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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보니] “비교가 안 되네”…HTC의 VR 기기 ‘바이브’

2016.03.14

대만의 제조업체 HTC와 미국의 게임 개발 업체 밸브가 ‘가상현실(VR)’ 기기를 함께 만들었다. 이름은 ‘HTC 바이브’다. 가격은 799달러. 우리돈으로 97만원이 넘는다. ‘오큘러스 리프트’보다 200달러 정도 더 비싸다. HTC 바이브는 이른바 ‘하이엔드 VR’를 목표로 개발했다는 게 HTC와 밸브의 설명이다.

하이엔드 기기라는 자신감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오큘러스 리프트가 개발 초기 주목받은 까닭은 낮은 가격 때문이었다. 높은 성능으로 사용자의 눈에 들겠다는 HTC와 밸브의 호언장담에 호기심이 동하지 않을 수 없다. VR 콘텐츠 개발과 활용에 관심이 많은 4명의 국내 인디게임 개발자와 함께 HTC 바이브 개발자 버전을 써봤다. 소감부터 말하자면, HTC 바이브는 현재 VR 기기가 어느 수준까지 발전했는지 확실하게 보여준 만족스러운 제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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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용 터틀크림 대장(대표)

넉넉한 공간에서 즐기는 ‘리얼리티’

HTC 바이브는 크게 3가지 장비 세트로 구성돼 있다. 머리에 쓰는 헤드셋과 조작을 담당하는 2개의 모션 컨트롤러, 그리고 벽에 붙이는 공간감지센서다. 공간감지센서가 HTC 바이브의 핵심이다.  2개가 한 쌍이다. 메뉴얼에 따르면, 이 센서는 양쪽 벽 모서리에 붙이도록 설계돼 있다. 반드시 직각을 이룰 필요는 없다. 각 센서가 검출하는 영역이 서로 겹치도록 하면 된다. 방이나 거실, 혹은 사무실 어디든 HTC 바이브의 공간감지센서만 설치하면 VR 콘텐츠를 즐길 준비는 끝난다. 검출 영역이 서로 겹치도록 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공간에서는 세움대를 마련해 거리를 벌리고 세워두기만 해도 된다.

공간감지센서는 사용자가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가상현실에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마치 만화 ‘드래곤볼’에 등장하는 ‘정신과 시간의 방’에 들어간다면 꼭 이런 느낌이 아닐까. 성인 남성이 양팔을 쭉 펼친 것보다 조금 더 넓은 사각형의 공간이 가상공간에 펼쳐진다. HTC 바이브 헤드셋 본체에 달린 센서 위치를 검출해 콘텐츠 안에 반영해주는 것도 공간감지센서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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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공간감지센서가 헤드셋과 컨트롤러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감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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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하게 생긴 HTC 바이브의 컨트롤러

공간의 끝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편리하다. 가상공간의 끝에 파란색 격자무늬 벽이 펼쳐지는 덕분이다. 벽을 넘으면, 사용자나 컨트롤러의 움직임이 콘텐츠 조작에 반영되지 않는다. 혹시 공간이 너무 좁아 VR를 즐기기에는 답답하지는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뛰어다녀도 될 정도로 넓지는 않지만, 몸을 크게 휘두르기에는 넉넉한 공간이다.

공간감지센서 덕분에 HTC 바이브는 머리의 움직임을 검출해내는 성능이 뛰어나다. 오큘러스 리프트를 비롯해 VR 기기에서 업계가 우려하는 부분은 바로 시선의 움직임을 영상이 뒤늦게 따라오는 이른바 지연시간 문제다. 시선의 방향과 영상이 일치하지 않아 멀미를 유발하기도 하는 문제로 지적되기도 한다. HTC 바이브에서는 지연시간이 발생하는 것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머리를 움직이면 움직이는 대로, 컨트롤러를 돌리면 돌리는 즉시 영상에 반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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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C 바이브 헤드셋 본체와 컨트롤러 한 쌍

총이 되고, 삽이 되는 컨트롤러

HTC 바이브는 컨트롤러와 호응하는 방식도 재미있다. 보통 VR 헤드셋은 시야를 완전히 가리기 때문에 착용 직후 게임패드가 어디에 있는지 알기 어렵다. HTC 바이브는 가상현실에 3D 그래픽으로 컨트롤러를 표시해주는 간단한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HTC 바이브를 쓰면 컨트롤러가 있는 위치에 3D 그래픽으로 컨트롤러나 나타난다. 사용자는 손을 뻗어 컨트롤러를 잡기만 하면 된다.

헤드셋 본체와 마찬가지로 컨트롤러의 움직임도 공간감지센서가 읽는다. 콘텐츠에 따라 컨트롤러는 페인트 붓이 되기도 하고, 총이 되기도 한다. 공포 게임 속에서는 어두운 공간을 비추는 횃불처럼 쓸 수도 있다. 덕분에 컨트롤러를 활용해 다양한 동작을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컨트롤러를 뒤로 빠르게 젖혔다가 앞으로 꺼내는 동작을 취하면, 가상현실에 방패가 나타나는 식이다. 두 개의 컨트롤러를 앞뒤로 벌려 잡으면, 두 손으로 잡아야 하는 총으로 변신한다.

컨트롤러 끝에 칼날이 붙어 있다고 상상하면 어떨까. 마치 ‘스타워즈’ 시리즈에 나오는 광선검처럼 휘두를 수 있다. 스팀VR에 등록된 맛보기 VR 콘텐츠 ‘후르츠 닌자’가 대표적이다. 보이지 않는 칼을 휘둘러 과일을 자르는 손맛이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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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트롤러는 콘텐츠 속에서 개발자가 의도한 모양으로 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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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에서 손 모양으로 보이는 그래픽이 HTC 바이브의 컨트롤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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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모양으로 다지인된 게임 속 컨트롤러

“다른 VR와 비교가 안 되네요”

함께 HTC 바이브를 체험한 개발자들은 HTC 바이브의 성능에 혀를 내두른다. 오큘러스 리프트나 소니 등 다른 업체의 VR 기기와 비교해 더 뛰어나다는 평가다. 물론, 이들이 경험한 다른 업체의 제품 역시 시제품이었다는 점은 참고해야 한다. 원래 VR 콘텐츠 개발에 큰 관심이 없었던 박선용 대장은 “HTC 바이브 덕분에 창작욕까지 생겼다”고 말했다.

박선용 대장은 “써봤던 VR 기기 중에서는 최고라고 생각한다”라며 “가상현실 안에서 컨트롤러를 직접 찾고 만지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고 일단은 VR로 뭔가를 만들고 싶어졌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HTC 바이브가 보여준 높은 성능에는 다른 개발자들도 동의하는 분위기다. 개발자 버전이 배포 중인 현재, 스팀의 ‘스팀VR’ 카테고리에는 약 20여가지 맛보기 VR 콘텐츠가 등록돼 있다. 맛보기 VR 콘텐츠가 모두 수준급이라는 점도 HTC 바이브의 성능을 체감하기 좋은 환경을 지원한다.

전재우 개발자는 “데모 콘텐츠의 품질이 높아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컨트롤러를 휘두르거나 물건을 늘이고 줄이는 등 무척 새로운 경험을 했다”라며 “지연시간을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다른 VR 기기와 비교해 경험 자체가 비교가 안 되고, 컨트롤러는 특히 재미있는 아이디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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