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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의 새로운 발견, ‘로맨스소설’

2015.07.14

한 번에 2가지 이야기를 하는 게 메시지 전달에 썩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이번 인터뷰는 딱 그렇게 흘러갔다. 출판사의 전자책 시장에 대한 선입견에서 시작한 인터뷰는 로맨스 소설의 의미로 흘러갔다.

전자책 기사를 쓰면서 계속 부딪혔던 부분이 출판사들이 전자책에 갖고 있는 불안감이었다. 그래서 만나는 전자책 서점마다 ‘전자책을 더 열심히 미는 출판사 사례가 있다면 알려달라’고 당부했다. 꽤 오래 걸릴 것 같았는데 의외로 빨리 괜찮은 사례가 있다며 연락이 왔다. 시리즈의 1편을 종이책과 전자책을 함께 냈는데 전자책의 반응이 좋아서 전자책을 우선해서 내기로 했다는 것이다. 기다렸던 사례다.

종이책의 ‘부가서비스’에서 ‘상품’으로

그런데 조금은 ‘아차!’싶었던 부분이 있다. 바로 책 제목 때문이었다. 책 제목이 ‘낯선 살 냄새’라고 한다. 심지어 전작의 제목은 ‘잘생긴 개자식’이다. 이거 뭔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로맨스 소설이다. 원제는 ‘Beautiful Bastard, Beautiful Stranger’다. 로맨스 소설 마니아들에게 ‘뷰티풀’ 시리즈로 잘 알려진 책이다.

이 책을 기획한 살림출판사의 선우지운 팀장을 만났다. 의외로 처음 준비했던 이야기는 짧고 명료하게 끝났다. “왜 전자책을 먼저 낸 거예요?” 선우지운 팀장의 답은 “책이 잘 팔리니까요”였다. 이 이야기가 이번 인터뷰의 핵심이다.

로맨스 소설의 책 제목들은 아직도 낯설다

로맨스 소설의 책 제목들은 아직도 낯설다

“’뷰티풀’ 시리즈는 미국 소설이에요. 이 시리즈를 들여와서 처음에는 종이책과 전자책을 함께 냈어요. 원래도 아마존에서 인기가 있었던 책이고, 국내 정서에도 잘 맞는 편이어서 종이책도 잘 팔리긴 했습니다. 그런데 전자책으로 나는 수익이 만만치 않았어요. 요즘처럼 메마른 시장에서 말이에요.”

정확한 숫자를 공개하긴 어렵지만 ‘뷰티풀’ 시리즈 첫 작품은 일단 종이책만으로도 손익 분기점을 맞췄다. 그리고 전자책이 기대했던 것보다 매우 잘 팔려서 현재 종이책과 전자책의 판매량이 반반 정도로 균형이 맞아 가고 있다. 으레 전자책은 종이책 판매량의 5~10%, 잘 해야 15% 정도였는데 50%를 견준다는 건 꽤나 큰 일이다.

시리즈 두 번째 책에 전자책 비중을 높이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인터뷰가 끝나고도 아직까지 ‘낯선 살 냄새’는 일단 종이책을 찍지 않기로 했다. 전자책을 먼저 내고 이후 독자들의 요청이나 반응에 따라 종이책을 낼 생각이다. 출판사로서는 파격적인 결정이다. 한시적이지만 단독으로 책을 출간할 리디북스는 그에 대한 마케팅 지원으로 이 시도에 도움을 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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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전자책으로 돈 벌 수 있을까?’

당장 로맨스 소설이 전자책 시장에서 인기를 얻는 것과 전자책의 인기를 연결짓는 건 시기상조다. 살림출판사 역시 전자책의 가능성은 ‘살림지식총서’를 통해 바라보긴 했다.

“살림지식총서를 네이버를 통해 유통하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전자책으로 출간하는 것에 대한 시도라기 보다 콘텐츠를 공급하는 방식으로 접근했죠. 하지만 그게 책을 온라인에서 매출로 연결 지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됐어요. 디지털 콘텐츠 시장에 대해서 이해하기 시작했던 거죠.”

살림출판사는 2년 전까지는 일부 책만 전자책으로 내다가 지난해부터는 대부분의 책을 전자책으로 냈고, 지금은 모든 책이 동시출간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물론 전자책은 종이책만큼 매출을 만들어주진 못했다.

500권을 넘긴 살림지식총서는 살림출판사에게 디지털 콘텐츠의 가능성을 알려준 사례다

500권을 넘긴 살림지식총서는 살림출판사에게 디지털 콘텐츠의 가능성을 알려준 사례다

“디지털로 넘어갈 수 있는 계기가 생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일단 전자책은 수익이 잘 나지 않기 때문에 출판사들도 강하게 밀어부치지 못하고 있어요. 아직은 미래에 대한 투자라는 의미가 있지만 매출로 이어지는 사례가 늘어나면 어느 순간 밀려 들어올 거라고 봅니다.”

로맨스 소설은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 이미 장르소설은 전자책을 이끄는 핵심 콘텐츠가 됐다. ‘뷰티풀’ 시리즈는 한 달만에 재판을 찍었다고 한다. 요즘 재판 찍는 책, 결코 많지 않다. 그리고 전자책이 그만큼 따라 팔렸다니 출판사 입장에서는 전자책 시장에 의자를 당겨 앉을 수 밖에 없다.

로맨스소설 시장의 가능성

전자책의 가치를 높게 보는 사례를 찾았지만 오히려 이 인터뷰를 통해 전자책과 로맨스소설 시장의 가능성을 봤다. 누군가는 ‘이미 알고 있었는데 아직도 몰랐나?’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건 이미 기정사실이지만 사람들은 항상 뭔가 읽어요. 독자들이 어디로 갔을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여성 독자들이 로맨스를 통해 책 시장에 다시 돌아왔어요. 고민은 ‘그들이 원하는 콘텐츠는 뭘까’로 바뀌었고, 야릇한 이야기가 섞인 로맨스를 원한다는 답을 얻었죠.”

전자책 초기에는 무협과 판타지가 시장을 이끌었는데, 20~30대 여성들이 로맨스를 전자책으로 읽기 시작하면서 시장이 열리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판타지 소설의 인기가 늘어나면서 무협 로맨스, 판타지 로맨스 같은 장르가 따라붙고 있다.

로맨스 소설의 가능성은 꽤 크다. 이미 로맨스 소설은 드라마의 단골 소재가 되고 있고, 작가들이 등단할 수 있는 창구도 많이 열려 있다. 심지어 전통적인 문학 작가들이 필명으로 로맨스 소설계에 들어오기도 한다.

로맨스 소설의 19금 표지는 전자책 시장의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로맨스 소설의 19금 표지는 전자책 시장의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로맨스소설의 인기에는 ‘은밀함’도 들어있는 것 같다. 혼자 몰래 보는 콘텐츠라는 것이다. 할리퀸도 그랬고, 지금의 로맨스 소설들도 대개 표지가 어디에서 선뜻 꺼내놓기 쉽지 않다.

“전자책이기 때문에 표지를 보이지 않고 어디에서든 읽을 수 있다는 것도 로맨스가 전자책이 잘 맞는 그림이라는 생각입니다. 판매하는 입장에서도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표지가 보이는 매대에는 잠깐 올랐다가 서고에 꽂히는 경우가 많은데, 전자책은 항상 표지가 큼직하게 보이기 때문에 콘텐츠 수명도 길고 마케팅 효과도 좋은 것 같습니다.

‘은밀함’의 또 다른 효과도 있었다. 책을 판매하는 입장에서 그렇게 자랑스럽고 떳떳하지는 않은 분위기도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대부분의 출판사가 본래 브랜드 외에 로맨스 전용 브랜드를 따로 내서 책을 출간한다. 출판사들이 브랜드를 추가로 만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브랜드의 이미지에 다른 이미지가 덧칠될까봐서다. 주로 추리, 로맨스, SF, 판타지 소설에 브랜드가 붙는다. 살림출판사도 기존 이미지를 떠올릴 수 없는 ‘르누아르’라는 이름을 지었다. 아직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나보다. 로맨스 소설 작가들이 필명을 쓰고 외부로 스스로를 잘 알리지 않는 것과도 통한다. 분명 존재 가치가 큰 시장이지만 조심스러운 분위기라고 한다.

아직은 로맨스 소설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볼 수밖에 없는 게 시장의 분위기다. 문학계에서도 접근이 조심스럽다. 하지만 선우지운 팀장의 말처럼 ‘독자들이 책 시장에 들어오는 창구’로서의 역할은 중요하다. 특히 전자책은 더더욱 그렇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의 역할이 게임기, SNS, 동영상 등으로 한정되고 있는 가운데 긴 호흡의 책을 이 기기로 읽는 습관을 만들어준다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태블릿보다 휴대폰이 많이 팔리는 것 역시 소설 외 장르의 인기에 걸림돌이 되는 부분으로 꼽힌다. 책 읽는 습관부터 고민해야 하는 게 현재 우리 책 시장의 현실이다.

“전에는 전자책을 반신반의하면서 전자책에 끼워서 내보냈어요. 이제는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봐서 전자책에 더 집중해보기로 했어요. 언젠가 종이책을 안 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합니다. 지금은 유통 구조를 달리 해보는 시도 중이고, 전자책을 더 잘 팔아봐야겠어요.” (웃음)

allove@bloter.net

프리랜서 IT 컬럼니스트, 기술과 사람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e메일 work.hs.cho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