한 공부를 계속 골고루 발전시켜야 겠다 생각하게 됐습니다. 교양적 전문인이라는 말이 제가 흔들렸던 것이 괜한것이였구나 생각이 들게 해 위로가 되네요. 쓰신 글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마스터 키튼. 참좋아했던 만화였더라죠.^^
부족한 점이 있긴하지만, 그거 빼고는 공감가는 부분도 많네요.^^
화이팅 하세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려요~
“Gathher ye rosebud while ye may” =Carpediem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명언을 남긴 그 선생님의 이름은 ‘존 키팅’ Mr.Keating 이라고 합죠.마지막 장면에서 학생들은
“Oh~Capatain! My Captain!”이라고 외칩니다만… 미스터 키튼은 유명한 일본의 만화 이름입지요…
그래도 페욜리즘과 테일러리즘에 입각하여 생산된 획일적 대량생산품에 정형적인 교육시스템을 빗댄 것은 인상적이군요 ㅋ
딱히 중요한건 아니지만 하나 집고 넘어가자면
드래곤사쿠라에서 쓰는 점수는 ‘평균’이 아니고 ‘편차값’입니다.
평균 80정도는 최상위 학교라고 할 수 없지만
편차값 80은 최상위 학교라 할 수 있죠.(상위 0.135%정도)
넓은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어느정도의 깊이는 존재해야 신뢰를 줄 수 있겠죠.
그리고 몇몇 글을 읽어보았지만 무언가 인용해서 있어보이려고 노력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네요.
덕분에 글이 읽기 힘들고, 그래서 더욱 설득력과 호소력이 떨어진달까요.
너무 잦은 인용은 종종 자신의 말을 가려버립니다.
좋은 글의 의미를 다시 새겨보시는 것도 괜찮으리라 보여지네요.
예. 인용 부분의 부정확성이나 해당 내용에 대한 이해 부족은 수용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전문성과 깊이 추구, 좀 더 제 시각과 관점을 잘 정리한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바쁜 시간에 틈틈이 댓글을 남겨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모두 추운 날씨에도 좋은 하루 되시기를…
위의 지적들에도 불구하고 분명 좋은 글이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Generalized Specialist 와 Specialized Generalist를
항상 염두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저도 Generalized Specialist에 가깝게 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IT에 가깝게 학문을 배우지만, 인문학적 소양과 최선으로 맞닿아 있기 때문이지요
아직은 저 스스로 좀더 세련되게 정의내릴려고 노력해왔고
앞으로도 저 스스로를 위해서 정의할려고 노력해야할 개념이겠지만
필자께서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서 많은 공감을 느끼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