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왜 자바 오픈소스SW 매니아가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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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를 찾아서> 여섯번째 손님은 이일민 이프릴 대표(36)다. 강호에선 오픈소스 기반 자바 애플리케이션 개발 프레임워크인 스프링 전문가로 통한다. 개발자 경력은 14년차 정도. 우리나라 개발자 세계의 라이프 사이클을 감안하면  ‘원로급'(?) 엔지니어다. ‘출신 성분’이 프로그래밍 매니아다보니 대학교 시절부터 이런저런 프로젝트에 참여해온 탓이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이일민 대표의 외모는 전형적인 옆집 아저씨 스타일이다. 그러나 살아온 삶은 외모와는 전혀 딴판이다. 한마디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조금 침소봉대하면 살면서 산전수전, 공중전을 모두 겪었다.

변하지 않은게 있다면 앞으로도 계속 자신이 하고싶은 개발 프로젝트를 하면서 살고 싶다는 것. 백발을 휘날리며 개발 현장을 누비는 삶은 그에겐 이룰 수 없는 꿈이 아니라 매우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인 목표다.

이일민 대표는 대학 졸업과 함께 곧바로 창업을 한 경우에 속한다.  취업보다는 창업을 하는게 하고싶은 일을 하는데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벤처라는 말이 생소하기만 했던 지난 96년 어느날의 일이었다. 

그랬던 이 대표는 벤처 열풍이 한창이던 99년, 20대 후반이란 한창 나이에 호주 이민을 결정했다. 그리고 지금은 호주 시민권자가 돼 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민을 결정하게 만들었을까? 그리고 이런 선택은 ‘개발자 이일민’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창업에서 이민을 결정하기까지…

이일민 대표는 전산 전공자는 아니다. 그러나 어릴때부터 프로그래밍에 푹 빠져 지낸 매니아였다.때문에 대학 시절부터 각종 엔터프라이즈 프로젝트에 프리랜서 자격으로 참여, 메인프레임이니 유닉스니 하는 것들을 일찌감치 접해봤다. 되돌아보면 놀라운 경험이었다.

"대학교 3학년때 아르바이트로 대형 고객사  전사적자원관리(ERP) 프로젝트에 참여했어요. 유닉스 기반으로 애플리케이션을 짜는거였는데, 해보니까 무지 재미있더라구요."

당시만 해도 SW하면 PC에서 돌아가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SW매니아였던 이 대표에게도 엔터프라이즈 시스템과의 만남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서버쪽 SW의 매력에 흠뻑 취한 그는  졸업할때까지 계속 프리랜서 자격으로 각종 엔터프라이즈 프로젝트 현장을 누비고 다녔다. 통신 회사가 추진하는 전국구 프로젝트도 다뤄봤다.

이런 프로젝트에서 이 대표가 주로 한일은  막판에 일이 밀릴때 각종 문제점을 해결해주는 것이었다. 이른바 트러블 슈팅. 언제 투입될지 모르는 게릴라 부대같은 팀에 있으면서 그는 정말이지 많은 것을 배웠단다.

"프로젝트 들어갈때마다 공부도 새로 해야했고, 프로젝트를 하면서는 각종 문제까지 해결했습니다. 모든 프로젝트에서 항상 그랬어요. 이를 통해 새로운 기술이 문제를 많이 해결해 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됐습니다."

이때부터 이 대표는 새로운 언어와 기술을 접해보려고 하는 습관이 붙었다. 인터넷을 일찍 접한 것도 그래서였다. 당시만 해도 인터넷은 쉽게 들어갈 수 있는데가 아니다보니 슈퍼컴퓨터를 통하거나  대학 교수들이 쓰는 인터넷 망을 몰래 쓰곤 했다는게 이 대표의 후일담이다.

프리랜서로 바쁘게 지내다보니 어느새 졸업이 코앞에 다가왔다. 이 대표로서도 공부를 계속해야 할지 아니면 취업을 할지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그의 최종선택은 학업도 취업도 아니었다. 바로 창업이었다.

"프리랜서로 참여했던 고객사에서 프로젝트가 끝나고 회사에 들어오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회사에 가면 제가 바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회사를 만드는게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그가 창업한 회사는 홈페이지 및 쇼핑몰 엔진 개발이 ‘주특기’였다. 시작은 괜찮았다. 아이디어를 앞세워  투자도 많이 받았고 회사도 차근차근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IMF가 터지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당시 이 대표는 CD판매 사이트를 직접 열었는데, 음반 유통 업체들이 줄줄이 부도가 나면서 CD를 공급받을 수 있는 길이 막혀버린 것이다.

위기 탈출의 해법은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하는 것이었다. CDMA 휴대폰 솔루션, 네트워크 관리 솔루션, 금융 사이트 개발, SI 프로젝트 등 할 수 있는 것은 마다하지 않는 멀티 플레이어가 돼야 했다. 일은 많은데, 몸이 받쳐주지 못하는 시절이었다. 

그러던 중에 ‘몸’이 기어이 사고를 치고만다. 99년인가, 이 대표가 그만 쓰러진 것이다. 과로 때문이었다. 밤잠을 설치며 프로젝트 7개를 동시에 진행하다보니 몸이 망가질때로 망가져 있었던 것이다.

과로로 쓰러지자 이 대표는 가슴이 철렁했단다.  아무리 재미있는 일을 해도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는 외국에서 좀 쉬며 걸어온 길을 돌아보자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그의 호주행은 이렇게 결정됐다.

그가 호주로 떠난 것은 단지 건강 때문만은 아니었다. 한국 IT업계에 뿌리내린 어두운 관행에 대한 실망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른바 ‘갑과을’ 문화에 당할대로 당하다보니 한국을 떠나 IT쪽일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게 들었던 것이다.

"대형 프로젝트에 들어가려고 하면 실력외 요소들이 너무 많은 영향을 미치더라고요. 제안서 내용이 도용되는 경우도 많고, 대형 SI업체는 말도 안되는 돈을 주면서 수족 부리듯이 하고…"

건강 문제와 말도 안되는 관행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결국 그는 호주로 떠나게된다. 제2의 인생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의 호주 생활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특히 나이먹어서도 엔지니어로 살 수 있다는 것에 많이 놀랐단다.

"호주에선 나이어린 친구들이 그쪽을 공부하고 프로젝트 매니저(PM)일을 하더라고요. 실무는 40~50대 개발자들이 담당합니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 3~5년차 친구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호주 개발자들은 해내는 경우가 많아요."

이일민 대표는 호주에서 건강을 회복했고 시민권도 받았다. 디벨롭게이트라는 IT컨설팅 업체도 세웠다. 그러면서 한국을 왔다갔다하며 각종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에 이프릴을 세운 것은 지난 3월. 국내에서 프로젝트를 할려면 아무래도 법인이 있는게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이프릴은 스프링 등 오픈소스 프레임워크와 관련한 기술 지원이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오픈소스에 눈뜨고 스프링과 인연을 맺다

이일민 대표는 마이크로소프트(MS) 프로그래밍 언어를 하다가 자바로 배를 갈아탄 케이스다. 사실 그는 MS ASP가 개발자 세계에서 외면 당할때부터 ASP에 매력을 느꼈던 몇안되는 개발자중 한명이다. 이를 감안하면 자바로의 그의 변신은 다소 파격적이다.

"2000년대 초반, 자비를 들여 MS 기술 행사에 참가, 이런저런 신기술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3개월만에 MS가 닷넷을 꺼내더라고요. 기존 기술은 문제가 많다고 하는게 충격적이었고, 일관성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MS에 너무 의존한다는 생각도 하게됐죠. 반면 자바는 MS보다는 훨씬 개방적이에요. 썬이 스펙을 만들면 경쟁 관계가 만들어지거든요." MS를 지지했던 이일민 대표는 그 때부터 지금까지 주로 자바쪽에서 활동하고 있다. 물론 지금도 필요하면 닷넷을 활용하지만 무게중심은 여전히 자바쪽이다.

이일민 대표는 자바로 돌아서면서 자연스럽게 오픈소스 SW도 접하게 된다. 이중  오픈소스 웹애플리케이션 서버(WAS) 제이보스는  오픈소스 SW에 대한  이 대표의 생각을 확 바꿔놓았다.

"상용 소프트웨어에 여러번 실망하던터에 제이보스를 쓰게 됐습니다. 평소 오픈소스는 공짜로 쓸수 있는거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제이보스를 보면서 오픈소스가 상용 제품에 뒤질게 없다는 생각을 하게됐죠. 전세계 수많은 사용자들과 커뮤니티가 주도해 만드는 열린 정신을 보면서 오픈소스가 상용제품보다 빠른 속도로 발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하게됐습니다."

제이보스를 써본 것을 계기로 이 대표는 앞으로는 자바 오픈소스에 올인하겠다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오픈소스 SW개발자가 아니라 오픈소스SW를 정말이지 제대로 활용하는 개발자가 되자고 스스로에게 선언한 것이다. 

결정은 곧바로 행동으로 이어졌다. 자신의 대표 브랜드로 통하는 스프링과 하이버네이트를 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스프링은 2003년 알파 버전이 나오고, 2004년께 정식 버전이 공개된 오픈소스 기반 자바 애플리케이션 개발 프레임워크다. 엔터프라이즈 시장을 깊숙히 파고든 대표적인 오픈소스SW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이 대표는 스프링이나 하이버네이트가  나오고 빠르게 발전하는 것을보면서 기능이나 아이디어 면에서 정말 좋다는 확신이 들었단다. 모 중견기업 인하우스 ERP 개발 프로젝트에 스프링과 하이버네이트를 적용하게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둘다 잘 알려지지 않았을때라 위험한 선택이란 지적이 있었는데, 저는 확신이 있었어요. 고객을 강하게 설득했죠. 고객도 결국 한번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자바로 만든 그 어떤 시스템들보다 안정적이고 성능도 뛰어났다. 참여했던 개발자들이 "스프링이 없었을때는 내가 어떻게 개발했을까?"란 말을 할 정도였다. 비용을 많이 아낀 것은 물론이다.

이후 이일민 대표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스프링과 하이버네이트와 관련한 각종 지식과 경험을 알려오고 있다. 최근들어서는 오프라인 세미나도 국내에 열고 있다. 반응은 좋다. 문의도 많고 세미나를 찾는 개발자들도 늘고 있다.

<고수를 찾아서> 이일민 대표 이야기는 대충 여기까지다. 거친 삶이었지만 결과만 놓고보면 크게 아쉬울 것은 없어 보인다. 100%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으니까.

이일민 대표는 이프릴이 자리를 잡게되면 다시 호주로 돌아갈 생각이다. 이후에는 제 3세계 국가들을 돌아다니며 오픈소스SW 적용을 지원해주는 에벤젤리스트 역할도 하고 싶단다. 다음은 이일민 대표와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졸업하자마자 취업 대신 창업을 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학생 신분으로 프리랜서 생활을 할때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고객사에서 끝나고 회사로 들어오라는 제안을 받은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고싶지는 않았어요. 회사에 가면 제가 바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회사를 만드는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창업한거에요. 당시만해도 벤처 투자에 대한 개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갖고 있던 아이디어 보고 많은 분들이 투자를 해줬습니다. 그게 벌써 96년이군요.

그러다가 한국을 떠났는데요.

호주로 떠난게 99년입니다. 한국을 떠날때 다들 말렸습니다. 그러나 저는 미련이 없었어요. ‘이건 아니다’였거든요. 미친듯이 일하다가 건강잃고 무슨소용이 있겠느냐?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이런저런 실망도 많이 들었고요. 외국에 나가서 새로운 세상을 한번 보고 싶었습니다.

MS쪽을 하다가 자바로 바꿨는데요, 특별한 계기는 무엇입니까?

사실저는 MS ASP에 처음부터 매력을 갖고 있었어요. 남들은 MS가 무슨 서버를 만드느냐고 비웃을때도 저는 ASP썼거든요. 나름대로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러다가 나중에 MS에 실망하게 됐습니다. 2000년쯤 자비를 들여서 MS 기술 행사에 간적이 있었어요. 이런저런 기술들을 배우고 왔죠. 그런데 3개월만에 MS가 닷넷을 얘기하더라고요. 닷넷을 말하면서 기존 기술은 문제가 많다고 하는게 충격적이었습니다. 일관성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됐죠. 결국 MS보다 개방적인 자바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필요하면 닷넷을 쓰고 있지만 주로하는 영역은 자바쪽이에요.

자바쪽에서도 특히 오픈소스를 많이 다루고 있잖아요? 오픈소스와의 인연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합니다.

MS에서 자바로 전환하면서 오픈소스가 좋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상용 시스템에 여러번 실망하던 터에 제이보스를 만나면서 오픈소스에 대한 생각 자체를 바꾸게 됐죠. 전에는 오픈소스란게 공짜로 쓸수 있는거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제이보스를 보면서  상용 제품보다 품질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세계 수많은 사용자들과 커뮤니티가 주도해서 만들어나가는 열린 정신을 보며 어쩌면 상용 SW보다 빠른 속도로 발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하게됐어요. 고객사에 직접 적용해보면서 생각은 확신으로 이어졌습니다.

물론 오픈소스SW도  질이 떨어지는게 많습니다. 그러나 톱클래스 오픈소스SW는 상용 제품에 뒤지지 않는 것은 물론 발전 속도와 사용자 피드백도 빨라요. 비용 측면에서 고객사 부담도 적습니다. 이런것을 지켜보며 자바 오픈소스에 올인을 하기로 결정했어요. 오픈소스 개발자보다는 좋은 오픈소스를 잘 사용하는 개발자가 되자고 한거죠. 자바쪽에는 프레임워크 형태로 나온 오픈소스SW가 정말로 좋은게 많습니다. 그러다가 스프링도 알게된거에요.

톱클래스 오픈소스를 꼽는다면 어떤것들이 있을까요?

자바쪽만 보자면 하이버네이트와 스피링 그리고 제이보스가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기술과 비즈니스적으로 모두 성공한 케이스에요. 

스프링의 매력에 푹 빠진 이유는 무엇입니까?

스프링은  2003년 알파 바전, 2004년 정식 버전이 나왔는데, 1년동안 발전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기능이나 아이디어 면에서 정말 좋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세계적인 금융기관에서 일을 했던 사람들이 만들어서인지 정말로 좋았어요. 이에 그 당시로는 매우 과감하게 중견 기업 인하우스 ERP 시스템에 스프링과 하이버네이트를 적용하게 됐습니다. 둘다 잘 알려지지 않았을때라 위험한 선택이란 지적이 있었는데, 수개월간 경험을 통해 저는 확신이 있었거든요. 고객을 강하게 설득했죠 고객도 "한번 해봐라" 하더라고요. 1년간 고생하고 시스템을 오픈했는데, 대성공이었습니다.  자바로 만든 그 어떤 시스템들보다 안정적이고 성능도 뛰어났습니다. 참여했던 개발자들이 스프링이 없었을때는 내가 어떻게 개발했나라는 말까지 나왔어요. 고객 입장에선 비용도 많이 절감했지요.

국내서도 다양한 오픈소스SW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오픈소스 사용 문화는 어떻게 보시나요?

오픈소스쪽에 꽤 유명한 프로젝트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오픈소스가 가진 장점과 상관없이 유행이 되서 쓰이는 경향이 좀 있는거 같아요. 스프링이나 하이버네이트도 사용 용도와 목적에 맞게 써야 하는데, ‘요즘 스프링이 인기있더라’는 생각으로 써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분별하게 적용하다 실패하면 ‘오픈소스는 안돼!’라고 나오는거죠.  오픈소스가 어려운게 뭐냐면 상용 제품은 영업맨이 들어와 체계적으로 설명해주는데, 그게 없는거에요. 오픈소스란게 아무래도 돈벌려고 만든게 아니다보니 문서나 기술 지원해주는 업체들이 부족해요. 고객사 개발자들이 스스로 공부해서 결정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점점 좋아지고 있어요. 해외에선 오픈소스를 지원해주는 업체들의 활동이 활발합니다. 제이보스도 커뮤니티 기반 오픈소스 프로젝트였는데, 나중에는 컨설팅과 교육을 해주는 회사가 만들어졌잖아요? 스프링도 제이보스와 비슷한 경우입니다. 개발한 사람들이 인터페이스21이란 회사를 만들어서 스프링을 잘 쓸 수 있는 방법을 컨설팅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프릴도 그런 업체중 하나에요. 개발 프로젝트는 지양하고 교육과 기술 지원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요즘 웹쪽에서는 한국판 오픈소스 개발 프로젝트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세요?

저는 웹보다는 엔터프라이즈 애플리케이션 개발 관련 오픈소스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와 관련한 프로젝트는 한국에 거의 없는거 같아요.  스프링이나 하이버네이트와 같은 오픈소스 프로젝트는 활발하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럴거 같고요. 

스프링을 활용하며 얻는 노하우를 커뮤니티에 기여도 하는 편인가요?

해야하는데 그동안 많이 못했습니다. 영어권에서 사는데도 확실히 커뮤니케이션하는데는 부담이 큽니다. 네이티브가 아니니까요. 뭐좀 할려고 하면 영어로 해야 하는데 스트레스가 아직은 있습니다. 물론 한국 사람 특유의 쑥스러움탓도 있겠죠. 오픈소스SW 개발에 참여하는 것은 배짱이나 확신이 있어야합니다. 만천하에 공개하는 거잖아요? 사람들이 코드를 보고 평가를 하는데 부끄러움을 타거나 자기꺼 공개하는게 힘든 사람은 쉽지 않습니다. 저도 그런편이어서인지 쉽지는 않더라고요.

후배들 만나면 주로 어떤 얘기를 하시나요?

현실을 바꾸는게 쉽지는 않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어린데도 개발에서 손을 떼야 하는 위치에 올라선 사람도 있고요. 직업을 바꾸라고 할수도 없고…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는 개발못한다고 해도 개발을 버리지 않고 취미 생활로는 할 수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자기가 하고싶은 개발 업무를 하기 위해 프리랜서로 뛰는 사람들도 있고요. 적어도 10년전보다는 나이먹고 개발을 계속할 가능성은 높아졌습니다. 30대 후반에도 개발일을 계속할 수 있는 회사들도 늘어났습니다. 제가 시작할때만 해도 30대 초반이면 개발에서 손을 떼야 했거든요. 40대 개발자들은 손가락질을 받던 시절이었습니다.

다시 시작해도 창업을 하실건가요?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회사에 들어갈 겁니다. 스프링 개발팀으로 구성된 인터페이스21이라면 들어갈 마음이 있어요.(웃음) 그러나 대기업이라고 해서 무조건 들어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자유롭게 일하고 컨퍼런스 같은데도 편하게 다니고 싶거든요.

향후 계획은 무엇입니까?

IT쪽은 해볼만큼 해봤습니다. 돈도 벌었고, 기술적인 만족감도 얻었고요. 앞으로는  세계 여러나라를 다니면서 오픈소스 관련해 지원을 해주거나 에벤젤리스트와 같은 역할을 많이 하고싶어요. 특히 제3세계 국가에서 이런일들을 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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