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혁신의 그늘, 노동 종말과 착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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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인간과 공존하는 바람직한 방향은 바로 문제를 해결하는 일일 것이다. 눈앞의 불편을 인식하고, 이를 기술로 풀어보려는 시도가 그것이다. 수많은 기술이 탄생한 이유이기도 하고, 엔지니어가 갖춰야 할 덕목이기도 하다. 이 중 세 가지 영역에서 기술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풀어봤다. <블로터> 창간 9주년 기획 중 하나다. 도시와 노동, 그리고 사회가 주인공이다. 향후 기사는 다음 순서로 연재될 예정이다.

① 홍수·교통량·재난 예측…도시, 스마트를 품다
② 기술이 뒤바꾸는 인류의 노동과 과제
③ 기술로 접근하는 사회문제 해법

2013년 1월, 미국의 한 IT 업체에서 일어난 한 편의 시트콤 같은 사건이 국내외 개발자 사회를 들끓게 했다. 사건의 경위는 이렇다. 미국의 한 IT 업체에서 근무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자신의 일을 싼값에 중국 개발업체에 맡겨버린 것이다. 그 개발자는 중국 개발업체에 자신의 연봉 중 5분의 1 정도에 해당하는 돈을 주고도 썩 훌륭한 외주 결과물을 받아들었다. 그는 이 작업물을 자신의 것으로 포장해 회사에서 요구한 성과를 완벽히 달성했다. 사건이 표면화되기 전까지 이 개발자는 몇 년 동안 같은 수법을 썼다. 말하자면, 혼자서 수년 동안 중국의 SI 개발팀을 이끌며 정작 자신은 회사에 출근해 월급만 축낸 것이다.

이 사건은 오늘날 기술사회가 가진 두 가지 상반된 특징을 모두 보여준다. 노동 환경은 기술의 도움으로 혁신을 거듭해왔다는 점과, 기술이 노동의 불평등을 심화한다는 점이다. 기술이 노동에 스며들 때, 인간의 노동은 기술과 어떻게 공존하는지 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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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eel Center, 2010, 09, CC BY 2.0

자본∙지역 장벽 허무는 기술의 혁신

노동현장은 기술의 도움으로 손쉽게 바다를 건널 수 있게 됐다. 기술 앞에서 국경은 무의미하다. 기술은 노동자가 유연하고 자유로운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돕기도 했고, 결정적으로 노동생산성 증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3D프린터는 기술업계의 최대 화두다. 3D프린터는 주로 플라스틱 소재의 원료를 마치 잉크젯 프린터처럼 뽑아 입체적인 모형을 완성하는 기술이다. 종이에 글씨를 쓰듯, 3D프린터는 플라스틱으로 물체를 만든다. 지금은 주로 소규모 ‘메이커스 무브먼트’에 참여하고 있는 개인 개발자나 제조기업의 시제품 모형 생산에 쓰이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3D프린터 기술이 보급될수록 인류의 노동 혁신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게 3D프린터에 담긴 미래의 담론이다.

3D프린터는 노동 소외계층의 노동시장 진입을 돕는다. 이 같은 주장은 3D프린팅 기술이 생산수단을 점유해 자본을 독점하다시피 한 기존의 자본시장 구조를 깨고 생산의 민주화를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과 상통한다. 문화콘텐츠 영역에서 3D프린팅 기술의 ‘노동혁신’ 가능성에 주목하는 이들도 많다. 노동력의 집약으로 유지되는 일부 문화산업 영역에서 3D프린팅 기술이 생산 주도권을 뒤흔드는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인형을 만드는 일이나 무대 소품을 디자인하는 일 등이 대표적이다. 기존에는 고도로 숙련된 제작자가 완성품의 원형을 직접 손으로 제작해야 했다. 이렇게 만든 원형에 틀을 세우고, 이 틀을 활용해 인형이나 소품을 생산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었다. 숙련가가 되기 위해 오랜 시간과 노력이 투자돼야 했음은 물론이다. 3D프린팅 기술은 지난한 과정을 대폭 압축한다. 컴퓨터의 3D 모델링 도구가 손을 대체하고, 원형으로 모형을 완성하는 과정도 3D프린터로 짧게 줄일 수 있는 덕분이다.

이를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방법은 또 얼마나 쉬운가. 컴퓨터로 제작한 3D 모델은 각종 공유 플랫폼을 통해 전세계 사용자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다.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는 대신 간단히 3D프린터로 제작할 수 있고, 이를 다른 이들과 나누며 생태계 확산에도 기여할 수 있다. 3D프린터로 다양한 아이디어를 빠른 시간 안에 실험해 실제 창업에 나서는 이들도 적잖다. 3D프린팅 기술을 ‘제3의 산업혁명’이라고 부르는 까닭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 같은 사례는 얼마든지 들 수 있다. 심지어 게임 개발 업계에서도 같은 움직임이 있다.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 값비싼 게임 제작 엔진에 투자하는 것은 과거 게임 개발의 일반적인 풍경이었다. 이 엔진을 활용하는 엔지니어의 높은 기술적 능력도 요구됐다. 지금 많은 게임 개발 엔진이 무료로 선회하는 중이다. 게임 제작 초기 큰 비용을 투자하지 않아도 되니 개인 개발자나 소규모 게임 개발 스튜디오가 게임 개발에 도전하는 추세다. 유니티 엔진이 그렇고, 모바일게임 개발 시장이 그러하다. 게임 제작 엔진 ‘유니티’를 만든 유니티테크놀로지는 이를 ‘게임 개발의 민주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기술의 도움이 그리는 미래 노동환경에서는 누구나 자본 소유의 주체인 동시에 구매자가 될 수 있다.

출처 : 플리커 CC BY Ivan David Gomez Arce

Ivan David Gomez Arce, 2011, 06, CC BY

노동의 종말과 착취, 기술의 이면

기술이 그리는 노동의 미래가 마냥 장밋빛일 수만은 없다. 과거 산업혁명 시절 자본의 집중이 노동을 지배한 것처럼, 기술의 집중은 노동자와 자본 사이의 계층을 공고히 한다. 고도화되고 소형화한 기술이 노동자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 사용자의 감시 체제를 벗어날 수 없도록 한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당장 주변을 둘러봐도 e메일과 카카오톡 때문에 24시간을 업무에 매달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기술 발전이 불러올 암울한 미래에 두 가지 시선이 교차한다. 하나는 기술과 일자리 감소에 관한 문제고, 다른 하나는 기술의 노동착취와 관련한 우려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노동자의 일자리 감소 문제는 어제오늘 나온 얘기는 아니다. 디지털과 연결, 공유가치를 쫓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기업과 자본의 효율은 떨어지고, 결국 노동자의 고용창출 효과도 감소할 것이라는 우려다. 자연스럽게 일자리감소 문제는 제조업 기반의 업계로 쏠리기 마련이다. 지난 2013년 맥킨지가 발간한 ‘파괴적 기술: 삶과 비즈니스, 글로벌 경제를 발전시키는 변화’ 보고서는 3D프린터를 파괴적인 기술의 하나로 꼽으며 제조업 일자리와 일부 전문직종의 일자리도 감소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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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가속화하는 ‘노동의 종말’에 많은 학자가 동의한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학교 교수는 2013년 6월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새로운 산업에서 중요한 것은 적절한 투자일 뿐 노동력이 아니다”라며 “노동을 제공하는 측이 훨씬 작은 부분을 가져가는 현상이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일자리의 감소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중국처럼 제조산업을 경제의 주요 동력으로 삼는 나라가 특히 심각하다. 자본은 앞으로 생산현장에 지속적인 비용을 투입해야 하는 기존 생산인력 대신 기술의 힘을 빌려 비용 절감을 계획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앞서 소개한 3D프린터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제레미 리프킨도 그의 책 ‘노동의 종말’을 통해 기술이 점차 소거해 갈 미래의 일자리 문제를 경고한 바 있다. 기사를 쓰는 로봇을 상상해본 적 있는가. 혹은 전자제품 매장에서 직원 대신 정확하고 빠른 정보로 무장해 고객을 응대하는 로봇은 또 어떠한가. 그것도 아니라면, 인터넷으로 구입한 물건을 집 앞까지 배송해 줄 하늘을 나는 그 무엇에 관해서는 생각해 본 적 있는가. 구글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자율주행자동차 기술을 시험하는 시대가 아닌가. 네트워크와 기계학습 등 다양한 기술 덕분에 인간을 대체하는 기술은 현실화를 목전에 두고 있다. 과거 ‘기계’가 인류를 육체노동에서 해방시켰다면, 지금의 ‘기술’은 인간의 정신노동에까지 간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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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버’

‘인간성’ 회복과 노동시장의 질서 재정립 절실

다시 제레미 리프킨의 말로 돌아가 보자. 제레미 리프킨은 노동 종말의 대안으로 제3부문을 꼽았다. 제3부문은 비영리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 전반을 말한다. 제레미 리프킨은 경제와 노동 영역에서의 인간성의 회복을 주문한다. 기술사회를 견디는 노동시장에 새로운 질서를 주문하는 목소리도 높다. 우버 사례가 대표적이다. 우버는 우버 파트너 운전자가 마치 택시 서비스를 하는 것처럼 스마트폰을 이용해 운영되는 서비스다. 우버는 여기에 사용자가 운전자를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 평판은 운전자의 소유가 아니다. 운전을 하는 이들이 아닌 기술을 구현한 우버의 자산이다. 우버는 노동자의 노동으로 얻는 긍정적인 평가를 동력 삼아 사업을 지속하면서도 우버 시스템 아래에 있는 운전자들은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게 된다. 우버라는 서비스 주체인 우버와 운전자인 노동자 사이에 극심한 불평등이 벌어지고 있는 꼴이다.

“서비스의 평가를 소유하는 주체가 노동의 결과물이 돼야 하는데, 이 평가가 중계 서비스 업체의 몫이 되면 노동자는 정당한 대우를 받기 어려워지죠. 서비스의 종속성이 심해질수록, 중계자 역할만 하고 고용자의 역할은 하지 않는 서비스가 문제가 될 것입니다.”

기술사회에서 노동시장의 질서가 다시 정립될 필요가 있다는 강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 연구소 소장의 의견이다. 기존 노동환경 구조와 전혀 다른 맥락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기존 구조는 업체가 명확하고, 노동자의 쟁의 대상이 구체적이었다면, 우버의 평판 시스템은 노동자의 조직이 어디인지 희석한다. 우버 운전자는 개인인가, 아니면 우버의 직원인가.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은 일단 우버 운전자가 우버를 상대로 낸 단체소송을 받아들였다. 우버 운전자 3명이 노동조건과 의료보험 혜택과 관련해 우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는데, 이를 인정한 것이다. 이번 법원의 판단에 따라 기술사회 다양한 노동형태를 재정의하는 데도 큰 영향이 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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