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눈으로 본 ‘사물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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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을 앞둔 1999년 MIT 오토아이디센터 소장 케빈 애시턴이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이라는 용어를 고안한 지 15년이 지난 현재 사물인터넷은 정점을 차지하고 있는 가트너의 하이프 곡선에서 보듯 3D 프린팅, 빅데이터에 이어 최대의 화두로 주목받고 있다. 개념적으로는 이미 1980년대 말 제록스 PARC의 마크 와이저가 주창한 ‘유비쿼터스 컴퓨팅(ubiquitous computing)’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물인터넷을 둘러싼 최근의 개념적 혼란과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사물들이 컴퓨터화되어 인터넷과 같은 전자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돼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시스템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사물인터넷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 큰 이견은 없는 듯하다. 성급한 기술낙관론자들은 우리가 이제 곧 ‘초연결 사회’로 진입한다고 전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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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가트너의 하이프 곡선.(출처 : 가트너(Gartner.2014))

그렇다면 사물들이 연결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사물이란 무엇인가? 사물들이 연결될 때 사물과 인간의 관계, 나아가 인간의 지위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기술적으로 구현되고 있는 사물인터넷은 그 ‘기술적 표면’ 기저에서 이런 형이상학적 질문들을 제기한다. 이에 대한 답은 기술적 구현물에 대한 관찰에서 시작돼야 하지만, 기기중심적 관점을 취할 수밖에 없는 기술적, 산업적 담론에서는 이를 찾을 수 없다. 이 글은 기기중심적 관점을 지양하고 새롭게 ‘사물철학(philosophy of things)’의 관점에서 사물인터넷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질문에 답을 하고자 한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이 글은 두 가지 점을 전제한다. 첫째, 사물인터넷은 ‘사물들 사이의 관계’를 구현하는 하나의 특정한 방식이다. 특히 현재 ‘원시적’인 형태의 사물인터넷에서 관찰하는 사물들 사이의 관계만을 고려하면 사물들 사이의 본질적 관계를 통찰하지 못할 수 있다. 이는 현재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사물들이 관계를 맺으며 지금과는 다른 또 다른 ‘사물의 네트워크’를 만들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사물인터넷은 사실상 사물 ‘정보’의 인터넷(Internet of things’ information)이다. 이는 현재의 월드와이드웹이 ‘문서’의 인터넷인 것과 마찬가지로, 사물인터넷은 사물의 상태, 위치, 환경에 대한 데이터, 즉 시맨틱의 망이라는 의미다. 두 번째 전제는 논란 이 있을 수 있지만, 기기중심적 관점과 사물철학의 관점을 구별지어주는 결정적 차이다.

‘사물철학’은 언어 철학, 기술 철학, 종교 철학과 같이 철학계에서 하나의 영역으로 정립된 연구 분과는 아니고, 필자가 사물들 사이의 관계에 보다 주목하는, 어쩌면 다소 이질적일 수 있는 연구 경향들을 묶어 이름을 붙여본 것이다. 그렇기에 철학자들은 이런 작명이 선정적이라고 보거나 배경과 전제가 다른 이론들을 한데 묶는 데 난색을 표하겠지만, 이런 몇몇 연구 경향들이 공유하는 그 무엇이 있다는 점에서 일단 무난한 것 같다.

대체로 다섯 가지 연구 경향이 사물철학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나열해보면 1) 하만, 브라이언트, 샤비로, 메이야수, 보고스트 등이 주창하는 객체지향존재론(Object-Oriented Ontology, OOO) 또는 보다 넓게는 사변적 실재론(Speculative Realism), 2) 라투르, 깔롱, 로 등의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ctor-Network Theory, ANT), 3) 사적 유물론의 현대적, 페미니스트적 버전에 해당하는 신유물론(New Materialism), 그리고 미디어 연구 영역에서 4) 마노비치, 베리 등의 소프트웨어 연구(Software Studies), 5) 키틀러, 파리카, 질린스키 등의 미디어 이론 또는 미디어 고고학(Media Archaeology) 등이다. 해러웨이, 헤일즈, 울프 등의 포스트휴먼 논의, 시몽동의 개체화(individuation) 이론, 나아가 과타리의 기계론도 넓게는 사물의 철학을 읽어내는 데 또 다른 통찰을 제공해준다.

다양한 배경을 갖는 이러한 이론(가)들을 묶는 것이 여의치 않을 수 있는데, 아래에서 사물철학 의 일곱 가지 주장들을 제시하기는 하겠지만, 이들 사이의 공통점은 두 가지 측면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는 등장 배경인데, 사물철학은 현대의 일상생활에서 가장 뚜렷한 ‘사물’로 다가와 있는 과학기술 또는 테크놀로지의 환경에서 배태됐다고 볼 수 있다. 사물철학은 ‘기술적 대상(technical objects)'(Simondon, 1958/2011)으로서의 사물에 대한 이해 없이는 현대 사회를 설명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논의의 사례 선택에서 보듯 테크놀로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OOO의 경우, 이름 자체가 최신의 객체지향프로그래밍(object-oriented programming)을 원용한 것이고, 이에 속하는 철학자들은 온라인 토론을 즐긴다.

두 번째는 세계관인데, 사물철학으로 묶이는 연구 경향들은 모두 ‘탈인간중심주의(de-humanism)’를 표방하고 있다. 사변적 실재론, 행위자-네트워크 이론, 독일 미디어 연구 등에서 보듯, 근대 이후 서구 철학은 사물이나 객체가 인간을 대해서만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본다. 메이야수(Meillassoux, 2008)는 이런 인간중심주의적 관점을 ‘상관주의(correlationism)’라 부르는데, 사물철학은 하이데거식으로 표현하면 인간의 접근으로부터 “물러나 있는(withdrawn)”사물들, 그리고 그것들 사이의 관계에 주목한다(Harman, 2002). 생태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는 기껏 인간이 존재했던 시기, 즉 인류세(anthropocence)의 시각일 뿐이다(Morton, 2013) 1.

그렇다면 사물철학의 관점에서 사물인터넷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이 글은 사물철학을 관통하는 일곱 가지 주장을 가지고 사물인터넷이 갖고 있는 철학적 의미를 해명하고자 한다.

1. 세계는 시스템 작동이 아니라 단위 작동이다.

여기서 시스템이란 신, 이윤 추구, 노동의식 등과 같이 부분들을 지배하며 전체를 통괄하는 거대 원리를, 이와 달리 단위는 “부분”(Latour), “전개체(preindividual)”(Simondon, 1958/2011), 철학에서의 객체 등과 같은 부분적 요소들을 의미하는 바 2, 사물철학은 단위들의 행동에 의해 세계 또는 전체 시스템의 작동이 결정된다고 본 다. ‘단위 작동’을 주창하는 보고스트(Bogost, 2006; 2012)는 이를 “사물이 내부적으로 무엇인가를 꾸미고 다른 사물과 결합하기도 하면서 속성과 상태를 만들어가는 과정 및 그 결과”(Bogost, 2012, p. 27)라고 규정한다.

단위 작동의 사례로 현대 전자적 네트워크의 근간이 되는 패킷 교환을 들 수 있다. 패킷 교환의 이론을 마련한 RAND의 폴 배런의 1964년 메모에 따르면, 패킷은 시스템에 의해 사전에 정해진 경로를 고지식하게 따라가기보다는 “비체계적인 방식으로” 네트워크의 조건, 즉 트래픽 상태에 따라 경로를 달리하며, 네트워크의 상태는 확률적으로 추정될 수 있다. 이는 네트워크가 아닌 ‘네트워킹의 창발(emerging networking)’, 즉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관계들의 패턴인 셈이다(Munster, 2013, p. 28).

이와 같은 단위 작동의 관점은 사물인터넷과 같은 사물들 사이의 관계를 주어진 규칙이나 원리에 의해 작동 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을 강력히 시사하는 것이며, 이는 ‘원시적’인 기존 인터넷에서 이미 드러났던 것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단위 작동을 근간으로 하는 사물인터넷의 메커니즘은 루만의 체계 이론과 같은 2단계 사이너버네틱스(second-order cybernetics) 패러다임이 강조하는 초복잡계 현상(hypercomplexity)의 대표적인 보기가 될 것이다.

[그림2] 폴 배런의 '스테이션 어레이'.(출처 : 배런(Baran. 1964). p. 5)

[그림2] 폴 배런의 ‘스테이션 어레이’.(출처 : 배런(Baran. 1964). p. 5)

2. 단위들이 연계돼 하나의 개체가 만들어진다. 개체는 단위들 사이의 관계다.

이것은 부분과 전체 사이의 관계에 관한 것으로, 사물철학에 따르면 하나의 사물은 다른 사물의 한 부분이 면서 동시에 그 자체로 독립적인 개체이기도 하다(Bryant, 2011, p. 215). 관점의 차이는 있지만 단위들 사이에 연계를 통해 관계, 즉 또 다른 단위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시몽동은 ‘개체화(individuation)’, 라투르는 ‘번역(translation)’, 마노비치(Manovich, 2013/2014)는 ‘혼종화(hybridization)’라 부른다.

시몽동(Somondon, 1958/2011)에 따르면, 개체화란 엔진을 구성하는 피스톤, 냉각기, 연료공급장치, 플러그와 같은 “전개체들(pre-individuals)”이 서로 연계돼 “상호변환적(transductive)”으로 서로를 “규정(상호결정, overdetermination)”하면서 “구체화(concretization)”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때와는 다른 상태로 변화된다는 점에서 상호변환적이고, 이 과정에서 하나의 개체가 다른 개체들에 의해 결정되면서 독립적으로 존재할 때 갖는 추상적인 존재 양식의 여지가 축소된다는 점에서 구체적이다.

단위 또는 개체의 존재 양식과 관련해, 라투르와 화이트헤드는 시몽동이나 하만과 달리 아주 과격하다. 그는 개체를 둘러싼 요소들(사실상 또 다른 개체들)을 벗겨낸다 하더라도 개체 이외의 것, 즉 예를 들어 전통적인 관념 철학이 찾으려고 하는 실체(substance) 같은 것은 찾을 수 없다고 본다. 라투르의 ‘행위자-네트워크’, 화이트헤드의 ‘현실적 계기(actual occasion)’는 바로 환원불가능한 개체, 즉 단위의 특성을 나타내 는 것으로서, 이런 단위는 다른 단위들과의 관계일 뿐이다 3. 개체를 이렇게 ‘비환원체(irreductions)’, 즉 관계로 보는 라투르나 화이트헤드의 입장을 하이데거를 계승하는 하만은 ‘관계주의(relationism)’라고 비판한 바 있는데, 그는 전통적인 철학의 ‘실체’와 같은 그 무엇이 설정될 수 있으며, 이 실체를 우발적, 주변적, 비본질적 요소들이 감싸고 있다고 본다(Harman, 2007) 4.

인용 1. 라투르의 행위자-네트워크 정체성 사례

우리 모두 잠시 후 회의에서 만날 사람의 이름을 웹에서 검색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한 학자의 이력서를 웹에서 보게 될 경우, 처음에는 모호한 항목들의 리스트를 접하게 된다. 그렇다면 ‘에르베 C’가 현재 ‘파리경영대학의 경제학 교수’라는 이야기를 이미 들었다고 치자. 검색을 시작할 때는 고유명사일 뿐이다. 이제 그가 ‘펜실베니아대에서 박사를 받고’ ‘기업 이해당사자들 사이의 투표 행태에 관한 글을 썼고’ ‘집합체의 불가능성에 관한 정리를 증명했다’등을 알게 된다. 속성의 리스트를 계속 보아갈 경우, 그 정의는 확대되지만 역설적이게도 점점 더 특정한 경우로 좁혀지게 된다. 스무고개 게임처럼 빠르게 유일한 답으로 한 사람, 즉 ‘에르베 C’에 도달하게 된다. 이 행위자는 누구인가?

답: 이 네트워크. 처음에는 내용 없는 무의미한 문자열, 즉 단지 점이었던 것이 이제 내용, 내부(interior), 즉 충분히 특정된 고유명사로 요약되는 네트워크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제 속성들의 집합, 즉 네트워크는 간명한 표기로 그 내용을 압축해 보여 주는 봉인(envelope), 즉 행위자로 이해될 수 있게 된 것이다. (Latour et al., 2012, pp. 592-593)

개체 또는 단위가 관계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라투르 등의 입장을 둘러싼 논란에도 불구하고 개체가 관계 맺음을 통해 또 다른 개체 또는 단위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점에서 사물철학은 사물인터넷을 단순히 네트워크를 통해 특정 기기나 환경의 상태를 감지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물의 형성으로 봐야 함을 강조하는 셈이다. 사물인터넷과 관련해 두 가지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하나는 하나의 개체가 다른 개체와 연계될 때 그 개체는 다른 개체와 또 다른 새로운 개체를 형성하지만 그 자체로도 하나의 개체성은 유지된다는 점에서, 원래 두 개체 사이의 관계는 들뢰즈 용어로 표현하면, 인접한 퍼즐 조각들의 경우처럼 ‘이접(disjunction)’의 관계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인용한 라투르 외의 사례에서 보듯, 관찰자의 시점이 위치하는 축척에 따라 관계의 정밀도는 달라짐은 물론 축척에 따른 관계망의 크기에 따라 개체의 정체성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점은 사물인터넷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시사하는 것이다.

3. 개체, 즉 단위들 사이의 관계는 시간적, 공간적 궤적을 가진다.

사물이 시·공간적으로 움직이며 변화한다는 것은 사물철학만의 인식은 아니다. 칸트의 선험적 범주로서의 시간과 공간, 현대물리학의 시공간 중력장, 헤거슈트란트가 주창한 시간지리학(time geography), 러시아 문학비평가 바흐친의 크로노토프(chronotope) 등은 사물이나 인간이 시·공간적 궤적을 가지고 움직이며 이런 움직임은 시·공간의 통합적 틀에서 접근해야 함을 역설하는 개념들이다.

그러나 사물의 시·공간적 위치를 항상적으로 추적하는 것은 간단치 않으며, 보다 중요하게는 사물 자체에 시·공적 위치 정보가 내장돼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런 점에서 사물의 위치를 끊임없이 추적·확인하고 그 정보를 데이터베이스, 나아가 사물 자체에 저장하고자 하는 사물인터넷은 크로노토프 장치로서의 새로운 단계임에 분명하다.

사이버펑크 작가이기도 한 브루스 스털링은 사회의 지속가능성과 사물인터넷을 다룬 저서 ‘사물의 형태 Shaping Things'(2005)에서 새롭게 ‘스파임(SPIME)’이라는 용어를 고안하면서 사물 자체가 이제 시·공간 정보를 포함해 다양한 정보를 내장하는 새로운 장치가 되고 있다고 보았다. 이런 정보에는 사물의 구성요소, 고유 아이디 코드, 소유 히스토리, 시·공간 정보, 맞춤설정을 위한 정보, 상호작용을 위한 공개 사이트, 중고 가격 등이 포함된다. 스털링(Sterling, 2005)은 “스파임은 무엇보다도 관계의 집합이다. 스파임의 핵심은 정체성이다. 스파임은 문서화 과정의 주역으로 정의된다. 시·공간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정확한 궤적을 가지는 역사 적 실체다”(p.77)라고 강조한다. 흥미롭게도 스터링은 사물인터넷 시대에는 잃어버린 물건을 검색엔진의 구글링을 통해 찾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p. 94). 이는 항상적으로 개별 사물의 시간적, 공간적 위치가 확 인되고 저장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사물이 스파임 장치가 된다는 것은 항상적인 접근 가능성이 보장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럴 때 중요한 점은 그런 정보를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 하는 것인데 5,관점에 따라 스파임이라는 ‘관계결합체(concatenations, linking together)’에서 드러나는 정보와 감추어지는 정보, 즉 가시성과 비가시성 사이의 갈등과 긴장이 향후 사물에 대한 인식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그림3] 스터링의 사물 인터넷 및 스파임 개념도.(출처 : lasindias.com)

[그림3] 스터링의 사물 인터넷 및 스파임 개념도.(출처 : lasindias.com)

4. 사물이 보는 세계는 인간이 보는 세계와 다르다.

나무와 같은 사물이 세계를 본다고 하면, 하만의 ‘유인(allure)’과 같은 관계가 될지 모르지만, 사물인터넷과 같은 일반적인 맥락에서는 ‘기계의 눈(machinic eye)’ 또는 기계 읽기(machine reading)와 같은 경우를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기계 읽기 경우라면 이미 보편화된 패턴 인식이라는 기술적 과정을 연상하겠지만, 일반적으로 사물이 눈을 가지고 본다고 하면 존재론적, 인식론적 난점들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데, 하나는 사물이 과연 우리 인간처럼 세계를 보는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물이 세계를 보는 방식을 우리 인간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사변적 실재론은 사물이 사변하는 방식을 사변한다고 주장하는데, 하만이나 보고스트는 사물의 눈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은유를 든다.

보고스트는 디지털 카메라 센서라는 흥미로운 사례를 보여준다. 디지털 카메라는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 디지털 카메라는 세상을 두 가지 방식으로 본다. 디지털 카메라에 흔히 사용돼 온 베이어 센서는 각 셀이 적록청 중 하나에만 반응한다. 이는 전통적인 필름과 유사한 방식이다. 인간의 눈은 빛이 약할 때는 상대적으로 빨강에 덜 민감한 간상 세포를 사용하지만, 빛이 강할 때는 적록청 모두에 민감 한 추상 세포를 사용한다. 빛이 약한 저녁 무렵에 인간의 눈은 간상 세포와 추상 세포 중 어떤 것을 사용할지 혼란스러워 하며 간상 세포와 추상 세포를 빠르게 전환하는 박명시(mesopic vision)가 된다. 각각의 광센서가 적록청 모두에 반응하는 시그마의 포베온 센서는 빛이 약할 때의 인간의 눈과 유사하게 사물을 지각하며, 이런 점에서 각 센서가 적록청 중 하나에만 반응하는 베이어센서보다 우수한 광민감도를 보인다. 이런 점에서, 예를 들어 포베온 센서를 사용하는 카메라의 지각은 박명시라는 은유로 기술될 수 있다는 것이다(p. 72). 다시 말해, 기계의 눈인 포베온 센서는 세상을 “박명시로 본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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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4] 구글 자율주행자동차가 보는 세계 : 3D 이미지.(출처 : 구글)

기계의 눈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는 구글 자율자동차의 센서인 LIDAR 장치다. 벨로다인이 만든 이 장치에는 초당 10회 회전하는 틀 안에 64개의 레이저 광선, 그리고 같은 수의 검출기가 들어 있는데, 이 장치는 초당 약 130만개의 측정점을 생성하며, 내장된 컴퓨터는 이 자료로 사방 100m까지 실시간 3D 영상을 만들어낸다(Brynjolfsson & McFee, 2014/2015, 77쪽). 사물인터넷은 RFID로 대표되는 수많은 센서를 ‘눈’으로 쓸 수 있다.

이렇듯 은유나 시각화를 통해 이해하게 되는 기계의 눈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첫째, 기계의 눈으로 보는 세계는 인간이 보는 세계와 다르다는 점에서 이 두 세계는 통역불가능한 ‘다중 세계(multiple realities)'(Schütz, 1945)가 된다는 것이다. 하만의 용어로 표현하면, 기계의 눈으로 보는 세계는 인간의 접근으로부터 물러나 있는, 기껏해야 부분적으로만 접근 가능한 세계라 할 수 있다. 둘째,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기 계의 눈은, 키틀러가 강조한 바와 같이, “소위 인간(so-called Man)”이 가지고 있는 지각 양식의 고유함을 드러내준다. 예를 들어 인간은 가시광선 대역만 볼 수 있다면 기계는 그 영역을 넘어선다. 이런 점에서 사물철학의 탈인간중심주의는 역설적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에 기여한다.

5. 기계의 눈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알고리즘 눈’이 되고 있다.

여기서 알고리즘 눈이란 센서 등으로 측정, 수집한 대량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예측하는 일종의 ‘프로그램 눈(programmed vision)'(Chun, 2011)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해 두 가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데, 하나는 스파임 장치를 통해 대량의 데이터가 스트리밍으로 계속 축적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래를 내다보는 예측 모델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프로그램이란 말그대로 앞서서(pro) 무엇인가를 쓴다(grammatization, 어원은 그리스어 graphein 새긴다)라는 의미로, 데리다가 말하는 쓰기의 시간화, 즉 ‘차연(deferring)’인 셈이다. 사물인터넷을 추동하는 현대 ‘프로그래밍 산업’은 미래를 기투(project)하는 선파지(protension), 즉 ‘기억기술(mnemotechnics)’을 기술적으로 고도화하고 있는 것이다(Stiegler, 2001/2011).

구글 검색엔진에 저장된 독감 관련 검색어 트렌드와 실제 독감 유사 증상의 발병 빈도 사이의 높은 상관관계는 익히 알려진 사례다. 즉 구글은 검색어라는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기존의 데이터를 토대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은 통제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911 테러 이후 미국에서 강화된 데이터 수집, 분석 및 예측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통제하려는 사전 억제, 즉 ‘선제(preemption)’의 논리를 보여준다(Massumi, 2007). 이는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가 현실화된 모습에 다름 아니다.

인용 2. 억제와 선제

억제는 객관적인 원인에 기반한다. 선제는 효과 확산에 기반한다. 둘다 작전의 논리들이다. 그렇지만, 억제라는 작전 논리는 그 원인의 효과를 대체하는 경우라도 여전히 인과적이다. 선제는 인과적 작전 논리라기보다는 효과를 지향하는 작전 논리 다. 그 기반이 잠재력이기에 그 자체를 조직화하기 위한 실재 원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실재 원인의 부재를, 그것을 대신할 실제 효과를 만들어냄으로써 보상하고자 한다. 이것이 바로 그 움직임의 동력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부재하는 가상 의 원인을 실제로, 직접적으로 실재-효과-산출로 전환해낸다. (Massumi, 2007, para. 23)

마수미의 논지에서 보듯, 데이터 기반 예측의 기저에 깔려 있는 사전억제의 논리는 실재와 가상의 역설을 보여준다. 미래 예측의 기반이 되는 실제 측정된 데이터가, 산출되기를 바라는 효과와는 무관한 가상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사물인터넷이 수집하는 데이터, 그리고 이에 기반한 예측은 이처럼 부재하는 가상의 인과관계라는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6. ‘소위 인간(so-called Man)’은 사물과 동등한 위치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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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인간중심주의적 관점 또는 ‘상관주의적’ 관점과 가장 극명하게 대립되는 20세기 말 ‘비인간으로의 전환(Nonhuman Turn)’의 핵심적 주장이다. 그루신에 따르면, ‘비인간으로의 전환’을 주장하는 연구 경향으로는 1) 라투르의 행위자-네트워크 이론, 2) 정동 이론(affect theory), 3) 동물 연구(animal studies), 4) 들뢰즈, 드 란다 등의 아상블라주 이론(assemblage theory), 5) 뇌과학, 인지과학, 인공 지능 연구 등의 신두뇌 연구(new brain science), 6) 페미니즘, 철학, 맑시즘 계열의 신유물론(new materialism), 7) 기술적 네 트워크, 물질적 인터페이스, 컴퓨터연산 분석에 주목하는 뉴미디어 이론(new media theory), 8) 앞서 소개한 사 변적 실재론, 8) 체계 이론 등을 들 수 있다.

이 글의 서두에서 제시한 사물철학의 연구 경향들과 많이 중첩된다. ‘비인간으로의 전환’은 ‘우리는 결코 순수하게 인간적이었던 적이 없고’, 항상 인간은 비인간과 공진화하고 공존하며 공조해왔으며, 인간은 바로 비인간과의 비차별성으로 특징지어진다고 주장한다(Grusin, 2015, pp. ix-x). 일찍이 해러웨이는 인간-동물-기계, 유기체와 무기체, 물리적인 것-비물리적 인 것 등의 경계가 약화되고 있다며 우리는 모두 사이보그라고 주장한 바 있다. 비인간과의 비차별성은 라투르에게 ‘일반화된 대칭성(generalized symmetry)’으로 더욱 강조된다. 라투르 등의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은 행위능력(agency)을 가진 것은 모두 행위자로 간주한다(Latour, 1997/2010, 107쪽). 나아가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은 인간과 비인간이 분리될 수 없으며, 우리가 사회라고 부르는 것은 인간-비인간 집합체에 다름 아니라고 본다.

이런 주장은 행위능력 측면에서의 동등성을 의미하는 것이지 인간의 고유함이나 존엄성을 폄훼하는 것은 아니다. 사물철학과 같은 탈인간중심주의적 관점이 강조하는 것은 행위능력에 의해 매개되는 사물, 즉 비인간 행위자와의 관계 맺음, 그리고 그런 관계 맺음에서 인간 행위자가 수행하는 행위능력의 독특성이다. 이런 맥락에서 시몽동은 인간을 ‘조작자(operator)’로, 스털링은 ‘데이터 몰이꾼(wrangler)’으로 규정한다. 이런 규정은 인간 행위자가 비인간 행위자와 맺는 관계에서 발휘하는 수행능력의 두 가지 특성을 보여주는 것 으로, 사물인터넷과 관련해서도 이런 두 가지 속성은 유효한 것 같다.

[그림5] 1960년대 미군의 반자동지상환경(SAGE)과 인간 조작자.(출처 : ethw)

[그림5] 1960년대 미군의 반자동지상환경(SAGE)과 인간 조작자.(출처 : ethw)

7. 인간의 정치를 넘어 ‘사물의 정치’에 주목해야 한다.

라투르로 대표되는 이 주장은 교호성(sociality)에 대한 인식 전환, 즉 인간-인간의 교호에서 인간-비인간의 교호로의 전환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인간-비인간 사이의 교호를 전통적인 인간-인간 교호와 대비하여 일반적으로 ‘포스트교호(post-sociality)’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이재현, 2012). 인간들 사이에 관계 맺음이 권력 관계를 드러내고 또 만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도 그 관계 맺음에 따라 권력의 지형이 바뀌게 된다.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은 이미 다양한 사례 연구들을 통해‘사물의 정치’가 어떤 양상으로 이루어지는지 기술한 바 있는데, 프랑스 파스퇴르 연구진의 성공 과정을 그린 라투르, 가리비와 생브리외만 어부들 사이의 관계를 다룬 깔롱은 대표적인 보기들이다. 사물의 정치를 보여주는 가장 단 순한 사례는 라투르의 호텔 매니저와 객실 열쇠 사례다. [그림 6]에서 보듯, 이 예에서 행위자는 호텔 매니저, 투숙객과 같은 인간 행위자, 그리고 열쇠, 구두 알림, 텍스트 알림, 열쇠 뭉치 등과 같은 비인간 행위자다. 호텔 매니저는 열쇠 반납 비율을 높이기 위해 (1) 상태에서 출발해 (2) (3) (4)로 나아가면서 새로운 요소들, 즉 구두 알림, 텍스트 고지, 열쇠 뭉치를 추가해 가는데, 이에 따라 반납되는 열쇠의 비율, 즉 네트워크에 포 함되는 투숙객 수는 늘어난다. Y축은 결합되는 요소들의 변이를 나타내는데, 새로운 요소들이 추가되면서 열쇠를 반납하는 투숙객, 즉 호텔 매니저에 결합되는 요소들과 그렇지 않은 요소들 사이에, 즉 기획과 반기획 사이에 전선이 구성된다. 이 전선은 구두 알림, 텍스트, 열쇠 뭉치 등 비인간 행위 자의 네트워크 참여 여부(‘번역’)에 따라 각기 다른 정치 지형을 만들어가며 변화한다. 이 사례에서는 반납률 제고라는 인간 행위자의 의도에 따라 비인간 행위자의 행위능력이 발휘됐지만, 사물이라는 비인간 행위자의 행위능력은 인간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또는 다르게 발현되기도 하며, 이런 경우가 전자의 경우보다 더 흔하다.

호텔 매니저와 객실 열쇠의 사례.(출처 : 라투르(Latour, 1991))

[그림6] 호텔 매니저와 객실 열쇠의 사례.(출처 : 라투르(Latour, 1991))

그렇다면 인간의 입장 대신 사물의 입장을 대변해야 한다는 라투르의 주장은 극단적이라 하더라도, 인간-비인간 사이의 교호에, 즉‘사물의 정치’에 더 주목함으로써 무엇을 더 얻고 더 이해할 수 있는가? 지난 여름 메르스 사태를 인간(보건 당국, 의사)이 아닌 메르스 관점에서 관찰하면 새롭게 무엇을 더 볼 수 있을까? 라투르를 비롯해 사물철학은 인간-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에 주목함으로써 인간과 세계에 인간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비인간 행위자들을 보지 못하게 한다고 본다. 흔히 사회적 문제는 인간-인간 사이의 갈등에서만 비롯된다고 생각해왔지만, 비인간 행위자와 인간 사이의 갈등 또는 부적합에서 오는 경우도 많다. 이런 관점이 18세기에 나타난 러디즘이라면, 사물인터넷과 같은 “기술적 대상들”, 즉 비인간 행위자가 폭증하는 현대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몽동, 라투르, 슈티글러가 보여주듯, 비인간 행위자와의 상호작용에 주목하는 새로운 러디즘, 새로운 기술 철학이 필요할 것이다.

이 기사는 미래창조과학부와 KISDI가 ICT인문사회 혁신기반 구축 사업의 일환으로 발간하는 ‘ICT인문사회융합동향’ 2015년 4호에 게시된 글입니다. 원고의 저자는 이재현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입니다. 원제는 ‘사물인터넷과 사물철학’입니다. <블로터>는 KISDI와 콘텐츠 제휴를 맺고 동시 게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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