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알파고’의 바둑 실력, 기보로 가늠해보니

가 +
가 -

요즘 바둑이 화제다. 얼마전 종영한 드라마도 영향을 줬겠지만, 구글의 딥마인드가 구축한 인공지능 바둑 시스템 ‘알파고’ 덕분에 바둑이 많은 이들의 입이 오르내리고 있다. 알파고는 지난 2015년 유럽 바둑 챔피언 판 후이 2단을 상대로 한 5번의 대국에서 모두 승리를 거뒀다. 국내에서는 알파고를 보는 열기가 더 뜨겁다. 오는 3월 알파고가 서울에서 이세돌 9단과 대국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판 후이 2단과의 대국이 알파고의 몸 풀기였다면, 이세돌 9단과의 대국은 본 게임인 셈이다. 자세한 경기 일정은 구글코리아가 오는 2월22일 한국기원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전세계인의 눈과 귀가 서울의 3월에 쏠려 있다.

800px-Go_game_(2094497615)

wikimedia, CC BY 2.0

판 후이 2단을 꺾은 알파고의 바둑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1996년 전세계 체스 챔피언과의 대결에서 처음으로 승리를 기록한 ‘딥블루’처럼, 인공지능과 인류의 대결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될까. 2015년 10월 총 다섯 차례 치러진 알파고와 판 후이 2단의 기보를 되짚어 알파고의 바둑 기량을 가늠해봤다. 기보 풀이는 한국기원의 박승철 프로기사(7단)에게 도움을 받았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3월 대국에서 이세돌 9단이 낙승을 거둘 것이라는 게 바둑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알파고와 판 후이 2단의 대국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판 치러졌다. 모든 대국의 기보는 구글 딥마인드의 홈페이지에 공개돼 있다.

• ‘블로터플러스’ 자료실에서 기보 내려받기(회원가입)
• 딥마인드 홈페이지에서 기보 내려받기

alphago_1

바둑은 경우의 수가 많아 체스와 달리 아직 인공지능이 정복하지 못한 분야다(사진 : 딥마인드 유튜브 동영상).

제1국: 백(알파고) 2집 반 승

알파고와 판 후이 2단의 첫 번째 대국은 지루하게 흘렀다. 양 쪽 모두 전투력 있는 수는 보여주지 않았다. 이런 대국을 집바둑이라고 부른다. 알파고와 판 후이 2단은 초반부터 튼튼한 수를 두면서 무난한 출발을 했다.

뜻밖의 수가 먼저 나온 쪽은 알파고의 흰색 돌이다. 알파고는 14수(D14)에서 최근 잘 쓰이지 않는 정석을 뒀다는 게 박승철 7단의 평가다. 정석을 응용하는 능력에 있어서는 아직 알파고의 기력이 떨어지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기도 하다.

반대로 판 후이 2단의 43수(H3)는 좋은 수로 평가된다. 바둑에서 싸움은 바둑판의 네 귀퉁이에서 시작해 변으로 이어지고, 점차 중앙으로 확장되는 식으로 펼쳐진다. 네 변의 자리다툼이 대강 정리된 상황에서 판 후이 2단은 43수를 통해 마지막 큰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이전 수까지는 우변에서 다툼을 벌이다가 알파고에 한 방을 먹인 것이다. 이 수로 판 후이 2단이 다소 유리한 판세를 이어갔다.

박승철 7단은 알파고의 기력을 중∙후반에 강한 것으로 풀이한다. 초반에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수가 종종 나오기도 하지만, 경기가 중∙후반으로 갈수록 이 같은 수가 줄어든다는 평가다. 서로 수를 주고받아 승자를 결정하는 보드게임에서는 이전까지 이어온 상대방과의 수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수를 예측하는 기술이 매우 중요하다. 체스도 그렇고, 바둑도 마찬가지다. 알파고는 ‘심층신경망(Deep Neural Network)’ 기술을 통해 최적의 수를 찾고, 앞으로의 승자를 예측하도록 설계돼 있다. 경우의 수가 줄어드는 대국 후반에 더 촘촘한 수를 보여주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중∙후반에 좋은 실력을 보이는 알파고의 이 같은 성향은 제1국 이후 이어지는 나머지 4개 대국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알파고는 84수(P5)로 흑돌을 봉쇄하기 시작했다. 이 돌로 알파고는 우 중앙의 세력을 가져가게 됐다. 초반 벌어진 흑돌과의 미세한 격차를 좁힌 출발점이기도 하다. 결정적인 한 방은 알파고의 130수(Q15)에서 나왔다. 박승철 7단은 “수 읽기를 동반한 끝내기 맥점을 구사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상대방과 돌을 나눠 두며 앞으로의 돌 모양을 예측하는 것을 수 읽기라고 한다. 130수 덕분에 알파고가 대국을 이겼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결정타 역할을 했다는 게 박승철 7단의 설명이다.

alphago_game_1_800

알파고-판 후이 제1국

제2국: 흑(알파고) 불계승

대국이 완전히 끝나기 전에 한 쪽이 패배를 인정해 승자가 가려지는 게임을 ‘불계승’이라고 부른다. 집 수를 헤아려볼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제2국부터 마지막 대국까지 모두 알파고의 불계승이 이어졌다. 제2국에서도 초반 알파고의 정석이 다소 흔들리는 수가 나왔다. 흑돌의 5수(D5)와 35수(C12)가 그렇다. 5수는 예전에 유행한 정석이고, 35수는 별안간 튀어나온 수라는 게 프로기사의 해설이다. 알파고는 C12에 돌을 두기 보다는 A6, 혹은 A7에 수를 이어가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라는 평가다.

박승철 7단은 “인공지능은 이전의 기보를 바탕으로 그것을 응용해 실력을 높여가는 프로그램인데, 이 같은 정석은 금방 정확하게 익힐 수 있는 것”이라며 “알파고가 정석을 모르는 것은 아닐까 의아해 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판 후이 2단의 큰 실수가 나왔다. 흰 돌의 62수다. 하변에서 다툼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62수 때문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흰 돌이 다 잡혀버려 알파고의 세력이 강해질 수 밖에 없었다는 평가다. 정리하면, 제2국에서 알파고가 승리한 것은 알파고의 실력이 우세해서라기 보다는 판 후이의 실수 덕분인 셈이다. 알파고의 기력에 프로기사들이 박한 평가를 내리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alphago_game_2_800

알파고-판 후이 제2국

제3국: 백(알파고) 불계승

제3국에서는 초반 포석을 판 후이 2단이 먼저 깔았다. 흑돌의 5수(F3)와 7수(L3)이 그것이다. 판 후이의 이 같은 포석은 이후 대국에서도 등장한다. 이를 ‘미니 중국식’이라고 부른다. 하변에서 발빠르게 실리를 챙기기 위한 수다. 90년대 후반부터 유행한 수로, 지금은 다소 변형된 수가 쓰인다고 한다. 판 후이 2단이 특히 즐겨쓰는 포석이거나 판 후이 2단의 실력이거나, 둘 중 하나인 것으로 판단된다는 게 박승철 7단의 풀이다.

이번 대국에서는 63수(S4) 까지 흑돌을 쥔 판 후이 2단이 점수를 땄다. 하변에서 벌어진 싸움에서 좋은 포인트를 올린 덕분이다. 하지만 이 흐름을 알파고의 64수(P11)가 끊었다. 이후 판 후이 2단의 다소 무리한 수가 이어지며 알파고에 응징을 당한 대국이다. 중반 이후부터 판세를 유리하게 이끌어가는 알파고의 성질이 잘 드러난 대국이다.

alphago_game_3_800

알파고-판 후이 제3국

제4국: 흑(알파고) 불계승

제4국은 알파고가 잘 둔 판으로 분석된다. 반대로 초반부터 판 후이 2단의 떨어지는 기량이 드러났다. 알파고의 공격력을 시험해 보고자 한 것이 판 후이 2단의 속내가 아니었을까 하는 평가다. 평소 자신의 바둑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대국을 풀어보고자 한 흔적이 기보에 남았다. 판 후이 2단은 ‘미생’을 남기는 엷은 수를 두다가 흑돌 알파고의 좋은 대처에 패배했다.

예를 들어 백돌의 판 후이 2단은 불안한 상황에서 32수(Q8)를 선택한다. 이른바 ‘내지른’ 수다. 판 후이 2단은 연신 불리한 경기를 펼치며 버티기만 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알파고의 좋은 대처를 볼 수 있는데, 155수(D15)에서 알파고가 판 후이 2단의 수를 정확하게 응징했다는 분석이다. 이번 대국에서도 상대적으로 후반부로 갈수록 정확한 판단력이 드러나는 알파고의 특징을 볼 수 있다.

alphago_game_4_800

알파고-판 후이 제4국

제5국: 백(알파고) 불계승

마지막 대국은 판 후이 2단이 부족한 기량을 선보인 판으로 평가된다. 판 후이 2단의 실수에 알파고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지만, 결과를 크게 바꾸지는 못 했다. 출발은 제3국과 마찬가지로 판 후이 2단의 미니 중국식 포석의 등장으로 시작됐다. 초반에는 양쪽 모두 비슷한 상황에서 전개됐다. 오히려 판 후이 2단이 판을 비틀기도 했다. 이전에는 보기 어려웠던 다른 수법이다.

알파고의 64수(G4)는 좋은 수로 평가할 수 있다. 전체 판에서 볼 때, 100점짜리 공격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하변 부분에서 보자면 좋은 수다. 이 수로 알파고는 이후 2점을 가져갈 수 있었다.

흑돌의 75수(H6)는 판 후이 2단의 엉뚱한 판단이 아니었을까. 우변에서 다툼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수가 나왔다. 예를 들어 75수에서 판 후이 2단이 우변에서 싸움을 이어갔다면, 경우에 따라 우변에서의 알파고가 매우 불리해질 수도 있는 대국이었다는 분석이다. 알파고의 78수(P10)으로 우변에서의 판세가 알파고 쪽으로 기울었다.

흑돌의 93수(K9)도 좋은 수는 아니다. 바로 이어진 알파고의 94수(S16)으로 알파고는 4점을 지켜낼 수 있었다. 93수로 중앙으로 진출한 판 후이 2단을 따라잡지 않은 알파고가 4점을 지켜낸 수다. 이후에는 수를 거듭할수록 판 후이 2단에게 좀처럼 기회가 돌아오지 않았다.

alphago_game_5_800

알파고-판 후이 제5국

“판 후이의 부족한 실력이 알파고의 승리 비결 아닐까”

박승철 7단은 “전반적으로 판 후이가 부족한 기량 때문에 알파고가 이긴 것으로 봐도 된다”며 알파고의 기량을 갈음했다. 우선 정석을 선택하고 응용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초반에는 상대의 수에 대응하는 정석을 내고, 이를 응용하는 수가 중요하다. 알파고는 상대방의 수를 고려하지 않고, 기존의 정석을 그대로 두거나 상황에 맞지 않는 수를 두는 모습을 많이 보였다고 박승철 7단은 평가했다. 또, 대국의 전체 호흡을 길게 가져가는 풀이에는 능통하지만 판의 큰 모양을 일고 상대의 수를 일거에 분해하는 대세점 등을 찾는 능력은 부족한 것으로 평가된다.

park_7dan_800

박승철 프로기사(7단)

말하자면, 사람은 상상력에 바탕을 두고 상대방의 수를 읽거나 앞으로의 흐름을 예측할 수 있는데, 알파고에게 그런 상상력은 부족하다는 분석이다.

더 읽어보세요!

구글 딥마인드는 이세돌 9단과의 대국 계획을 발표하며, 알파고의 승리 확률을 50%로 내다봤다. 하지만 국내 프로기사들의 생각은 다르다. 알파고의 기량이 이세돌 9단은 물론, 다른 국내 프로기사들의 실력과 비교해도 한참 뒤처진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판 후이 2단에 알파고가 승리를 거뒀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 동료 기사들과 기보를 분석한 박승철 7단의 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알파고와 판 후이의 기보를 보면서 다른 기사들과도 함께 검토를 해 봤는데, 거의 확실히 이세돌 9단이 이길 것 같다는 평가가 많았다”라며 “모든 것이 그러하듯 초보에서 중급자가 되는 것은 빠르지만 일정 수준 이상에서 고수가 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인데, 알파고의 현재 실력이 고수들의 실력과 얼마나 좁혀질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물론, 알파고와 판 후이 2단의 대국은 석 달여 전 경기다. 이후에도 알파고는 3천만개가 넘는 위치 정보와 바둑 기보, 기계학습 기술을 바탕으로 실력을 쌓고 있으니 누가 길고 짧은 지는 3월이 돼야 확실히 알 수 있는 일 아닐까.

baduk_fin

알파고-판 후이 2단의 전체 대국 결과(사진: Mastering the game of Go with deep neural networks and tree search – Nature, 2016)

네티즌의견(총 8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