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지망생들이 만드는 언론, ‘갈릴레이 서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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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배요, 근데 왜 1번 찍는교?”

다소 도발적인 이 문장은 <한겨레21> 제1105호의 표지 이야기로 실린 기사 제목이다. 청년들이 직접 노년층 유권자들을 만나고, 노년층의 투표 행태의 배경을 살펴보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이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한겨레21>소속 기자가 아니다. <갈릴레이 서클>의 김재환, 허빈, 김인경 기자다. <갈릴레이 서클>은 언론인 지망생들이 모여 만든 청년들의 독립 미디어다. 현재 ‘우리는 구석정치를 조명합니다’라는 가치를 내세우고 첫 번째 프로젝트인 ‘모비딕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 <한겨레21> 홈페이지 갈무리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며 독서모임을 함께하던 박종화 씨와 장은선 씨는 지난해 10월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의 강의를 들었다. 당시 김용진 대표는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를 갖는 유권자”라고 강조하며, 미 대선에서 언론이 후보자 정보를 유권자에게 전달하는 좋은 사례들을 소개했다. 두 사람은 언론인을 지망하는 사람으로서 총선을 앞두고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갈릴레이 서클>이 탄생한 배경이다.

<갈릴레이 서클>은 경제학자 칼 폴라니가 대학 시절 만든 비밀 모임의 이름입니다. 폴라니는 대학의 후진성, 부패, 기회주의, 특권과 관료제를 비판하기 위해 비밀 서클을 만들었습니다. – <갈릴레이 서클> 소개

프로젝트 매니저를 맡고 있는 박종화 씨는 “정의롭고 공익적인 일을 한다는 포인트가 좋아서 팀명을 땄다”라고 배경을 이야기했다. 모비딕 프로젝트는 허먼 멜빈의 소설 ‘모비딕’에서 따왔다. 주인공이 어마어마한 크기의 고래 모비딕을 쫓는 과정이 기자와 닮아 있다는 이유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크게 느껴지는 정치를 추적하고 유권자에게 알려주겠다는 취지다.

“’아랑’이라는 언론인 지망생 모임 카페에서 모였어요. ‘자신이 얼마나 정치에 관심이 있는지’ 알려달라는 내용으로 자기소개를 받았습니다. 사면받은 정치인을 4년간 추적하는 사람도 있었고, 자기 지역구 의원을 더 잘 알아보려고 한 사람도 있었어요. 처음에 8명이었고, 최근 2명 나가고 6명 들어와서 지금은 12명이에요. ‘넥스트 저널리즘 스쿨’에서 만난 사람도 같이하고 있고요.”(박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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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이 서클 김인경(좌), 박종화(우)

기성 언론에 들어가면 못할 취재를 하고 싶다

언론사 시험은 상식과 논술, 면접으로 구성된다. 서류합격을 넘어 두 번째 관문인 상식과 논술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상식 책을 달달 외우고, 스터디를 하면서 글쓰기 연습을 해야 한다. 언론사 인턴도 아니고, 비슷한 학생끼리 모여 진행한 프로젝트는 ‘스펙’이 되기 쉽지 않다. 자칫 ‘쓸모없는’일이 되기 십상이라는 의미다. 갈릴레이 서클의 멤버들은 기성 언론에 들어가면 못할 취재를 하고 싶다는 취지로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

“기성 언론에 들어가면 못할 취재를 하고 싶었어요. 하다 보니까 너무 재밌더라고요. 잠도 못 자고, 시간에도 쫓기고, 돈도 부족하고, 육체적으로도 힘들지만 계속하게 되더라고요.”(박종화)

마와리는 돌지 않았지만, 좋은 기사는 쓸 수 있다

따로 팀이 나눠져 있지는 않다. 프로젝트 기획을 낸 사람이 팀장이 되고,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이 기획을 같이 진행한다. 콘텐츠를 만들고, 퍼블리싱하는 일은 팀에서 진행한다. ‘프로듀스300 – 후보자 인터뷰’, ‘3D – 정치 영상’ 등이 이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전체회의는 일주일에 한 번 3-4시간 정도 진행하고, 팀별로 필요할 때마다 회의한다.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기획을 튼튼하게 하는 데 공을 들인다.

“보통 기자라고 하면 사쓰마와리(수습 시절 경찰서를 돌며 사건을 찾고, 기자 훈련을 받는 것을 지칭하는 은어)를 돌아야 한다고 하잖아요. 저희는 그런 과정을 거친 사람들은 아니지만, 저희가 작성한 기사는 호평을 많이 받았거든요. 기사에서 중요한 건 시각이나 취재방법, 그러니까 해당 사안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기획을 철저히 하면 좋은 기사가 나온다는 걸 깨달았어요”(박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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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뉴스 영상 갈무리

구석정치를 조명하는 모비딕 프로젝트

<갈릴레이 서클>의 첫 번째 프로젝트인 모비딕 프로젝트는 구석정치를 조명한다. 박종화 씨는 “단 한 명의 고민이라도 대변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걸 알려주는 게 언론이 할 일이다”라고 모비딕 프로젝트의 배경을 밝혔다. 모비딕 프로젝트는 크게 두 팀으로 구성된다. 데이터를 살피는 팀과 인터뷰를 통해 소수정당의 목소리를 전하는 팀이 있다. 데이터를 보는 팀이라고 해서 특별한 기술이 있는 건 아니다. 이들은 ‘노가다’로 예비후보자 전수조사를 시행했다. 어떤 사람이 전과가 있는지, 벌금은 얼마나 냈는지 등을 살폈다. 선거관리위원회 사이트의 정보를 하나하나 엑셀로 옮겼다.

블로터 플러스 '지식 아카이브'

프로듀스 300 기획을 통해서 녹색당, 노동당 등 소수정당의 후보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민주주의의 다양성을 들여다보자는 취지다. ‘소수’ 유권자도 만났다. 성소수자 유권자도 인터뷰했다. 장애인, 탈북민의 목소리도 들을 계획이다.

탑골공원을 찾아가 노년층의 목소리를 듣고, 투표 행태의 배경을 살펴본 현장취재 기사도 많은 호응을 얻었다. 이 외에 ‘야자뉴스’ 라는 영상 포맷을 활용한 콘텐츠도 있다. ‘자기 전에 1분만 정치 얘기를 듣고 자자’는 기획의도로 만들어졌다.

“기성언론을 비판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마땅한 역할이 있는 거고, 거대정당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빠르게 알려주는 건 그들의 역할이라 생각해요. 저희는 저희가 서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구석에 있는 정치인과 구석에 있는 유권자를 연결해주고 싶어요.”(박종화)

기본적으로는 자체 홈페이지를 활용해 페이스북 등에서 뉴스 콘텐츠를 유통한다. 얼마 전부터 카카오에서 스토리펀딩도 진행하고 있다. 기성 언론과 협업해서 콘텐츠를 확산시키는 데도 신경을 쓰고 있다. 첫 협업은 <오마이뉴스>다. <갈릴레이 서클> 멤버들은 <블로터>, <한겨레21>, 구글코리아가 함께 진행한 ‘넥스트 저널리즘 스쿨’에서 연사로 만난 <오마이뉴스> 이한기 국장에게 연락해서 <갈릴레이 서클> 이름으로 나가는 기사를 발행했다. <한겨레21>측에서도 연락이 왔다. 다른 일간지와도 협력방안을 논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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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지만 힘들지 않다.

“사실상 저희 사비로 하고 있어요. 뭐가 없잖아요. <오마이뉴스>에서 들어온 원고료가 전부인데, 그거 탈탈 털어서 버스로 지방 취재를 나갔어요. 기차는 비싸서 못 타고(웃음), 지역에 사는 친구한테 밥도 얻어먹고 그랬죠. 숙박도 최대한 싼 곳으로 고르고요. 오래 머물지 못하니까 빨리 취재하러 다녀야 한다는 부담도 있고. 이런 제약이 많죠”(김인경)

공금이 없진 않지만, 무척 부족하다. 거의 사비로 취재하고 있다. 편의점에서 라면 먹으면서 취재하고 있다. 얼마 안 되는 공금을 최대한 아껴서 결과물을 내야 한다. 무척 힘들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서 마냥 힘들지만은 않다. 많은 사람이 본다는 것도 힘을 실어준다.

“그냥 재밌어요. 저는 오히려 하기 전에 더 불안했어요. 대학 졸업하고, 지원한 건 다 탈락하고, 그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모르겠고, 자신감도 없어졌거든요. 그런데 모비딕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내가 직접 기사도 쓸 수 있고, 취재도 할 수 있게 됐잖아요. 취업을 한 건 아니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됐어요.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아요”(김인경)

<갈릴레이 서클>의 시도는 아직 언론사에 입사하지 않았기에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이다. 나름 틈새 공간이다. <갈릴레이 서클>은 직업 기자와 그렇지 않은 시민 사이에 있는 ‘지망생’들이 전하고 싶은 목소리를 내고자 한다.

“언론계에서 새로운 포지션을 잡고 싶어요. 언론인 지망생은 기자와 시민 사이에 있잖아요. 이 위치에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기자가 아니라고 못 쓰면 아쉽잖아요. 넥스트 저널리즘을 함께 고민하는 친구들이 재밌게 만들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라요.”(박종화)

“청년이라서 청년의 목소리라기보다는, 우리니까 할 수 있는 것. 지금 우리가 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그걸 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김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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