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 교수가 말하는 비영리단체 혁신 조건 8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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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 학생이 만든 ‘이야기를 들어주는 벤치’란 게 있습니다. 내가 얘기를 하면 그 벤치가 내용을 다 기록합니다. 그리고 전세계 사람들이 한 얘기들을 모아 태깅으로 분류하고 공유하는 겁니다. 이 벤치를 만든 학생은 전세계 모든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고 해요. 그런 얘긴 책이 아니라 사람들 경험에 있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벤치에 앉아 얘길 하면 그것이 모이고 쌓여 다음 세대에 물려줄 유산이 되는 거죠.”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는 비영리단체에 ‘혁신’을 가져올 불씨로 이 실험용 의자를 예로 들었다. 먼저 물어보자. 지금과 다른 방식의 비영리단체가 필요할까? 정재승 교수는 “그렇다”라고 대답한다. 그 방법도 몇 가지 제시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기술’이다. 정재승 교수 얘길 좀 더 들어보자.

“보스턴 공원에 그 의자를 놓았더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거기 모여 이야기를 나누셨어요. 처음엔 얘기를 담고자 의자를 놓았는데, 그게 힐링머신이 됐어요. 사람들은 누가 들어주지 않는 이야기를 의자에 앉아 쏟아내고는 마음의 위안을 얻고 돌아가더라는 겁니다. 비영리단체가 이처럼 어른들의 삶을 담는 플랫폼을 만들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것이 제가 꿈꾸는 세상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어떻게 비영리단체가 사람들의 얘기를 담는 플랫폼이 될 수 있을까. 정재승 교수는 그 조건으로 8가지를 제시했다. 강연은 다음세대재단이 11월13일 마련한 ‘체인지온 2015’ 컨퍼런스 현장에서 진행됐다.

1. 보상 중심에서 동기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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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할로우란 사람이 실험을 했습니다. 조그만 퍼즐을 원숭이 우리에 넣어뒀죠. 원숭이가 퍼즐을 이리저리 만지면 툭 풀리는데, 그걸 보며 좋아서 막 우리를 돕니다. 그런 다음 원숭이는 정성스레 퍼즐을 잠그고, 또 풉니다. 2주가 지나면 원숭이는 능숙하게 퍼즐을 풀게 됩니다.

또 다른 우리에는 원숭이가 퍼즐을 풀면 물을 주고, 여러 마리가 있을 때 가장 먼저 푸는 원숭이에게 땅콩을 줍니다. 이러면 원숭이는 목이 마르지 않을 땐 퍼즐을 안 풉니다. 그리고 목이 마르면 짜증을 내며 퍼즐을 풀고, 다 풀면 물 달라고 재촉을 하죠. 또 여러 마리가 있을 땐 80%는 퍼즐 풀기를 포기합니다. 나머지 20%만 풀죠. 그렇다고 2주 후에 퍼포먼스가 더 좋게 나오지도 않습니다.

요컨대 재미있으면 퍼포먼스도 더 좋게 나온다는 얘깁니다. 우리는 더 큰 가치를 위해 내 존재감을 세상에 드러내려 할 때 몰입하게 되고 훨씬 좋은 창의적 성과물을 냅니다. 이른바 ‘톰소여 효과’입니다.

2. 결과 중심에서 과정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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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일이라도 놀이라고 생각하면 즐겁습니다. 결과물도 좋고요. 일과 놀이가 다른 점은 결과물을 내기 위해 하는 게 아니라 진행 과정 자체를 즐기는 행위입니다. 결과를 외면하란 얘기가 아닙니다. 인간을 포함해 지적 동물에게만 놀이란 행위가 관찰됩니다. 창의적 생산물을 원하면 과정을 즐길 줄 아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합니다.

처음에 어떤 일을 하자고 사람들을 끌어들이긴 생각보다 쉽습니다. 한번 일을 치르고 나면 그것이 주는 즐거움은 다 만끽합니다. 내년에도 그 일을 지속하려면 처음에 가졌던 동기가 유지돼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어떤 일을 처음 하는 것보다 10~20년 유지하는 게 어려운 이유입니다. 그게 놀이가 되면 과정 자체를 즐기기 때문에 동기가 지속됩다.

비영리단체가 대단한 결과물을 내는 곳은 아닙니다. 엄격히 평가해 열심히 일하라고 채근하는 시스템도 아니죠. 그렇다고 과정을 중시하고 동기를 주느냐, 사실은 그것도 아닙니다. 어중간하게 영리단체와 비슷한 제도를 가져왔으나 비영리단체가 가진 속성은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그런 단체일수록 영리가 아니라 큰 가치를 향해 가는 사람들이 집단이기에 이게 의미 있고 재미있으면 굉장히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단체는 왜 풀이 죽어 있지, 굉장히 중요한 일을 하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데 실제로 하는 일은 재미가 없고 노동이지? 그럴 땐 동기가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리더가 만들어주지 않고 있구나 생각해야 합니다. 반성하고 돌아봐야 합니다.

일하기 좋은 기업을 매번 정하면 신뢰, 존중, 공정, 자부심, 동지애가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사람들이 말합니다. 이런 기업이 퍼포먼스도 더 좋고, 이직률도 더 낮고, 주식도 더 많이 올랐습니다.

3. 오픈 이노베이션 : 폐쇄에서 개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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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단체는 뭔가 혼자 하려 할 때 그럴 힘이 없는 편입니다. 설령 힘이 있다 해도 함께할 때 더 좋은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죠. 우리끼리 하지 말고 함께할 때 더 좋은 결과물 내놓으려면 누구를 끌어들여야 할까 고민해야 합니다.

위키피디아가 좋은 사례입니다. 위키피디아가 2003년 세상에 처음 나올 준비를 할 때 생각한 전제는 3가지였습니다. ① 빈 페이지 하나 만들어두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거기에다 자기 아는 걸 써놓고 갈 거다. ② 누군가 잘못 기록하면 그걸 잘 아는 사람이 고쳐줄 거다. ③ 이 기록이 쌓이면 사람들이 브리태니커보다 위키백과를 더 많이 볼 거다. 그런데 당시로선 이 3가지 전제 가운데 어느 하나 상식적인 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벌어졌습니다. 이걸로 돈을 왕창 벌 법도 한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접속함에도 지미 웨일즈는 이걸 팔지 않았습니다. 대신 기부를 해달라고 요청했고, 사람들은 위키피디아를 쓰기 위해 기부를 했죠.

상식적인 게 하나도 없었는데 우리 모두가 그 덕분에 엄청난 이득을 받고 있습니다. 오픈 이노베이션을 비영리단체가 적극 수용해 일을 추진하는지 생각해볼 일입니다.

4. 조직에서 네트워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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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이디어는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게 널리 퍼져야 본질적인 혁신이 일어납니다. 이 마지막 단계를 위해선 네트워크를 이용한 오픈 이노베이션이 필요합니다.

5. 희생에서 창조적 아이디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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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단체 종사자들은 자신들의 일이 세상에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본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죠. 남을 도와주려 하는 마음이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많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젠 창의적 아이디어로 비영리단체가 세상을 바꾸는 시대가 와야 합니다. ‘큐드럼’을 봅시다. 아프리카 저개발지역에선 아이나 여성이 물동이를 이고 힘들게 먼 거리에서 물을 길어와 먹느니 차라리 가까운 곳의 더러운 물을 먹으려 합니다. 상대적으로 좀 더 편하게 물을 이동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한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물의 고통에서 해방됐습니다. 빨래 하는 장치도 있습니다. 통에 물과 빨래를 넣고 아이들에게 주면, 아이들은 이 통을 갖고 신나게 놉니다. 그러고 나면 빨래가 다 돼 있습니다. 일종의 통돌이 세탁기인 셈이죠. 창조적 아이디어가 삶을 바꾼 사례입니다.

6. 획일성에서 다양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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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단체 구성원은 다양해야 합니다. 어떤 일을 할 때 ‘왜 꼭 그렇게 해야 해? 이렇게 하면 안 돼?’라고 말하는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어떤 일을 하자고 할 때 모두가 ‘그게 좋겠습니다’라고 하면 그 조직에 문제가 좀 있구나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마음가짐이 있고 교육을 잘 받은 건 비영리단체 운영엔 도움이 되지만 그걸로 충분하진 않습니다. 다양한 사람과 생각이 창의적 아이디어의 근원입니다.

창의적 아이디어가 나오는 뇌 영역은 없습니다. 우리 뇌는 창의적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에 적합하게 디자인돼 있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잘 연결돼 있지 않은 다른 영역들이 연결되며 창의적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바다’라고 하면 우리 뇌는 ‘고래’, ‘상어’, ‘해변’, ‘새우’ 같은 단어를 옆에 저장합니다. 그런데 누가 ‘바다’와 관련된 단어로 ‘스컹크’를 말하면 그는 정신이상자 취급을 받습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바다와 스컹크가 절묘하게 연결될 수 있다는 걸 발견할 때 나옵니다. 그러려면 나와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 곁에 있어야 합니다.

7. 노동·시간에서 기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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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진 노동 중심의 사람들로 비영리단체가 구성됐습니다. 돈으로 하는 일과 사람이 하는 일이 있을 때 우리는 늘 돈을 아끼기 위해 사람을 굴립니다. 돈을 주고 다른 데 일을 맡기면 나는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있는데, 돈을 아끼기 위해 정작 내가 중요한 생각을 할 시간을 박탈당합니다. 늘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사람과 돈을 선택하는 순간이 오면 조직은 돈을 선택합니다. 돈을 아끼기 위해 사람을 굴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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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돈을 주고 맡기는 일은 제일 쉬운 일입니다. 어려운 일은 돈을 주고 맡겨도 안 되는 일이고, 그게 중요한 일이죠. 노동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어떡하면 일을 즐겁게 할지, 되도록 기술을 이용해 간단하고 기발하게 해결할지 생각해야 합니다. 노동이라 생각할 수 있는 일을 돈으로 환원하고, 나는 좀 더 창의적인 시간을 써야 합니다. 그 창의적 시간 안에 테크놀로지를 생각하라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청소년 아동학대를 막고 보호해주는 스페인 재단이 있습니다. 그 재단이 포스터를 만들어 길에 붙였습니다. 엄마의 눈높이에서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포스터 속 아이가 멀쩡하게 보입니다. 그런데 아이의 시각에서 위로 올려다보면 아이가 맞은 모습이 보이고 ‘엄마가 너를 때리면 ○○로 신고해’라는 메시지가 보입니다. 아동학대의 80%가 부모에게서 일어납니다. 그래서 부모 눈에는 안 보이고 아이 눈에만 보이도록 포스터를 디자인했습니다. 이건 대단한 기술이 아닙니다. 여느 페인팅 가게 가면 다 할 수 있죠. 이 포스터가 알려져 사람들이 이 재단을 알게 됐고, 앞다퉈 재단에 기부를 했습니다. 조그만 기술이 조직의 존재감을 알리고 기부로 연결된 사례입니다.

8. 관리감독에서 권한부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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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단체 조직일수록 사실은 모든 사람들이 돈이 관련돼 있지 않기 때문에 수평적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비영리단체일 수록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더 권위적이죠. 대개 돈이 충분한 보상이 되지 않기 때문에 조직에 대한 통제력으로 그 보상을 메우려 합니다. 그건 누구나 가진 자연스런 욕구이죠.

한 실험을 봅시다. 쥐 앞에 레버가 2개 있습니다. 한 레버는 누르면 먹이가 나오고, 다른 레버는 누르면 쥐의 오르가즘 신경망을 자극해 쾌락을 줍니다. 그러면 쥐는 오르가즘 레버만 누르다 굶어 죽습니다.

그 옆 우리에도 쥐를 넣습니다. 첫 번째 우리의 쥐가 오르가즘 레버를 누르면 양쪽 쥐에 오르가즘이 느껴지고, 먹이 레버를 누르면 양쪽 쥐에 먹이가 나옵니다. 첫 번째 쥐는 자기가 원해서 하는 행동이지만, 두번째 쥐는 선택의 여지 없이 받는 셈입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두 번째 쥐의 수명이 절반으로 줄어들었습니다. 내 선택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받는 데 따른 스트레스 때문입니다.

내가 원해서 하는 게 아니라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은 그 자체로 괴롭습니다. 조직이 활력을 얻으려면 그들 스스로 선택하고, 과정 자체를 즐기고, 거기서 보람을 느껴야 합니다. 돈을 많이 주는 조직도 아니면서 리더가 마이크로매니지먼트(관리감독)를 하면 조직원은 죽을 맛입니다. 목표를 명확히 제시히는 게 리더의 역할이고, 그 목표에 동의하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과정을 결정해나가며 일을 할 때 훨씬 즐겁습니다.

생각의 전환이 여러분의 조직을 혁신으로 이끌 거라 생각합니다. 혁신의 씨앗을 여러분의 비영리단체에 심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