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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은 왜 다시 ‘메모리’를 꺼내들었을까

2015.08.03

인텔이 지난 7월29일 스토리지용 메모리 기술을 공개했습니다. ‘3D크로스포인트’입니다. 가느다란 전선을 가로·세로로 배치하고, 그 사이에 메모리 셀을 배치하는 방식입니다. 낸드플래시가 정확한 셀에 접근하지 못하고 블록과 헤드 단위로 수십개 셀을 동시에 관리하면서 생기는 수명과 접근 속도 손실을 잡은 게 특징입니다.

기술은 참 복잡하고 아직 실제 제품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인텔은 확실한 차별점을 갖고 스토리지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비췄습니다. 발표 전의 분위기도 다른 때의 여유로움보다는 전반적인 긴장감까지 엿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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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입니다. 프로세서 왕국인 인텔이 갑자기 왜 스토리지 관련 메모리 기술을 발표했을까요? 그 속내를 한번 짚어보려고 합니다. 인텔의 표면적인 이유는 “컴퓨터 속도의 발목을 잡는 저장장치의 속도를 개선하겠다”입니다. 그런데 꼭 그게 전부는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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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반도체 기술의 연관성에서 답을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인텔은 이전에도 SSD 사업에 꽤 적극적이었습니다. 삼성전자, 샌디스크와 더불어 인텔은 SSD 시장의 강자로 꼽힙니다. SSD 같은 메모리 저장장치는 반도체의 집적도와 대량 생산, 넉넉한 수율 등 프로세서 사업과 비슷한 특성을 갖습니다.

3D크로스포인트는 그 설계 기술도 대단하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인텔의 반도체 미세공정 실력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기술이기도 합니다. 이 기술로 만든 반도체는 손톱만한 다이 안에 1280억개의 셀을 심어 128Gb(기가비트)의 데이터를 담을 수 있습니다. 가로·세로로 얼마나 많은 회로를 깔아내는 걸까요. 회로 두께가 상상도 잘 되지 않습니다.

현재 이 3D크로스포인트 메모리는 20nm 공정으로 개발, 양산됩니다. 그런데 인텔은 올해부터 프로세서 라인업의 대부분을 14nm 공정으로 바꿨습니다. 3D크로스포인트에는 14nm 공정을 왜 쓰지 않는 걸까요? 미세공정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텔이 새 프로세서 출시 시기를 놓치는 적은 가끔 있었지만 이번 14nm 공정은 거의 한 세대의 스케줄에 영향을 끼칠 만큼 만만치 않았습니다. 공장 설비에 들인 투자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어갔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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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nm 공정이라고 호락호락하지는 않습니다. 회로가 너무 미세해서 리소그래피 공정부터 싹 바꿨습니다. 웨이퍼에 선을 그릴 때도 공기중이 아닌 액체 안에서 그리는 습식 에칭 기술을 썼고, 45nm 공정을 가능하게 했던 하이K 소재의 게이트로도 트랜지스터의 전류를 완전히 차단하기 어려워지면서 게이트를 수직으로 세우는 트라이 게이트, 일명 ‘핀펫'(finfet) 기술도 도입했습니다.

그런데 현재 인텔의 로드맵으로는 그 공정 라인을 3년 정도밖에 쓰지 못합니다. 이전에는 공장을 세우는 데 그리 큰 비용이 들지 않았고, 공정 기술을 미세화하는 게 지금처럼 어렵지도 않았습니다. 미세공정으로 빨리 넘어가는 것이 기술적으로나 수익면에서도 유리했지요. 지금도 인텔의 반도체 공정 기술은 ‘외계인을 고문하는 수준’이라고들 하죠. 대신 프로세서만 빨리 후다닥 찍고 공장 문을 닫기는 아까울 겁니다.

그 대안으로 메모리는 괜찮은 사업입니다. 반도체의 공정을 그대로 가져가고, 프로세서 같은 비메모리 반도체에 비해 구조가 단순합니다. 수율만 잘 뽑아낼 수 있으면 프로세서에 비해 수익성이 나쁘지도 않습니다. 다만 경쟁이 치열하고 가격이 뚝뚝 떨어지는 플래시 메모리가 아닌 다른 방법이 필요했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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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20nm 공정이 딱 좋습니다. 3D크로스포인트 메모리 기술에는 일단 가느다란 미세공정이 필요하고, 메모리 셀을 2단으로 쌓아 올려 밀도를 높입니다. 나중에 3단, 4단 끌어올릴 수 있다고는 하는데 일단 지금 2단만 해도 용량이 2배가 됩니다. 이 조건이 최적으로 갖춰진 팹(Fab)이 바로 인텔의 20nm 공정입니다. 3~4년 쓰고 말 수 있는 공장에서 고부가가치 상품을 최소 2~3년 더 쓸 수 있게 되는 거죠.

인텔로서는 현재 갖고 있는 생산 환경을 최대한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수익면에서도 좋습니다. 프로세서 기술의 문제점으로 꼽히는 입출력 속도 문제도 해결됩니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 3D크로스포인트 메모리의 핵심은 새로운 아키텍처의 등장이라는 점 보다도 이 그림을 실제 칩으로 찍어낼 수 있는 양산 능력이 있느냐에 있습니다.

인텔이 한번 내쳤던 메모리 사업에 다시 뛰어드는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겁니다. 이 이야기는 물론 추측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점점 기술 개발이 어려워지고 수익성이 박해지는 반도체 업계인 만큼, 인텔도 수익성과 효율 두 가지를 놓칠 수는 없을 겁니다. 3D크로스포인트는 그에 대한 좋은 해법이고요. 인텔의 오스틴 공장에는 과연 어떤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 걸까요.

allove@bloter.net

프리랜서 IT 컬럼니스트, 기술과 사람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e메일 work.hs.cho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