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터포럼] “정부 손 놓고 있으면, 핀테크 엑소더스 현실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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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한국핀테크포럼 회원사 4곳과 핀테크가 꽃피었다고 자부하는 유럽 3개국에 다녀왔다. 영국 런던과 아일랜드 더블린, 룩셈부르크는 각각 서로 다른 장점을 뽐냈다. 세 곳 모두 ‘핀테크 허브’라고 부를 만한 특징을 갖고 있었다.

런던 히스로 국제공항에서 출발을 기다리는 영국항공 비행기

런던 히스로 국제공항에서 출발을 기다리는 영국항공 비행기

이들이 핀테크 중심지로 발돋움할 수 있던 까닭은 몇 년 전부터 핀테크 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보고 육성하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영국 핀테크 육성 정책은 2010년 시작한 테크시티 조성 계획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IT산업 생태계를 먼저 육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핀테크 산업에 집중하자 트랜스퍼와이즈조파 같은 걸출한 핀테크 기업이 영국에서 나타났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에 핀테크가 주목받기 시작한 건 이제 갓 1년이 넘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3월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국내 규제가 해외 진출에 걸림돌이 된다며 규제를 개혁하라고 지시한 뒤에야 간편결제를 비롯한 핀테크 산업에 활로가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규제기관이 액티브X나 공인인증서 사용을 강제하는 규제를 철폐했다고 해서 사용자의 삶이 바로 편리해지지는 않았다. 일선 은행과 카드회사는 여전히 기존 규제틀에 짜맞춘 불편한 결제 시스템을 고수한다. 사고가 일어나면 형사처벌까지 감수해야 하는 관련 법 때문이다. 알리바바가 시나브로 국내에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판에도 국내 핀테크 기업은 하루 30만원 벽을 못 넘는다. 공인인증서의 망령이다. 답답한 상황에 최세훈 다음카카오 공동대표는 “고작 10만원 송금하는 카카오월렛이 무슨 핀테크냐”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다음카카오를 핀테크 기업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 울고 싶은 심정이다.”

유럽 핀테크 허브 3곳을 돌아본 한국핀테크포럼 회원사 대표 4명 역시 현장에서 아쉬움과 부러움을 토로했다. 그러나 절망은 아니었다. 그 속에서 국내 업체가 노릴 만한 기회도 발견했다. 반나절 비행기를 타고 새벽녘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한 이들에게 유럽 핀테크 현장을 돌아본 소감을 물었다. 먼저 귀가한 황승익 대표는 추후 서면으로 답변을 받았다. 동의를 받아 황 대표 답변도 읽기 편하게 대화 속에 녹여넣었다.

5월23일 오전 8시께 인천 국제공항 안 푸드코트에서 한국핀테크포럼 3개 회원사 대표가 모여 유럽 핀테크 시장을 둘러본 소감을 나눴다. 왼쪽부터 박승현 팸노트 대표, 서상재 씨앤브릿지 대표, 박소영 페이게이트 대표

5월23일 오전 8시께 인천 국제공항 안 푸드코트에서 한국핀테크포럼 3개 회원사 대표가 모여 유럽 핀테크 시장을 둘러본 소감을 나눴다. 왼쪽부터 박승현 팸노트 대표, 서상재 씨앤브릿지 대표, 박소영 페이게이트 대표

안상욱 <블로터> 기자 : 일주일 동안 고생 많으셨다. 피곤하겠지만 우리가 다녀와서 본 얘기를 공유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서 무리해서라도 말씀 청하려 한다. 일단 다녀온 소감부터 들어보자.

박소영 페이게이트 대표 : 가보길 잘 했다. 기사나 보고서만 보고 유럽이 핀테크 분야에서 앞서 있다고 어렴풋이 짐작했는데, 현장에 직접 가 보니 더 피부에 와 닿았다.

시장에서는 우리가 자주 듣던 트랜스퍼와이즈, 조파 같은 사례가 잘 보이지 않았다. 사용자가 가까이 두고 자주 쓰는 인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기업이나 정부와 얘기해보니 핀테크 기업을 육성하려고 굉장히 적극적으로 뛰는 걸 볼 수 있었다. 영국이나 아일랜드, 룩셈부르크에 터전 잡고 핀테크 서비스하는 기업은 전세계를 대상으로 활약하더라. 세계 시장을 노린다면 이들 중 한 곳에 지사나 본사를 두는 게 굉장히 유리해보였다.

한국 정부가 요즘 들어 입장을 많이 바꾸긴 했지만, 유럽 정부가 갖고 있는 시스템이나 마인드, 업무하는 스탠스조차 많은 차이가 느껴졌다. 많이 아플 때 대학병원 응급실에 가느냐, 동네 아는 사람에게 민간처방을 받을 거냐 물으면 당연히 돈이 들어도 대학병원 가잖나. 유럽에서 제시하는 방법, 그들이 만들어둔 시스템 안에서 핀테크 사업을 벌이면 시행착오를 줄이면서도 사업을 훨씬 글로벌하게 펼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하다. 그 멀리 안 가고 우리나라 우리 땅 안에서 똑같이 지원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시스템이 빨리 적용돼 한국 기업이든 해외 기업이든 핀테크 서비스를 한국에 기반 두고 하게 되는 날이 언제 올지, 아쉽기도 하고 걱정도 된다.

하루 아침에 될 일은 아니다. 유럽은 이미 5~6년 전부터 해왔다고 하잖나. 이들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긴밀히 소통하며 일군 시스템과 가치관을 금방 따라잡지는 못할 거다. 그 사이 많은 한국 기업이 유럽 같은 곳으로 가버릴 것 같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해외 스타트업이 한국으로 올 일은 없겠지. 무슨 장점이 있어 한국으로 오겠나.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안타깝기도 하다.

박소영 페이게이트 대표(한국핀테크포럼 의장)

박소영 페이게이트 대표(한국핀테크포럼 의장)

안상욱 : 박승현 대표는 비트코인 관련 사업 하다가 잠시 숨 고르는 상황이잖나. 어떤가. 유럽 가서 보니 국내와 온도 차이가 느껴지던가?

박승현 팸노트 대표 : 핀테크 나오기 전 까지는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가 자리잡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릴 거라고 생각했다. 요즘 들어 핀테크 이슈가 나와서 그중 하나가 가상화폐라 다시 사업을 준비하는 상황이다.

그래도 아직 국내 핀테크 모임 가 보면 많이 부족한 것 같다. 핀테크 논의 속에도 가상화폐는 빠졌다. 그런데 유럽 와서 들어보니 핀테크 분야 안에서 가상화폐 쪽을 많이 중시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안상욱 : 정부가 가상화폐를 보는 입장도 다르더라. 영국 정부는 비트코인에 법정화폐와 같은 지위를 부여했다. EU차원에서 추진하는 작업이지만, 룩셈부르크도 올 여름 안에 가상화폐에 관한 규제안을 만들겠다고 하더라. 결국 시장에서 불확실성을 걷어내 산업으로 자리 잡을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거다. 이런 움직임이 국내에는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은데?

박승현 : 국내 논의는 아직 아마추어 수준이다. 핀테크 논의도 치우진 느낌이고. 이야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유럽처럼 이슈가 되지는 않는다.

안상욱 : 산업 차원으로 육성하려 하거나, 핀테크 일부로 보려는 시각도 나타나지 않는 다는 얘기인가?

박승현 : 그렇다. 그런 부분을 많이 느낀다. 외국 분위기가 많이 부럽다. 아직 구체적으로 조사를 해보지는 못해 확실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대화 속에서 나타나는 걸 보면 가상화폐를 상당히 중시하는 느낌이다.

한국은 ‘글쎄, 언젠가는 되겠지’하고 방관하는 수준이다. 유럽은 구체적으로 잘 이해하고 있더라. 물론 가상화폐가 산업 수준으로 성장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릴 거라는 점은 비슷하다. 유럽도 시장은 아직 크지 않고. 하지만 가상화폐를 훨씬 깊이 이해하고 있더라. 사업을 유럽에서 하는 쪽이 훨씬 유리할 것 같기도 하다.

안상욱 : 서상재 대표 회사는 엄밀히 말하면 아직 핀테크 회사는 아니잖나. 이제 막 핀테크 분야에 발을 들이려는 입장인데, 입문자 시각에서 보기에 유럽 핀테크 어떻던가?

서상재 씨앤브릿지 대표 : 유럽에 핀테크가 발달했다고 알고 갔는데, 직접 느끼기엔 ‘핀테크라 아니라 펜테크다’라고 농담할 정도로 우리랑 접근 방법이 다르더라. 처음에는 실망했지만, 체계적으로 인프라 차원에서 접근하는 모습을 보고 많이 배웠다.

핀테크 ‘초짜’ 눈으로 보고 경험한 걸 말씀드리면, 오히려 우리가 처한 상황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방문한 3개국이 우리한테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려고 경쟁하는 건 우리한테 기회다.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유럽이 좋은 환경 갖고 있다고 부러워하기만 하는 건 의미 없다.

현지에 가면 현지 분위기에 빠져드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거기서 기회를 보고 우리 걸 갖고 들어가는 거다. 한국이 가진 장점은 유럽보다 훨씬 네트워크가 빠르고 비즈니스 분야에서 섬세함을 갖고 있다는 거다. 유럽이나 미국은 겉으로는 투박하지만 보안이나 인프라 같은 하부 구조에 강점을 가졌다. 굳이 비유하자면 우리는 총알만 많고, 유럽 미국은 무기만 있다고 할까. 우리는 총알을 다양한 규격으로 만들어서 소총이든 대포든 그들이 가진 인프라에 접목할 방법을 빨리 찾으면 핀테크 시장에서 승자가 될 수 있다고 봤다.

핀테크를 크게 보느냐 작게 보느냐에 따라 접근방법이 달라진다고 본다. 작게 보면 핀테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결제다. 크게 보면 시장이다. 구글이나 애플 같은 회사는 크게 움직인다. 우리가 유럽에서 만난 업체도 하나씩 보면 매력적이고 창의적인 업체가 많았다. 하지만 애플이나 구글 입장에서 보면 그런 업체는 수없이 널려 있고,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채택하고 버리면서 자기를 발전시켜 나간다. 우리가 큰 틀에서 흐름을 못 잡고 개별적인 아이템만 갖고 접근해봐야 잠깐 반짝하다 죽는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우리는 총알을 많이 가졌다. 우리나라처럼 희안한 짓을 많이 하는 나라도 별로 없다. 한국에서 실패한 아이템이라도 경험을 최대한 이해해 현지에서 접목할 수 있는 걸 찾아 빨리 가서 부딪혀 보는 게 중요하다. 전세계 ICT 산업이 한국을 테스트베드로 쓴다는 건 그만큼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안상욱 : 황승익 대표 생각은 어떤가?

황승익 한국NFC 대표 : 나는 핀테크 원조라는 말에 동의한다. 원래 금융산업이 발달한 곳이기는 하지만, 금융산업처럼 스타트업이 나오기 힘든 분야에서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쳐 핀테크 스타트업을 육성하려고 마련한 다양한 프로그램은 부러웠다.

다만 유럽 환경이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인정해야 한다. 기존 은행 서비스의 불편함이 오히려 핀테크 스타트업이 많이 나오는 계기가 됐다는 점과 처음부터 자국 내 서비스가 아니라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서비스를 개발하는 등 다른 점이 많다.

특히 EU라는 경제공동체에서 자국 안에 서비스 기업을 유치해 EU권 모든 국가로 진출하라는 제안은 솔깃했다. 작은 기업에 더 관심이 많다는 점, 핀테크 스타트업은 성장세가 빠르기 때문에 회사 규모로 평가하는 게 아니라 작은 기업일 수록 관심 있게 보고 투자하는 등 성장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는 점은 대기업 중심인 우리나라와 큰 차이라고 생각한다.

황승익 한국NFC 대표

황승익 한국NFC 대표

안상욱 : 박소영 대표는 영국에 지사를 세웠다. 영국 말고 다른 나라도 둘러봤는데 어떤가? 다른 나라 둘러보기 전에 영국에 지사 세운 걸 후회하나?

박소영 : 아니다. 나라마다 장점이 다르다. 영국은 금융회사 위주로 돌아가는 점을 활용하면 유리할 것 같고, 룩셈부르크는 정부차원에서 금융회사나 스타트업이 모여들게 하려고 지원하는 부분이 많았다. 아일랜드는 구글이나 애플, 페이스북, 페이팔이 가서 신용카드 결제 업무를 처리한다. 물론 법인세가 낮은 점이 주효하겠지만 매입사 환경 등 좋은 조건을 활용하는 걸로 보인다. 페이게이트와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는 부분이 신용카드 매입하는 업무라 추후에 아일랜드 쪽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부분도 검토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욕심 같으면 세 나라 장점을 다 끌어모아 쓰고 싶다. (웃음)

안상욱 : 룩셈부르크는 펀드 관련 핀테크 기업이 많다고 하더라.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투자펀드 시장이라 유럽 펀드는 다 룩셈부르크 거래소 통해서 거래된다더라. 그래서 펀드 관련 B2B 기업이 많다고 들었다. 아일랜드는 B2B나 B2C나 유럽시장으로 통하는 게이트웨이처럼 활용된다. 영국은 나라 자체가 시장으로서 가진 매력도 있고, 전통 금융중심지라는 매력도 있다. 국제 금융회사 C레벨 임원과 바로 터놓고 얘기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그래서 바클레이나 레벨39가 런던에 자리잡았다고 하잖나. 박소영 대표 말대로 시장 성격이 다양하고 장점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각자 취할 점을 활용하는 게 바람직한 방향 같다. 비트코인 사업을 한다면 박승현 대표는 어디로 가겠는가?

박승현 : 비교할 만한 데이터를 구체적으로 갖고 있는 건 아니라 거칠게 말하자면, 세 나라도 비트코인 시장이 이제 막 형성되는 단계다. 일단 룩셈부르크나 아일랜드는 내수 시장이 아니라 EU 시장으로 통하는 관문 역할을 하지만, 영국 런던은 안에서 실질적인 시장을 갖고 시도해볼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런던에서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박승현 팸노트 대표

박승현 팸노트 대표

안상욱 : 영국에서 NFC 기반 결제가 꽤 널리 쓰이는 것 같더라. NFC 기반 간편결제, 인증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국NFC에게 긍정적인 신호 같은데 어떤가.

황승익 : 나도 놀랐다. 유럽 특히 영국, 프랑스, 독일 지역에는 한국NFC가 지원하는 비자 페이웨이브와 마스터카드 페이패스 방식 콤비카드가 많이 보급돼 있더라. 보급율이 10% 아래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20% 정도가 되며 새로 발행되는 카드는 대부분 NFC 결제 기능을 싣는다고 한다. 또 유럽은 마그네틱 띠가 아니라 IC 방식으로 카드결제를 하니 NFC 결제단말기(POS)도 많이 보급돼 일반인의 NFC 인지도도 한국보다 높을 것 같다.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장이 열릴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우선 한국 안에서 성공한 모델을 가지고 룩셈부르크 대표부와 상의해 볼 숭객이다. 무엇보다 10억원 정도까지 매칭펀드 형태로 자금을 지원해주는 점이 매력적이다. 아일랜드는 낮은 세금과 주고 핀테크 기업 유럽 본사가 이웃한다는 점이 매력 포인트다. 현지에서 만난 사람을 통해 보다 많은 저보를 수집하고 유럽 시장 공략 방안을 연구해보려 한다.

안상욱 : 서상재 대표는 어떤가?

서상재 : 딱히 어디라고 답하기 힘들다. KOTRA부터 시작해서 자료를 먼저 수집해야 될 것 같다. 임직원이 거주하는데 드는 비용, 교통, 물가, 인건비 등 기업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요소를 조사해야 한다. 가장 세밀하게 확인해야 할 건 세제 혜택이다. 이걸 평가표를 만들어 객관적으로 임직원과 같이 판단해 결정할 것 같다. 다녀 온 인상 만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사실 유럽이라는 지역은 어디로 진출해도 큰 차이가 없다고 본다.

안상욱 : 런던이 ‘핀테크 수도’라고 해서 굉장히 투자도 많이 받고 앞서 있다고 하길래 주눅들까 걱정했는데 그렇지 않더라. 막상 가서 보니 스마트폰으로 물건값 결제하는 건 구경도 못하고 다들 현금만 받더라.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크게 앞서 있지 않은 점이 뒤집어보면 기회일 것 같다. 우리가 아직 크게 뒤처지지 않았다는 거다. 다만 인프라라고 할까, 획기적인 서비스를 만들어 글로벌 시장으로 떨쳐나갈 밑바탕은 한국보다 많이 쌓여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박소영 : 직원이 400~500명 되는 핀테크 기업이 로컬 시장을 노리는 게 아니라 글로벌 시장을 바라본다. 그런 기업이 아일랜드 안에만 몇 개씩 있다고 하잖나. 그 기업이 아일랜드 사람을 대상으로 서비스하는 건 아니지만, 수많은 결제가 아일랜드로 집중된다는 얘기다. 이런 건 정부가 굉장히 경계할 부분이다.

영국이나 홍콩에서도 한국 와서 세일즈 한다. 당장 우리만 해도 한국에서 계속 사업 해봐야 소용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 다른 핀테크 기업이 이런 상황에 눈 뜨면 어떻게 될까. 더 자세히 알게 된다면 진짜 엑소더스가 일어날 거다. 한국은 CEO 한 명을 잃음으로써 수백 명 고용을 창출할 기회를 놓치는 거다.

우리나라는 너무 많이 늦었다. 새로 생긴 핀테크 기업이 직원을 500명씩 둘 만큼 커지는 게 몇 달 만에 되겠나. 그러니 한국 정부는 정말 정신없이 뛰어야 한다. 매일 합숙을 해서라도 한국 핀테크 기업 붙들고 ‘무엇이 필요하냐’고 묻고 연구해서 엑소더스가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한국 정부 발빠르게 움직여야

안상욱 : 얘기가 나온 김에 한국 정부가 어떻게 좋을지 한마디씩 부탁한다.

박소영 : 빨리 움직여야 한다. 직접 가보든지 우리를 통해 듣든지 해서 외국 정부가 금융 규제당국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보고 빨리 변신해서 핀테크 기업이 한국에서 뿌리내릴 수 있게 해야 한다. 우리는 너무 늦었고 남들은 너무 앞서 있다. 우리는 기반도 없는 상황에 이렇게 몇 주 만에 대책 하나 발표하고, 또 몇 주 뒤에 발표하면 안 된다. 지금보다 10배, 20배 빨리 해야 한다.

황승익 : 국내 금융규제 당국이 우리가 다녔던 룩셈부르크와 영국, 아일랜드를 같은 코스로 다녀보길 추천한다. 아마 많은 걸 느끼고 올 거다. 왜 그들이 핀테크 스타트업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어떤 형태로 지원하고 있는지 직접 본다면 국내 금융정책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뀔 것 같다고 생각한다.

박승현 : 유럽도 아직 R&D(연구개발)하는 수준이다. 뭔가 상용화할 수 있는 서비스가 나오려면 시간이 걸린다. 그러려면 조금나 스타트업이 관심을 가지듯 정부도 준비를 많이 해야 한다고 본다. 투자까지는 아니더라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핀테크도 마찬가지지만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는 글로벌 시장을 노려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서비스다. 그래서 해외와 연구 교류도 잘 돼야 한다. 작은 회사가 그런 걸 직접 하기는 어려우니 정책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면 좋을 것 같다.

안상욱 : 무관심이 제일 큰 문제 같다. 핀테크 담당자가 아직도 ‘비트코인이 뭐요’라고 되묻는 정도니 말이다.

박소영 : 지난 번에 정부에서 와서 ‘오랫동안 지켜보고 있다’고 하더라. 오랫동안 지켜보면 뭐하나. 뭐든 해봐야 되는지 안 되는지 알 수 있는 거 아닌가. 예를 들어 백화점 상품권이나 문화상품권처럼 일단 상품권 범주에 두고 사업을 벌이고 몇 개월 뒤에 리뷰하는 식으로라도 일단 시작해야 한다. 계속 오랜 기간 보고 있다는 말은 왜 하는지 모르겠다. 총알이 빗발치는 와중에 어떤 총알이 날아오는지 관찰하는 게 무슨 의미인가. 총탄을 피해 몸을 날리고 빨리 반격해야지.

안상욱 : 서상재 대표는 정부의 비즈니스 매너가 인상 깊었다고 했는데.

서상재 : 시간 구획하는 게 철저하더라. 사람들이 정확히 시간 맞춰 들어와서 6분씩 딱 맞춰서 프로답게 발표하고 질의응답한다. 시간을 칼 같이 정확히 맞춘다. 그런 부분은 우리가 잘 못하는 부분이잖나.

안상욱 : 어디 다녀오면 e메일 스레드 만들어서 계속 연락할 계기를 열어놓더라. 한국에서는 악수하고 명함 주고 받으면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말이다. 가는 곳마다 e메일을 보내서 벌써 나라마다 그룹이 몇 개씩 생겼다. 비즈니스 매너가 성숙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박소영 : 아일랜드에서 갑자기 교통편에 문제가 생기니 우리나라로 보면 사무관, 서기관급 공무원이 직접 자기 차로 우리를 미팅 장소까지 태워 가잖나. 한국 중간관리직 공무원이 과연 외국에서 온 업체 관계자를 자기 차로 태워 나를까. 유럽은 공무원이 우리를 의전하잖나. 이런 태도와 생각이 한국에서는 상상도 안 되는 일이다. 한국도 이런 마음으로 뛰어야 할 것 같다.

5월21일 오전(현지시각) 아일랜드 투자개발청(IDA)에서 한국핀테크포럼 회원사 4곳과 IDA아일랜드, 액션츄어 아일랜드, 핀테크 스타트업 대표 등 현지 핀테크 업계 관계자가 만났다

5월21일 오전(현지시각) 아일랜드 투자개발청(IDA)에서 한국핀테크포럼 회원사 4곳과 IDA아일랜드, 액션츄어 아일랜드, 핀테크 스타트업 대표 등 현지 핀테크 업계 관계자가 만났다

핀테크 엑소더스, 조만간 현실 될 수도

안상욱 : 우리 출국하니까 <매일경제>가 ‘한국 핀테크 업체 엑소더스’라는 기사를 냈더라. 그냥 둘러보는 일정이었고 일주일 만에 돌아왔는데 엑소더스라니 (웃음). 핀테크 엑소더스라는 말 어떻게 생각하나?

황승익 : 엑소더스는 말이 안 된다. 이제 겨우 정조시대 연암 박지원처럼 ‘열하일기’ 초안을 훑어 보고 온 기분이다. 유럽 국가가 기존 산업의 한계를 느끼고 금융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핀테크 스타트업을 유치하고 지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조업 중심인 대한민국도 이런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박소영 : 처음에는 기자들이 엑소더스라는 말을 붙여줬지만 막상 가서 보고 경험하니 진짜 엑소더스가 일어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도 그렇게 홍콩, 룩셈부르크, 아일랜드, 중국 위해시 등 정부가 자꾸 와서 한국 핀테크 기업에 러브콜을 보낸다. 이러면 진정한 엑소더스가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안상욱 : 오히려 역수입하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한국이 그런 거 좋아하잖나. 가수 보아나 윤하처럼 해외에서 성공사례를 만들어서 거꾸로 국내 시장에 진출하는 거다. 실리콘밸리나 영국에 가서 성공하면 오히려 한국 시장에 진출하기가 수월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서상재 씨앤브릿지 대표

서상재 씨앤브릿지 대표

서상재 : 두 가지 움직임이 병행될 거다. 엑소더스가 일방적으로 일어나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 한국도 기술적으로 충분히 앞서 있다. 또 복잡한 시장 상황에 성숙한 소비자를 대상으로 서비스를 해왔기 때문에 강점이 있다. 해외 기업도 자사 서비스 시장을 확장하기 위해 한국 시장에서 테스트해볼 수도 있을 거 같다. 단방향으로 무조건 빠져나가지는 않지 않을까.

중요한 건 우리의 이번 방문이 계기가 돼 한국 핀테크 기업이 나갈 수 있는 길을 여는 거라고 본다. 나는 빨리 하나 만들어보려고 한다.

안상욱 : 조만간 해외에 서비스 출시할 계획도 있다는 얘기인가?

서상재 : 오랫동안 지켜봐 왔다. (웃음) 한국 공무원이 갑자기 규제를 개혁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유럽은 역사적으로 우리보다 더 치열하게 피를 흘리며 역사를 이어온 경험이 있다. 지금도 총 칼 들고 싸우지 않는다 뿐이지 치열하게 경쟁한다. 한국은 기껏해야 미국∙중국∙일본 밖에 안 본다. 뉴스에도 이런 나라만 나온다. 여기 길들여져 있으면 생각을 깨기 어렵다.

엑소더스 사례가 하나 하나 나오고 해외 진출한 기업이 성공하는 케이스가 나온다면 핀테크뿐 아니라 한국 ICT 산업 전체에 자양분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누구든 나가서 해외 시장에 깃발 꽂고 500명이든 1천명이든 고용 창출하면, 그걸 국내에서 보고 자성하는 목소리가 커질 거다. 이래야 바뀐다. 국회 앞에 피켓 들고 서 있다고, 언론에 인터뷰한다고 바뀌는 게 아니다.

황승익 : 우리나라는 지리적으로 유리한 점이 정말 많다. 가장 큰 시장인 중국을 옆에 두고 성장하는 아시아 시장에서 승부를 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핀테크 산업은 국경 없는 서비스가 가능한 글로벌 비즈니스다. 정보와 지식이 돈이 되는 첨단 산업이다. 아시아의 금융허브라는 큰 꿈도 작은 핀테크 기업이 많이 만들어져야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핀테크 스타트업이 더 많이 생기고 경쟁할 수 있는 생태계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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