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미래] ②언론사 구조 흔든 ‘컴퓨터 조판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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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신문 제작의 전 과정은 컴퓨터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취재기자는 컴퓨터로 글을 쓰고, 각 사의 기사집배선시스템(Content Management System, CMS)에 글을 올린다. 현장 기자들이 올린 기사는 CMS 내에서 분류화 작업을 거쳐 정리된다. 각 부서의 데스크는 CMS에 올라온 기사를 본다. 데스킹(차장 혹은 부장 등 각 부서 선임기자의 기사 검수 절차)을 마친 기사가 편집 부서로 넘어가면, 편집기자들은 이 기사를 토대로 지면 편집에 들어간다. 사진, 그래픽을 한데 엮은 각 면은 인쇄를 위해 공무국(工務局)으로 전송된다. 일련의 과정에서 컴퓨터가 없다면, 어떻게 할까?

신문 인쇄에 활용되던 납활자. (출처 : 위키피디아 Willi Heidelbach. CC BY 2.5)

신문 인쇄에 활용되던 납활자. (출처 : 위키피디아 Willi Heidelbach. CC BY 2.5)

불가능하지는 않다. 기자는 원고지에 글을 쓰면 된다. 편집기자는 인화된 사진과 완성된 기사를 번갈아 보면서 지면을 편집하면 된다. 그리고 하이라이트인 인쇄. 필요한 활자를 하나나하나 뽑아서 조합해서 만든 판을 짠 뒤 인쇄하면 된다. 이 과정을 구체적으로 서술한 임영호(2005)의 책 내용의 일부를 발췌, 소개한다.

편집국에서 작업한 것을 판형으로 만들어 인쇄하는 일을 맡는 부서를 제작국 또는 공무국이라고 한다. 제작국에는 문선부, 정판부, 사진재판부, 공무부, 윤전부 등의 하부 부서들이 있었다. 문선부에서 납활자를 골라 배열해 판을 짜면, 정관부에서는 이것을 토대로 지형을 뜨고 납을 녹여 부어 연판을 주조했고, 윤전부에서는 이를 인쇄기에 걸어 인쇄를 했다 (임영호, 2005, 82쪽).

이 때문에 신문의 제작 마감을 지키기 위해서는 기사에 맞게 활자를 판에 배열하는 공무국 인력의 솜씨가 중요했다. 신문사에게 이들의 관리에 소홀할 수가 없었다. 조판하는 공무국의 ‘장인’은 신문사의 스타 기자 못지않은 대우를 받았다.

납 활자 신문 인쇄 중단된 지 반세기에 불과

‘납 활자의 사용’이란 말에 팔만대장경의 시대를 떠올리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납 활자판에 의존해서 신문을 만들었다. 변화가 일어난 지는 불과 반세기가 안 된다. 미국을 중심으로 확산된 컴퓨터 조판 시스템(Computerized Typesetting System, CTS)은 1970년대부터 도입됐다. CTS로 신문사가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사람이 일일이 해야 하는 일을 컴퓨터 체계 하에서 시스템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조직은 경영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개인에게 의존하기보다는 시스템 차원에서 통제하는 방향을 선호한다. CTS는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비용도 줄일 수 있다. 납은 중독성 때문에 관련 종사자들의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CTS가 도입된 시기는 선진국에 비해 20년가량 늦어, 1987년부터 1992년 사이에 이뤄진다. 기술 도입이 늦어진 까닭은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정치적 환경이다. 전두환 정권이 권력을 잡은 1980년 이후 언론은 언론기본법(법률 제3347호)에 의해 통제된다. 이 법에 근거해 유관 부서인 문화공보부 안의 홍보정책실은 매일 언론매체에 ‘보도지침’을 하달했다. 보도지침은 “이런 기사는 빼라”와 “오늘 이 기사를 부각시켜라” 등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담겼다. 이러한 정치의 억누름 속에 신문사의 기술 도입은 녹록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된다. 1980년부터 언론기본법이 폐지된 1987년(1987년 6·29선언으로 언론기본법 폐지됨)까지 서울신문의 자매지인 <스포츠서울>이 신설된 게 당시 신문업계의 손꼽을 수 있는 변화 중 하나다.

그러나 정치적 압력에 대한 순응이기 보다는 경영적 필요가 없기 때문에 CTS의 도입이 늦어졌다는 것이 중론이다. 1980년 11월 언론통폐합 과정에서 ‘살아남은’ 언론사들은 성장하기 위한 경쟁을 펼칠 이유가 없었다. ‘유지’만 해도 충분한 시장 환경에서 비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 역시 없었다.

사진은 사진 조판 시스템.(출처 : 위키피디아 Derivat graph. 퍼블릭 도메인)

사진은 사진 조판 시스템.(출처 : 위키피디아 Derivat graph. 퍼블릭 도메인)

문제는 민주화의 봄이 시작되면서부터다. 억압받던 미디어의 봄은 공급 팽창으로 연결됐다. 1987년 일간지와 주간지의 수는 각각 32개와 226개였다. 6년 뒤 일간지 수는 116개, 주간지 수는 2236개가 된다(<표 1> 참고). 공급은 폭증했지만, 수요에는 미동만 있었다. 전체 가구 중 유료 신문 구독 비율은 1987년 11월 53.7%, 1993년 2월 54.1%로 사실상 제자리였다.

[표1] 1987년 이후 신문 매체 현황(단위 : 개)

연도1987198819891990199119921993
일간지32677287100114116
주간지2264968191028133818472236
* 출처 : 신연숙·박선홍(1994)

컴퓨터 조판 도입으로 신문사 공무국 인력 대폭 감축

‘파이’의 크기는 그대론데, 파이에 달려드는 경쟁자는 늘었다. 그렇다고 다른 경쟁자를 압도하긴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는 할 수 있는 최선의 경영 전략은 누수 방지다. 비용을 낮춰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 당시 신문업은 전체 비용의 3분의 1이 인건비에 할애되고 있었다. 인건비 수준 역시 높았다. (오늘날과 달리) 기자의 임금도 높은 수준이었지만, 공무국의 ‘장인’들도 오랜 기간 근속으로 높은 임금을 받고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CTS는 신문사 별로 1천명 선인 공무국 인력의 15%를 감축시키는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됐다. 신문사 간 과잉 경쟁이 본격화되던 1989년에 경영난의 돌파구로 CTS 도입을 제안한 남상석(1989)의 논문 일부를 발췌(일부 표현은 각색, 발췌 내용 중 제목은 필자가 작성)해서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

CTS 도입 후 5년 100억원 절약
도입 여부에 따라 7년 안에 신문사 간 성패 나뉘어

신문사 공무 인력(문선, 식자, 조판, 인쇄공)의 1인 평균 임금은 연간 1,000만 원 수준이다. (CTS 도입으로 15%를 관련 인력을 감축하면) 연간 15억 원의 인건비 절감과 별도의 5억 원의 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연간 15억 원의 임금이 매년 10% 씩 상승하고, 유관 비용은 그 이상의 증가폭을 보일 것이다. CTS 도입으로 인원의 15%를 감축하면 5년 이후 100억 원 이상을 절약할 수 있다. CTS는 도입으로 인한 부가적인 효과도 발휘할 것이다. CTS에 소요되는 예산은 200~300억 원이다. CTS 도입을 기점으로 이를 택한 신문사와 그렇지 못한 신문사 간에는 7년이면 승부가 날 것이다. CTS를 도입하지 않은 신문사는 노동 집약적 상태를 벗어나지 못해, 경영 부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남상석, 1989, 58쪽)

1987년에서 1992년 사이에 CTS는 국내 신문사에 대거 도입된다. CTS는 신문 제작 환경과 신문의 질 개선에 기여한다. 인쇄과정 중 수작업으로 인해 소요됐던 시간이 현저히 줄었는데, 이러한 변화가 편집국 기자들의 마감 시간 연장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투여할 수 있는 시간과 기사의 질이 일대일 대응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전 대비 시간의 여유는 기사를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기사의 하자를 줄일 수 있는 환경적 조건이 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문사의 구조를 바꾼다. 우선, 신문사는 컴퓨터를 중심으로 물리적으로 개편된다. 공무 인력은 ‘예상대로’ 대폭 감축된다. 1967년 24.9% 그리고 1987년 23.5%로 큰 변화 없이 유지되던 공무 인력은 1999년 14.9%로 감소했다. 내부 개편을 거치면서 CTS 도입 이후 컴퓨터 환경 하에서 자율성과 조직 장악력이 커진 편집국의 힘은 세졌고, 반대로 공무국의 힘은 약화됐다. 기사 작성에 필요한 자료를 찾는 조사 담당 인력의 역할도 모호해졌다. 기자들이 컴퓨터를 통해 직접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이전까지 확보하던 고유의 영역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1회에서 기술의 발달로 뉴스 콘텐츠의 내용과 형식은 저널리즘이 바뀌어 온 역사를 설명한 바 있다. 2회에서 강조하고자 한 것은 기술 도입 이후 적응 과정에서 조직 내부 인력 중 승자와 패자가 생겨난다는 것이고, 이러한 법칙에 미디어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기사를 쓰는 로봇이 도입되면, 누구의 힘이 약화되고 누가 일자리를 잃게 될까? 그리고 그에 대해 누가 가장 반발할까? 그리고 로봇은 어떠한 계기에 힘입어 국내 신문업계에 확산될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국내 CTS 도입의 역사는 향후 로봇저널리즘 도입 과정에서 신문사(방송사)의 조직 내부에서 일어날 헤게모니의 변화 양상을 짐작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사료된다.

다음 3회에서는 로봇저널리즘의 개념과 예시를 상술하려 한다. 어려운 기술 용어는 최소화해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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