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벤처 와글의 ‘듣도 보도 못한 정치’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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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혐오가 만연한 사회다. 독단적인 여당, 무능력하고 한심한 야당 사이에서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시민들은 무력감에 젖는다. 정말 ‘헬조선은 답이 없을’까? 정치벤처 와글은 특권화, 직업화된 기성 정치의 틀을 뛰어넘어 정치의 본래 의미를 찾고자 한다. 정치벤처 와글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통한 시민의 직접적 정치 참여에 관심을 가지고, 다음 스토리펀딩을 통해 해외 각국의 정치혁신 사례를 소개한다. <한겨레>에서 연재 중인 인터뷰 섹션 ‘이진순의 열림’으로 잘 알려진 이진순 박사가 대표를 맡고 있다. 와글은 ‘와글와글한 군중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는 실험’을 한다는 의미다. 2015년 8월 설립됐다. 와글은 궁극적으로 한국사회가 단순히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잘 뽑는 ‘우상의 정치’를 넘어 풀뿌리 조직과 IT로 무장한 시민들이 직접 정치의 주인공이 되는 상상력을 실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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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도 보도 못한 정치 1화 – ‘밥맛 떨어지는 정치,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자료 : 와글)

변화된 미디어 기술을 전혀 활용하지 않는 정치

와글이 꿈꾸는 정치는 온라인에 기반한다. 인터넷의 등장은 일방향적 매스미디어에서 쌍방향적 미디어로의 변화를 가지고 왔다. 소통의 방식이 바뀐다는 건 단순히 미디어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맺는 방식이 변화한다.

이진순 와글 대표는 “그런데 유독 인터넷의 쌍방향성이 잘 쓰이지 않는 분야가 정치”라고 말한다. 와글을 통해 새로운 상상력을 펼쳐보려는 이유도 구시대 정치가 변화를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치는 여전히 인터넷 등장 이전의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이진순 대표는 “변화된 미디어 기술을 정치권이 전혀 활용하지 않는다”라며 ”정치적 기득권과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변화의 물결을 차단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라고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예컨대 이렇다. 기성 정치인들이 소셜미디어를 활용하는 방식은 그냥 ‘찌라시’ 뿌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홈페이지, 페이스북 계정, 블로그를 만들고 “내가 무엇무엇을 이렇게 잘했다”는 식의 이야기만 올린다. 식당에 갔더니 이름 새긴 수저 마련해 줬다며 자랑스레 포스팅한다. 그런 포스팅 댓글에는 지지자들만 모여서 응원한다. 그나마 SNS 활동 좀 한다는 사람이 이 정도다. 이진순 대표는 “그냥 하던 대로 마이크 잡고 무대에서 말하는 것과 다른 게 없다”라며 정치권의 인터넷·소셜미디어 활용이 미진함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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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순 와글 대표, 주신애, 이여경, 김정현(왼쪽부터)

직접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만드는 플랫폼

와글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기반으로 직접 민주주의 요소 도입을 가속화하고자 한다.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정치권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함이다. 이진순 대표는 ”디지털 미디어가 출현한 이후에는 시민의 발언이 반영되고, 웹에서 자료를 찾아 정책을 검토하는 것도 가능하다”라며 “정당이 주체적으로 이런 방식을 도입해야 하는데, 하지 않는 건 정치 환경의 문제”라고 현실을 짚었다. 또한 “정당에 기대하지 말고 시민들이 기술을 이용해 직접 우리 사회를 어떻게 운영해 나갈 것인지 목소리를 모아야 한다”라며 새로운 온라인 플랫폼과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넘나드는 네트워크를 구축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시민들이 결정한다는 게 운동장에 죄다 모아두고 ‘A 좋아하는 분 손 드세요’ 이렇게 하자는 의미가 아닙니다. 전문가와 시민들이 충분히 이야기 하고, 데이터에 대한 접근성도 높이고, 필요한 자료를 보기 쉽고 알기 쉽게 전달해주는 장치도 있어야 한다는 거죠.”

와글이 대의민주주의의 완전한 폐기와 대안으로서의 직접민주주의를 주장하는 건 아니다. 직접 참여를 확대해 정치의 기능을 회복하자는 의미다. 일각에서는 시민들의 결정이 중우정치로 빠진다는 우려를 나타내기도 한다. 이에 대해 이진순 대표는 ”전문가들이 내린 결정이 잘못된 경우도 많다”라며 “관료들, 전문가들이 새로운 제도를 만들고 법률을 만들 때 항상 옳았나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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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오 홈페이지

인터넷은 공론장이 될 수 있을까

인터넷이 수평적인 토론을 거쳐 더 나은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숙의민주주의에 이바지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오히려 양극화를 낳는 게 아니냐는 비판론도 만만찮다. 와글은 이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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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순 대표는 “한국의 경우 인터넷을 통해 의사소통하고 결정을 내려 본 긍정적인 경험이 없다”라며 “이게 인터넷의 어쩔 수 없는 속성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한국에서 익숙한 방식은 e메일, 카페, 싸이월드, 게시판, 댓글 등을 거치면서 폐쇄적 커뮤니티의 성격이 짙어졌다는 게 이진순 대표의 분석이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는 비슷한 견해를 가진 사람만 끼리끼리 모이는 현상이 나타났다. 합리적인 자세로 토론하려는 사람들이 배척당하고, 이념 대결과 진영논리가 극단적 댓글 문화와 연결되면서 인터넷의 순기능이 억제됐다.

와글이 관심을 두는 분야는 인터넷 공론장이다. 이진순 대표는 “중요한 건 인터넷 공론장을 어떻게 설계하는가이다”라며 IT가 정치와 결합된 다양한 사례를 소개했다. 전세계 93개 나라에서 32개 언어로 번역돼 쓰이고 있는 ‘루미오‘라는 협력적 의사결정 시스템이 대표 사례다. 루미오에선 의제를 올리면 찬성·반대를 고르고 선택한 입장에 대한 이유를 쓸 수 있다. 특이한 점은 토론을 거치면서 처음 선택한 입장을 바꿀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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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와글)

브리게이드‘라는 서비스는 찬성·반대 외에 ‘잘 모르겠다’는 항목도 뒀다. 찬성한 사람이 작성한 이유 중에 가장 공감을 받은 이유와, 반대한 사람이 쓴 이유 중 가장 공감을 받은 내용을 보여준다.

이진순 대표는 “기존 온라인 투표는 찬성과 반대가 즉각적이고 변경이 불가능 하지만 개인의 생각은 불완전하고 가변적이다”라며 “혼자서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으면서 수정·보완돼야 한다”라고 밝혔다. 작은 기술적 차이가 진정한 민주주의로 다가갈 수 있게 만든다는 입장이다.

제대로 설계된 온라인 플랫폼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줄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의견도 경청하고, 나와 다른 주장으로 결론이 나더라도 합리적이면 승복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이진순 대표는 “민주적인 토론과 의사결정 문화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라며 “작은 조직들부터 온라인에 형성된 플랫폼을 쓸 수 있다면 충분히 이전과는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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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신애, 이여경, 이진순, 김정현(왼쪽부터)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

와글이 주목하는 단위는 마을기업, 협동조합, 지역공동체 청년 네트워크, 사회적기업, 소셜벤처 등이다. 기존 구시대적 부패의 사슬로부터 독립돼 있는 단위가 많이 생겨나면 다른 상상력을 펼칠 수 있다고 와글은 본다. 이미 자본과 권력이 인터넷 전반을 장악하고 있지만, 독점적이고 폐쇄적인 구조에 불만을 가지는 사람도 많다. 와글은 풀뿌리 기반의 단위 엮어서 새로운 상상력의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플랫폼을 조직하는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현재 와글은 스토리펀딩에 ‘듣도 보도 못한 정치’를 연재하고 있다. 이미지나 웹툰도 적극 활용해 시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콘텐츠를 구성했다. 캠페인과 오프라인 출판, 컨퍼런스 준비도 진행 중이다. 이진순 대표는 “서로 앞선 경험을 배우고 협업하는 프로젝트를 모색하려고 한다”라며 “IT 기반 시민참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을 모아서 같이 고민하고 토론하는 장을 만들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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