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유에서 합리적 공유로…‘오픈액세스’와 출판 패러다임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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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출판사의 학술저널에 실려 있는 학술 논문은 검증된 최신 정보와 연구 결과를 담고 있기 때문에 연구자들에게는 필수적인 정보원이다. 온라인 출판을 하는 요즘 학술저널은 개인이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구독하는 것이 아니라 도서관에서는 대량으로 구입하고 연구자들은 도서관에서 제공하는 학술지를 읽게 된다. 연구자 개인의 입장에서 필요한 학술 논문은 도서관에서 구입한 학술저널에 실린 논문의 0.01%도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다양한 연구자들이 요구하는 학술지를 구입해야 하는 도서관의 입장에서 이용될 것이 확실한 학술저널을 골라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주요 대학 도서관에서는 1만2천종에 달하는 소위 SCI 학술지를 대부분 확보하고 각 전문 분야별 학술지를 망라하여 2만여 종을 구입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학술저널 구입비로 매년 수십억원에서 100억원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다. 구입한 학술저널 중 한 번 이상 이용되는 학술저널은 60% 수준으로, 실제 한번 이상 이용되는 학술 논문은 확보한 논문의 10%를 넘지 못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나마 이런 조사도 시행되지 않고 있다. 도서관에서는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데이터로 평가를 하는 수준이다.

학술저널의 가격 상승이 비용 증가에 의한 것이라면, 비용 절감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학술지 가격 상승은 출판사의 이윤 추구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실제로 엘제비어, 스프링거, 테일러 앤 프랜시스 출판사의 이윤 비율이 35%라고 알려졌다. 이는 페이스북(27%), 중국 공상은행(29%) 보다 높은 수치다. 이러한 고수익이 가능한 이유를 학술지의 특수성과 관련되는 연구자들의 무관심 때문이다.

▲사진 : SLUB Dresden(https://www.flickr.com/photos/slubdresden/10404994606/). CC BY(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2.0/)

▲사진 : SLUB Dresden. CC BY.

출판사에서는 학술저널 편집을 담당하지만 실제 논문을 받고 심사하는 역할은 그 분야 전문가들이 한다. 논문의 저자는 까다로운 논문 심사를 통과해 게재가 승인된다는 것이 영광이고 성과이기 때문에 학술 논문의 저작권을 출판사에 넘기고 원고료나 저작권료를 받는 것을 포기한다. 출판사는 우수한 연구의 결과를 요약한 학술논문을 무료로 기증받아 도서관에 판매하는 것이다. 출판사에서 도서관에 판매할 때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비싸게 판다. 우선 가격표가 없거나 터무니 없이 비싸게 책정돼 있다. 가격은 이용자수에 연동해 책정되는데 교수와 학생, 연구자의 수를 기준으로 인원수를 추정하고 그에 따라 가격이 제시된다. 가격표에서 할인해서 팔기 때문에 구매하는 도서관에서는 싸게 사는 것으로 착각한다. 학술 저널을 수십 혹은 수백 종씩 묶어서 판다. 일종의 끼워팔기이기도 하지만 어느 학술지가 이용될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특정 저널을 빼라고 할 수도 없다. 도서관으로서도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다년간 계약을 하는 등의 방식으로 싸게 사려고 노력은 하지만, 판매자가 독점하고 있는 학술지를 무조건 구입해야 하는 입장인 도서관에서는 사실상 흥정을 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

학술저널이 온라인으로 출판되고 구독되기 시작한 최근 40년 동안 미국의 주요 대학도서관이 부담하는 학술저널 구입비는 매년 7%씩 상승했다. 동일 기간 중의 개인소득 증가, 단행본 구입비, 인건비 상승률보다 3~10배 높은 수치이다. 이런 현상은 도서관의 비용 부담을 증가시키는 것을 넘어서 연구비 중 학술 문헌 구입비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거나 연구비의 10%를 문헌 구입에 사용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전자저널이 되면 구독 비용이 싸질 것이라고 생각한 1995년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가고 출판사는 엄청난 고수익을 챙기면서 오픈액세스에 대한 개념이 나오고 방법과 실천이 이어졌다.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된 오픈액세스는 출판 비용을 논문 저자가 부담하는 ‘오픈액세스 저널’과 출판된 논문을 무료로 공개하는 ‘인스티튜셔널 레포지토리’로 요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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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비용을 저자가 부담하는 방법’은 오픈액세스 전용 학술저널을 창간하는 ‘골드 오픈액세스’와 기존 유료 학술지에서 저자가 원하는 경우에 출판비를 부담하는 ‘하이브리드 오픈액세스’ 모델로 구분한다.

골드 오픈액세스 저널로 출판되는 SCI 논문이 전체 SCI 논문의 13%가 됐지만 유료 학술지는 여전히 고수익을 누리고 있다. 오히려 유료 학술저널이 새로운 자매 학술저널을 창간하거나 호당 논문 편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시장 확대를 통해 수익을 늘리고 있다. 다수의 오픈액세스 저널이 창간되고 연구자들이 논문을 발표할 지면은 크게 늘어나 논문을 아무렇게나 써도 어딘가는 실릴 수 있는 상황까지 됐다. 결국 오픈액세스와 유료 학술지 모두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해 학술지 출판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됐다. 국내 학술지를 발전시키고 오픈액세스 출판을 통해 출판 품질을 개선하고 외국계 출판사를 이용하는 등의 방식으로 이용을 확대시키려는 노력도 문제점이 많다. 결국은 학술지 시장을 확대하는 것이며 고비용 정보 유통의 부작용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연구자의 연구비 손실이고 도서관의 비용 증가로 이어졌다. 하이브리드 모델은 출판사에게는 또 하나의 수익이 됐을 뿐이다. 저널에 오픈액세스 논문이 포함돼도 학술지 가격은 여전히 올라가고 있으니 하이브리드 저널은 ‘더블 디핑’을 통해서 출판사에게 공돈을 덤으로 얹어주는 꼴이 됐다.

2015년 11월 엘제비어 출판사에서는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링구아>라는 학술지의 편집위원장 요한 루릭과 31명의 편집위원은 엘제비어 출판사와 오픈액세스 투고료를 낮추고 출판권을 편집위원회로 넘기라고 요구하는 협상이 결렬된 후 편집위원직을 사임했다. 그리고 <글로사>라고 하는 새로운 학술지를 창간해 편집위원을 맡으며 오픈액세스 투고료를 400달러라는 혁신적인 금액으로 운영했다. 엘제비어 출판사는 다른 학자를 편집인으로 초빙해 1200달러로 학술지를 운영하고 있다. <글로사>의 출판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링구아> 학술저널에 투고 거부 캠페인을 하면서 학술지 비용 절감 노력을 확산시키고 있다. <코그니션>이라는 다른 엘제비어 학술지도 2150달러로 책정된 현행 오픈액세스 투고료가 과다하다고 낮출 것을 요구하는 공개 청원을 하고 있다.

이러한 요구들은 학술지 출판 비용 구조가 터무니없이 비합리적으로 출판사에게 유리하도록 돼 있다는 문제의식, 그리고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된다. 아울러 지금 연구자들이 나서지 않으면 현재의 고비용 학술저널 출판 구도를 바꿀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나오는 것이다.

2015년 12월 독일 베를린에서는 오픈액세스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시동을 걸었다. 새로운 골드 오픈액세스 창간과 하이브리드 오픈액세스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새로운 방식의 오픈액세스 전략을 수립했다. 기존 최우수급 학술지를 대량으로 오픈액세스로 전환하는 사업이다. SCI 학술저널의 90%를 오픈액세스로 전환해 저자가 오픈액세스 출판 비용을 부담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현재 적용되고 있는 오픈액세스 투고료를 그대로 적용하더라도 현재의 구독료 합계보다는 절감된다는 계산이다. 아울러 출판사와의 협상을 통해 오픈액세스 투고료를 낮추면 그만큼 절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번 회의의 의장이며 막스플랑크 화학연구소 소장인 울리히 푀슬 교수는 이번 회의의 결과와 성과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학술지를 유료 구독 방식에서 오픈액세스로 전환하도록 촉진할 수 있는 조건과 방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각국 전문가들의 토론 결과가 오픈액세스 전환에 대한 목표를 분명히 제시하는 의향서(Expression of Interest: EoI) 형식으로 정리됐다.”

막스 플랑크 디지털 도서관의 랄프 쉼머 교수는 이렇게 강조했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존 학술지 유료 구독 재원만으로 오픈액세스 전환이 달성될 수 있다. 그렇지만 실제 전환이 실현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오픈액세스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부드럽지만 신속하게 추진해야 한다.” 쉼머 교수는 또한 이런 배경에서 “각국의 학술연구기관과 연구비 지원 기관을 중심으로 의향서(EoI)에 서명하고 제반 활동에 동참할 것을 요청한다”라고 덧붙였다.

이번 오픈액세스 베를린 컨퍼런스는 2015년 12월8·9일 이틀 동안 개최됐다. 2003년 최종 채택한 ‘베를린 오픈액세스 선언'(Berlin Declaration on Open Access to Knowledge in the Sciences and Humanities)을 막스플랑크협회가 주도해 발표한 이후 530여 기관이 서명에 참여했으며, 그 동안 12차례 회의를 개최했다. 모든 연구 결과를 과학자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 학술 발전의 결과를 연구자와 사회에 대한 혜택이 되도록 하자는 취지다.

※ 참고문헌

seojw_org서정욱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병리학교실 교수, 세계보건기구 의학정보문헌 협력센터(WHO CC HILS) 책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사단법인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이사장으로 오픈액세스 운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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