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열쇳말] 바이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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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두는 중국 최대 검색엔진 기업이다. 과거 구글의 ‘짝퉁’ 정도로 여겨졌던 바이두는 이제 구글을 위협하는 존재로까지 성장했다. 탄탄한 자본을 기반으로 무인자동차부터 O2O(Online to Offline)까지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으며, 미국에 연구소를 세워 전세계 실력 있는 인재들을 모으는 중이다.

▲바이두 첫화면

▲바이두 첫화면

중국에 맞춤화된 검색엔진

바이두는 알리바바, 텐센트와 함께 중국의 3대 IT 기업으로 꼽히는 곳이다. 시장조사업체 스탯카운터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5년까지 바이두의 중국 시장점유율은 평균 70%이며, 중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검색엔진으로 자리잡았다. 수익도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2014년 바이두의 수익은 79억 달러, 우리돈 9조원에 육박했다. 수익은 대부분 광고에서 얻는다. 검색 페이지 위쪽에 키워드 광고와 브랜드 광고를 보여주고, 배너광고도 게재하고 있다. 여러 광고업체와 제휴해 사용자에게 맞춤화된 콘텐츠를 보여주는 기술도 보유하고 있다.

▲바이두 수익 변화(사진 : 스타티스타)

▲바이두 수익 변화(사진 : 스타티스타)

바이두의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 가장 큰 혜택은 다름아닌 ‘중국 시장’이다. 중국 컨설팅 업체 차이니즈 서치 인터내셔널이 2013년에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인구는 전세계에서 가장 많고 그 중 절반인 5억6400만명이 인터넷 사용자다. 이는 미국, 인도, 일본, 브라질의 인터넷 사용자를 다 합친 수보다 많은 수치다. 중국에만 터잡고 있어도 바이두는 다른 나라에서 서비스를 내놓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용자를 가져갈 수 있었다

또한 바이두는 정부 요구사항을 수용하면서 사업을 확장했다. 바이두의 경쟁자 구글은 2005년부터 중국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해 점유율을 높였지만, 중국 정부가 검색 콘텐츠를 검열하려 하자 갈등을 빚고 검색사업을 철수했다. 반대로 바이두는 중국 정부가 검색 콘텐츠를 검열하도록 허락했다.

리옌홍 바이두 공동설립자는 2013년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중국법과 미국법은 다르다”라며 “중국기업으로서 중국법을 따라야 하고, 불법 콘텐츠를 삭제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 인터뷰에서 진행자가 “정부가 좋아하지 않는 콘텐츠를 검열하는 것에 대해 도덕적인 갈등을 느끼지 않느냐”라고 묻자, 리옌홍 공동설립자는 “엔지니어로서 사용자가 모든 종류의 정보를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라며 “인생은 절대 완벽할 수 없어서 내가 하고 싶은대로 조절하지 못할 때도 있다”라고 우회적으로 답했다. 정부 검열을 허락하고 있는 점은 바이두의 큰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검색 결과를 보다 다양화한 것도 특징이다. 스탠포드대학이 2010년에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구글의 검색 콘텐츠 중 83%가 웹페이지였던 것에 비해 바이두는 44%만 웹페이지를 보여줬다. 대신 바이두는 ‘바이두 티에바’라는 커뮤니티 글을 14.5% 보여줬고, 이미지를 13%를 보여줬다. 또한 네이버 ‘지식iN’과 비슷한 ‘바이두 즈따오’를 8% 보여주고, 블로그 콘텐츠도 3% 노출했다.

무엇보다 검색 결과에 MP3 파일을 보여주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사실 이 결과물은 당시 논란거리였다. MP3 검색 결과를 보여준다는 것은 곧 MP3 파일을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는 링크를 알려주는 것과 같다. 많은 음반산업 관계자가 반대할 수 밖에 없는 기술이다.

당시 바이두는 ‘딥링크’ 방식을 이용해 무료로 파일을 내려받을 수 있는 주소를 찾아주었다. 딥링크 기술은 미국내 검색엔진에서는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지된 상태였다. 중국법원은 음악 파일 자체가 바이두 서버에 저장돼 있지 않으며, 알고리즘만 사용하고 있다는 이유로 바이두의 기술을 합법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반대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바이두는 딥링크 방식을 걷어내고 소니BMG, 유니버셜 등과 계약을 맺어 유료 음원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바이두를 혁신으로 이끌 설립자, 리옌홍

바이두의 성공은 리옌홍 설립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회사를 설립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리옌홍 설립자는 여전히 CEO로 바이두의 혁신을 이끌고 있다.

▲리옌홍 바이두 공동설립자(사진 : 플리커 Foutune Live Media, CC BY-ND)

▲리옌홍 바이두 공동설립자(사진 : 플리커 Foutune Live Media, CC BY-ND)

리옌홍은 1968년 공장 노동자 부모 밑에서 넷째로 태어났다. 그는 북경대학교에서 정보경영을 전공한 뒤 석사와 박사과정을 미국 버펄로대학과 뉴욕주립대에서 마쳤다. 졸업한 뒤엔 미국에 있는 회사에서 개발자로 일했으며, 동시에 검색엔진 알고리즘을 설계했다. 이때 ‘랭크덱스’라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랭크덱스의 핵심 개념은 ‘하이퍼링크 벡터 보팅’(HVV)이다. HVV는 하이퍼링크의 백링크값을 검색 랭킹에 반영하는 알고리즘이다. 그는 1997년 논문 ‘관련성 랭킹을 넘어 : 하이퍼링크 벡터 보팅’에서 HVV를 공식 발표했다

리옌홍은 이듬해 ‘질적 검색엔진을 향하여’라는 논문을 통해 한결 개선된 HVV 방법을 제시했다. 그의 아이디어는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자가 페이지랭크 특허 문서에서 인용할 만큼 수준 높은 기술이었다.

▲구글 페이지랭크 특허 문서에 인용된 리옌홍의 랭크덱스.(출처 : 2000년 구글 특허 문서)

▲구글 페이지랭크 특허 문서에 인용된 리옌홍의 랭크덱스.(출처 : 2000년 구글 특허 문서)

러브콜이 이어졌지만, 리옌홍은 고액 연봉을 포기하고 자신만의 회사를 차리기로 결심했다. 그는 북경대 선배였던 슝위를 공동설립자로 영입했다. 슝위는 초기 투자자들을 찾는 데 공을 세웠다. 두 설립자는 사업 초반에는 자체 검색서비스를 선보이는 대신 중국 내 포털에 검색엔진을 공급하는 비즈니스를 선택했다. 하지만 별다른 성장을 하지 못하자 다시 검색엔진에 집중하기로 방향을 바꿨다. 그렇게 2001년 중국의 첫 번째 검색엔진 ‘바이두닷컴’이 문을 열었다. 바이두는 검색서비스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고, 향후 미국 시장 기업공개(IPO)도 성공적으로 완료했다 .

바이두의 고공비행은 리옌홍을 세계적 부호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는 바이두 지분의 15.9%를 보유하고 있으며, 해당 지분의 가치는 12조원에 육박한다. 그렇다고 그가 돈을 벌기 위해서 회사를 운영하는 것으로 아니다. 리옌홍 설립자는 2014년에 열린 ‘아시아 파이낸셜 포럼’에서 “나는 돈을 벌기 위해서 일하지 않는다”라며 “지금 하는 일이 즐거워 하는 것이고, 정보기술을 다루는 분야가 매우 좋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머신러닝을 잡아라

구글은 더 이상 검색엔진 하나만 바라보고 있지 않는다. 이미 60여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백과사전, 정부 정보 검색, SNS, 특허 검색, 게임, e커머스 플랫폼, 운영체제 등이 주된 사업 분야다.

바이두는 특히 머신러닝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2015년 5월에는 딥러닝 분야 최고 권위자 가운데 한 명인 앤드류 응 스탠포드대학 교수를 영입했다. 앤드류 응 교수는 구글에서 딥러닝을 연구했던 인물이다. 바이두는 또한 미국 실리콘밸리에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을 위한 연구센터를 설립해 다양한 인재를 모으고 있다. 이러한 인공지능 기술을 기반으로 무인자동차, 이미지 인식 기술에 투자하고 있다.

O2O 부문에도 투자를 늘리고 있다. 모바일 지갑인 ‘바이두 월렛’ 서비스 사용자를 늘리는 데 주력하고 있으며 음식 배달, 티켓 구매 서비스 등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우버에 직접 투자를 진행하기도 했다. 중국 뿐만 아니라 일본, 브라질 시장을 진출하기 위한 노력도 지속하고 있다.

※ 참고 자료

이 글은 ‘네이버캐스트→테크놀로지월드→용어로 보는 IT’에도 게재됐습니다. ☞‘네이버캐스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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