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핀테크] “농부에게 투자하고 착한 먹거리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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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는 내가 먹는 농산물을 어떤 농부가 재배했는지 알고, 농부는 어떤 사람이 내가 키운 농작물을 먹는지 알아요. 서로 얼굴을 아는 만큼 부담감과 책임감이 커지는거죠. 농사펀드가 하는 역할이 이겁니다.”

박종범 대표는 농사펀드가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직거래 장터를 만들어 농산물 유통과정에 산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박종범 농사펀드 대표 (농사펀드 제공)

박종범 농사펀드 대표 (농사펀드 제공)

농부와 소비자 잇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농사펀드는 독특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이다. 농부에게 투자하고 농산물로 돌려받는다. 농부 개개인은 자기가 내놓은 펀드 상품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농사펀드 매니저’다.

농사펀드는 어떻게 돌아갈까. 먼저 농부가 자기의 농산물을 펀드 상품으로 만들어 올린다. 농사펀드 첫 고객은 충남 부여에서 자연농법으로 검정땅콩을 키우겠다고 나선 농부 조관희 씨였다. 귀농 2년차인 조씨는 농약중독에 시달린 뒤 천연농법을 고집하게 됐다. 문제는 애써 키운 작물을 팔 길이 막막하다는 것. 유기농 인증을 받기엔 농사 이력이 짧았고, 해썹(HACCP) 같은 인증을 따기엔 너무 많은 비용이 필요했다. 자연농법을 포기하려던 차에 지인에게 농사펀드를 소개받은 조관희 씨는 410만원을 모으는 크라우드펀딩에 나섰다. 투자자 23명이 239만원을 모아줬다. 목표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박종범 대표는 가능성을 봤다.

“내가 당신이 하는 농법을 믿고 그 정도 값을 치불해서 먹을 생각이 있다는 소비자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농사펀드에 투자할 때마다 참여자에게 응원 한마디를 꼭 쓰라고 해요. 이걸 출력해서 농부들께 보여드립니다. 시골에서 혼자 고생하면 외롭거든요. 그런데 내 고집을 인정하고 투자해주는 사람이 있으니 큰 힘이 되는 거예요. 농사를 포기하지 않게 뒤를 지켜주는 역할을 하는 셈이죠.”

농사펀드 웹사이트 갈무리

농사펀드 웹사이트 갈무리

가격 면에서도 이득이 확실하다. 일반적으로 유통되는 농산물 가격에서 45% 정도가 중간 유통비용이다. 시장에서 1만원어치 농산물을 사면 그 중에서 농부가 가져가는 돈은 5500원 뿐이라는 얘기다. 농사펀드는 농부에게 바로 돈을 주고 농산물을 직거래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유통 마진 45%를 농부와 소비자가 나눠가져간다. 박종범 대표는 “시장보다 20% 정도 저렴하게 먹거리를 받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농부는 미리 농산물을 팔고 농사를 시작하니 1년 농사를 오롯이 혼자 책임지는 부담을 덜고, 투자자는 믿고 먹을 농산물을 저렴하게 살 수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점은 신뢰다. 농사펀드 웹사이트에 올라오는 펀드 상품은 농사펀드 직원들이 검증을 거친 것이다. 투자자가 일일이 농사 현장을 갈 수 없으니 직원들이 대신 현장에 가서 상품을 검증한다. 농사는 어떻게 짓는지, 땅은 어떻게 관리하는지, 비료는 무엇을 쓰는지 본다. 또 이웃에게 농부의 평판도 들어본다. 이렇게 농사펀드에 들어와 농산물을 판 농부는 2주에 한 번씩 투자자에게 농사 짓는 얘기, 사는 얘기를 전한다. ‘○○○ 인증 받았다’는 광고만 마냥 믿는 것보다 더 자세히 농작물이 생산되는 과정을 검증할 수 있는 셈이다.

농부와 소비자가 직접 교류하는 장을 여니 예상치 못한 일도 생겼다. 농사펀드에서 투자금을 모은 농부 밭에 맷돼지가 들이닥쳤다. 밭이 망가진 만큼 손실은 불가피한 상황. 속 상한 농부는 망가진 밭을 사진으로 찍어 올렸다. 그런데 투자자는 손실을 걱정하기는커녕 ‘속상하시겠다’, ‘힘내시라’라고 응원메시지를 보냈다. 돌려받는 농산물이 적어져도 괜찮으니 지금처럼 안전한 농법을 고수해달라는 투자자도 있었다. 농사펀드가 유명세를 타 인터뷰 기사가 나가자 ‘농부님 봤다’며 투자자가 기사 인증샷을 올리기도 했다. 믿을 만한 생산자와 상품을 선주문한 고객 사이를 넘어 끈끈한 관계가 만들어졌다.

농사펀드 웹사이트 갈무리

농사펀드 웹사이트 갈무리

소농 직거래 플랫폼 열어 정부 농업정책 빈자리 채운다

박종범 대표가 농사펀드를 시작한 이유는 정부 지원을 못 받는 소농이나 초보 농사꾼을 돕고 싶어서다. 화천 박 대표는 국가 정책이 기업형 대형 농업에만 초점을 맞춘다고 비판했다.

“국가 정책은 농업 규모를 키우고 기업화하는 쪽 정책이 많아요. 소농은 효율성 측면에서 국가 정책을 따라갈 수 없어요. 농사 규모가 커지면 생산효율화를 위해 품목을 단일화하거나 약을 치거나 새로운 농법을 도입해야 되요. 이게 안전성을 도모하지는 않거든요.”

유전자변형식품(GMO)이나 가축전염병도 기업식 농축산업의 폐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싼 값에 많은 상품을 만들어야 하는 시장 경제의 부작용이다. 박 대표는 소규모 농업에서 대안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먹거리 안정성과 다양성은 오히려 소농이 보장하거든요. 소농은 가족이 먹을 양만 생산하면 되니 품목도 다양하고 농사 짓는 방법도 믿을 수 있어요. 그런데 이걸 지킬 수 있는 정책이나 지원제도가 한국에 별로 없더라고요. 그래서 농사펀드는 소규모에서 중규모 농부까지만 지원하려고 시작했어요. 해보니 귀농귀촌하신 분들도 우리가 도울 일이 있겠더라고요.”

소농은 연소득 1800만원, 중농은 3500만원 이하를 버는 농가를 말한다. 정부 공식 기준은 아니다. 농사펀드가 정한 기준이다. 일반 잡곡류나 채소류를 키우는 농가는 자기가 키운 농산물을 직접 소비하기 때문에 소득 수준이 좀 낮아져도 도시민만큼 생계 문제에 시달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농사를 부부가 함께 짓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두 사람분 연소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절대 소득 수준은 무척 낮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이 돈 안 되는 소규모 농업을 포기하고 임노동자로 돌아선다. 박종범 대표는 이런 일이 전체 사회에 손실이라고 꼬집었다.

“농촌에도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게 돕는 사회안전망이 필요할텐데 그런게 부족해요. 지역에서 받을 수 있는게 별로 없죠. 저희는 소중농과 이제 막 귀농해서 처음 농사를 지으려는 분들을 도우려고 합니다.”

청년 농촌기획자, 농촌 문제 해법으로 크라우드펀딩 접목하다

박종범 대표는 강원도 춘천시 출신이다. 어릴 적에는 방학 때마다 외할아버지 댁에 내려가 농사를 거드는 게 일이었다. 어렸을 때는 괴롭던 일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리운 추억이 됐다. 그러나 우연히 농촌 관련 콘텐츠 기획업무를 맡아 진행하며 자기 안에 잠들었던 ‘농심’을 일깨웠다.

2005년 화천 토마토 축제에 도시 주민을 데려와 현장 체험을 시키는 행사를 기획해 화천군청에 제안해 채택됐다. 서울에서 버스 2대에 70여명을 실어 날랐다. 기획자이자 실무자로서 현장을 종횡무진하던 그에게 인생을 바꿀 사건이 생겼다.

“보고서에 쓰려고 현장 사진을 찍으려고 여기저기 돌아다닐 때였어요. 하얀 드레스를 입은 너댓살쯤 된 여자 아이가 자기 손보다 큰 토마토를 들고 활짝 웃고 있더군요. 카메라를 들이 대니 프레임 끄트머리에 농장주 할아버지가 쪼그리고 앉은 채 그 꼬마를 보고 웃고 계시더라고요. 너무 예뻐서 순간 사진을 못 찍었어요. 그 뒤로 일을 할 때마다 그 장면이 계속 생각나더라고요. ‘이게 뭘까’ 고민하다 보니 내가 그냥 월급 받으려고 일하는 게 아니라 농촌 사람과 도시 사람 모두 좋아지는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 들더라고요. 그 뒤로 회사 일은 일대로 하면서 주말이나 새벽에 농촌기획자라는 이름으로 계속 농촌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계속 기획했죠.”

적지 않은 일을 벌였다. 농촌 정보화 마을 구축 사업에도 뛰어들고, 귀농한 예술가와 원주민 사이 거리를 좁히는 농촌 레인부츠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폐교 위기에 처한 전남 보성 벌교 낙성초등학교에서 고구마를 심어 팔던 학부모를 도와 학교를 폐교 위기에서 구해내기도 했다. 10년 가까이 농촌기획자로 활약하다보니 농촌의 여러 문제가 눈에 들어왔다. 이 중에서도 소농 문제와 농산물 유통 문제를 크라우드펀딩으로 풀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3년 농사펀드라는 기획을 조관희 농부와 처음으로 실험해봤다. 당시에는 자체 플랫폼이 없어 크라우드펀딩 회사 오마니컴퍼니 손을 빌렸다. 그렇게 239만원을 모았다. 2014년에는 홍보에 좀더 힘썼다. 1300만원 정도가 모였다. 2년 동안 실험해보니 농부와 소비자 모두 달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업무를 더 체계적으로 다듬어 많은 농부와 소비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2014년 12월부터 팀원을 모집해 2015년 2월 법인을 만들고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농사펀드 웹사이트 갈무리

농사펀드 웹사이트 갈무리

소농과 소비자 만나는 사랑방 되길

농사펀드 성공 사례가 소문 나니 펀드를 등록하고 싶다는 문의도 잇따른다. 박종범 대표는 하루 3명씩 꾸준히 신청이 들어온다고 밝혔다. 올 한해 농사펀드에 등록 예정인 농부는 200명이다.

올 설 즈음에는 농사펀드에서 투자금 대신 줬던 농산물만 모아 파는 e쇼핑몰 ‘리워드숍’을 열 계획이다. 다른 판로를 열어 농사펀드로 팔고 남은 농산물도 처분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여러 상품을 묶어 선물세트로 팔거나 이미 투자했던 소비자에게는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농부님들께 조금더 나은 판로를 계속 제공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소비자도 믿을 수 있는 농산물을 어디선가 검증하고 살 수 있다면 편리하겠지요. 이런 2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합니다.”

박종범 대표는 3년 뒤인 2017년께면 농부 600명이 1500여개 상품을 파는 플랫폼이 되리라고 내다봤다. “1500개면 일상적으로 필요한 물건은 어느정도 커버 되겠죠.” 이때가 되면 손익분기점을 넘어 자생적인 플랫폼으로서 자리잡을 수 있다고 박 대표는 말했다.

궁극적인 목적은 펀드 모금 수수료를 최대한 낮추는 것이다. 농사펀드라는 조직이 운영되려면 수익모델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장은 유치하는 펀드 수가 적어 수수료를 낮추기 힘든 형편이라고 박 대표는 말했다.

“지금 생각하는 수수료는 7~10%입니다. 최대한 수수료를 낮춰드리고 싶어요. 수수료로 돈을 많이 벌 생각은 없습니다. 회사 돌아갈 만큼만 유지하면 돼요. 플랫폼이 안정적으로 돌아가고 농부와 소비자가 교류하는 커뮤니티 공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방법은 앞으로 계속 고민해야겠죠. 일단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과 협업하는 B2B 모델을 구상 중입니다.”

“제보를 기다립니다”

박종범 농사펀드 대표 (농사펀드 제공)

박종범 농사펀드 대표 (농사펀드 제공)

“이제 막 시작한 단계라 콘텐츠가 많지 않아요. 소비자가 필요한 게 뭔지 고민하는 농부를 찾고 싶습니다. 기사를 보고 ‘농사펀드에서 이런 걸 해주면 좋겠다’고 연락 주시면, 우리가 그곳을 찾아가 정직하게 농사 짓는 농부님을 찾을 수도 있을 거 같아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자 박종범 대표는 제보를 요청했다. 농사펀드 취지에 어울리는 농부를 소개해달라는 부탁이다. 어디선가 외롭게 친환경 농법을 고수하며 고집스레 착한 먹거리를 만드는 농부를 아신다면 여기를 눌러 박종범 대표에게 e메일을 보내자. 더 많은 농부가 농사펀드를 통해 소비자를 만나면 우리 밥상에 착한 먹거리가 조금씩 더 늘어나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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