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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워크 해보니, ‘성실성의 합리화’가 사라졌다”

2015.06.11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때문에 온 나라가 난리다. 병도 무섭지만 불확실한 전염성은 더 큰 불안감을 낳고 있다. 급기야는 전국 학교들이 휴업에 나섰다. 전염성이 약한 아이들에게는 학교에 꼭 나가야 할 의무를 주지 말자는 것이다.

‘그럼 아이들은 집에 혼자 있어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드는 것도 자연스럽다. 맞벌이 부부가 상당히 많은데 그 아이들은 누가 봐줄까. 부모가 휴가를 내야 할까. 불안함과 마냥 반갑지 않음이 동시에 머릿속을 스친다. 학교가 쉬려면 적어도 보호자들이 따라붙을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갖춰져야 하지 않을까. 실제 일부 기업들이 재택근무를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지만, 학교 휴업이 늘어나는 것에 비해 재택근무로 이어지는 경우는 잘 눈에 띄지 않았다.

외려 스타트업이 이런 부분에서 더 빠르게 움직이게 마련이다. 기업 내부 평가를 모으는 잡플래닛은 지난 6월 5일부터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스마트워크를 목표로 삼았던 회사도 아니고 관련 시스템도 없다. 최종 결정도 4일 오후에나 내려졌다. 하지만 분명 뭔가 있으니 재택근무를 할 수 있었을 게다. 금요일과 월요일 이틀간 업무를 마친 뒤 김지예 운영 이사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메르스 감염이 더 심해지던 날이고, 아이들 때문에 재택근무를 시작한 것이다보니 인터뷰는 페이스타임과 전화로 진행하기로 했다.

잡플래닛 김지예 운영이사

잡플래닛 김지예 운영이사

약속한 시간 김지예 이사에게 페이스타임을 연결했더니, 아이를 안고 카메라 앞에 앉았다. 확 와 닿는다. 어쨌든 경영진으로서 기약없는 재택근무라는 결정 내리는 것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첫 질문은 당연히 “이런 결정, 누가 어떻게 내린 것이냐?”였다.

“우리가 대단한 결정을 내린 건 아니라고 봐요. 이건 기업 문화와 연결되는 부분인데, 저희 회사는 어떻게 하면 개개인이 집중해서 성과를 낼 수 있냐는 고민을 많이 하는 분위기에요. 핵심은 몸 뿐만 아니라 마음도 회사에 출근해야 한다는 겁니다. 현재 메르스는 의학적인 문제도 있지만 심리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직원들도 건강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고, 가족들에 대한 걱정도 있습니다. 회사에 오가는 동안 걱정하고, 일하는 내내 마음이 불안하죠. 그렇다면 현재 상황에서 가장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죠. 집입니다.”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에 혹시라도 병이 옮을까 어린이집과 학교는 대부분 문을 닫고 있는 상황이다. 그 아이들을 부모가 직접 돌봐주지 못한다면 또 다시 누군가의 손에 맡겨야 하고, 그게 결국 업무 집중도를 흐트러뜨릴 수밖에 없다. 재택근무, 스마트워크 같은 말은 참 멋들어지긴 하지만 실행하기 쉽지 않은 주제다.

“거창하게 스마트워크라고 할 건 아닙니다. 불안감과 학교 휴업이 계기가 됐을 뿐이죠. 사실 회사 주 사업 분야가 기업 문화에 대한 부분이다보니 개개인이 어떻게 유연하게 근무하면서 효율을 높일 수 있는 환경을 꾸릴 수 있는지 실험이 필요하던 차였어요. 그리고 이번이 물리적인 근무 유연성을 실험해볼 수 있는 기회라고 봤습니다.”

잡플래닛 내부에서 스마트워크 환경을 직접 겪은 임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김지예 이사는 남편이 해외에 있는 팀장과 여러 도구를 통해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일하는 과정을 보면서 원격근무에 대한 편견과 거부감이 사라졌다고 한다.

이번 재택근무는 스마트워크처럼 거창한 아이디어까지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스마트워크의 형태를 띠게 됐다. 잡플래닛의 재택근무에는 어떤 도구들이 쓰이고 있을까? 거창한 솔루션은 없다. 손에 익은 도구로도 잘 하고 있다는 게 김지예 이사의 설명이다.

“메인 도구는 슬랙입니다. 팀이나 자주 이야기 나누는 직원들끼리는 카카오톡으로도 커뮤니케이션합니다. 이런 도구들은 평소에 쓰던 것이라서 별 문제가 없는데. 문제가 되는 건 회의였어요. 그건 행아웃으로 하기로 했어요. 한계가 있는 부분도 있지만 도구에 대한 직접적인 문제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나아진 부분은 기록에 있었다. 기대 이상으로 시스템이 잡히는 효과를 얻었다고 한다.

잡플래닛은 슬랙을 쓰고 있다. 기록과 검색이 유용하다고 한다.

잡플래닛은 슬랙을 쓰고 있다. 기록과 검색이 유용하다고 한다.

“스타트업은 빨리 돌아가다보니 기록과 아카이브를 쌓는 것에 소홀하다는 우려가 있었어요. 정보는 잘 공유되긴 하지만 빠르게 흘러가는 것 때문이지요. 말과 e메일, 슬랙을 오가다 보면 커뮤니케이션이 흐릿해지는데, 슬랙으로 다 정리되니 검색만으로도 과거에 어떤 의사결정을 내렸는지, 어떻게 대처했는지 찾아보기 쉬워졌습니다. 각 팀, 각 프로젝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인하기 쉽고, 내 업무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굉장히 뚜렷해졌습니다.”

직원들이 회사 그림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고 한다. 회의를 다 들어가지 않아도 회사가 가려는 방향과 큰 그림들이 보이게 됐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회의는 조금 달랐어요. 행아웃을 이용했는데 오프라인에서 하던 것처럼 여럿이 모여서 너나할 것 없이 이야기를 했더니 전혀 진행이 안 되더군요. 회의의 진행과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내부적으로 계속 고민할 계획입니다.”

개인적인 해석으로는 스마트워크는 도구가 아니라 기업 문화와 업무에 대한 인식에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구성원간의 신뢰와 빠른 반응성이 성공을 가름짓는 것 아닐까.

회의는 행아웃으로 대체했는데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고 한다. 새로운 방법이 필요한 단계다.

회의는 행아웃으로 대체했는데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고 한다. 새로운 방법이 필요한 단계다.

“잡플래닛에는 원래부터 관리자가 하나하나 직접 물어보고 즉답을 얻는 커뮤니케이션이 드물어요. 업무 시간에는 각자 집중해서 일하고 커뮤니케이션은 회의나 별도 공간에서 이뤄지는 분위기입니다. 팀원들이 바로바로 답 안 한다고 해서 관리자들이 조급해하고 답답하게 느끼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성실성에 대한 합리화가 사라지는 묘한 상황이 됐어요.”

‘성실성의 합리화’라, 재미있는 단어가 나왔다. ‘열심히 일했다’는 변명에 대한 이야기다.

“기존에는 그날 정해진 일들을 끝내지 못해도 ‘열심히 했지만 안 되더라’는 묘한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눈앞에서 일하는 것을 보니 성실성이 결과를 어느 정도 덮어주는 게 있었는데, 이 스마트워크를 하면서 주어진 일은 무조건 지켜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됐어요. 업무량이 회사에서 일할 때보다 더 늘었다는 이야기가 많더라고요. 역할과 책임이 더 명확해졌고, 결과물에 대한 압박은 더 커지는 것 같아요. 역할과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조직에서는 이거 되겠다 싶어요.”

김지예 이사는 시스템적인 스마트워크보다는 환경과 문화에 대한 정리가 분명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판단을 얻은 것 같다. 직원들도 그 가치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 큰 성과로 보인다. 재택근무가 더 길어질지, 그 이후에도 필요에 따라 이 시스템을 남겨둘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모두가 동의해서 시작했지만 모두에게 정답은 아닐 거예요. 개개인이 어떤 환경에서 일하는 게 더 맞는지 판단하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해요. 재택근무는 자연스럽게 남게 될 것 같아요. 지금도 전직원에게 출근 금지는 아니에요. 본인이 사무실에서 일하는 게 더 편하고, 메르스에 대해 심리적인 불안감이 없다면 막지 않아요. 지금도 직원들 3분의 1이 한번씩은 사무실에 나왔다고 해요. 에어컨 때문에 나왔다든가, 과자 먹으러 나왔다든가 이유도 다양하지만 결국 일 더 잘 할 수 있는 공간을 선택한 거잖아요.”

당연한 걱정, 시스템을 악용하는 직원이 나오지 않을까? 스마트워크를 없애는 기업들의 주 이유는 역시 근무 태만이 많다. 컴퓨터만 켜놓고 멍하니 있다거나 다른 일을 하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그렇다고 컴퓨터 이용 내역까지 들여다본다면 그건 스마트워크가 아니다.

SONY DSC

“사실 직원들이 이 시스템을 악용하겠다는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그 사람은 회사에 나오고 시스템으로 묶어도 능률이 안 나올 거예요. 저희는 직원이 회사에 마음 붙이도록 하는 게 시스템과 복지의 핵심 과제예요. 직원이 힘들고 일에 마음 붙일 수 없는 환경에서 회사가 옆에 있어주자는 거죠. 직계 가족의 병원비 50%를 지원해주고, 아픈 가족이 있으면 언제든 퇴근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집에 보낸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달려갈 수 있도록 하는 거죠.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하는 마음 대신 시스템으로 열어주면 오히려 일하는 시간 동안은 집중해서 일할 수 있습니다.”

교과서에나 나올 것 같은 이야기다. 회사는 직원이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열어놓고, 직원들은 그 시스템을 오용하지 않는다는 건 사실 모두가 생각만 할 뿐 선뜻 시작하기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잡플래닛은 이제 직원이 60명이 넘어가는 작지 않은 회사다.

“잡플래닛은 이제 시작하는 벤처기업이지만 시장에서 빠르게 프로페셔널로 자리잡으려면 우수한 인재들을 끌어들여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가정을 이룬 엄마, 아빠들입니다. 기본적인 처우도 중요하지만 기존 직장에서 갖고 있던 시스템적인 안전망 그대로는 아니어도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해주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봐요.”

갑작스럽게 스마트워크를 처음 겪는 기업 환경에 대한 궁금증으로 시작했던 인터뷰가 결국 기업문화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뻔한 흐름이다. 스마트워크는 시스템이 아니라 기업문화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신뢰와 그에 따르는 책임, 그리고 그를 뒷받침해주는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이 따르지 않고서는 얼굴 안 보고 일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 게 스마트워크’라는 뻔한 답을 또 듣긴 했지만 그 내용은 몇 번을 다시 들어도 질리지 않는 것 같다.

allove@bloter.net

프리랜서 IT 컬럼니스트, 기술과 사람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e메일 work.hs.cho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