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소스 하드웨어, DIY 2.0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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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나 소프트웨어처럼 사물도 자유롭기를 원한다. 사물의 자유는 이용의 자유이며, 변형의 자유이며 동시에 공유의 자유다. 누구나 사물을 제작할 수 있고 누구나 변형할 수 있으며 누구나 개조하고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사물의 자유다.

사물의 자유는 오픈소스 하드웨어의 본질이다. 뜯고 고치고 변형하고 공유하고…. 사물이 자유로울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철학이 오픈소스 하드웨어에 침투해있다. 오픈소스 하드웨어 협회의 ‘원칙 1.0’에도 자유와 공유의 철학은 그대로 녹아들어있다. “디자인을 자유롭게 교환함으로써 지식을 공유하고 상용화를 장려하여 사람들이 자유롭게 기술을 제어할 수 있도록 한다.”

오픈소스 하드웨어의 시작과 시장

오픈소스로 제작된 OpenROV 2.7 Mini Observation Class ROV.(사진 출처 : 오픈로브 웹사이트)

오픈소스로 제작된 OpenROV 2.7 Mini Observation Class ROV.(사진 출처 : 오픈로브 웹사이트)

오픈소스 하드웨어는 제품 제작에 필요한 회로도, 설명서, 인쇄회로 기판 도면 등을 공개함으로써 누구나가 이를 활용한 제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하드웨어를 의미한다(유재필, 2013). 오픈소스 하드웨어 협회는 “오픈소스 하드웨어는 누구나 이 디자인이나 이 디자인에 근거한 하드웨어를 배우고, 수정하고, 배포하고, 제조하고 팔 수 있는 그 디자인이 공개된 하드웨어”라고 정의했다. 정리하자면 법적, 제도적 제약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가지고 놀 수 있는 하드웨어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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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소스로 제작된 툴킷을 활용하는 방식과 동료생산 방식(P2P)으로 제품을 제작한 뒤 이를 오픈소스화하는 유형으로 크게 나누어볼 수 있다. 익히 이름이 알려진 아두이노, 라즈베리 파이, 비글본블랙이나 BBC의 마이크로 비트(Micro Bit)는 오픈소스 하드웨어 툴킷에 해당한다. 손바닥만한 작은 기판 위에 각종 제어 장치 및 프로세서들이 결합돼있어 무엇을 연결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목적의 사물로 재탄생하게 된다. 시민들은 이들 툴킷으로 독창적인 제품을 제작한다. 이를 테면, 실내 미세먼지 측정기를 아두이노로 제작한다거나 라즈베리 파이로 개인 맞춤형 노트북을 만들어낸다. 드론이나 무인보트도 개성있게 제작해낼 수 있다.

국내에서도 오픈소스 하드웨어 툴킷을 활용한 공작 문화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관련 스타트업이 출현하는가 하면 한국형 아두이노라 불리는 지니어스키트도 등장했다. 지난 2월에는 전자회사 출신의 김규호씨가 아파트 난방수 제어 시스템을 아두이노와 라즈베리 파이로 제작한 뒤 설계과정을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이 하드웨어를 제어하는 데 사용된 소프트웨어도 모두 오픈소스였다.

개발 커뮤니티와 공동으로 제작한 뒤 이를 오픈소스로 공개하는 P2P 유형도 적잖다. 수중탐사 로봇을 개발하는 오픈로브(OpenRov)는 개발 과정부터 철저하게 P2P 방식으로 진행했다. 뿐만 아니라 캐드로 제작된 설계도면과 제어 소프트웨어까지 거의 모든 공작 내역들을 오픈소스로 개방했다. 제작된 완제품을 800달러에 판매도 한다. 상업적 수익을 도모하지만 공정의 공유엔 망설임이 없다. 지난 5월 중국에서 개최된 ‘메이크 페어 선전‘에서는 오픈소스 전기자동차 플랫폼이 전시돼 눈길을 끌었다. 공개된 설계도를 따라하면 평범한 시민도 불과 2시간만에 조립할 수 있다.

‘메이커 문화’(Maker Culture)가 확산되면서 오픈소스 하드웨어 시장 규모도 커지고 있다. 라즈베리 파이만 보면, 2015년 2월 출시된 모델2가 불과 출시 2주 만에 50만대 이상 판매됐다. 30달러 안팎에 불과한 저렴한 가격, 웬만한 소형 컴퓨터 수준의 기술 스펙이 메이커 문화에 열광하는 많은 이들을 오픈소스 하드웨어로 세계로 끌어들이고 있다.
오픈소스 하드웨어 툴킷의 양대산맥이라 일컬어지는 아두이노의 성장세도 가파르다. 전세계적으로 수백만 대가 보급됐을 뿐 아니라 라즈베리 파이와 결합돼 다양한 용도로 제작되고 있다. 한 보도에 따르면 2015년 오픈소스 하드웨어 시장 규모는 1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개인들의 취미 커뮤니티 활동이었던 오픈소스 하드웨어 문화가 이제는 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오픈소스 하드웨어의 확산과 관련해 놓쳐서는 안되는 움직임이 있다. ‘메이커 페어’(Maker Faire)의 등장이다. ‘메이커 페어’는 오픈소스 하드웨어의 오프라인 교류 장터다. 제작자들이 모여 각자 제작한 제품을 전시하고 지식을 나누며 의견을 교환한다. 최근 들어 참가지나 참가자수도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추세다. 미국의 경우 2009년 참가자 8만3000명 규모였던 메이커 페어는 2014년에는 78만1000명으로 5년 만에 무려 10배나 성장했다. 개최횟수도 3회에서 지금은 135회로 증가했다.

오픈소스 하드웨어의 DIY 문화

메이커페어 성장 차트.(이미지 출처 : 메이커매거진)

메이커페어 성장 차트.(이미지 출처 : 메이크진)

오픈소스 하드웨어는 DIY(Do It Yourself)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조동원(2014)에 따르면 DIY 문화는 1950년대 영국과 미국에서 물건을 고치고 새로 만드는 데 즐거움을 찾은 일군의 사람들의 문화로 시작됐다. 이후 1970년대 펑크(punk) 문화와 결합하면서 사회 변화를 위한 하나의 실천적 행위로 나아가게 됐다.

1968년 창간된 ‘더 홀 어스 카탈로그’(The Whole Earth Catalog)는 1970년대 DIY 운동의 촉매재였다. DIY 운동의 바이블로 통하는  이 잡지는 “산업화한 대량생산에 치를 떠는 모든 이들”에게 자신의 힘으로 장치나 교육을 만들어내는 정보를 제공할 목적으로 발행됐다. ‘툴에 접근하다’(access to tools)라는 부제는 이 잡지가 하드웨어 DIY를 지향했다는 사실을 대변해준다.

1970년대 DIY 문화를 보급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더 홀 어스 카탈로그’의 철학은 2005년 오라일리 미디어의 ‘메이크 매거진’(Make Magazine) 창간으로 다시금 부활했다. 인터넷의 등장과 컴퓨터 과학의 발전 이를 추동했다. 메이크 메거진의 창간으로 DIY 2.0시대가 열렸고 오픈소스 하드웨어도 집중적인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2005년 아두이노의 등장, 2012년 라즈베리 파이 상용 모델의 출시 등이 이어지면서 DIY라는 하위문화는 하드웨어 기술과 융합을 시도하게 된다.

오픈소스 하드웨어와 해킹 문화

지트레인(2014)의 개념을 빌리면 오픈소스 하드웨어는 생성성(generativity)의 테크놀로지다. 동료 생산 방식으로 이용자의 광범위한 참여와 기여, 적응 속에서 성장한다. 참여는 놀이를 낳았고 놀이는 운동이 됐다. 이런 흐름이 만들어진 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것이 지닌 저항성 때문이다. 오픈소스는 해킹 문화의 산물이다. 1960년대 MIT 대학생들에 의해 시작된 해킹문화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거쳐 하드웨어로 뻗어나갔다. 오픈소스 하드웨어 정신이 해킹문화에 빚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조동원(2014)은 “인위적인 희소성의 논리와 산업 제도에 의존하게 만드는 근본 독점을 깨고 대안을 만들어나가는 일상의 저항 문화운동”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오픈소스 하드웨어 운동의 저항성은 엘리슨 파월(Alison Powell, 2012)의 생산 민주화와도 곧장 연결된다. 산업계가 주도해온 규격화된 완제품의 대량생산 그리고 그들의 이익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희소성, 그 근본을 파괴한다. 오픈소스 하드웨어의 시장 저항성을 엘리슨 파월은 제조 민주화로 규정했다. 파월은 “하드웨어 해킹과 오픈소스 하드웨어는 시장을 포함한 현존하는 조직 형태에 대단히 파괴적”이라고 했다. 기술 개발의 과정을 민주화한다는 면에서 오픈소스 하드웨어 문화는 시장과 충돌할 수밖에 없어서다.

오픈소스 하드웨어가 시장 질서에 어떤 위협을 가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오픈소스 소프트웨어가 걸어온 궤도를 따라 시장과의 공존 속에서 구조 변동을 모색할 가능성이 더 높아보인다. 하지만 그것에 깃든 저항성은 전혀 다른 질서를 꿈꾸고 있을지 모른다. 사물의 자유는 태생부터 급진적이었다. 오픈소스 하드웨어를 산업적 트렌드로만 바라볼 수 없는 이유다.

참고 문헌

  • 유재필.(2013). 오픈소스 하드웨어 플랫폼(OPHW) 동향 및 전망
  • 조너선 지트레인. (2014). 인터넷의 미래. 커뮤니케이션북스.
  • 조동원. (2014). 제작- 놀이이자 노동. [온라인] http://unmake.org/?cat=13
  • Alison Powell. (2012.3). Democratizing Production through Open Source Knowledge: From Open Software to Open Hardware.

이 기사는 미래창조과학부와 KISDI가 ICT인문사회 혁신기반 구축 사업의 일환으로 발간하는 ‘ICT인문사회융합동향’ 2015년 2호에 게시된 글입니다. 원고의 저자는 이성규 블로터 미디어랩장입니다. 블로터는 KISDI와 콘텐츠 제휴를 맺고 동시 게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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