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기술’ 은 진화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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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2일, 한 장의 사진은 전 세계를 슬픔에 빠뜨렸다. 터키 남서부의 해양 휴양지 보드룸 해변가에 아기가 엎드려 자는 듯한 모습으로 숨진 채 발견된 사진이었다. 빨간색 티셔츠와 군청색 반바지를 입은 이 아기는 시리아에서 탈출한 3살배기 아일란 쿠르디였다.

쿠르디의 사진은 SNS를 통해 국내는 물론 전세계에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세상은 변했다. 7일 독일은 시리아 난민에 대한 빗장을 완전히 풀고 연방 예산 30억 유로와 지방정부 지원금 30억 유로를 난민 수용 지원에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오스트리아, 프랑스, 영국을 비롯해 EU와 미국 등 세계 각국이 뒤를 따랐다. 수만 명의 시리아 난민들은 서유럽으로 대탈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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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위키피디아에 올라온 쿠르드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WP:NFCC#4, 공정이용)

유럽의 양심을 깨운 것은 쿠르디의 안타까운 죽음과 이를 담은 사진 한 장, 사진을 보도한 언론, 그리고 SNS였다. 행복이나 슬픔과 같은 감정은 인적 연결망을 통해 확산된다(Christakis & Fowler, 2009/2010). 그러나 연결망이 확산에 적합하게 구조화되어 있지 않다면 멀리 퍼지진 않을 수 있다. 전염병과 마찬가지로 의견 확산에는 의견지도자의 역할보다는 연결망이 이질적인 집단을 연결한 스며들기 군집(percolation cluster)을 갖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Watts & Dodds, 2007).

SNS은 바로 그러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SNS는 정서를 공유하는 한 나이나 성별, 인종과 같은 인구통계학적 변인이나 직업, 소득 등 사회경제적 변인을 넘어서 국경을 초월해 사람들을 연결해놓고 함께 공감할 만한 정 보를 친구와 친구의 친구에게 매일 추천해준다. 게다가 쿠르디의 사진이 전하는 감정의 강도 자체도 강했다. 그 결과 쿠르디의 사진이 전달하는 감정은 SNS를 통해 그 어떤 매체보다도 빠르게 조금이라도 고통에 민감한 세계인들을 찾아가 전파될 수 있었다.

통제에 저항하는 자유화 기술

정보통신기술이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예컨대 스와힐리어로 ‘증거’라는 뜻의 우샤히디(ushahidi)라는 프로그램은 위치기반서비스(LBS)와 핸드폰 문자, 이메일, 트위터 등 다양한 채널로 취합된 정보를 실시간으로 지도에 시각화하는 오픈소스 플랫폼이다. 인권유린, 선거부정, 자연재해 등의 시각화를 돕는 우샤히디는 2011년 이집트 무라바크 대통령 축출에 기여했으며, 현재 40여 개국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밖에 2014년 홍콩 우산혁명, 2010년 튀니지 재스민 혁명으로부터 시작된 ‘아랍의 봄’, 2005년 레바논의 백목향 혁명과 키르기스탄의 튤립혁명, 2004년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혁명, 2003년 조지아의 장미혁명, 2001년 필리핀의 시민혁명 등에서 핸드폰의 문자메시지나 카메라,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SNS, 팟캐스트, 커뮤니티, 인터넷 홈페이지 등이 시민들의 결집과 정보 공유에 큰 기여를 했다.

USHAHIDI

[사진2] 유샤히디 화면.(출처 : 나이트재단 홈페이지)

 올 초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가 추천해 화제가 된 책 <권력의 종말>에서 저자인 모이세스 나임은 이러한 기술을 ‘자유화 기술(liberalization technology)’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기술은 통제의 기술이 될 수도 있다. SNS를 비롯한 ICT가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민주주의를 위한 정보통신기술(ICT4D, information communication technology for democracy)’일 수도 있지만, 권력과 자본이 ICT4D를 통제의 기술로 악용하는 사례도 많기 때문 이다(Diamond & Plattner, 2012/2014).

사실 ICT4D는 그 자체가 민주주의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 아니라, 기술을 통해 통제와 검열에 반격할 가능성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진정한 자유화 기술이 된다. 예컨대 2006년 12월 아이슬란드에 설립된 폭로 전문 웹 사이트 위키리크스는 정부와 기업 등의 불법이나 비리를 해킹 등을 통해 고발한다. 디지털 포렌직 기술은 묻혀질 뻔한 진실을 복구해낸다. 중국 네티즌들은 정부 검열을 피해 은유법이나 상징어를 이용하거나 가요 등 대중 문화를 활용하여 권력에 대한 풍자를 시도한다.

정보 독점에 도전하는 ICT4D

문제는 점차 거대 인터넷 기업들이 정부의 위임을 받아 인터넷 통제를 직간접적으로 대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중국에서는 중국에서 사업하는 모든 국내외 인터넷 기업에게 중국 법규에 따라 자사 인터넷 서비스 상의 모든 내용물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함으로써 기업들이 스스로 인터넷 이용자를 규제하도록 만든다. ICT4D는 권력의 정보 통제에 저항하는 기술일 수도 있지만, 자본의 정보 독점에 대한 저항의 기술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과거 ‘윈텔리즘’의 독점에 대항해온 리눅스 중심의 오픈소스 운동은 그러한 예다.

오픈소스 운동은 거대 문화기업의 저작권 독점 모형에 도전하는 카피레프트 운동의 일부다. 1984년 미국에 서 시작된 카피레프트는 소프트웨어를 비롯해 모든 저작물에 대한 공유 운동으로 확산됐다. 2001년 설립된 비 영리 단체 크리에이티브 커먼즈(creative commons)는 각국 실정에 맞는 부분적 저작권 공유를 추구한다. 2001 년 시작된 위키피디아는 아마추어의 집단지성을 이용해 전문가 지식의 권위에 도전해왔다.

저작권 문제와 함께 논란이 되는 것이 프라이버시 문제다. 거대정보기업에 의한 과도한 개인정보 수집이나 사생활 침해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엔 2012년 유럽 일반정보보호규정에 명시된 잊혀질 권리(right to be forgotten)의 문제가 주목 받고 있다.

모든 정보는 사용자로부터…공유하고 참여하라

DemocracyOS - Change the Tool

데모크라시OS 메인화면.(출처 : 데모크라시OS 홈페이지)

흔히 민주주의와 ICT라고 하면 온라인 선거운동 등 중앙정치와 관련된 사례를 주로 떠올린다. 미국의 경우 1990년대 중반부터 대권 후보들이 홈페이지를 개설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선 정치동영상 시청이나 정치자금 모금, 블로그 개설이 일반화됐다. 정치 게임, 패러디물 등도 만들어졌다. 2010년대 들어서 SNS가 널리 이용됐고,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유권자 마이크로 타겟팅이나 마이크로 리스닝이 이뤄지기도 했다. 정치자금 모금에서도 크라우드 소싱이 나타났다(조희정, 2013).

그러나 ICT4D의 흐름은 보다 시민 중심적이고 일상적인 형태로 바뀌는 추세다. 즉 선거 이슈에 한해 정당 등 정치 엘리트 주도로 활용되는 ICT4D보다는 시민 누구나 참여하면서 상시적인 정치 활동을 촉진하는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는 넓게는 시민 참여와 민간지의 활용을 강조하는 과학기술사회학의 흐름과도 맞닿아있다(박대민·이중식,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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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의 사회운동가 피아 만치니와 산티아고 시리가 만든 민주주의OS(Democracy OS)는 그러한 예이다. 민주주의OS를 통해 다양한 이슈에 대해 상시적인 투표 등을 통해 시민의 의견을 모은 다음, 지방의회에서 그 의견에 따라 의정 활동을 펼치는 형태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만든 당(Partido de La Red)을 행보가 스타트업을 닮아있다는 점이다. 2014년 Y컴비네이터의 투자를 유치했으며, 서비스를 100% 오픈소스로 개발하여 오픈소스 협업 사이트인 기트허브(github)를 통해 소스를 공개하고 있다.

이상에서 보듯 기술과 민주주의 간에는 상관관계가 있다(Howard, 2010). 하지만 인과관계는 아니다. 즉 기술이 발전하기만 하면 저절로 민주화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 즉 민주주의 발전에 기술을 활용함으로써 관계가 성립한다. 권력과 자본은 끊임없이 지식과 기술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구성하는 반면, 민주주의자들은 법적, 행정적 규제가 아직 정비되지 않은 틈을 타 신기술을 활용한다.

규제의 틈새를 이용하여 기존의 기술을 ICT4D로 재구성할 수도 있다. 이를 ‘익스플로잇(exploit)’이란 개념으로 설명하는 이도 있다(Galloway & Thacker, 2007; 김상배, 2010). 익스플로잇이란 연결망의 구조적 결함을 이 용해 프로그램에 오작동을 일으키는 해킹을 뜻한다. 사회연결망분석에서 주로 틈새의 시스템 보완적 역할을 강조하는 구조적 공백(structural hole)과는 정반대다.

중요한 것은 한 때는 자유의 기술이었던 것이 통제의 기술이 될 수도 있고, 이러한 통제의 기술도 다시 자유의 기술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술은 민주주의를 위해 이용될 때에만 ICT4D로 구성된다. 그렇다면 ICT4D를 구성하는 주체는 누구일까? ICT보다 중요한 것은 정보이고 정보의 원천은 결국 사용자이다. 즉 모든 정보는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사용자로부터 나온다. 정보주권이 사용자에게 있다는 주장에 동의한다면, 저작권이나 개인정보 수집은 사용자의 정보복지를 위해 정보를 정부와 기업에 위탁했기 때문에 허용된 셈이 된다. 사용자가 정보주권자라면 정부와 기업이 정보를 통제하고 독점하기 위해 ICT를 악용할 때, 이에 저항할 권리를 갖는다.

참고문헌

  • 김상배(2010). 정보혁명과 권력변환: 네트워크 정치학의 시간. 파주: 한울아카데미.
  • 박대민, 이중식(2010). 사회적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새로운 시민참여모형 : 온라인과학상점. 커뮤니케이션이론, 6권 2호.
  • 조희정(2013). 민주주의의 기술: 미국의 온라인 선거운동. 파주: 한국학술정보.
  • Christakis, N. A., & Fowler, J. H. (2009). Connected: The surprising power of our social networks and how they shape our lives. 이충호 옮김(2010). . 파주: 김영사.
  • Diamond, L., & Plattner, M. F. (2012). Liberation technology: Social media and the struggle for democracy. 반현, 노보경 옮김(2014).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 Epstein, R., & Robertson, R. E. (2015). The search engine manipulation effect (SEME) and its possible impact on the outcomes of election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12(33), E4512-E4521.
  • Galloway, A. R., & Thacker, E. (2007). The exploit: A theory of networks (Vol. 21). U of Minnesota Press.
  • Howard, Philip N. The Digital Origins of Dictatorship and Democracy: Information Technology and Political Islam. New York, NY: Oxford University Press, 2011.
  • Naim, M. (2014). The end of power: from boardrooms to battlefields and churches to states, why being in charge isn’t what it used to be. 김병순 옮김(2015). . 서울: 책읽는수요일.
  • Watts, D. J., & Dodds, P. S. (2007). Influentials, networks, and public opinion formation. Journal of consumer research, 34(4).

이 기사는 미래창조과학부와 KISDI가 ICT인문사회 혁신기반 구축 사업의 일환으로 발간하는 ‘ICT인문사회융합동향’ 2015년 3호에 게시된 글입니다. 원고의 저자는 박대민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입니다. <블로터>는 KISDI와 콘텐츠 제휴를 맺고 동시 게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