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셈부르크서 만난 B2B 핀테크 스타트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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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셈부르크는 주요 펀드 시장이기 때문에 B2B 서비스가 많을 겁니다. 시장에 있는 잠재고객이 자산관리자나 은행, 펀드 매니저니까요.” 톰 테오발드 룩셈부르크포파이낸스(LFF) 부사장이 말했다.

핀테크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카카오페이’나 ‘네이버페이’ 정도가 먼저 생각나지 싶다. ◯◯페이로 대표되는 간편결제 서비스가 일반 사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B2C 서비스이기 때문에 친밀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B2C보다 B2B 시장이 더 크다. 해외 핀테크 시장도 초기에는 B2C 중심이었다가 시장이 고도화되면서 B2B 시장으로 넘어갔다. 분야별 투자액을 보면 4~5년 전에는 전자결제 쪽에 많은 투자가 일어났지만 지금은 플랫폼 등 B2B 분야로 중심축이 움직였다.

유럽 대륙의 핀테크 중심지를 자처하는 룩셈부르크에서는 유독 B2B 핀테크 스타트업이 많이 눈에 띄었다. 한국에서 B2B 핀테크 스타트업을 많이 보지 못한 터라 궁금했다. 그래서 물었다. “스타트업이 무슨 이유로 B2B 시장에 뛰어들었나?”

거대한 펀드 시장서 틈새 노리다

크나이프는 펀드 관련 보고서를 자동으로 작성해서 배포하는 플랫폼을 제공하는 회사다. 1993년 영업용 프리젠테이션 문서를 만드는 회사로 문을 열었다. 은행 계좌 개설용 전자문서를 만들며 금융시장에 관련된 일을 시작했다.

룩셈부르크는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투자펀드 시장이다. 룩셈부르크 증권거래소에서는 지난해 3900개 투자 펀드가 거래됐다. 투자금 규모는 3조유로(3851조5천억원)에 달한다. 크나이프가 상대하는 고객도 금융회사가 많았다. 크나이프는 국제 투자펀드를 다루는 금융회사가 나라마다 다른 규제 때문에 불편함을 호소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비록 유럽연합(EU)이라는 큰 틀로 묶여있어도 회원국마다 금융규제가 다르기 때문에 펀드 투자사는 나라마다 각기 다른 신고 문서를 만들어 내야 했다. 마리오 만트리시 크나이프 선임고문은 이런 상황을 틈새시장으로 봤다.

“우리는 투자자에게 필요한 문서를 만듭니다. 투자의향서나 전망, 데이터 감사, 펀드 정보 등을 망라하죠. 우리 솔루션은 다국적 펀드와 함께 작동합니다. 다국적 펀드를 유통하는 70여개 나라의 규제틀에 맞는 보고서를 자동으로 작성해 고객에게 제공합니다. 우리 플랫폼을 통해 전세계 펀드 시장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거죠.”

2011년 펀드 보고서 유통 플랫폼을 만든 크나이프는 연평균 10~15%씩 성장하는 중이다. 지금은 전세계 자산관리사 420여곳과 일한다. 고객과 비밀준수 약정을 맺기 때문에 이름을 밝힐 수 없지만 “모든 대형 자관리사는 우리 고객”이라고 마리오 만트리시 선임고문은 얘기했다.

마리오 만트리시 크나이프 선임고문 (크나이프 제공)

마리오 만트리시 크나이프 선임고문 (크나이프 제공)

핀테크 플랫폼 만들어 은행에 제공한다

디지캐시는 온갖 금융 서비스를 통합해 처리하는 플랫폼을 만들어 은행에 제공하는 핀테크 스타트업이다. 요즘 한국에서 주목받는 온라인 전문은행의 뒷단 시스템을 만들어 은행에 제공한다고 보면 된다.

2010년 룩셈부르크 정부와 손잡고 연구개발 프로젝트로 첫 발을 뗀 디지캐시는 2014년 5월 초기 투자금으로 룩셈부르크투자은행(SNCI)에서 220만유로(27억원)를 유치하며 B2B  핀테크 스타트업으로 성공적으로 독립했다. 룩셈부르크 상업은행 BCEE와 BNP파리바 등 룩셈부르크 소재 대형 은행 4곳이 디지캐시 플랫폼을 활용해 온라인뱅킹 서비스를 꾸렸다. 기존 은행망과 별도로 완전히 디지털로 구축된 디지캐시 플랫폼을 쓴 덕에 온라인 은행부터 모바일 앱까지 각종 금융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한다.

조나단 프린스 디지캐시 공동창업자

조나단 프린스 디지캐시 공동창업자

조나단 프린스 디지캐시 최고사업개발책임자(CBDO) 겸 공동창업자는 핀테크 열풍이 불면서 IT회사에서 위협 받는 기존 금융회사가 핀테크 서비스를 간편하게 시작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디지캐시의 출발점이었다고 말했다.

“우리가 5년 전에 회사를 세울 때는 기존 은행계좌와 바로 연결되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었어요. 은행과 경쟁하는 게 아니라 은행을 중개하는 거죠. 은행은 실리콘밸리를 비롯해 세계 곧곧에서 나타나는 핀테크 서비스 때문에 고객과 연결성을 잃어갑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결제와 송금이 은행 바깥에서 일어난다는 거예요. 그래서 은행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디지털화할 수 있는 일종의 시장을 만들자는 데 생각이 가 닿았죠.”

은행 업무를 중개하는 플랫폼을 만들자 금융회사가 아닌 곳에서도 금융서비스를 구현하고자 디지캐시 플랫폼을 쓰기 시작했다. 기존에 핀테크 스타트업이 은행과 제휴를 맺으려면 어느 정도 사용자를 확보하거나, 가맹점을 모으고 나서야 시도할 수 있던 일을 디지캐시를 통해 바로 구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조나단 프린스 CBDO는 “우리가 API를 열어 결제를 신용카드나 담보대출, 생명보험 판매회사도 업셀링(한번 제품을 산 고객에게 더 고급 상품을 권유하는 판매 전략) 같은 마케팅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라며 “이게 우리가 지향하는 기본적인 방향성”이라고 설명했다.

디지캐시는 앞으로도 직접 B2C에 뛰어들 생각은 없단다.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은행과 협력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잘 하는 건 기술을 디자인하는 거죠. 그걸 유통하는 건 하기 싫어요. 그러려면 클라이언트와 고객을 직접 만나야 하잖아요. 우리는 생태계를 만들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자가 그 속에서 진정한 가치를 찾도록 할 겁니다.”

룩셈부르크증권거래소 자회사, 글로벌 펀드 유통 플랫폼 만든다

펀드스퀘어는 룩셈부르크증권거래소(LuxSE) 자회사다. 지분을 전부 룩셈부르크증권거래소가 갖고 있다. 2010년 ‘펀드 시장 인프라스트럭처’ 구축 프로젝트로 시작해 시장에서 가능성을 인정받고 2013년 6월 별도 회사로 떨어져 나왔다. 원래 룩셈부르크증권거래소에 IT 인프라를 제공했던 펀드스퀘어는 펀드업계가 서비스를 고도화하도록 돕는 쪽으로 눈을 돌렸다.

도미니크 발스사츠 CEO는 핀테크 생태계에서 B2C 분야가 발전하기 전에 먼저 뒷단 시스템을 고도화하려는 수요가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각기 따로 작동했던 서비스를 표준화하고 연결한 뒤에야 일반 사용자가 쓸 만한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펀드스퀘어가 펀드업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자신했다.

“정보 허브로서 펀드스퀘어는 투자펀드 산업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신기술과 기존 펀드 관리와 유통 업계에 있는 전통적 조직 모델 사이에 벌어진 틈을 좁히죠.”

도미니크 발스사츠 펀드스퀘어 최고경영자

도미니크 발스사츠 펀드스퀘어 최고경영자

지금은 펀드 정보를 자동으로 분류하고 관리하는 솔루션을 제공한다. 앞으로는 펀드 거래 과정을 표준화해 통합적으로 처리하는 기능을 덧붙일 계획이다. 펀드 거래 플랫폼을 표준화해 유럽 시장에서 효용성을 증명한 뒤에는 글로벌 시장으로 뛰어들 생각이다. 도미니크 발스사츠 펀드스퀘어 CEO가 말했다.

“펀드스퀘어는 국제 펀드 유통 과정을 편리하게 만드는 독보적이고 국제적인 인프라가 되고자 합니다. 펀드 정보를 교환하고 금융 및 비금융 거래를 처리하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는 플랫폼 말이죠.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지정학적으로 산재한 펀드 허브를 연결해 국제 펀드 시장을 더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입니다.”

핀테크 생태계, 발디딘 곳에서 시작해야

룩셈부르크에서 만난 B2B 스타트업은 유럽연합(EU) 펀드 중심지라는 룩셈부르크 시장의 특성을 십분 활용했다. 출발점은 다른 곳이었지만, 거대한 펀드 시장 틈새에서 작은 회사가 할 일을 찾아내고 그곳에 집중했다. 그 덕에 시장에서 자기 자리를 찾아냈다.

룩셈부르크 정부도 마찬가지로 틈새시장을 노린다. 톰 테오발드 LFF 부사장은 “룩셈부르크는 인구가 적기 때문에 내수시장이 작아 기본적으로 모든 상품을 수출한다고 생각한다”라며 “핀테크 시장을 육성하는 이유는 국제 펀드 시장으로서 룩셈부르크의 입지를 십분 활용해 전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서비스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핀테크 허브가 한 곳만 있으라는 법은 없죠. 경쟁이 일어나는 건 좋은 현상입니다. 각 허브가 다른 장점을 갖고 있죠. 런던은 증권 거래 관련 핀테크 회사라면 런던으로 가겠죠. 펀드 유통을 효율적으로 만드는 회사라면 룩셈부르크가 유리할 겁니다. EU에서 룩셈부르크가 가장 큰 펀드 시장이니까요.”

톰 테오발드 룩셈부르크포파이낸스 부사장

톰 테오발드 룩셈부르크포파이낸스 부사장

그의 말이 이제 막 핀테크 생태계를 꾸리려는 한국에는 어떤 의미로 다가갈까. 당장 눈에 보이는 B2C 서비스에만 매달리지 말고 금융업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B2B 사업도 노려볼만 하다는 얘기로 들린다.

물론 전제가 필요하다. 금융업계가 핀테크 스타트업에 문을 열어둬야 한다. 디지캐시 공동창업자인 라울 뮬헤임즈는 LFF와 인터뷰에서 룩셈부르크 금융회사의 전향적인 태도 덕분에 회사가 빨리 궤도에 오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우리의 목표는 룩셈부르크 안에 모든 은행이 동일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새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려면 모든 이해관계자와 튼튼한 협력관계를 만드는 일이 필수적이죠. 우리의 모험에 첫 번째로 동참한 이는 룩셈부르크 국영 은행인 BCEE였습니다. 다른 세 은행도 따라왓죠. 룩셈부르크에 본사를 둔 은행은 우리 같은 작은 회사와 협력하는데 굉장히 열려있어요. 이런 파트너십은 스타트업이 핀테크 업계에서 일하는데 큰 도움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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