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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블로거]상처받은 20대를 위하여
by 이슬기 | 2010. 01. 15

남은 나의 20대는

자신의 이십 대가 얼마 남자 않았음을 인식하는 것은, ‘슬픔’이나 ‘아쉬움’과는 차원이 다르다. 만약 당신이 20대 여자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남자, 여자, 20대 여자. 문득 2010년에 내가 20대를 누릴 시간이 2년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더불어 “선배님, 밥 사주세요.”와 “엄마, 이거 상했어?”라는 문장을 내뱉어도 ‘어색’하지 않을 시간도 2년 밖에 안 남았음을 깨달았다. 나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차 키를 쥐고 무작정 나섰다. 이렇게 내내 어설프기만 한 채로 20대를 마무리할 수는 없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은 채로, 해본 것보다 해보지 못한 것이 훨씬 많은 채로, 성공 없는 실패만 가득 한 채로.

규칙도1

생애 첫 자기계발서

거창하게 나서긴 했지만 딱히 갈 곳은 없었다. 기분이 기분이니만큼 클럽을 갈 수도 술을 마시기도 싫었다. 혼자 영화를 볼까 하고 코엑스에 들렀다가 너무 많은 인파, 정확히 말하자면 20대 초반을 막 지나고 있는 이들의 에너지에 기가 눌려 서점으로 들어섰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자기계발서’는 절대 읽지 않았다. 학부로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면서 얻은 유일한 자존심의 표현이었다. ‘자기계발서’는 문학적 가치가 전무하며 자존감이라고는 없는 사람이 읽는 남의 얘기이고 남의 목소리에 자극 받는 사람은 내면의 목소리를 낼 수 없다고 믿었다. ‘‘씨크릿’이 유행할 때도 ‘아침형 인간’이 유행할 때도 난 꿋꿋했다. 오히려 읽지도 않는 ‘백석’전집을 사들였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메시지가 필요했다. 누군가 20대를 먼저 지나간 사람의, 혼란스럽고 아까운 시간들을 완벽하게 살아낸 사람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성공담도 좋고 무용담도 들어줄 용의가 있었다.

지구는 아니어도 서울쯤은 너끈히 두를 듯이 많은 자기계발서들 사이에서 <규칙도 두려움도 없이>를 발견한 것은 ‘베스트 셀러’나 ‘하반기 주목 받은 서적’이라는 타이틀 만은 아니었다.

20대 여자와 사회생활의 모든 것-당당하고 자랑스러운 20대를 살고 싶은 독자를 위한…

평소 같았으면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은 멘트가 가슴에 와 닿았다. 의외로 저자가 미녀인 점도 한 몫 했다.( 나 같은 사람 때문에 책 날개에는 사진을 넣는 것이 좋다)

가볍게 읽히는 무거운 책

책의 상당부분은 처음 하는 좌충우돌 직장생활에 대한 팁이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한 20대 여자를 위한 충고였다. 하지만 “난 이래서 성공했으니, 너희도 해볼래?”라는 말투가 아닌, “난 이렇게 해서 힘들었으니 여러분들은 되도록 그렇게 마시라”는 어조로 이야기하는 것이 좋았다. 작가의 특이한 이력상, 자랑만 늘어놓았다면 “그래 너는 원래 대단하구나. 내 인생은 뭐지”라는 반발감이 들었을 텐데 친한 친구에게도 민망할 법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은 점이 좋았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마치 친한 사이가 된 듯했다. 전화를 걸어 “언니, 회사에 입고 갔다던 핑크색 트레이닝 복 지금도 있어요?”하고 질문이라도 하고 싶었다. 문장도 깔끔하고 읽기 편했다. 저자의 성격이 원래 쿨한 건지 울고 짜는 자기 연민이나 과장된 감정 표현이 없는 것도 괜찮았다. 울고 불고 지지고 볶는 20대 여자 얘기는 별로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규칙도2

무직자가 듣는 직장생활

가장 흥미롭지만 공감되지 않는 부분은 ‘직장생활’에 관한 부분이다. 하지만 오해는 말아달라. 공감되지 않는 이유는 내가 28년 간 한 번도 직장생활을 경험하지 못한 무직자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을 선물한 후배 한 명(직장생활 4년 차)은 너무나 공감되는 나머지 새벽 두 시에 홀로 와인을 땄다고 한다.

관찰 및 간접경험에 의하면 20대 여성의 직장생활은 녹록치 않다. 직장생활 1년 만에 10Kg 체중 증가. 성인여드름. 생리불순. 알콜중독. 불명증. 마음속으로 욕하기의 달인이 된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보아왔다. 그들이 나를 보면 제일 먼저 하는 말은 “너 이런 말투 평생갈 것 같지? 너도 일 해봐” 였고, 나 역시 도대체 직장이란 괴물은 무엇이길래 여렸던 대학생들을 한 번에 참전인사처럼 전투적으로 바꿔 놓는지 궁금해졌다.

저자는 사내정치,멘토,비주류의 성공전략, 기획서 쓰는 법을 비롯하여 여자 직장 친구 사귀는 법, 경계해야 하는 직장 내 남자 들에 대한 조언도 빠트리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니, 왜 직장 생활 3년 만에 우등생이던 대학 동기가 술독에 빠져 욕을 하는 지, ‘시크’한 독립여성이던 후배가 다 때려치우고 시집을 갔는지 이해가 되어 갔다. 하지만 피해갈 수 있는 실수들을 빠짐없이 저지르는 일만 안하더라도 80%의 에너지는 보존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회식에 참여해야 하는 지, 자꾸만 전화를 걸어대는 회사 선배를 어떻게 거절해야 하는 지 따위를 누군가가 가르쳐 주었다면 20대 여성의 직장생활은 덜 지쳤을 것이다.

이 글을 다 읽은 나는 왠지 직장생활을 잘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물론 서류전형이라도 통과하고 봐야 하겠지만.

20대를 여성을 위한 변명

20대 여성은 수많은 편견들에 휩싸여 있다. 세상이 그렇게 생각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그 울타리에서 나오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존재감에 대한 확신도 없다. 저자는 그런 우리를 위한 변명을 아주 당당하게 내어 놓는다. 왜 우리가 무개념녀가 될 수 밖에 없었는지, 정말 된장녀라고 불려야 하는지, 그러면서도 실제 어린 명품족에 대한 충고와 공동명의 계좌부터 정리해야 하는 디지털 이별에 대해서, 정치와 경제에도 눈감아서는 안된다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성형문화와 소개팅, 미니홈피와 스파게티 등 20대 여성의 키워드에 대해 든든한 대변인이 되어준다.

이 책이 가져다 준 메시지

사실 책 한 권으로 인생이 변하기는 어렵다. 아무리 감동받았다고 한들 이제껏 쌓아온 내 자신에 대한 애착을 한 번에 버리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내게 준 메시지는 분명하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기 위해서’는 웅크리고 있으면 안된다는 것. 행동하고 후회하는 것이 안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백 번 낫다는 것. 이제껏 내 인생의 모든 문제가 사실은 아무것도 해보지 않아서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당차고 용기 있어 보이는 저자의 사진을 뒤로하고 책을 덮는다. 자, 이제 무엇부터 시작해볼까?

수많은 20대 여성과, 그녀들을 이해하고 싶은 타인들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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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학을 전공한 프리랜서 기자. SBS 파워FM ‘라디오전망대’에서 뉴스브리핑을 코너를 맡고 있으며 조선닷컴 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쓴다. 웹상에서 드러나는 삶의 '진정성'과 관련된 모든 문제에 대해 고민한다.
18 Responses to "[책읽는 블로거]상처받은 20대를 위하여"

전 20대 직장 여성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지난 연말 이 책을 읽고 리뷰어와 거의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아마 20대와 30대 직장 생활의 경험 때문이었겠죠. 당시 하고 싶은 말이나 행동 전혀 못 하면서 지냈던 회한과 불만에 찬 삶이 떠올라서였을 겁니다.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았더라면 훨씬 나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당시에 알고 있었더라면 하고 돌아볼 때가 무척 많습니다. 남편 내조와 자식 뒷바라지만 하는 ‘매니저로서의 삶’이 가진 한계만큼이나 조직과 사회에 무조건 복종하는 삶의 공허함을 누군가 진작에 가르쳐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저 대신 그런 말을 해주는 저자나 리뷰어가 있으니, 저로서는 고마울 따름이죠.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에 이런 똑똑하고 용기있는 20대 여성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안이 됩니다. 그저 회사에서 남자들 뒤치다꺼리만 하면서도 늘 좋은 조건 남자 만날 궁리나 하는 후배들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븕로거님이 아침9시부터 저녁6시까지 근무하는 직장에 다니는 건, 아니지만 일은 하고 있잖아요. 저도 그렇게 일하거든요. 프리랜서. 20대 여자. 저자분은 직장생활을 하신 것 같지만, 이 책을 읽으면 20대 여자를 둘러싼 기가막힌 오해와 편견들을 얘기하고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대해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좋은 책 소개해주신 블로거님 고마워요, 앞으로도 읽을 만한 책 소개 해주세요.

전 비록 남자지만, 잘 읽었습니다^^
근데, 국문학과 졸업하셨다는데, 맞춤법이…
녹록치가 아니라 녹록지라고 알고있습니다^^

    이글루스의 홍대리님 이신가요?ㅎㅎㅎ
    대화명이 보라카이라고 되어있던데, 아직 출발하지않으셨나봐요ㅎㅎ

    녹록하다 가 기본형이니까 “녹록하지않다”의 축약으로 녹록치 가 맞지않나요?;

    블로터넷에서 우연히 댓글로나마 뵈서 반가웠습니다!

    녹록지가 맞아욤~

    원래 울림소리(ㄴ,ㄹ,ㅁ,ㅇ)가 아닌 비울림소리로 끝나면 축약이 안되고 탈락이 되죠^^

    그러니까 녹록지가 맞아욤~

    지나가다가 끄적여욤~

멋지네요

자신의 이야기를 잘 전달해주고 꽤나 강력한 메세지를 전달해준 저자분도

그걸 이렇게 멋지게 받아들여주신 블로거분도 :)

이글을 안봤으면 여성을 자기계발서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겼을 책인데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재밌는 책에 대한 서평 감사합니다.

규칙도 두려움도 없이…..제목이맘에 드네요~~~~

이여영 기자의 책이군요

최대한 저도 직장생활 안해야겠네요.

하긴 그런인생 하고싶어 하는것도 아니지만요.

저도 자기계발서를 좋아하진 않지만 가끔 자극이 필요할 때 하나씩 주워들곤 해요. 얼마 전에도 친구가 시크릿을 선물하길래 읽어보았죠. 사실 그저 그런 이야기더군요.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살아가면서 어떤 기분에 갑자기 휩싸일 때라던가, 어떤 사소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불현듯 생각나는 걸 보며 놀란 기억이 많습니다.

20대의 한 해가 또 지났네요. 모두 힘냈으면 좋겠어요:D

규칙도 두려움도 없이…어디서 이렇게 도발적인 제목을…지금 사러 갑니다

정말 한심하다…..

저는 40대중반의직장여성이지만 20대직장여성들의 내적인 고민,갈등에있어서공감이가고
내가 예전의 20대때에 그런 지혜를얻었었다면 지금은 다른 삶을 살고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드네요.. 하지만 올해23살의 대학졸업을 앞두고있는 제딸에게 선물로 남기고싶습니다. 앞으로도 30대 40대를 맞이하는 여성들을위하여 삶의지혜를 얻을수있는 좋은 책
기대하겠습니다…

이 기사보고 책 사서 하루만에 읽었어요…감사합니다…용기를 얻었어요…규칙도 두려움도 없이 살게되겠죠…

녹록지가 맞아요~ ㅋㅋ 저도 국문과라~~ ㅋㅋ
녹록하다에서 -하- 앞에 안울림 소리일 때는 -하- 전체를 생략해요.
울림 소리일 때는 -ㅏ-만 생략하고요…

편안하다는 ‘편안치’가 맞아요~ ㅋㅋ

그나저나 저도 이 책 읽어보고 싶네요~감사해요~^^

쓴사람도 소개하는사람도 점점더 한심해져간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갖가지 두려움앞에 무릎을 꿇게하는데요.. 이 책을 보고나니 ㅋㅋ 여영기자님 부럽네요~

“내가 이 책을 선물한 후배 한 명(직장생활 4년 차)은 너무나 공감되는 나머지 새벽 두 시에 홀로 와인을 땄다고 한다.” 이 문장 아래로는 저는 난독증에 걸린듯.. 이해가 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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