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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이 이상향이라면 우리의 선택은?

2015.07.29

머리말

당연한 이야기지만 현실(reality)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이 무엇인지가 달라지고, 다시 그에 따라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이 현재 어느 수준까지 우리 삶에 들어와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가 달라진다. 그러므로 우선 현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증강현실과 가상현실에서의 ‘현실’은 영어의 reality를 번역한 말인데 이 말은 상황에 따라 현실, 사실, 실재로 번역될 수 있고 이들 각각은 맥락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이 점은 구태여 복잡한 학술적 논의를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곤경에 빠진 친구에게 “현실을 직시해야지!”라고 충고할 때의 ‘현실’의 의미와 새로 출시된 온라인 게임의 생생한 ‘현실’감에 감탄할 때의 ‘현실’의 의미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전자는 현재 상황의 의미와 조건에 대한 객관적 ‘판단’ 내용을 포함한 ‘현실’이고 둘째는 대개 시청각적으로 매우 현란하고 사실적인 느낌이 난다는 의미에서의 ‘현실’이다. 여기에 더해 “유니콘은 ‘현실’에 존재하는 동물이 아니라 상상의 산물이다.“는 주장에서의 ‘현실’의 의미는 또 다르다. 이때 ‘현실’은 철학자들이 말하는 실재(實在), 즉 진정으로 우리 세계에 존재하는 대상이라는 의미이다.

현실, 비현실, 증강현실

그렇다면 증강현실에 담긴 ‘현실’의 의미는 어떨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증강현실에서의 ‘현실’은 오감으로 지각 가능한 정보의 총체를 주로 가리킨다. 즉, 증강현실이란 우리가 철학적 의미의 실재, 즉 진정으로 존재하는 세계를 돌아다닐 때 우리의 오감으로 획득 가능한 정보를 넘어서는 정보를 ‘증강’해서 우리에게 제공해주는 현실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직관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증강현실의 예는 최근 개봉된 영화 에 등장하는 최첨단 안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림1] 참조) 이 안경을 쓰면 나안으로 볼 수 있었던 평범한 현실의 감각 정보 이외에 추가적인 여러 정보가 우리 시각을 ‘강화’시켜준다. 게다가 멀리 떨어진 요원들끼리 마치 한 자리에 모여 회의를 하는 시각적 ‘환상’도 창출할 수 있다.

이 점이 이후의 논의를 위해 중요하다. 증강현실은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에 대한 감각적 정보에 인위적으로 추가적 정보를 더해 구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추가된 정보는, 적어도 기술 도입의 첫 단계에서는 당연히 ‘환상’, 즉 현실이 아닌 가공의 이미지로 취급될 수밖에 없다. 안경을 통해 보이는 요원들의 모습이 아무리 ‘사실적’이어도 안경을 쓰고 있는 당신은 그들이 ‘실재로는’ 이 방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당신은 안경을 벗고 나면 더 이상 사람들의 개인 정보가 여러분이 바라보는 사람들의 좌우에 함께 뜨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즉, 이 단계에서 증강현실은 약간 역설적이지만 증강현실의 사용자가 자신이 경험하는 감각정보 중에서 진짜 ‘현실’인 부분과 ‘증강된’ 비현실을 구별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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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영화 <킹스맨> 포스터.(출처: talenthouse)

하지만 이런 구별이 항상 가능할까? 혹은 원리적으로는 가능하더라도 사람들이 이러한 구별을 더 이상 하지 않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누구나 쉽게 짐작하겠지만 영화 에 등장하는 환상적인 안경은 이미 구글글래스 등으로 어느 정도 실현되어 있다. 만약 근 미래에 스마트 네트워크와 사물인터넷이 고도로 발달하여 당신이 사용하는 증강현실 안경과 지속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면, 그리고 영화와는 달리 당신은 잠잘 때까지 포함해서 그 안경을 항상 끼고 있다면 어떨까? 이미 항상 착용이 가능하도록 콘택트렌즈 형태로 만든 시제품은 나와 있고, 침습적 시술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아예 자신의 감각기관 자체를 증강현실 처리가 가능하도록 재구성한 사이보그(Cyborg)로 재탄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 즉 증강현실이 너무나 일상화된 상황이 온다면 과연 우리가 자신이 감각하는 총체로부터 ‘증강된’ 비현실과 ‘진짜’ 현실을 구별할 수 있을까? 물론 이때 구별할 수 있다는 말은 다시 두 가지 의미로 나뉘어져야 한다. 하나는 우리의 증강현실 기술이 너무나 발달하여 증강현실 내에서의 ‘진짜’ 현실과 ‘추가된’ 비현실이 감각적으로 너무나 똑같이 생생하기에 우리의 감각능력으로는 이 둘 사이의 구별이 불가능한 수준이 올 수도 있다. 이 정도의 높은 기술 수준은 당분간은 도달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설사 기술적으로 가능하더라도 경제적으로 이 정도의 높은 현실성을 갖춘 증강현실이 수지타산이 맞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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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99% 현실감을 주는 증강현실과 99.9%의 현실감을 주는 증강현실은 설사 기술력이 가능해지더라도 그 구현에 있어 상당한 비용 차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대가를 치뤄서라도 완벽하게 사실적인 증강현실을 얻기 위해 추가 비용을 지불할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특히, 이후에 소개할 가상현실과는 달리 증강현실은 사람들이 통상적인 감각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추가정보의 편리성을 얻기 위해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증강된 비현실과 진짜 현실의 구별이 불가능할 정도의 증강현실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해도 사회적으로 널리 보급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증강현실의 ‘현실’ 부분과 ‘비현실’ 부분에 대한 구별을 구태여 기술적으로 무화시킬 필요가 없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신경만 조금 쓰면 누구나 이 둘을 구별할 수 있겠지만 관습적으로 이 둘 사이의 구별에 신경 쓰지 않는 증강현실 문화가 언제든지 도래할 수 있다.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 좀 더 친숙한 예를 들어보자. 여러분은 다른 사람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그 사람이 바로 옆에 있지 않고 먼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당연히 알고 있다. 전화기의 원리를 이해 못하는 어린이가 아니고서는 작은 전화기에 사람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 질문을 고려해 보기 바란다. 다른 사람과 전화할 때 방금 그 사실, 즉 그 사람이 내 옆에 없다는 점을 ‘의식’하는가? 그런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오히려 누군가 물어보면 당연히 알고 있다고 대답할 그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의식하는 행동을 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윗사람과 전화할 때는 그 사람이 절대로 볼 수 없는 몸가짐에도 자연스럽게 신경을 쓰게 된다. 그만큼 전화상의 목소리로 대표되는 ‘증강된’ 사람은 우리 옆에 있는 ‘진짜’ 사람만큼이나 현실적이다. 우리의 행동을 비롯하여 여러 상황에 인과적 연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전화사용의 초기에 지금처럼 통화 품질이 좋지 않았을 때도 여전히 관찰된 사실이다. 예를 들어 [그림 2]에 나오는 전화 교환원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 명백히 인공적인 상황에서도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다소 비현실적인 목소리를 듣고서도 사람들은 마치 그 사람 옆자리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전화기는 원래 공적으로 중요한 사실을 전달하는 사무용 용도로 개발되었지만, 점차 사용자들에 의해 지금처럼 주로 ‘수다용’으로 용도가 변경되었다. 아마도 이 용도 변경의 배경에는 전화기의 ‘증강현실’ 효과가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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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1930년대 미국 전화 교환수의 모습.(출처: Red & White for Life)

 ‘증강된’ 비현실과 ‘진짜’ 현실, 구별 필요성 못 느끼질도

핵심은 증강현실이 사회적으로 널리 보급된다면 설사 그 증강현실이 제공하는 ‘증강된’ 비현실이 ‘진짜’ 현실만큼 생생하고 현실적이지 않더라도 여전히 사람들은 그 둘 사이의 구별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생활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현상의 배후에는 우리 마음의 본성이 자리 잡고 있다. 일찍이 영국의 경험론 철학자 데이비드 흄(1711~1776)은 우리의 마음은 감각기관들로부터 얻은 인상(impression)을 조합하여 실재에 존재하는지 여부와 무관한 이미지들 사이의 연관 관계를 만들어내는 상상력을 갖고 있음을 강조했다. 이 능력이 있기에 우리는 몇 개의 간단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형태(즉, 만화)를 보고서도 이야기를 읽어내고 감동을 받을 수 있고, 여러 현상을 가로지르는 설명의 ‘원리’를 찾아낼 수도 있다.

흄이 강조한 인간의 상상력은 우리가 사용하는 증강현실에도 어김없이 작용한다. 그 결과 우리는 ‘증강된’ 비현실을 친숙하게 느껴질 정도로 많이 사용하게 되면 어느덧 그 비현실을 구태여 ‘진짜’ 현실과 구별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성은 만약 증강현실의 사용이 사회적으로 널리 퍼져서 일종의 ‘당연시’ 되는 상황이라면 더욱 강화될 것이다. 약간 추상적으로 요약하자면, 증강현실에서의 현실과 비현실이 인식론적으로 구별되지 않더라도 사용자는 사회문화적으로 구태여 구별하지 않고 증강현실 전체를 통째로 현실이라고 인식하며 생활하게 될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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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알란 램지가 그린 데이비드 흄의 초상화(출처: David Hume by Allan Ramsay, Google Cultural Institute, Public Domain)

이 지점에서 우리는 조심스러워질 필요가 있다. 증강현실이 너무나 당연시되어서 ‘진짜’ 현실을 대체한다면 그 사회적 파급 효과가 상당할 것이기에 이에 대한 사전 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파급 효과가 무조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라는 식의 일 방향적일 가능성은 낮다. 대부분의 신기술이 그러하듯 쉽게 상상 가능한 장점과 단점이 있을 것이고, 쉽게 상상하기도 어렵고 가치판단도 어려운 효과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아래 <더 읽어볼 거리>에서 소개한 니콜라스 카(Nicholas Carr)는 증강현실을 포함한 첨단 디지털 기술이 우리의 인지능력을 변화시킨다는 점을 강조한다. 우리 뇌가 어떤 도구를 사용하는지에 따라 놀랍게 빠른 속도로 재구조화될 수 있다는 뇌 가소성(neural plasticity)이 이런 변화의 신경과학적 기반을 제공한다. 간편하게 글을 고칠 수 있는 기능이 있는 워드 프로세서의 발명이 우리의 글쓰기 방식을 바꾸었듯이, 아무 장소에서나 손쉽게 필요한 정보를 불러 둘일 수 있는 증강현실 기술은 분명 우리의 인지 기능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 변화 중에는 최신의 풍부한 정보에 근거하여 판단을 내릴 수 있는 편리함이나 기억능력의 감퇴처럼 손쉽게 상상할 수 있는 장단점도 있지만, 한 가지 쟁점에 대해 깊이 있게 집중적으로 사고하고 호흡이 긴 글을 읽어내는 능력의 감퇴처럼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변화도 있다. 니콜라스 카는 성급하게 증강현실을 비롯한 신기술에 대한 포괄적인 가치평가를 내리기 전에 이런 파급 효과들에 대해 진지한 이론적, 경험적 연구를 수행하고 어떤 변화가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 차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물론 이런 논의를 통해 가능하다면 증강현실 기술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최소화할 수 있는 기술적, 제도적, 법적, 문화적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 작업이 쉽지 않을 것은 분명하지만, 증강현실 기술이 제기하는 사회적 수준의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라는 점 역시 분명하다.

이상향, 가상현실, 대안현실

이제 가상현실로 논의의 초점을 이동해 보자. 이미 어느 정도 수준에서는 실현된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증강현실에 비해 가상현실이 실현된 기술인지 여부에 대한 대답은 어느‘수준’의 가상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지에 따라 결정적으로 달라진다. 즉, ‘가상적’ 혹은 인공적으로 우리의 감각 기관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기술 시스템을 가상현실이라고 정의하면 이제는 일상화된 게임기나 고화질 TV도 이미 가상현실을 제공하고 있다. 실은 이런 의미의 가상현실은 아주 오래된 소설책에서 이미 실현되어 있다. 당신은 따로 배우지 않으면 읽지도 못하는 기호가 가득 적힌 종이를 보면서 ‘가상적’으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체험한다. 물론 그 체험은 소설을 읽고 그 내용을 여러분의 마음이 상상하여 체험하는 것이지만 그 체험이 시각정보에 주로 의존하지 않고 글자의 의미론적 속성에 의미한다는 차이만 있을 뿐 본질적으로 복잡한 헤드기어를 쓰고 고화질의 가상현실 체험 게임을 즐기는 것과 인식론적으로는 본질적 차이가 없다.

하지만 소설처럼 ‘낮은 수준’ 기술과 최첨단 느낌이 나는 ‘가상현실’ 개념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가상현실에 대한 좀 더 강한 개념을 고려해야 한다. 이는 우리의 감각을 통해 얻은 정보와 그 정보에 근거한 추론에 있어서 현실과 전혀 구별되지 않을 정도의 ‘극사실성’을 지닌 가상현실에만 적용되는 개념이다. 영화 <매트릭스>에 등장하는 상황은 정확히 이에 대응된다. 실은 인공지능 컴퓨터를 위한 배터리로 사용되고 있는 처지인 인간들은 컴퓨터가 제공해 준 거의 완벽한(정말로 완벽하면 네오나 모피우스가 어떻게 ‘진실’을 알게 되었겠는가?) 가상현실 속에서 20세기 끝 무렵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림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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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4] 인간 배터리로서의 ‘현실’을 깨닫게 되는 네오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 출처: inquisitr.com)

영화 <매트릭스>가 보여주는 가상현실이 끔찍하면서도 매혹적인 이유 중 적어도 일부분은 우리의 현재 기술로는 당분간 그 실현이 요원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외부 세계로부터 감각을 수집하는 여러 통로 중 우리가 그나마 현실과 비교적 가깝게 ‘흉내내기(simulation)’할 수 있는 영역은 시각과 청각에 집중되어 있다. 가상현실을 이야기할 때 주로 논의되는 고화질 동영상 게임이 주로 현란한 영상과 빵빵한 음향 효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을 기억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하지만 후각과 촉각, 미각의 ‘가상현실’은 아직까지 걸음마 단계이다. 우리의 후각과 촉각이 시각과 청각에 비해 훨씬 ‘둔하다’는 점을 기억해 보면 이 분야에서 진전을 이루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영화 <매트릭스>에서 등장하는 수준은 고사하고 우리의 오감을 온전히 활용하면서도 그나마 ‘현실적’이라고 느낄 수 있는 수준의 가상현실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주 먼 미래가 아니라면 당분간 기대하기 어려울 것처럼 보인다. 각각의 감각을 현실도 높게 구현해내는 것 자체도 어렵지만 각각의 감각에서 얻어진 정보 사이의 ‘일관성’을 구현해내는 일은 더 어려울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가상현실에서 사과를 하나 집어 들어 냄새를 맡고 한 입 베어 무는 것처럼 간단한 동작만 고려해도 이를 컴퓨터로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계산의 복잡도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후각과 촉각, 미각의 ‘가상현실’은 아직 걸음마 단계

‘약한’ 의미의 가상현실이 너무 흔하다면 ‘강한’ 의미의 가상현실은 너무나 요원하다고 요약할 수 있겠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필자는 ‘강한’ 의미의 가상현실을 가정하고 실재와 가상현실 사이의 존재론적 혼동 등을 이야기하는 일부 철학적 담론은 이론적으로는 흥미로울 수 있으나 현실적 함의는 약하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가상현실과 관련된 현실적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증강현실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상상력이 복잡한 파급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래의 <더 읽어볼 거리>에 소개된 마거릿 버트하임(Margaret Wertheim)의 <공간의 역사>라는 책에는 통상적으로 20세기의 산물로 여겨지는 사이버스페이스 등이 제공하는 가상현실이 그 전 시대의 ‘이상향’과 같은 ‘대안적 공간’과 매우 깊은 유사성을 가짐을 강조한다. 뉴턴역학을 중심에 둔 근대 과학혁명 이후로 우리는 텅 빈 3차원 공간에 물질이 채워져 있는 공간 개념에 익숙하다. 이때 공간은 아무런 질적 특징이 없는 무형의 구조물로 이해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공간은 보다 적극적인 물리적 속성을 부여받지만 일반인의 직관 속에 공간은 여전히 이처럼 투명하고 형식적인 것이다.

하지만 서양 전통에서 공간은 질적으로 서로 다른 ‘종류’의 공간이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의 문장가 단테의 에서 묘사된 연옥, 지옥, 천국의 공간 구조는 단순히 비유적이거나 도덕적인 의미만이 아니라 진정으로 물리적인 세계에 구현된 서로 다른 공간을 표상했다([그림5] 참조).

그리고 이러한 질적으로 ‘종류’가 다른 공간 개념은 자연스럽게 현재 고달픈 현실과는 다른 ‘이상향’ 혹은 ‘내세’에 대한 열망과 결합하여 현재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만큼이나 실재하지만 그 현실과는 매우 다른 ‘대안현실’을 상정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했다. 뉴턴적 공간 개념이 상식이 된 현대인에게는 낯설게 느껴지겠지만 전근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에게는 다양한 저자들이 제공하는 유토피아적 세계에 대한 서술은 마치 먼 곳에 떨어져 있는 나라에 대한 기행문만큼이나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물론 그 ‘이상향’적 현실은 현세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죽음이나 영적 구원 등의 방식이 아니고서는 접근 불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접근불가능성이 이러한 ‘대안현실’을 덜 현실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었고, 어떤 면에서는 더욱 매력적인 동경의 대상으로서의 지위에 걸맞은 특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대안현실’이 이상향의 지위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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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5] 단테의 에 등장하는 연옥, 지옥, 천국의 구조(출처: carriagehousebandb)

이제 이런 역사적 배경을 염두에 두고, 가상현실이 비록 영화 수준의 극사실성을 갖추지 못했더라도 여전히 흄이 강조한 우리의 상상력의 힘으로 ‘진짜’ 현실만큼 충분한 현실성을 획득할 가능성을 고려해 보자. 특히, 그 가상현실이 전근대 시기의 ‘대안현실’이나 ‘이상향’이 갖추었던 조건, 즉 고단하고 비참한 현실보다 더 매력적인 속성을 갖고 있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이는 일반적으로 접근 불가능한 ‘대안현실’이 가상현실 기술을 통해 실현가능하게 된 것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신이라면 ‘진짜’ 현실과 가상현실 중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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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6]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출처: counterinception.com)

 가상현실이 우리에게 이상향을 제시해준다면?

영화 <매트릭스>에는 이와 유사한 상황이 등장한다. 평소 매트릭스가 무엇인지를 찾아 헤매던 해커 네오는 전설적인 해커 모피우스를 만나서 ‘진실’을 알려주는 빨간 약과 일상적인 가상현실로 돌아갈 수 있는 파란 약 중에 선택할 것을 제안 받는다. 물론 네오는 별 고민 없이 빨간 약을 선택하지만(어차피 이 단계에서 네오는 자신이 선택한 ‘현실’이 얼마나 끔찍한지 잘 모르니까) 많은 사람들에게 이 선택은 쉽지 않을 것이다. 만약 가상현실이 우리에게 ‘이상향’에 더 가까운 ‘대안현실’을 제공해 준다면(물론 기술력만으로는 아니고 우리의 상상력이 동원되어야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진짜’ 현실 대신에 가상현실로 도피하는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위에서 고려한 선택의 가능성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 ‘온라인 게임중독’이라는 형태로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선택이 제기하는 근본적인 윤리적, 사회적 논쟁점이 온라인 게임중독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우리의 상상력과 결합한 가상현실이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만족스러운’ 대안현실을 제공해준다면 우리가 그들에게 어떤 근거로 ‘진짜’ 현실을 직시하라고 요구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개인적 삶과 사회적 관계의 ‘목표’가 무엇인지 우리가 바람직하게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성찰 없이 기술발전에만 몰두하다보면 예상하지 못한 파국적 부작용을 맞게 될 수도 있다. 증강/가상현실 기술이 제기하는 다양한 쟁점에 대해 학제적 연구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 읽어볼 거리

  •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니콜라스 카 지음, 최지향 옮김, 청림출판 2011.
  • 유리 감옥, 나콜라스 카 지음, 이진원 옮김, 한국경제신문 2014.
    • 탁월한 기술비평가인 카의 이 두 권의 책은 기술, 특히 증강현실을 비롯한 디지털 기술을 사용함으로써 우리의 인지 능력과 사회적 상호작용 양상에 어떤 변화가 올 수 있으며 그 변화에 대해 어떤 점을 선제적으로 고민해야 하는지에 대한 풍부한 시사점을 준다.
  • 가상현실의 철학적 의미, 마이클 하임 지음, 여명숙 옮김, 책세상 1997.
    • 가상현실에 대한 철학적 논의의 고전에 속하는 책이다. 1993년에 출간되었기에 20년 가까이 흐른 지금에는 다소 시의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지만 가상현실의 인식론적, 존재론적 측면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답하려고 노력하고 있기에 여전히 읽을 가치가 있다.
  • 공간의 역사, 마거릿 버트하임 지음, 박인찬 옮김, 생각의 나무 2002.
    • 사이버스페이스와 ‘진짜’ 공간 사이의 연속성에 주목하면서 단테의 에 대한 분석에서 시작하여 서양문명사에서 어떻게 다양한 형태의 공간이 이해되어 왔는지에 대한 흥미진진한 분석을 제공하고 있다. 가상현실에 대해 논의 과정에서 곡 필요한 역사적 시각을 풍부하게 제시하고 있는 책으로 적극 추천한다.
  •  평행우주, 미치오 카쿠 지음, 박병철 옮김, 김영사 2006.
    • 가상현실 자체를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대안현실이 우주론적으로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혹은 이미 실현되어 있는지)를 평행우주라는 개념을 활용하여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현대 물리학과 우주론이 열어 주는 환상적인 물리적 가능성을 탐색하고 싶다면 일독을 권하고 싶다.

이 기사는 미래창조과학부와 KISDI가 ICT인문사회 혁신기반 구축 사업의 일환으로 발간하는 ‘ICT인문사회융합동향’ 2015년 2호에 게시된 글입니다. 원고의 저자는 이상욱 한양대 철학과 교수입니다. 블로터는 KISDI와 콘텐츠 제휴를 맺고 동시 게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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