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 소통 돕는 스마트안경 ‘쉐어타이핑 글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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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는 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연결해주는 중요한 요소다. 만약 비장애인이 말하는 모든 소리가 문자로 실시간으로 변환된다면 어떨까? 소리를 글자로 읽으면서 청각장애인은 더 많은 사람과 의사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청각장애인과 개발자는 이 기술을 실제로 구현하고 있다. 실시간 자막을 볼 수 있는 스마트 안경 ‘쉐어타이핑 글래스’ 이야기다.

실시간 자막 공유+스마트안경=쉐어타이핑 글래스

쉐어타이핑 글래스는 ‘쉐어타이핑’을 스마트 안경에 적용한 솔루션이다. 쉐어타이핑은 사회적협동조합이자 서울시 지정 공유기업인 에이유디가 개발했다. 쉐어타이핑은 웹과 모바일에서 작성한 글을 같은 채팅방에 접속한 사람이 실시간으로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구글 문서도구’와 비슷한 서비스이지만 쉐어타이핑은 일반 협업도구보다 문자가 입력되는 속도가 빠르다. 또한 수천명의 사람이 동시 접속해도 속도가 느려지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에이유디는 기술 뿐만 아니라 속기사와 청각장애인을 연결해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쉐어타이핑은 현재 강연회, 공청회, 세미나 등에서 활용되고 있으며, 청각장애인이 비장애인과 어울리면서 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모바일과 웹에서 볼 수 있었던 쉐어타이핑은 이제 스마트안경으로 확대됐다. 현재는 시험판으로 공개됐다. 실제 쉐어타이핑 글래스를 착용해보니, 사람의 얼굴 밑에 마치 자막처럼 실시간으로 글자가 입력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에이유디는 “사용자에 따라 글자가 보이는 위치를 멀리 혹은 가까이 조정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쉐어타이핑 글래스 데모영상 바로보기

쉐어타이핑 글래스는 박원진 에이유디 이사장이 생각해냈다. 박원진 이사장은 청각장애인이다. 그는 소리를 미세하게 들을 수 있는 정도여서, 평소엔 상대방 입모양을 보고 의사소통을 한다. 어릴 때도 비장애인 친구들과 문제없이 의사소통할 수 있었다. 그래도 많은 사람과 동시에 이야기하는 회의 시간에는 의사소통을 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어렸을 때 학급 회장으로 뽑혀서 교탁 앞에서 회의를 진행했어요. 그런데 친구들의 얼굴이 멀리 있어서 입모양이 잘 안보이더라고요. 그때 ‘친구들이 말할 때 입술 밑에 글자가 보였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죠. 그 아이디어가 확장돼 쉐어타이핑 글래스가 된 거예요. 사실 소통할 때 가장 좋은 것은 사람의 얼굴을 보고 말하는 것이거든요. 이전에 쉐어타이핑은 휴대폰이나 PC 화면을 계속 봐야 했는데요. 쉐어타이핑글래스 덕분에 사용자는 발표자의 얼굴만 보고도 자연스럽게 강연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하는 내용도 읽고, 발표 자료도 동시에 볼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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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유디와 씨온드림이 공동 제작한 ‘쉐어타이핑 글래스’

“누군가를 돕는 기술을 만들고 싶어요”

쉐어타이핑 글래스의 실질적인 기술 개발은 씨온드림이 맡아서 했다. 씨온드림은 모바일, 사물인터넷과 관련된 소프트웨어, 하드웨어를 개발하는 벤처기업이다. 에이유디과 협력하기 이전에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비콘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지인을 통해 에이유디의 아이디어를 듣고 쉐어타이핑 글래스 개발에 동참했다. 윤석진 씨온드림 대표는 “20년 넘게 개발자로 살아왔고 2011년 씨온드림을 창업해 운영하고 있다”라며 “개인적으로 항상 ‘누군가를 돕는 기술을 만들자’라는 가치관이 있었고, 에이유디 아이디어가 의미 있어 보였다”라고 설명했다.

쉐어타이핑 글래스를 만들 때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일까. 일단 스마트안경을 구하는 것이었다. 에이유디와 씨온드림은 스마트안경 자체를 직접 만들지 않고, 기존 제품을 이용하려 했다. 스마트안경으로 유명한 구글글래스는 한국에서 쉽게 구할 수 없었다. 박원진 이사장은 “기회가 있어서 구글 글래스를 착용해 본 적 있으나, 가격이 비싸고 눈의 피로감도 높았다”라고 말했다. 두 회사는 한국, 중국, 일본, 이탈리아에서 개발되는 스마트안경을 조사했다. 그러던 중 최근 출시된 소니의 스마트안경이 가격대비 성능이 괜찮아 시험 제품으로 이용했다.

윤석진 대표는 “소니 스마트안경이 아직 한국에 출시되지 않은 제품이라 환경설정을 조정하고 개발자 도구 등을 이용하는 게 쉽지 않았다”라며 설명했다. 현재 두 회사는 일부 테스트과정에서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사용자도 있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한다. 시력이 안좋은 사용자가 이용할 수 있는 방법도 찾아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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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진 씨온드림 대표(왼쪽)과 박원진 에이유디 이사장이 쉐어타이핑 글래스를 테스트하고 있다.

에이유디와 씨온드림은 12월에 쉐어타이핑 글래스를 공식 판매할 계획이다. 사실 시험판처럼 소니 스마트안경을 활용한다면, 가격은 약 100만원이다. 개인이 구매하기 비싼 편이다. 그래서 지금은 여러 스마트안경 업체와 협력을 모색하며 가격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 윤석진 대표는 “실시간 자막 플랫폼만 이용되도록 기능을 최소한만 넣는 것도 방법을 찾고 있다”이라며 “카메라 기능을 없애 개인정보를 침해하는 위험도 없앨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박원진 이사장은 “초창기는 에이유디가 미리 스마트안경을 구입해 필요한 곳에서 대여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라며 “향후 가격을 낮추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게 보급하고 싶다”라고 설명했다.

미래 목표는 음성인식과 스마트안경의 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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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적으로 청각장애인을 위한 스마트안경 기술은 찾기 힘들다. 윤석진 대표는 “일부 기업이 문화 예술 공연에서 한글 자막을 볼 수 스마트안경을 개발하고 있다”라며 “하지만 실시간으로 원하는 글자를 출력할 수 있는 스마트안경은 거의 없다”라고 설명했다.

에이유디와 씨온드림은 최근 음성인식 기술에도 관심을 두고 투자하고 있다. 현재 쉐어타이핑 글래스는 사용자 외에 누군가가 타이핑을 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콘텐츠를 보여줄 수 있다. 만약 음성인식이 사람의 말을 자동으로 인식하고 안경 화면에 뿌려주면 어떨까? 청각장애인은 외부 도움 없이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박원진 이사장은 “쉐어타이핑 글래스와 음성인식이 결합되면 일단 병원, 동사무소 같은 장소같은 장소처럼 짧은 대화를 나누는 곳에서 아주 유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에이유디는 기술을 만들 때 유니버셜 디자인 철학을 중요시한다. 유니버셜 디자인이란 청각장애인에게만 필요한 기술이 아니라, 누구나 보편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디자인 설계 철학이자 방법론이다. 다시말해 에이유디는 청각장애인만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을 만들기보다 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에게 유용한 기술을 만들려고 한다. 박원진 이사장은 “쉐어타이핑 글래스는 의사소통을 하는 모든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며 “영화, 연극, 뮤지컬 관람 때도 활용될 수 도 있고, 해외에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에이유디와 씨온드림의 시도를 보고 더 많은 분이 장애인을 위한 기술 개발에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혹시 스마트안경이나 음성인식 기술을 개발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함께 협력하고 싶어요. 앞으로 청각장애인뿐만 아니라 시각장애인, 지체장애인 등을 위한 기술개발을 하는 곳이 있다면, 정부나 기업이 지원을 더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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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진 씨온드림 대표(왼쪽)과 박원진 에이유디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