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애플아, 문자메시지 들여다보게 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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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과 영국 정부가 문자메시지 보안을 둘러싸고 충돌했다. 지난 11월 영국에서는 수사권 강화 법안(Investigatory Powers Bill)이 발의된 바 있다. 수사권 강화 법안에는 영국의 수사기관의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뿐만 아니라 애플 등 기술 업체가 메시지 암호를 해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테러를 방지하기 위함이라는 게 영국 정부가 내세운 명분이다. 하지만 애플은 현지시각으로 12월21일 영국의 수사권 강화 법안에 반대하는 성명을 제출하는 등 강력하게 반발했다.

출처 : 플리커 CC BY Ivan David Gomez Arce

출처 : 플리커 CC BY Ivan David Gomez Arce

지키려는 애플, 엿보려는 영국

수사권 강화 법안에는 문자메시지 서비스를 하는 기술 기업이 문자메시지 내용을 들여다볼 수 있는 암호 해독 열쇠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쉽게 말해 애플이 사용자가 주고받은 아이메시지 내용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영국 정부가 이 같은 요구를 한 배경에는 메시지를 암호화하는 기술인 ‘종단 간 암호화(End to End Encryption)’가 있다 종단 간 암호화는 오로지 메시지를 주고받는 사용자끼리만 메시지 내용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을 말한다. 사용자가 스마트폰에서 메시지를 보내면 메시지는 기술 기업의 서버를 거쳐 다른 사용자의 스마트폰으로 전송되는데, 이 과정 모두를 암호화해 메시지를 서비스하는 주체조차 내용을 볼 수 없다. 즉, 영국 정부가 기술 업체에 메시지를 엿보는 기술을 갖추도록 요청하는 것은 기술 업체를 수사해 테러를 방지하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애플은 악의적인 공격으로부터 사용자의 사생활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들어 반발하고 있다. 애플이 사용자의 메시지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의미는 악의를 가진 해커나 공격자도 메시지 내용을 들여다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애플은 이를 현관의 매트 밑에 숨겨둔 열쇠에 비유했다.

애플은 반대 성명에서 “현관 매트 아래 숨겨둔 열쇠는 착한 사람뿐만 아니라 나쁜 사람들도 찾아낼 것”이라고 주장했다.

열쇠는 암호화된 메시지를 해독하는 능력이고, 착한 사람은 애플과 같은 서비스 업체, 나쁜 사람은 해커 등 공격자를 뜻한다. 열쇠의 존재 자체가 서비스의 보안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국내도 ‘협조의무’ 법안 발의 중

국내에서도 영국의 수사권 강화 법안과 비슷한 맥락을 가진 법안이 19대 국회에 발의된 상태다. 이른바 ‘협조의무’ 법안인데,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서상기 새누리당 의원이 2014년 1월3일 대표 발의한 ‘통신비밀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이고, 다른 하나는 2015년 6월1일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로 발의한 역시 ‘통신비밀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이다. 두 일부 개정 법률안의 핵심은 전기통신사업자의 감청설비 구축 의무화다. 쉽게 말해, ‘카카오톡’을 서비스 중인 카카오가 감청장비를 의무적으로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박민식 의원의 개정안은 감청설비 구축 의무 대상자의 범위를 통신사업자뿐만 아니라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등으로까지 확대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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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국내 업체도 종단간 암호화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카카오는 지난 2014년 발생한 검열 논란 이후 카카오톡에 종단 간 암호화 기술을 도입한 ‘프라이버시 모드’를 마련했다. 국회 발의된 법안이 통과되면, 카카오는 사용자가 프라이버시 모드로 쓴 메시지도 들여다볼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업체에 암호화 기술을 포기하도록 종용하는 꼴이다.

영국과 국내 국회에 발의된 법안은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다. 하나는 국민의 기본권인 통신 사생활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수사권의 과도한 편의를 위한 법안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국내 통신비밀보호법에는 국민 누구도 자신의 의사에 반하는 제3자와의 통화 내역을 공개 당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지난 2014년 7월 유엔인권최고대표는 ‘디지털 시대의 프라이버시권’ 보고서에서 “디지털 통신 감청은 프라이버시권만 아니라 표현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등에 영향을 미치며, 기업에게 감청설비 의무를 지우는 법은 싹쓸이 감시 조치를 촉진하는 환경을 낳기 때문에 특별히 우려된다”라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