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폭풍에서 표류하는 한국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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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8일 국회 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는 ‘세계 디지털 경제 혁명과 한국 경제의 디지털 포석’ 이라는 주제로 제1회 디지털 사회 포럼이 열렸다. 디지털사회연구소가 주최하고 국회사무처가 후원한 이 포럼에는 강정수 디지털사회연구소 소장,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이 발제자로 참석했고, 최계영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선임연구원이 토론자로 나섰다. 포럼에서는 한국 경제의 현실과 문제를 진단하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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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국회사무처장

포럼은 박형준 국회 사무처장의 인사말로 시작됐다. 박형준 국회 사무처장은 “우리 사회가 두 가지 문제에 부딪혀 있다”라며 “우선 한국 경제 자체의 성장동력이 떨어졌고, 국민 삶에서도 고령화와 양극화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라고 한국 경제의 현실을 짚었다.

박형준 사무처장은 문제 해결의 열쇠가 정치권에 있다고 봤다. 박형준 사무처장은 “정치가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지금의 정치가 소위 적대적 공생의 이분법적 정치로 문제 해결 역할을 방기하고 있다”라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적대적 공생이란, 두 세력이 적대하는 듯하지만 그 적대하는 구조를 통해 안정적으로 서로의 생존을 유지한다는 의미다. 현재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박형준 사무처장은 “결국은 디지털 경제에서 해답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에는 많은 사람이 동의한다”라며 “그렇게 되려면 우리 사회 전체를 구성하는 부분별 혁신능력을 키우는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라고 논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자동차 산업으로 보는 기술의 대중화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강정수 디지털 사회연구소 소장은 자동차 산업의 변화를 화두로 삼아 한국경제의 문제점을 이야기했다. 핵심 키워드는 ‘컨슈머리제이션(consumerization)’이다. 컨슈머리제이션은 ‘기술의 대중화’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예컨대 이렇다. 예전에는 기업용 컴퓨터를 아무나 만들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혁신적으로 널리 생산되어 보급되고 있다. 컴퓨터의 사례처럼 영역을 넘어 경제 전반에 디지털화의 파급력이 영향을 끼치리라는 것이 강정수 소장의 분석이다. 특히 현재 IT 기업들에 위협받고 있는 자동차 업체들의 모습을 통해서 디지털화의 파급력 설명했다.

자동차산업은 BMW, 크라이슬러, 현대자동차 같은 거대 기업들이 철옹성 같은 위치를 점해왔다. 그러나 현재는 25개의 업체가 무인자동차 개발에 착수했고, 이 중에는 애플, 구글 등 IT 기업들도 포함돼 있다. 강정수 소장은 “특히 노트북 제작업체로 유명한 에이서의 전기자동차 제작은 상징적인 사건이다”라며 “전통적인 자동차 생산업체가 지배하던 시장에 기존 플레이어가 아닌 부품, IT 업체가 뛰어들고 있다”라고 컨슈머리제이션을 설명했다.

구글의 자율주행자동차 개발 상황을 보면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초기 구글의 자율주행차 파트너는 전통적 생산업체인 토요타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보쉬, 컨티넨탈 등 부품업체와 협력하고 있다. 강정수 소장은 “굳이 완성차 업체와 협력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라며 “자신들이 완성차 업계를 대신하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 전기차는 미국업체가 49%, 일본이 36%, 독일이 9% 수준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기존 디젤 시장 점유율과는 사뭇 다른 수치다. 내부적으로 살펴도 다르다. 미국의 전기차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업체는 크라이슬러나 포드가 아니라 테슬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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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수 디지털사회연구소 소장

디지털 혁신의 폭풍과 혁신의 딜레마

강정수 소장은 이런 현상은 ‘혁신가의 딜레마’로 설명했다. 업체들이 많은 투자를 통해 혁신을 주도하고 시장에 안착할수록 아예 다른 혁신을 시도하기는 힘들어진다는 의미다. 예컨대 기존 자동차 업체들은 모터 기술 등 다양한 자동차 혁신 기술들을 가지고 있다. 만약 이 업체들이 전기차로의 혁신을 시도한다면 자신들이 가지는 기술이 낮아진다. 과잉투자가 혁신의 딜레마가 되는 셈이다. 혁신의 딜레마는 새로운 업체에는 기회가 된다. 애플과 구글이 자동차 시장에서 진입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강정수 소장은 현재 세계 경제의 상황을 ‘디지털 혁신의 폭풍’ 이라고 이야기했다. 디지털 기술이 다양한 전통산업 영역과 통합하면서 시장질서를 재편하는 폭풍을 일으키고 있다는 의미다. 디지털 기술은 미디어, 상거래, 금융, 교육을 넘어 자동차 시장까지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서 정보통신기술은 경제를 바꿀 수 있는 핵심이다. 현재 미국의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과 중국의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등의 기업이 전 세계 상거래 시장을 흔들고 있다. 앞서 언급한 미국의 4개 기업은 한국경제를 압도하고 있고, 중국의 3개 기업도 한국 경제의 3분의 1 수준이다. IT 기반 기업들의 성장세가 굉장히 가파른 상황이다. 강정수 소장은 “세계 경제 블록 수준에서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데 한국의 지위는 찾아보기 어렵다”라고 현실을 진단했다. 강정수 소장은 그 원인을 규제에서 보고 있다.

미국은 구글 등의 기업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미 방위 고등연구 계획국(DARPA ), 미 항공우주국(NASA)이 구글에 대한 지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국가의 중장기 프로젝트도 IT 기업들과 함께한다. 세금도 기업이 혜택을 입을 수 있도록 보호한다.

중국도 못지않다. 강정수 소장은 “중국이 엄청난 규제국가이지만, 디지털 혁신 영역과 관련해서는 선 경쟁 후 규제 정책을 한다”라며 “중국도 잠재적 성장력을 가진 예측이 어려운 산업에 대해서는 문제점이 발생하면 그 이후에 분석하고 사후 규제한다”라고 덧붙였다. 알리페이가 단적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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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유니콘의 시대, 스타트업이 한국 경제의 돌파구”

2부 임정욱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센터장의 발제에서는 세계의 흐름에서 한국의 디지털 경제 전략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 스타트업 생태계를 중심으로 살펴봤다. 임정욱 센터장은 “스타트업하기 쉬워지고, 성공 가능성도 높아진 환경이다”라며 스타트업 생태계를 통해 한국 경제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임정욱 센터장은 지금은 ‘유니콘의 시대’라고 정의했다. 유니콘이란 아직 상장을 하지 않았거나 매각되지 않았지만 10억달러의 가치를 가진 회사를 의미한다. 임정욱 센터장은 “최근 2년간 유니콘이 굉장히 많아졌다”라며 세계적으로 새로운 기업들이 나와서 기존 업계에 도전하는 변화가 이뤄지고 있음을 강조했다. 마치 수많은 핀테크 스타트업들이 은행의 비즈니스를 해체하고 있는 것처럼, 다른 분야도 스타트업의 도전이 거세지고 있다는 의미다.

하나의 영역에서 시작한 스타트업이 세상을 바꾸고 있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임정욱 센터장은 “더는 우버를 택시 비즈니스 회사라고 얘기할 수가 없다”라며 “우버의 야망은 대중교통을 대체하는 수준, 우버로 사람들이 차를 운전하고자 하는 욕구를 없애는 수준을 향해 있다”라고 우버 같은 회사들이 기존 업계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의 스타트업도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더는 무단복제, 대량 저가 생산을 중국업체의 특징이라고 말하기도 어렵게 됐다. 임정욱 센터장은 “드론업체인 DJI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혁신을 막는 규제의 장벽

이에 비해 한국의 대기업들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침몰하고 있다. 매출이 60조원 수준인 LG전자의 기업가치는 현재 9조원대다. 매출 1조원 수준인 웨어러블 제조업체 핏비트와 비슷하다. 중국업체와의 기술적인 격차도 한껏 벌어지고 있다. 한국은 규제 방식이 포지티브 형식이다.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지침을 따라야 하고, 여기에 없는 시도를 하면 불법이다. 임정욱 센터장은 “규제 문제가 한국에서 스타트업이 안 되는 이유와 맞닿아 있다”

‘삼성페이’도 한국에서만 시도했다면 불가능했을 서비스다. 삼성은 미국의 루프페이라는 스타트업을 인수했다. 카드 정보를 폰에 넣고 카드 결제기에 핸드폰을 가져다 대면 자기장 신호를 내서 마치 그은 듯한 효과를 내는 기술을 가진 업체다. 삼성은 이 업체를 인수해서 삼성페이를 서비스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규제 때문에 창업이 불가능한 기술이다.

임정욱 센터장은 연구분야와 벤처 생태계도 정부 의존적이라고 지적했다. 연구하는 사람들은 도전하기보다는 정부 과제를 받아 돈을 받고, 벤처투자자들도 상장 직전에 있는 안전한 회사에만 투자하려고 든다는 분석이다. 임정욱 센터장은 “정·재계를 가리지 않고 한국의 리더층이 디지털에 너무 무지하다”라며 “많은 인재가 실리콘밸리로 빠져나가고 있는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개선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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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최계영 선임연구원, 강정수 소장, 임정욱 센터장

핵심은 컴퓨팅이다

최계영 KISDI 선임연구원은 결국 컴퓨팅이 핵심이라고 발제를 정리했다. 최계영 선임연구원은 “프로그래밍의 대상이 무한정으로 확정되는 게 현실”이라며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이용할 수 있는 기업이 주도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발제자들이 문제를 제기한 정부 규제뿐 아니라 민간규제 역시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계영 선임연구원은 “서비스업은 근본적으로 내수산업이라 혁신이 느리다”라며 “지금 간편결제 같은 것도 자본금 1천억원 이상의 업체만 하게 돼 있는데, 이게 다 시중은행의 압력 때문”이라고 현재 상황을 비판했다. 민간업체들이 혁신의 가능성을 막는다는 의미다.

산업전환기의 충격은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뒤이어 질의응답과 토론이 이어졌다. 강철승 중앙대학교 산업자원대학원 교수는 “공청회, 포럼 여러 군데를 가도 상식적인 이야기만 되풀이한다”라며 “스타트업 하는 사람들이 매번 ‘규제 때문에 못한다’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규제가 문제인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라고 실질적인 대안이 필요함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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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운 <미디어오늘>기자는 산업개편을 통해서 사라질 수 있는 노동자의 일자리 문제에 대해 질의했다. 이에 강정수 소장은 “일자리 창출문제는 준비된 산업전환이 뒷받침돼야 한다”라며 “기득권이 일자리 상실문제가 두려워서 이야기 자체를 하지 않는데, 막연하게 공포심만 느낄 게 아니라 토론을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라고 논의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임정욱 센터장은 “산업이 활성화되면 일자리는 금방 생길 수 있다”라며 “새로운 기술기업들이 더욱 필요하다”라고 답변했다.

최계영 선임연구원은 “장기적으로 보면 일자리는 늘 생긴다”라며 “이행기간을 짧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라고 답했다. 최계영 선임연구원은 특히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했다. 최계영 선임연구원은 “세상이 변할 때 필요한 기술들이 있는데, 이걸 교육체계가 제대로 공급해줘야 한다”라며 “그래야 전환기의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스타트업 활성화를 위한 엑싯(Exit) 활성화 방안은 없을까. 임정욱 센터장은 ‘경쟁’이 핵심이라고 답했다. 임정욱 센터장은 “미국도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회사들이 서로 사 가려고 경쟁하다 보니 스타트업들을 자주 인수한다”라며 “현재 한국은 불공정한 시장 때문에 경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정부가 불공정 경쟁이 안 일어나게 상황을 조정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정호준 의원실 유지현 비서관은 ‘기업의 왜곡된 지배구조, 유착 그릇된 관행의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규제가 필요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임정욱 센터장은 “대부분 동의한다. 오늘은 스타트업의 입장에서 작은 기업이 클 수 없는 환경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라며 “각론으로 이야기하기보다는 나라를 통치하는 리더십 철학의 문제이고, 정부가 큰 회사 눈치를 보기보다는 작은 기업들의 활로를 뚫어줘야 한다는 것”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