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두이노로 ‘여행가방 위치 추적기’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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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을 다니다 보면 종종 황당한 일을 겪곤 한다. 많은 수가 여행가방과 관련된 경험이다. 가방이 뒤바뀌거나 환승 과정에서 엉뚱한 행선지로 배송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발을 동동 구르며 손짓 발짓으로 호소해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시큰둥하기만 하다. 그럴 때마다 ‘내 여행가방에 GPS 추적기라도 달아야 하나’라는 생각에 미치게 된다.

고충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여행가방의 중량 초과 기준이 항공사마다 제각각이어서 요금을 물어야 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미리 가방의 무게를 측정할 수만 있다면 버릴 건 버리고 다른 가방에 나눠 담아 비용을 절약할 수도 있겠다 싶다.

절박한 필요는 기발한 발명을 부른다. 이미 시중에는 ‘스마트 캐리어‘라는 이름으로 위치 추적이 가능한 여행가방 모델이 출시된 상태다. 유명 여행가방 제조업체는 ‘이태그(eTag)’와 같은 액세서리형 가방 추적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큰 돈 들여 구매한 여행가방을 바꿀 수도 없고 투박한 외양의 추적 태그를 구매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해외 여행을 자주 다니는 편도 아니어서 선뜻 지갑을 열기가 망설여지곤 한다.

‘캐리온’이라는 여행가방 추적기를 개발한 국민대 ‘캐리온’팀도 고민은 다르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기존 여행가방을 교체하지 않고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위치 추적기에 무게 측정기까지 곁들여 만들 수 있을까. 이미 팀 내 한 친구는 프랑스 교환학생 코스를 다녀오던 중에 여행가방 중량 초과로 비용을 물어야 했던 곤혹스러운 경험을 했던 터라 필요에 대한 공감대는 마련된 상황이었다.

지난 11월5일 서울 정릉로 국민대에서 만난 캐리온의 프로젝트 리더 이혁(국민대 경영정보학과) 씨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생활의 불편함을 해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곳에 시장의 수요가 존재하고 구매를 촉발하는 동인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무게 측정하고 여행가방 도착 알려주는 ‘캐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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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온 작동 방식을 직접 시연해보이는 캐리온 프로젝트 개발팀. 왼쪽에서부터 권민철씨, 이영주씨, 이혁씨.

프로젝트명이자 상품명인 ‘캐리온’은 여행가방의 무게를 측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블루투스로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손바닥 크기의 여행용 액세서리다. 여행가방이 수하물 통로를 지나 여행객 주변에 도착하게 되면 스마트폰으로 알림을 띄워준다. 수하물 체크인을 할 때엔 가방 무게를 측정해 중량 초과 여부를 알려주기도 한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결합한 융합 제품이다.

이미 시중엔 관련 제품이 출시된 상태다. 예를 들어 ‘블루스마트’라는 제품은 여행가방의 위치를 추적하는 기능뿐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잠금 장치를 제어할 수도 있다. 물론 손잡이를 들면 가방의 무게가 스마트폰으로 전송도 된다. 이 제품을 만든 스타트업은 2014년 12월 인디고고에서 200만달러가 넘는 금액을 모금하는 데 성공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기존에 출시된 스마트 캐리어 상품과 캐리온의 차별점은 무엇인가라고 물어봤다.

“캐리온을 기획하기 위해 인터뷰를 많이 했다. 응답자들은 캐리어를 다 가지고 있었다. 캐리어를 구매한 이유는 용량이 적절하거나 외관이 예뻐서라고 했다. 각자의 이유에 따라 산 것이다. 단순히 무게 측정이나 위치 파악 기능을 이용하기 위해서 구매한다? 꼭 그런 걸 사야 하느냐고 되묻더라. 기존에 나온 여행가방 액세서리 중에는 RFID를 탑재한 것도 있었다. 하지만 디자인이 아쉬웠다.”

캐리온팀이 주목한 것은 디자인과 가격이다. 그리고 모바일 앱의 확장성이다. 이들은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친숙하고 콤팩트한 디자인을 갖춘 제품을 만들어내는 데 집중했다. 캐리온 1개를 개발하는 데 투입된 비용은 4만~4만5천원 정도다. 만약 상용화가 가능해진다면 이 가격은 더 낮아질 수도 있다. 위치 추적만 가능한 인형 액세서리는 이보다 더 저렴하다. 아두이노라는 오픈소스 하드웨어 덕에 제작 단가를 충분히 낮출 수 있었다는 것이다.

‘캐리온’ 팀 구성에서 완성품 개발까지

위치 추적과 무게 측정이 가능한 캐리어 '블루스마트'.(사진 출처 : 인디고고 사이트)

위치 추적과 무게 측정이 가능한 캐리어 ‘블루스마트’.(사진 : 인디고고 사이트)

국민대 캐리온팀이 캐리온 1개를 개발하는 데 걸린 기간은 대략 8개월이다. 올해 2월 팀이 구성돼 10월께 첫 제품을 완성했다. 캐리온팀에는 경영정보학을 전공한 이혁 씨를 비롯해 전기공학과 전공 2명, 공업디자인 전공 2명, 컴퓨터공학 전공 2명 등 총 7명이 참여하고 있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디자인, 비즈니스 등 하나의 기업이 갖춰야 할 직군들은 모두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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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공학과 전공자들은 모바일 앱을 개발하고, 전자공학과 전공자들은 하드웨어 엔지니어링을 담당하는 등 역할도 분명하게 배분했다. 공업디자인 전공 학생들은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의 상품 디자인 구상에 주력했다. 전자공학과 4학년 권민철 씨는 “컴퓨터공학과 전공자들은 소프트웨어 개발에는 익숙하지만 센서나 하드웨어 제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면서 “오히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전공자가 만났을 때 시너지가 더 크다는 걸 경험했다”고 말했다.

물론 개발 과정에서 소소한 갈등이 없었던 건 아니다. 전자공학과 전공자라 하더라도 기본적인 코딩 실력은 갖추고 있기에 소프트웨어 개발자와 역무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다. 미려한 디자인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하드웨어 개발자와 의견 충돌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캐리온 디자인을 담당한 이영주 씨는 “무조건 예쁘게만 디자인하기보다 기능을 충족시킨 뒤 최대한 보기 좋게 디자인하는 방향으로 협업을 진행했다”라며 “디자인과 하드웨어 간의 충돌이 심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대량 생산이 어려운 국내 제조 환경

Shenzhen Map for Makers (http://www.seeedstudio.com/blog/2013/09/03/shenzhen-map-for-makers/)

Shenzhen Map for Makers (http://www.seeedstudio.com/blog/2013/09/03/shenzhen-map-for-makers/)

이들 팀의 다음 목표는 특허 출원과 상용화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이 만만하지 않다. 학생들만의 힘으론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특허 출원 쪽으로 방향을 튼 것도 국내의 취약한 하드웨어 제조 기반이 한몫하고 있다. 창업 경험이 있는 권민철 씨는 이렇게 털어놨다.

“솔직히 말하면 상용화는 어려울 것 같다. 양산을 하려면 디자인도 해아 하고 공장도 알아봐야 한다. PCB도 다시 찍어내야 한다. 걸림돌이 많다. 예전 창업했을 때 시제품 하나 찍어내는 데 300만원이나 들었다. PCB 1 6장 찍는데 10만원이 필요했다. 물론 캐리온보다는 사이즈가 커서 기계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다. 확실한 것은 중국과 단가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열악한 하드웨어 스타트업 환경으로 이어졌다. 권씨는 국내에서 하드웨어 제조사를 창업한 숙부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의 숙부는 하드웨어 제품 생산을 위해 중국 심천을 자주 오간다고 했다. PCB를 한국에서 구매하느니, 중국에서 찍는 것이 오히려 비용을 절감하는 길이라고 했다. 출장비를 포함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고도 했다.

부품 조달도 해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권민철 씨는 “다른 프로젝트의 경우이긴 하지만 국내엔 없는 부품들이 많다”라며 “IoT 스위치센서, 멀티센서 등의 일부 센서 제품은 해외에서 구매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때문에 알리익스프레스와 같은 중국 쇼핑몰에 의존하게 된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구로나 용산 등에 임베디드 전용 부품을 판매하는 곳이 없지는 않다. 기본적인 부품은 대부분 구비돼 있지만 정작 꼭 필요한 센서 등은 해외 쇼핑몰에 기대야만 한다는 것이 권씨의 설명이다. 그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스타트업 쪽으로 더 힘을 기울이는 것도 이런 환경 탓이 아닌가 한다”라고 말했다.

캐리온과 메이커 문화 그리고 오픈소스

IMG_3707어찌됐든 캐리온은 오픈소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덕에 비교적 빨리 그리고 저렴하게 제작할 수 있었다. 모바일 앱의 주요 코드도 공개된 레퍼런스와 API를 가져와 최적화했다. 하드웨어 개발부터 소프트웨어 코딩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분 오픈소스에 빚을 진 셈이다.

권민철 씨는 “기술적으로만 놓고 보면 기존 레퍼런스의 조합이라고 할 수도 있다”라며 “수많은 오픈소스와 레퍼런스에서 필요한 것을 추려내 현실 문제와 결합시키는 것 그것이 메이커 문화가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는 메이커 문화가 캐리온 개발에 기여한 정도에 대해 “구글링으로 만들어낸 제품”이라는 표현으로 대신했다.

이들은 캐리온의 여러 제작 프로세스를 오픈소스로 공유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은 낯설어 했다. 공유가 제작을 촉발하고 다시 제작이 개방과 공유를 낳는 메이커 문화의 선순환 생태계가 국내에 안착되지 못한 탓이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직접 개발한 기술이 사장되는 것을 원하지는 않다고 했다. 권씨는 조심스럽게 “우리 팀원들 중에 개인 사정으로 누구도 사업화에 나서지 않는다면 오픈할 수도 있다고 본다”라고 얘기했다. 이혁 씨도 “누군가가 가져가서 더 발전시키고 확장할 수 있다면, 더 큰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며 공유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내비쳤다.

여행가방 위치 추적 액세서리 캐리온은 척박한 제조 여건 속에서 대학생들만의 협업으로 탄생시킨 보석과도 같은 메이커 문화의 자산이다. 캐리온은 제품의 성공이나 상용화 여부를 떠나, 메이커 문화 확산이 가져올 긍정적인 청사진을 확인시켜줬다. 이제 남은 과제는 실행이다. 이혁 씨는 이렇게 말한다. “누구나 다 생각할 수 있는 것을 우리는 실행에 옮긴 것 뿐”이라고. 그의 이 짧은 한마디에 국내 메이커 생태계의 미래에 대한 정답이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