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열쇳말] 시빅해킹

가 +
가 -

한국이 시끄럽다.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MERS-CoV)라고 부르는 바이러스 때문이다. 메르스는 중동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다. 잠복기가 지나면 고열을 동반한 기침과 호흡곤란 등 호흡기 질환이 나타난다. 그래서 메르스(MERS,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라는 이름이 붙었다.

5월20일 국내에 첫 메르스 확진 환자가 나타나자 여론이 들썩였다. 치명률이 40%에 이르는 질병이 한국에 상륙했다는 사실만으로 국민들은 불안에 떨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확인되지 않은 소식이 쏟아졌다. 하지만 정부는 정확한 정보를 공개하는 데 뜸을 들였다. 공식적인 정보원이 마비된 상태에서 언론의 정보보고 등이 검증된 사실인양 확산되며 사태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참다 못한 시민이 직접 나섰다. 언론 보도와 정부 공식 브리핑 자료 등을 통해 확인된 메르스 확산 상황을 직접 지도 위에 그려넣기 시작한 것이다. ‘메르스 확산지도’가 그렇다. ‘메르스맵’이라는 필명을 쓰는 익명 개발자는 유언비어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올바른 정보를 솎아내고 싶어 메르스 확산지도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많은 유언비어가 퍼지는 상황에 SNS의 정보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기 보다 해당 정보의 투명성과 사실 여부를 평가하고 싶었습니다.”

▲시민이 직접 만든 메르스 확산지도

▲시민이 직접 만든 메르스 확산지도

공공 문제를 해결해야 할 첫 번째 주체는 정부다. 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정부도 제 역할을 못하는 경우가 왕왕 생긴다. 이때 시민이 직접 나서 공공 문제를 풀어내는 사례가 적잖다. 이런 활동을 ‘시빅해킹’(civic hacking)이라고 부른다. 대표적인 시빅해킹 단체 코드포아메리카 소속 활동가인 제이크 리바이타스는 시빅해킹의 정의를 이렇게 설명한다.

“시빅해킹은 사람들이 신속하고 창의적으로 협업함으로써 그들이 사는 도시를 더 살기 좋은 곳으로 탈바꿈시키는 일입니다. 이런 정의를 지역 너머로 확장하면 정부를 개선하는 일을 돕는 작업도 되죠.”

공공 문제, 오픈소스 운동으로 해결하자

‘해킹’이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듯 시빅해킹은 개발자가 주축이 된 활동이다. 프로그램의 뼈대인 소스코드를 공개해두고 서로 마음껏 뜯어보며 집단지성을 발휘해 개선해 가는 오픈소스 운동의 뼈대를 사회운동에 빌려왔다.

자원활동가는 프로그램을 짜고 이웃과 손잡고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해 삶을 개선한다. 프로그램은 한 지역에서만 쓰고 버리지 않는다. 오픈소스로 인터넷에 공개한다. 누구든 비슷한 문제로 시름하는 사람이나 지역은 그 프로그램을 가져다 써도 된다. 이것이 시빅해킹 운동을 확산시키는 원동력이다. 한 번 구축한 시스템을 재활용하는 비용이 매우 저렴한 IT서비스의 장점을 십분 활용한 운동이다.

2011년 10월 말, 기습 폭설이 미국 동부를 덮쳤다. 눈보라가 몰아쳤고, 가로수가 쓰려져 자동차가 깔리는 등 사고가 잇따랐다. 정전 피해를 입은 사람은 170만명에 달했다. 인명피해도 생겼다. 눈보라 때문에 전신주가 넘어져 화재도 많이 났는데, 불을 끄기가 어려웠다. 높이 쌓인 눈 속에 소화전이 파묻혀 버린 탓이었다.

몇몇 시빅해커가 이 문제를 보고 ‘소화전 입양하기’(Adopt a Hydrant) 서비스를 만들었다. 구글지도 위에 소화전 위치를 표시하고, 이걸 시민이 입양해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소화전을 입양한 시민은 주인의식을 갖고 소화전 위에 쌓인 눈을 치웠다. 교통이 마비된 상황에도 시민이 집 주변 소화전을 직접 관리하니 불이 나더라도 재빨리 소화전에서 물을 끌어다 쓸 수 있게 됐다.

AdoptAHydrant

▲코드포아메리카 활동가가 만든 시빅해킹 사례, ‘소화전 입양하기’

 

‘소화전 입양하기’ 서비스 소스코드는 2012년 여름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재활용됐다. 눈이 오지 않는 하외이에서는 폭설이 아니라 쓰나미에 대비하는 것으로 용도가 바뀌었을 뿐이다. 호놀룰루는 갑작스런 해수면 변화를 측정해 경고를 보내는 쓰나미 경보기를 해변에 설치했다. 문제는 자꾸 경보기 배터리가 도난당해 제 역할을 못한다는 것이었다. 시빅해커들은 ‘소화전 입양하기’ 서비스를 가져와 ‘사이렌 입양하기’를 만들었다. 인근 주민이 쓰나미 경보기를 입양해 책임의식을 갖고 관리하고, 배터리가 없어지면 시에 알려줘 재빨리 복구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오클랜드와 시애틀은 소화전 대신 배수구를 입양해 관리하는 서비스를 만들었다.

주로 저널리즘 연구에 돈을 대는 비영리단체 미국 나이트재단은 시빅해킹 운동을 연구한 보고서에서 시빅해킹 운동이 크게 ‘열린 정부’와 ‘공동체 활동’ 부문으로 나뉜다고 분석했다.

열린 정부 부문은 정부가 공개한 공공데이터를 활용하는 활동이 많다. 데이터 접근성과 투명성 제고, 데이터 활용, 공적 의사 결정, 주민 의견수렴, 시각화 및 매핑, 투표 등이다.

공동체 활동에는 시민들이 직접 교류하게 돕는 작업이 많다. 시민 크라우드펀딩, 공동체 조직, 정보 크라우드소싱, 이웃 포럼, P2P 공유 등이다. 소화전 입양하기는 공공정보를 지도 위에 얹어 보기 쉽게 만드는 매핑과 공동체 조직이 결합된 형태다. 메르스 확산지도는 정보 크라우드소싱에 가까워 보인다.

▲시빅해킹 분야 (출처 : 나이트재단 ‘시빅테크의 등장 : 성장 분야에 투자 사례’ 보고서 11쪽)

▲시빅해킹 분야 (출처 : 나이트재단 ‘시빅테크의 등장 : 성장 분야에 투자 사례’ 보고서 11쪽)

코드포아메리카, 시빅해킹의 자시발점

코드포아메리카는 ‘코드포+지역’이라는 이름을 처음 쓴 시빅해킹 단체다. 코드포재팬을 비롯해 다양한 시빅해킹 단체에 영감을 줬다. 코드포아메리카가 활동을 시작한 계기를 돌아보면 시빅해킹이 왜 정부 문제에 관여하는지 알 수 있다.

▲대표적 시빅해킹 단체 ‘코드포아메리카’

▲대표적 시빅해킹 단체 ‘코드포아메리카’

코드포아메리카 설립자 제니퍼 팔카는 오라일리미디어에서 일하던 2009년, 워싱턴DC에서 열린 ‘정부2.0 서밋’에 참가했다. 그는 투산시 비서실장 앤드류 그린힐과 얘기하다 코드포아메리카를 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앤드류 그린힐이 제니퍼 팔카에게 말했다.

“당신은 지역 문제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어요. 도시는 심각한 문제에 맞닥뜨렸다고요. 세수는 줄어드는데 비용은 늘어나죠. 만일 도시가 작동하는 방식을 손보지 않는다면, 지방정부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 거예요.”

두 사람은 정부 차원에만 머물던 IT 기반 참여형 공동체 구축 작업을 지역 차원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모색했다. 그 고민의 결과가 코드포아메리카다. 코드포아메리카는 지방정부에 개발자를 파견해 1년 동안 함께 일하는 펠로십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IT로 문제를 해결해낼 능력을 갖춘 이가 지역사회 문제로 골머리 앓는 시정부와 손잡고 해결법을 찾도록 하는 것이다. 2009년 9월 출범한 코드포아메리카는 시민 참여로 정부 문제를 해결하는 대표 시빅해킹 단체로 자리매김했다.

공동체별로 다른 문제, 각기 다른 방식으로 푼다

시빅해킹은 그 사회가 처한 문제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일본의 대표 시빅해킹 단체 코드포재팬은 2011년 도호쿠 대지진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할 세키 코드포재팬 대표는 지리정보 전문 개발자로 일하던 중 지진을 겪었다. 전화는 끊겼지만 인터넷은 아직 되는 상황을 보고 할 세키 대표는 지진 관련 정보를 한데 모으는 웹사이트 신사이닷인포(sinsai.info)를 만들었다. 신사이란 일본어로 지진을 뜻한다. 이 웹사이트는 일본 정부가 공식 정보 채널을 열기 전부터 최근까지도 꾸준히 재건 정보 공유 채널로 이용됐다.

할 세키 대표는 개발자 단체인 핵포재팬과 손잡고 지진 피해 재건 활동을 벌이며 개발자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힘을 보탤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하지만 가능성과 함께 한계도 느꼈다. 개발자가 아닌 사람은 핵포재팬 활동에 참여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그는 프로그래밍을 할 줄 모르는 일반 시민도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동참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미국에서 운영 중인 시빅해킹 단체 코드포아메리카 상임이사 제니퍼 팔카가 TED에 남긴 강연이 눈에 띄었다. 그는 여기서 영감을 얻어 2013년 시빅해킹단체 코드포재팬(Code for Japan)을 꾸렸다.

▲2014년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행사차 서울에 온 할 세키 코드포재팬 대표

▲2014년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행사차 서울에 온 할 세키 코드포재팬 대표

코드포재팬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폭발로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던 원전 인근 나미에 마을 주민이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활동을 한다. 나미에 마을이 코드포재팬에 먼저 도움을 요청했다. 전국에 뿔뿔이 흩어진 나미에 마을 주민 2만여명을 연결하는 길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뿐이었다. 문제는 마을 주민이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에 익숙치 않은지라 직접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표현하지도 못한다는 것이었다.

코드포재팬은 활동가를 모아 나미에 마을 주민을 일대일 면담해 요구사항을 듣고, 이를 실현할 방법을 찾기 위해 일반 시민과도 머리를 맞댔다. 아이디어를 모으는 행사만도 7번 열었다. 여기에는 개발자를 비롯한 시민 420여명이 참가했다. 세 차례 개발행사를 거쳐 14개 아이디어가 앱 형식으로 구현됐다. 2014년 4월 시작한 코드포나이메 프로젝트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한국 정부를 해킹하자, 코드나무·코드포서울

한국에도 시빅해킹 단체가 있다. 코드나무다. 코드나무는 열린정부 실현을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 공동체다. 공공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를 통해 부가가치를 만드는 일에 힘쓴다. 정부가 정보를 감춘다고 채찍질만 할 게 아니라 시민이 직접 가시적인 프로젝트를 실천함으로써 정부가 시민에게 손 내밀도록 만드는 적극적인 시민참여를 목표로 한다.

코드나무는 크게 두 가지 일을 한다. 공공정보 개방과 시민 참여 유도다. 공공정보를 더 활용하기 좋은 형식으로 공개하는 작업부터 바람직한 공공정보 개발을 유도하기 위한 공공기관 컨설팅, 연구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시민 참여를 활성화하는 작업에는 코드포서울이라는 프로젝트 그룹이 함께한다. 코드포서울은 서울에서 생긴 사회적 문제를 IT로 해결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조직이다. 개발자와 디자이너 활동가가 주축을 이룬다. 개방된 공공정보를 활용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해커톤 행사를 매년 열고, 직접 서비스를 만들기도 한다.

▲코드포서울 활동 모습(출처 : 플리커 CC BY CC코리아)

▲코드포서울 활동 모습(출처 : 플리커 CC BY CC코리아)

코드나무와 코드포서울이 한 시빅해킹 활동을 살펴보자. 코드나무는 ‘내 돈은 어디로 갔나(Where Does My Money Go)’라는 영국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한국에 가져왔다. ‘내 돈은 어디로 갔나’는 정부 세출 현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시민 참여를 유도하는 프로젝트다. 프로젝트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국내 광역자치단체 세출 데이터를 분석해 알아보기 쉽게 시각화해 보여준다.

▲코드포서울 활동가가 만든 ‘내 돈은 어디로 갔나’ 한국판 서비스

▲코드포서울 활동가가 만든 ‘내 돈은 어디로 갔나’ 한국판 서비스

‘알뜰 서울의 발견’은 코드포서울 소속 활동가 모임인 노고팀이 만든 모바일 서비스다. 자기 관심사에 따라 서울시 행정서비스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여주는 맞춤형 구독 서비스다. 등록되지 않은 행정 서비스는 시민이 직접 등록할 수 있다. 또 행정 서비스 이용후기를 등록하고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시민들이 서비스에 직접 관여할 수 있도록 했다.

시민 참여가 공동체를 바꾼다

시빅해킹이 전적으로 개발자에만 기대는 건 아니다. 시빅해킹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일반 시민의 참여도 꼭 필요하다. 지역 문제를 몸소 느끼고 이를 개선하려는 시민의 노력이야말로 시빅해킹의 성공을 가를 핵심 요소다. 당장 웹서비스를 만드는 데 손 보탤 개발자와 디자이너도 필요하지만, 이들에게 ‘무엇이 문제이니 이렇게 고쳐봅시다’라고 아이디어를 제시할 시민 기획자도 필요하다.

워싱턴DC 소재 정치혁신단체 NDN 소속 선임 정책분석가 제임스 크라브트리는 시빅해킹이 정치에서 멀어진 시민들이 직접민주주의에 참여하는 길을 여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니 프로그램을 만들 줄 몰라도, 디자인을 못해도 당당히 말하자. 메르스 발병 현황을 알고 싶다고, 정부가 공개하지 않은 공공정보를 알려달라고. 손 내밀자. 풀어낼 문제가 사소해 보일지라도 지구촌 곳곳에서 함께 나타난다면 결코 사소하지 않을 테니까.

이 글은 ‘네이버캐스트→테크놀로지월드→용어로 보는 IT’에도 게재됐습니다. ☞‘네이버캐스트’ 보기

[새소식]

기사에 소개한 ‘메르스 확산지도’는 6월10일 자정부로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합니다. 개발자 메르스맵은 “정부의 공개 방침과 더불어 다양한 사이트의 개설과 메르스 정부 포털등의 개설로 6월 10일 자정부로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웹사이트를 통해 밝혔습니다. (2015년 6월11일 오후 5시50분)

네티즌의견(총 2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