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하는 ‘대나무숲’, 추락하는 ‘대학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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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숲은 동종 업계에에서 공통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불만이나 애환을 토로하며 공감을 나누는 장을 지칭했다. 트위터에서 태어났다. 대나무숲의 유래는 모두가 아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던 그 대나무숲이다. 익명성에 기반을 뒀기에, 그 유래대로 속 시원하게 말을 터놓을 수 있는 공간이 됐다.

‘○○대학교 대나무숲’은 페이스북을 기반으로 한다. 운영진도 익명이고, 제보도 익명이다. 페이스북의 사용 증대와 맞물려 자연스럽게 생성됐고, 사용자도 늘어났다. ‘~대신 전해드립니다’도 비슷한 기능을 수행한다. 대부분 1만명 안팎의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대나무숲은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커뮤니티는 아니다. 이전에도 익명 기반 학생 커뮤니티는 존재했고, 지금도 있다. 다만 페이스북 사용 증대와 맞물려 상당한 기능을 대나무숲 페이지로 끌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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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서울대학교 대나무숲 화면 갈무리

기능이 확대된 대나무숲

대나무숲의 기능은 사용자 증대와 함께 확장됐다. 여전히 고민을 토로하는 글이 많지만, 의견을 제시하고, 학내 문제를 제기하는 공간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솔직하게 털어놓는 고민 자체가 대학생의 현실과 학생사회의 문제를 짚어내는 역할을 해 반향을 일으키기도 한다.

학생사회의 문제와 고민을 공론화하는 작업은 사실 대학언론의 역할이다. 대학언론의 학내 영향력 감소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으나, 우선 미디어 환경에의 부적응을 꼽아볼 수 있다. 미디어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던 대학언론은 자신의 영향력 감소를 알고 있었음에도 그 흐름을 막지 못했다. 대학생은 종이를 중심에 두는 전통적으로 내려온 업무 프로세스를 바꾸지 못했고, 뜻밖에 높은 디지털의 문턱 앞에서 좌절했다. 젊은 대학생들이지만 디지털에 콘텐츠를 유통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이해가 부족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도 미비했다. 대학언론이 우산, 돗자리, 냄비 받침으로 전락한 이유다.

1990년대 말에 <고대신문>에서 대학언론 활동을 했던 이성규 <블로터>미디어랩장은 “당시엔 설문조사를 하면 기성언론에서 많이 인용해 가는 편이었다”라며, “신문을 한 주에 2만부 정도 찍어서 월요일에 배포하면 수요일쯤에는 다 빠졌던 걸로 기억한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유민지 <고대신문> 편집국장은 “신문을 발행해도 다 빠지진 않는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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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건국대학교 대나무숲 화면 갈무리

“학내언론보다 가깝다”

이렇게 학내에서 대학언론의 입지가 줄어드는 동안, 구성원의 목소리는 대나무숲을 통해서 표출되고 있다. 익명이 주는 편안함, 제보의 편리성, 페이스북 기반이라는 장점 때문이다.

<고대신문>의 학술웹진부장을 역임했던 이혜진 씨는 “대나무숲이 훌륭하게 학생의 의견을 표출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라며 “익명성에 기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제보하기 때문에 저널리즘 윤리에 묶여 실명 취재원을 찾아다니는 학보사 기자들보다 더 많은 이야기와 사례를 구할 수도 있기도 하다”라고 답했다.

블로터 플러스 '지식 아카이브'

강남규 중앙대학교 독립언론 <잠망경> 전 편집장은 “학생들이 대학언론은 물론, 언론제보를 통한 공론화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라며 “대나무숲이라는, 공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굉장히 사적인 공간에서의 ‘사적폭로’를 통해서 고발이 이뤄진다는 것도 그런 이유다”라고 해석했다.

대나무숲을 통한 공론화가 실제 문제 해결에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는 것도 영향을 끼친다. 대나무숲의 콘텐츠는 소셜미디어의 특성에 힘입어 순식간에 입소문나곤 한다. 기존 언론이 대나무숲의 콘텐츠를 가져가 기사화하는 속도도 빠르다. 이렇게 형성된 여론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 빗발치는 사회의 비난은 커다란 압박으로 작용한다.

잘 관리된 익명 게시판의 힘

대나무숲은 기존 익명 커뮤니티의 단점을 보완하며 안착했다. 보통 대학에서 학생들이 사용하는 익명 게시판은 문제가 많다. 익명에 기댄 게시물이 무분별하게 쏟아진다. 혐오 콘텐츠도 많이 올라온다. 폐지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나무숲에는 관리자가 있다. 운영 원칙도 존재한다. 익명 제보임에도 볼만한 콘텐츠만 올라오는 이유다. 결국 사람이 관리한다는 점에서 완전하지는 않고, 그로 인한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익명으로 방치했을 때와 비교할 바는 아니다.

이렇게 대나무숲은 나의 고민과 걱정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공간이 된다. 그 공간에서 공동체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섞여들어간다. 제보와 댓글을 이용해 이슈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교류할 수 있다.

잘 관리된 익명 기반의 커뮤니티가 학생사회의 공론을 형성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셈이다. 대학언론의 역할은 의제를 던지고, 학생사회의 공론장을 형성하는 것에 있다. 그 역할 중 꽤 큰 부분을 잠식당했다는 것은 아쉬운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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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ickr, Matt Morton-Allen, CC BY-SA

남아 있는 대학언론의 역할

대나무숲에도 한계는 있다. 대부분의 대나무숲은 콘텐츠를 필터링하고 있다. 특히 논쟁이 벌어지거나 벌어질 수 있는 경우에 대한 필터링 규정이 대부분의 대나무숲에 마련돼 있다.

가톨릭대 대나무숲은 ‘정치, 성별, 학생회, 회비 관련해 논쟁이 예상될 경우 대숲지기 간 토론을 거쳐 게시’하고, 고발성 제보도 회의를 거친다. 성균관대 대나무숲은 ‘지나치게 편향되거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정치·사회·종교 제보’는 걸러낸다. 서울대, 한양대, 동아대 등도 비슷하다. 아예 막는 것은 아니지만, 대나무숲의 콘텐츠는 ‘불편함이나 어려움 없이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의 틀에서 큰 폭으로 벗어나지는 않는다. 선악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고발성 콘텐츠의 기사화가 빈번한 이유다. 학내문제 중 좀 더 복잡한 문제, 비정규직 노동자 이슈처럼 대나무숲으로 표출되지 않는 문제도 엄연히 존재한다. 여전히 대학언론만이 수행할 수 있는 기능이다.

강남규 전 편집장은 “문제는 대학언론 자체가 학우들과 유리된 점”이라며 “공적인 장에서 주도적으로 의제를 설정하고 ‘고발’이나 ‘제보’를 모아내는 역할로서 대학언론이 작동해야 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혜진 전 학술웹진부장은 “여러 이야기를 묶어 의미 있는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게 학보사의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