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특허를 공짜로 푸냐고? 벤클러를 만나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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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소스’나 ‘해커톤’ 등을 주제로 종종 공무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곧잘 이런 질문이 되돌아온다. “왜 이런 걸 하나요? 돈이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이럴 때 늘 난감함에 봉착한다. 질문이 틀려서가 아니다. 오히려 자연스럽다. 인풋이 있으면 당연히 금전적 아웃풋이 뒤따라야 하는 보편적 경제관념에서 볼 때 전혀 어색하지 않은 질문이다. 단지 답변하기가 쉽지 않을 뿐이다.

또 다른 풍경도 있다. 한 지인은 미국에 있는 딸의 숙제를 구글문서로 함께 수정하고 다듬는다. 아빠는 한국에서 스마트폰으로, 딸은 미국에서 노트북으로 학교 숙제를 함께 풀어간다. 대화가 필요하면 아이폰의 페이스타임으로 통화한다. 불과 10년 아니 20년 전이라면 상상도 못해봤을 일이다. 이제 수천 km의 물리적 거리 따위는 더 이상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아빠와 딸 간의 ‘숙제 협업’은 네트워크로 연결된 정보사회의 보편적 풍경이 되고 있다.

요하이 벤클러.(출처 : 위키피디아, Joi ito, CC BY 2.0)

요하이 벤클러.(출처 : 위키피디아, Joi ito, CC BY 2.0)

위 두 가지 사례 속엔 ‘동료 생산’ 혹은 ‘동등계층생산'(Peer Production)이라는 키워드가 함축돼있다. 테크놀로지로 무장한 개인들이 동등한 조건과 관계 속에서 협력하며 대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일컫는 용어다. 이 동료 생산이라는 개념을 창안한 이가 바로 요하이 벤클러(Yochai Benkler)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다.

요하이 벤클러는 국내 학자들 사이에선 꽤나 알려진 이론가다. 2006년 출간된 ‘네트워크의 부’는 구글 학술검색 통계로 6500여회가 인용될 정도로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비슷한 해에 출간된 로렌스 레식 교수의 ‘코드’나 ‘자유문화’에 비해서도 월등히 높다. 제러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과 비교해도 2배가 넘어서는 인용횟수다. 반면 일반인들에겐 그의 이름이 낯설다. ‘펭귄과 리바이어던’, ‘네트워크의 부’가 번역돼 국내에 소개되긴 했지만 그의 학문적 명성만큼 잘 알려지진 않았다.

네트워크의 부(The Wealth of Network) vs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

wealthnetworks올해 국문으로 번역된 요하이 벤클러의 ‘네트워크의 부’는 그의 지적 결정체다. 800여쪽에 달하는 이 한 권의 책을 써내기 위해 10년이라는 시간과 땀과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이를 위해 벤클러는 1990년대 중후반부터 ‘아고라포비아 극복하기’, ‘공유지에서의 자유’, ‘공유지 기반의 동료생산과 미덕’와 같은 논문을 발표하며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

‘네트워크의 부’는 기존 경제, 정치의 보편 이론들에 대해 도발적인 문제제기 버전이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그는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을 직접 겨냥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작동하는 시장을 ‘리바이어던’에 비유하면서 오픈소스 경제로 상징되는 리눅스의 상징인 펭귄을 앞세웠다.(Benkler, 2011/2013)

그는 최근 20여년의 시기를 네트워크 정보경제의 시대로 정의한다. 그리고 대척된 지점에 산업 정보경제를 배치한다. 1830년대 제임스 고든 베닛의 페니 신문으로 산업 정보경제가 태동했다면 거미줄처럼 얽히고 연결된 웹의 출현으로 네트워크 정보경제가 발화했다고 말한다. 이 두 시대는 정보경제라는 공통의 요소를 지니지만 전혀 다른 사회다. 그에 따르면 네트워크 정보경제는 “탈중심화된 개인적 활동들 가운데 철저히 분산된 형태의 비시장 메커니즘으로 이루어지는 새로운 협동적, 공조적 활동”이다(Benlker, 2006/2015, 4~5쪽).

네트워크 정보경제는 요하이 벤클러의 지적 용광로다. 산업 경제시대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개념을 싸그리 녹여낸 뒤 새로운 주물로 재탄생시켰다. 이를테면, 하버마스의 공론장을 녹여 네트워크 공론장이라는 개념으로, 아담 스미스의 시장적 생산을 녹여 ‘사회적 생산'(Social Production)이라는 개념으로 다시 조형해냈다.

조금더 구체적으로 짚어보자. 네트워크 정보경제는 역량이 배가된 개인과 동료 간 협업생산으로 작동한다. 특히 그의 저서와 논문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바로 역량이 증대된, 신장된 개인이다.

산업 정보경제 시대만 하더라도 개인이 정보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수백만 달러의 생산수단, 즉 윤전기나 방송장비를 구매해야 했다. 개인이 정보와 지식의 생산자가 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웠다. 오로지 프로페셔널의 영역이었고 개인은 일방적 정보 소비자에 불과했다.

웹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구조적 변동가 일어났다. 개인들은 블로그를 개설하고 전세계로 퍼뜨렸다. 정보 생산과 유통에 따른 비용도 발생하지 않았다. 윤전기나 방송 장비는 걸림돌은 말끔하게 치워졌다. 양띵이나 대도서관이 아프리카TV와 유튜브로 전세계 팬들을 만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이들과 같은 증대된 역량의 개인들은 수십, 수백억원을 호가하는 거대한 생산 장비를 구매하지 않고도 지상파 방송의 영향력에 견줄 만큼 빠르게 성장했다.

개인들은 한발짝 더 나아갔다. 네트워크로 연결돼 협업하고 공유한다. 굳이 물질적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상업적 이익을 전취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인류의 큰 공유자산을 만들어낸다. 위키피디아에서 확인했고 리눅스, PHP, 모질라에서 발견한 것들이다. 깃허브가 그렇게 움직이고 있고 국내에선 엔하위키에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개인들의 함께 생산 과정을 요하이 벤클러는 ‘사회적 생산’이라고 불렀다. 그것이 시장을 그리고 자유를 바꿔나가고 있다.

시장 vs 비시장

penguin_levid요하이 벤클러는 신장된 개인들이 활동하는 비시장 영역을 주목한다. 위키피디아와 같은 공유지 기반 동료 생산의 결과물은 그가 늘상 강조하는 사례다(Benkler&Nissenbaum, 2006). 뿐만 아니라 돈도 되지 않은 오픈소스에 열의와 애정을 투입하는 개인들의 자발성에 관심을 갖는다. ‘시장의 실패’를 강조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지식과 정보의 생산에서 비시장적 대안을 모색한 것이다. 그는 비시장 영역에서 몸집을 키우는 ‘오픈소스 경제’, ‘협업의 경제’를 미래 경제를 좌우하는 성장 동력으로 바라본다. 금전적 보상이 동기를 부여하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와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이다.

질문을 던져보자. 2014년 6월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는 자사의 ‘슈퍼차저’ 특허를 무상으로 개방했다. 일론 머스크의 ‘무모한’ 선택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기존 산업 정보경제의 관점에서 보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선택이다. 특허를 통해 신규 진입을 차단해도 버거울 판에, 핵심 기술들을 무상으로 퍼붓는 테슬라의 결정은 국내 대기업이라면 상상조차 못할 것이다. 하지만 테슬라는 네트워크 정보경제의 한 단면일 뿐이다. 벤클러의 이론대로라면 제2의 제3의 테슬라가 앞으로 계속 출현할 가능성이 높다.

그는 비시장 영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동료 생산의 문화에 시장이 적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장경제의 밑바탕엔 ‘합리적 선택’이라는 인간의 이기심이 깔려있다. 시장은 개인의 사적 이익을 도모하려는 합리적 이기심의 발현이다. 리바이어던이라는 바다 괴물이 들끓는 공간이다. 벤클러는 리바이어던이 지배하는 시대가 이타심과 협력을 상징하는 펭귄의 시대로 전환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네트워크 공론장 vs 부르주아 공론장

요하이 벤클러는 법학자이지만 정치학자다. 네트워크 정보경제가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작동 원리를 하버마스의 ‘부르주아 공론장’에 빗대 ‘네트워크 공론장’이라는 이름으로 설명한다. “네트워크 공론장이 제공하는 동료생산 모델 기반의 플랫폼에서 참여적 시민들은 협업하고 발언과 의견을 내놓으며 사회에 대한 감시자 기능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Benlker, 2006/2015, 283쪽).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인터넷이 민주주의에 기여할 것이라는 낭만적 전망은 수차례 비판을 받았다. 국내외에서 몇 차례의 성공 사례를 만든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지만 실제 인터넷이 과연 민주주의를 성숙시켰는지 쉽게 답할 수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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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그는 낙관의 끈을 놓지 않는다. 여전히 인터넷이 특히 그가 말하는 네트워크 정보경제가 민주주의에 긍정적 개선에 공헌할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정보 과부하에 따른 정보의 파편화, 그리고 특정 사이트에 대한 네트워크 집중화로 인해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가 절망으로 바뀌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는 적극적으로 반박한다.

반박은 네트워크 공론장의 속성과 관련돼 있다. “네트워크 정보경제는 매스미디어 모델처럼 정보 흐름을 확실히 제어하는 통제점들이 없고 시청자들을 교묘하게 인위적으로 조종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가 매스미디어나 네트워크 인프라를 통제하려고 해도 이미 분산된 방식으로 존재하는 개인의 자율적 발언권을 억누르는데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네이버와 다음의 뉴스 편집권을 정부와 여당이 통제한다더라도 기존 매스미디어의 장악과 같은 효과를 얻지는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해진다.

그를 당장 만나야 할 사람들 

요하이 벤클러는 고전적인 시장과 정부 모델에 대안을 제시해왔다. 그렇다고 그가 시장을 그리고 정부를 전적으로 부정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그는 “시장과 마찬가지로 국가도 새로이 창발하는 인간의 활동 양식에 적응해야만 한다”고 말한다(Benlker, 2006/2015, 25쪽). 연결된 개인의 증대된 역량에 맞게 시장과 정부도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는 맥락에서다.

요하이 벤클러의 메시지는 국내 대기업과 정부 관계자들에게 더 깊은 함의를 던져줄 수 있다. 특히 산업 정보경제의 시대와 논리로 ‘창조경제’를 접근하려는 국내 정책결정자들이 가장 먼저 만나봐야 할 학자다. 창조를 이야기하면서 특허권의 강화를 외치고, 콘텐츠 창작을 진작하겠다면서 저작권 규제의 수위를 높이는 공무원들이라면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무료로 특허를 개방하면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기묘한’ 전기자동차 스타트업, 테슬라를 이해하고 싶다면 요하이 벤클러를 찾아가길 바란다. 그러면 IT 인프라 강국이 네트워크 정보경제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해줄 것이다. 그가 곧 한국을 방문한다.

참고 자료

  • Benkler, Y. (2006). The wealth of networks: How social production transforms markets and freedom. Yale University Press. 최은창 옮김.(2015). 네트워크의 부. 커뮤니케이션북스.
  • Benkler, Y., & Nissenbaum, H. (2006). Commons‐based Peer Production and Virtue*. Journal of Political Philosophy, 14(4), 394-419.
  • Benkler, Y. (2011). The penguin and the leviathan: How cooperation triumphs over self-interest. Crown Business. 이현주 옮김.(2013). 펭귄과 리바이어던. 반비.
  • Brink, James.(2007). Book Review – Yochai Benkler, The wealth of Networks : how social production transforms market and freedom.

<블로터>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가 주최하는 ‘2015 CC 글로벌 서밋‘의 미디어 후원사입니다. 요하이 벤클러 교수는 10월15일 2015 CC 글로벌 서밋에서 ‘커먼스 개념과 자본주의의 미래‘를 주제로 발표할 예정입니다. <블로터>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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