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아이폰’의 등장은 휴대폰이 스마트폰으로 바뀌는 계기가 됐다는 의미가 먼저 떠오르긴 한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앞서 따져봐야 할 것은 통신 시장의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이다.

아이폰이 들어오던 2009년의 통신 시장을 먼저 되돌아보자. 일단 당시 이동통신사의 영향력은 매우 막강했다. 통신사는 망을 제공하기도 했지만 단말기를 유통하는 유일한 창구였기 때문에 시장의 ‘절대 갑’이었다. 모든 단말기는 말 그대로 통신망을 가장 잘 활용하기 위한 기술들과 발을 맞춰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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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피(WIPI) : 국내 모바일 인터넷의 표준 플랫폼이었다. 애초 시작은 단말기 제조사별로, 통신사별로 제각각인 인터넷 표준을 통합하겠다는 것에서 시작했다. 앱과 서비스 개발의 낭비를 줄이는 대안이 됐다. 하지만 이 위피가 강제화되면서 국제 표준과 외산 단말기의 도입을 막는 장벽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외산 휴대폰은 위피를 적용하거나, 아니면 출시하지 못했다.

* 무선랜, 비싼 통신요금 : 통신 단말기는 각 통신사의 망에만 접속해야 했다. 휴대폰에는 무선랜이 들어가지 않았고, 스마트폰도 무선랜이 자유롭진 않았다. 그렇다고 통신 요금이 싸지도 않았다.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비쌌던 게 당시 셀룰러 통신망이었다. 애플도 중국 시장에는 무선랜이 빠진 아이폰3GS를 팔긴 했지만 국내에는 정상 제품이 들어왔다.

* 통신사 로고 : ‘추노마크’라고도 부른다. 제조사들은 단말기의 앞이나 뒤나 어딘가에 반드시 통신사의 로고를 심어야 했다. 이건 지금도 달라지지 않아서 단말기의 외관만 봐도 어느 통신사를 통해 유통된 것인지 알 수 있다.

아이폰의 도입은 이 세가지를 모두 뒤집어 엎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전용 요금제와 관련 약정 프로그램이 필요했고, 그 통신 요금 체계는 기존 패킷당 요금을 받던 통신사로서는 파격적인 일이었다. 영화 한 편 잘못 봤다가 1백만원짜리 요금 고지서를 받아보는 게 흔했던 때였는데 4만5천원에 500MB를 쓰는 요금제를 선택하는 것도 쉽진 않았다.

2009년 ‘아이폰3GS’

무엇보다 위피 관련 법이 풀려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이지만 삼성전자를 비롯한 윈도우 모바일 기반의 스마트폰에는 앱 기반의 위피가 들어갔다. 하지만 결국 아이폰을 비롯해 여러 제품에 대한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2009년 4월에 폐지됐다. 위피의 폐지 자체가 아이폰의 도입으로 연결되면서 소문을 무성하게 낳았다. KT가 아이폰을 내놓는다는 소문은 무섭게 퍼졌지만 애플과 KT는 출시를 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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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009년 11월28일, KT는 아이폰을 출시했다. 하도 ‘다음달 출시’라는 루머와 기사가 많이 나온 탓에 ‘담달폰’이라는 애칭을 얻었다. ‘담달이 아니라 내년’이라는 분위기가 잡힐 때쯤 출시됐다. 아이폰 도입은 3G 시장의 점유율을 높이려는 KT의 전략이기도 했다. 기존 틀로는 SK텔레콤 주도의 시장 분위기를 뒤엎을 수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또한 애플의 전략 역시, 시장 2위 사업자들과 손잡는 것이었다. 2위 사업자는 1위 사업자보다 결정이 유연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첫 아이폰은 ‘아이폰3GS’와 ‘아이폰3G’다. 아이폰3G가 들어왔다는 사실은 잘 안 알려졌는데 당시 아이폰3G는 저장공간이 8GB인 저가 모델로 출시됐다. 전 세대 제품을 싸게 파는 것은 애플의 제품 전략이기도 하다. 자연스레 소비자들은 ‘아이폰3GS’를 구입했고, 아이폰3G는 희귀품이 됐다.

아이폰3GS의 인기는 대단했다. 열흘 만에 10만대를 넘겼다는 소식이 나왔다. 특히 아이폰을 구입하기 위해 타 통신사에서 KT로 넘어가는 소비 패턴도 일어났다. 시장을 주도하는 SK텔레콤과 삼성전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대안은 옴니아 뿐이었다.

2010년 ‘아이폰4’

아이폰은 하나의 현상이 됐다. 2010년 삼성전자가 ‘갤럭시S’를 출시하기 전까지 기존 국내 시장은 속수무책으로 밀려났다. 2010년 9월 출시된 아이폰4는 그야 말로 난리를 일으켰다. 아이폰4의 예약 페이지는 다운이 됐고, 정확한 예약자의 수가 공개되진 않았지만 수십만 단위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아이폰을 배송하는 택배는 전쟁을 치렀고, 아예 우체국에 가서 직접 택배를 찾아오는 이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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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4의 경우 논란도 많았다. 아이폰4는 디자인이 파격적으로 바뀌었는데 디자인 자체가 유출되기도 했다. 애플의 직원이 테스트용 아이폰4를 분실했는데 기즈모도가 이를 입수해 기사를 썼다. 애플은 강력하게 대응했지만 결국 애플 이벤트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신비감’을 망가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폰4에는 해상도가 4배 높아진 ‘레티나’ 디스플레이가 적용됐고, 성능도 크게 좋아졌다. 애플은 이때부터 A 시리즈 프로세서를 쓰기 시작했고, 아이폰OS라는 이름을 iOS로 바꾸기도 했다. 새 iOS에는 인터넷을 이용한 화상 통화 프로그램인 ‘페이스타임’과 메시징 앱인 ‘아이메시지’가 녹아들기도 했다.

2011년 ‘아이폰4S’

2011년 5번째 아이폰인 아이폰4S가 출시됐다. 발표는 10월, 국내는 3차 출시국으로 분류되어 11월11일부터 판매됐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4S 발표 직후 세상을 떠나면서, 아이폰4S가 스티브 잡스의 손을 거친 마지막 제품이라는 의미도 부여됐다.

국내에서는 KT뿐 아니라 SK텔레콤도 아이폰을 팔기 시작했다. SK텔레콤은 여러가지 이벤트를 벌였는데 특히 출시일 0시에 발표행사를 열었다. 제품은 아침에 공급됐기 떄문에 결국 밤을 새는 이벤트가 됐고, 이후에도 SK텔레콤은 비슷하게 행사를 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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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4S의 가장 큰 특징은 음성 비서 ‘시리’였다. 음성인식 기술이 휴대폰에 처음 도입된 것은 아니었지만 이름을 붙이고,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호기심을 끌었다. 하지만 초기 시리는 한국어를 하지 못했다.

아이폰4S는 A5 프로세서를 썼다. 안드로이드는 1GHz를 넘는 칩이 대중화됐는데 애플은 800MHz대 프로세서로도 충분했다. 대신 A5 프로세서는 듀얼코어 프로세서였다. 애플은 기존보다 두 배 빨라졌다고 밝혔고, GPU 성능은 7배나 빨라졌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내 시장의 반응은 조금 사그라들었다. 아이폰3GS, 아이폰4를 거치며 소비자들은 아이폰의 큰 변화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아이폰4S는 디자인이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사실 아이폰의 2년 주기 폼팩터는 이때부터 자리를 잡기 시작했는데, 바뀌지 않은 디자인이 기존 제품과 차이가 없다는 분위기도 돌았다.

또한 삼성전자의 갤럭시가 큰 화면과 높은 스펙으로 연일 ‘아이폰 대항마’로 언급되면서 인기를 끌었다. 특히 아이폰3GS의 약정이 끝난 소비자들이 화면 큰 안드로이드로 옮겨가면서 아이폰의 점유율을 끌어갔다.

2012년 ‘아이폰5’

아이폰이 드디어 3.5인치 화면을 버렸다. 2012년 9월 출시된 아이폰5는 16대9의 비율에 1136×640 픽셀 해상도로 출시됐다. 화면 크기는 4인치이고 픽셀 밀도는 324ppi로 기존과 똑같다. 결과적으로 새 디스플레이는 세로로 아이콘 한 줄 만큼 늘어났다.

화면 크기가 길어지면서 한 눈에 보이는 정보가 늘어났고, 가로가 긴 HD 영상 콘텐츠가 대중화되면서 영상을 보기에 매우 유리해졌다. 또한 A6 프로세서는 게임 성능이 크게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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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5는 아이폰으로서는 처음으로 LTE를 도입했던 제품이기도 하다. 알루미늄 유니바디로 더 얇고 단단해졌다. 특히 터치 센서를 LCD에 품는 ‘인 셀 디스플레이’를 써서 디스플레이 표면에 화면이 더 가깝게 보였다.

전반적으로 아이폰5는 디자인 변화와 디스플레이에 초점이 맞았지만 국내 시장은 조금 달랐다. 스마트폰이 영상 콘텐츠와 게임용 기기로 자리잡은 국내 시장에서 이미 5인치대를 넘보기 시작한 안드로이드폰의 영향력이 빠르게 커지던 게 2012년이다.

2013년 ‘아이폰5S’

아이폰5S는 2013년 9월10일 발표하고, 9월20일에 출시됐다. 국내에는 10월25일, 2차 출시로 판매를 시작했다. 아이폰5S는 ’S’ 라인 제품으로 아이폰5와 디자인이 거의 같았다. 하지만 기기적으로는 가장 큰 변화를 품은 아이폰이기도 하다.

가장 눈에 띈 부분은 ‘터치ID’다. 지문 인식 기술 역시 휴대전화에 처음 쓰였던 것은 아니지만 문지르는 방식 대신 대는 것만으로 풀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주목을 받았다. 홈 버튼으로 전원을 켜는 것 자체가 편리해졌고, 지문이 스마트폰의 보안책으로 쓰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시키기도 했다. 터치ID의 정보는 A7 프로세서에 직접 보관하고, 외부에서 지문 데이터에 접근하지도 못하고, 온라인 어디에도 보관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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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변화는 64비트의 전환이다. A7 프로세서는 ARM v8 명령어 세트를 이용해 64비트 메모리 어드레스를 처리할 수 있게 됐다. 64비트의 가장 큰 혜택은 더 큰 메모리를 쓸 수 있다는 것인데 애플은 당장 메모리를 늘리지는 않았다. 서서히 앱 생태계를 전환하기 위한 초석 정도로 볼 수 있다.

또한 M7 보조 프로세서를 통해 센서를 별도로 제어하는 것도 아이폰5S에서 처음 도입됐다. 아이폰 역사상 내부적으로 가장 크게 변화한 제품이다. 하지만 역시 국내에서는 큰 화면에 대한 요구가 컸기 때문에 점유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지는 못했다. 국내 시장 분위기 자체가 2014년에 접어들며 정체기에 이르렀던 것도 영향을 끼쳤다. 보조금 전쟁은 극을 향해 달리고 있었고, 무시무시한 단통법이 10월 발효를 앞두고 있었다.

2014년 ‘아이폰6’

애플은 2014년 9월9일 새 아이폰을 발표한다. 출시 전부터 디스플레이가 달라진다는 소문이 돌았고, 그 소문은 거의 맞아 떨어졌다. 애플은 4.7인치 아이폰6와 5.5인치 아이폰6플러스를 꺼내든다.

두 제품은 모두 A8 프로세서를 품었고, 화면 크기와 해상도에만 차이를 두었다. 아이폰6는 1334×750 픽셀, 아이폰6플러스는 1920×1080 해상도를 냈다. 화면이 커진 게 뭔 큰 일인가 싶기도 하지만 아이폰 이용자들이 가장 필요하다고 요구했던 것이 바로 큰 화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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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보니 큰 화면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이미 시장은 큰 화면에 익숙해져 있었고, 아이폰도 늦긴 했지만 그 요구에 맞춘 화면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애플이 고집스럽게 고수했던 한 손 터치는 사실상 물 건너간 게 됐지만 애플은 여전히 한 손으로 아이폰을 쓸 수 있도록 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홈 버튼을 두 번 두드리면 화면 윗 부분이 말려 내려오는 것이었는데 어차피 이 정도 크기라면 두 손을 쓰는 게 당연하다.

A8 프로세서의 성능은 더 좋아졌다. 특히 열 문제를 해결해 스마트폰이 뜨거워지면 CPU의 작동 속도를 떨어뜨리는 쓰로틀링을 없앴다. 게이머들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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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초기에는 커진 아이폰에 힘을 주면 휜다는 ‘밴드 게이트’, 낸드 플레시 메모리가 제품에 따라 MLC와 TLC가 섞여 있는 것에 대한 낸드플래시 논란도 있었다.

새 아이폰은 세계적으로도 그렇지만 국내에서 큰 반응을 보였다. 아이폰을 망설이게 했던 요소가 화면 크기였다는 것을 반증하듯 이전과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특히 아이폰 출시 직전에 시행된 단통법이 국산 스마트폰에게는 독으로 작용한 반면, 아이폰에게는 큰 기회가 됐다. 원래부터도 아이폰에는 큰 폭의 보조금이 없었고, 아이폰은 나중에 중고로 팔아도 값이 많이 안 떨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가격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팬층의 구매도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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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IT 컬럼니스트, 기술과 사람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e메일 work.hs.cho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