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워치’에 대한 분류학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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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들어 시계 업체 두 곳이 스마트워치를 발표했다. 국내에서도 유명한 브랜드인 태그호이어와, 다소 생소하지만 값비싼 시계를 파는 모바도다. 기존 시계 업체의 스마트워치 시장 진입 속도에 탄력이 붙었다. 두 업체 외에도 초고가 시계 업체들이 스마트워치 시장 진입을 노리고 있다. 세계 최대 시계 그룹 스와치도 마찬가지다. 구찌, 루이비통 등 익숙한 고가 브랜드들도 스마트워치에 눈독을 들이는 중이다.

이들 업체의 스마트워치는 기존 스마트워치와 다른 구석이 많다. 전자회로가 아닌 아날로그 기반이라는 점이고, 이것저것 모든 기능을 다 지원하는 대신 할 수 있는 기능만 지원한다. 지금까지 스마트워치 시장을 주도해 온 IT 업체의 접근 전략과 근본적으로 다른 움직임이다. 스마트워치 종류를 분류했다. 모든 스마트워치를 담은 그림을 그릴 수는 없지만, 대강의 흐름은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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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워치의 계보

스마트워치에는 크게 두 가지 줄기가 있다. 줄기를 타고 내려가면, 대부분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종류의 곁가지와 만나게 된다. 큰 줄기 중 하나는 디스플레이 장치로 동작하는 스마트워치다. 스마트폰처럼 화면을 ‘터치’로 조작하도록 설계된 제품이 여기 속한다. IT 제조업체가 만드는 스마트워치가 보통 여기에 해당한다.

다른 큰 줄기는 기존 아날로그 시계에 스마트워치와 비슷한 기능을 탑재한 제품이다. 시계를 움직이는 심장인 ‘무브먼트’로 동작하고 시곗바늘로 시간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기존 시계와 같지만, 스마트폰과 연동하는 기능이 추가된 것이 특징이다.

재미삼아 학창시절 생물 시간에 배우는 생물 분류법 중 하나인 ‘린네의 분류’를 떠올려도 좋다. ‘종속과목강문계’ 중 일부 단계에 스마트워치 종류를 대입하는 식이다. 예를 들어 애플워치는 ‘스마트워치과 디스플레이속 워치OS종’으로 ‘LG워치 어베인 세컨드 에디션’은 ‘스마트워치과 디스플레이종 안드로이드웨어종’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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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워치

1. 디지털과 안드로이드웨어

디스플레이가 탑재된 스마트워치의 대표주자로는 애플의 ‘애플워치’와 삼성전자의 ‘기어’ 시리즈를 꼽을 수 있다. 모토로라의 ‘모토360’, LG전자가 만드는 ‘LG워치 어베인’ 시리즈, 중국 화웨이의 ‘화웨이워치’ 등도 비슷한 부류다. 초기부터 스마트워치를 생산해 온 페블은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품을 양산해 비교적 좋은 반응을 이끌어낸 제품이라는 점에서 조금 독특하다.

이 같은 스마트워치의 공통점은 IT 업체가 직접 만들었거나 최소한 주도적인 위치에 서서 기획된 제품이라는 점이다. 디스플레이가 시간 표시 장치 역할을 하고, 블루투스나 와이파이 등 무선 네트워크 규격을 활용한다. 스마트폰과 연동해 e메일이나 각종 알림을 받는 기능은 거의 모든 제품에서 볼 수 있는 기본 기능이다. 더러는 애플워치나 ‘기어S2’처럼 사용자의 심장박동을 체크해 온동을 기록하는 용도로 활용하는 제품도 있다.

디스플레이로 동작하는 스마트워치의 잔가지는 운영체제(OS)로부터 뻗어나온다. 애플의 독자적인 ‘워치OS’로 동작하는 애플워치와 ‘타이젠’으로 구동되는 기어S2는 그래서 별개의 흐름이다. LG전자, 화웨이, 에이수스, 모토로라의 스마트워치에는 구글의 웨어러블 전용 OS ‘안드로이드웨어’가 탑재돼 있다. 제조업체가 큰 노력 없이 구글의 플랫폼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IT 업체가 안드로이드웨어를 활용한 스마트워치를 만들고 있다. 중국의 이름 모를 제조업체가 만든 스마트워치도 대부분 안드로이드웨어를 활용한다. 최신 제품도 아니고 주류라 보기도 어렵지만, ‘LG워치 어베인 LTE’처럼 ‘웹OS’를 활용하는 등 제조업체의 별도 플랫폼으로 동작하는 제품도 있다. 페블 역시 페블의 독자적인 스마트워치 플랫폼을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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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와 모바도의 블루모션

2. 아날로그와 스마트 기능

이와 달리 기존 시계 업체가 만든 아날로그 제품은 대부분 두 번째 큰 가지로 분류해도 좋다. 디스플레이 대신 스마트폰과 연동해 비교적 간단한 기능을 지원하는 제품이 많다. 스위스의 초고가 시계 업체 프래드릭 콘스탄트는 ‘모션X’라는 이름의 플랫폼으로 기존 아날로그 시계에 스마트폰 연동 기능을 추가했다. 수면 모니터링 기능과 클라우드를 활용한 데이터 백업, 활동량 측정 등 비교적 단순한 기능을 제공한다. 같은 그룹에 속한 또 다른 시계 업체 알피나도 비슷한 제품을 만들었다. 파일럿 시계를 전문으로 만드는 브라이틀링 역시 스마트폰과 연동하는 ‘B55 커넥티드’를 출시한 바 있다. 블루투스를 이용해 시계와 연동하고, 비행이나 운전한 정보를 저장하는 제품이다. 몬데인도 같은 부류다.

아날로그 시계 중 스마트워치로 분류되는 제품 중 곁가지는 HP와 모바도가 함께 만든 ‘블루모션’이다. 아날로그 시계 업체 모바도가 미국의 IT 대기업 HP와 함께 아날로그 시계에 스마트폰 연동 기능을 적용한 사례다. e메일이나 전화, 메시지 도착 알림을 LED 조명으로 알려준다는 점이 블루모션의 가장 큰 특징이다.

전통적인 스위스 시계 업체보다 좀 더 일찍 이 같은 스마트워치 개념을 도입한 업체는 위딩스다. IT 업체가 만든 마치 전자제품처럼 생긴 스마트워치가 한창 경합을 벌일 때 위딩스는 미려한 아날로그 시계에 스마트폰 연동 기능을 탑재한 ‘액티비테’를 만들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최근 출시된 태그호이어의 스마트워치는 아날로그 업체의 제품 중에서도 독특한 위치다. 스위스의 전통적인 시계 업체가 만든 제품이지만, 구글의 안드로이드웨어로 동작하는 제품이기 때문이다. 인텔의 모바일 프로세서를 탑재했다는 점을 강조했을 정도로 미국의 IT 업체와 협력했다는 점을 크게 부각하기도 했다. 이름은 ‘태그호이어 커넥티드’다. 태그호이어 커넥티드는 IT 업체의 제품군에 슬쩍 끼워 넣어도 어색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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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워치

반 년이면 구닥다리가 되는 시계의 가치

삼성전자의 최신 스마트워치 기어S2는 삼성전자가 낸 7번째 스마트워치다. LG전자가 11월 판매를 약속한 최신 ‘LG워치 어베인 세컨드 에디션’은 그 이전에 ‘LG워치 어베인’과 ‘LG워치 어베인 LTE’, ‘G워치 R’, ‘G워치’의 후속 모델이다. 이제 막 첫 번째 스마트워치를 출시한 화웨이를 제외하면 모토로라나 에이수스 등 다양한 IT 업체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스마트워치를 내놓고 있다. 짧으면 반년, 길어봐야 1년 이면 더 좋은 성능을 내는 더 최신의 스마트워치가 시장에 나오는 셈이다. 무수한 업체가 제품 출시 경쟁을 벌이고 있으니, 사용자들의 선택 주기는 훨씬 빨리 도는 구조다. 스마트워치를 마치 스마트폰 처럼 만들고 있다는 뜻이다. 모든 최신 스마트워치는 이전 제품의 비선형적 업그레이드 버전이며, 신형 제품이 나오는 순간 구형 제품을 구입해야 할 이유는 사라진다.

스마트워치는 과연 시계일까 전자제품일까.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처럼 철마다 새 제품이 나오는 것이 자연스러운 가전제품이라고 생각한다면, IT 업체의 이 같은 접근은 일견 타당하다. 사람들이 계절마다 새로운 제품을 손목에 두르도록 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안타깝지만, 스마트워치를 가전제품으로 생각하는 사용자는 그리 많아보이지 않는다. 애플의 애플워치만이 시장에서 작은 관심을 끌었을 뿐, 스마트워치대 대부분은 사용자들의 지갑을 열지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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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시계 업체가 스마트워치에 접근하는 방식은 더 흥미롭다. 스위스 시계 업체는 시계를 전자제품으로 만들지 않는다. 쿼츠 등 기존 시계에 활용하던 기술을 고스란히 사용하되, 마치 요리가 끝난 후 살짝 추가하는 향신료처럼 스마트워치 기능을 첨가한다. 수천만원 짜리 시계를 판매하는 것으로 유명한 프레데릭 콘스탄트가 그랬고, 브라이틀링이 그러했다. 디지털 기능은 아날로그 시계 뒤로 쉽게 모습을 감춘다. 모바도는 HP와 손을 잡고 스마트워치를 만들었지만, 스마트 기능이라고 부를 만한 부분은 블루투스와 LED 조명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태그호이어는 디스플레이로 동작하고, 안드로이드웨어가 탑재된 스마트워치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태그호이어는 태그호이어 커넥티드를 구입한 사용자가 2년 뒤 1500달러를 더 내면 태그호이어의 기존 아날로그 시계인 ‘까레라’로 바꿔주는 일종의 보상 프로그램을 마련해 뒀다.

태그호이어의 보상 프로그램은 의미심장하다. 디스플레이와 소프트웨어로 동작하는 스마트워치의 수명을 최대 2년 정도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제품의 고장 여부에 따른 수명이 아니라 실질적인 가치에 관한 문제다. 고가 아날로그 시계 대부분은 구입 당시와 십 수년이 흐른 뒤의 가치가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스마트워치는 다르다. 짧으면 반 년 만에 고물 신세로 전락한다. 스마트워치 시장이 쉽게 시장 규모를 키우지 못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2013년 출시된 삼성전자의 기어 시리즈는 지금 어떤 평가를 받고 있나, LG전자의 G워치R는 또 어떤가. 가전제품 세계에서 1~2년은 퇴역이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스위스 시계 업체는 아날로그 시계를 베이스로, 절제된 기능만 추가한 스마트워치를 만든다. 시계의 가치를 될 수 있으면 오랜 시간 지속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가치가 오래 지속되지 않는 제품을 내놓았다면, 태그호이어처럼 보상 프로그램이라도 만들어 사용자를 유혹한다. 2년 동안만 스마트워치를 쓰고, 전통과 역사의 아날로그 까레라로 갈아 타라는 쓰라는 신호다. 기존 시계 업체가 이토록 수고스러운 일을 벌이는 까닭을 IT 업체는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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