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언론사는 채팅봇에 흥분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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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자 시작해볼게요. 당신께 매일 톱기사를 보내드릴 거에요. 헷갈리면 ‘help’를 입력하세요. 아니면 더 알고 싶은 내용을 몇 단어로 입력해주세요. 예를 들면 ‘헤드라인’, ‘리우 올림픽’ 또는 ‘정치’라고 말이죠.”

페이스북 메신저의 ‘CNN 채팅봇’은 이렇게 말을 먼저 걸어온다. 그리곤 선택지를 내놓는다. ▲톱 기사 ▲당신을 위한 기사 ▲CNN에 요청하기다. 무엇을 클릭하든 답변은 돌아온다. 물론 사람이 대답하지 않는다. 설정된 혹은 학습된 채팅봇이 응대한다. 마치 애플 ‘시리’나 MS의 ‘테이’처럼.

채팅봇 시대다. 조금은 빨리 온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다. 위챗을 시작으로 킥(kik), 텔레그램으로 퍼져오더니 이젠 15억명이 사용하는 페이스북 메신저로도 넘어왔다. 일상의 습관으로 안착하기까진 넘어야 할 난관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페이스북이기에 달리 보이는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미국 인터넷 언론사 <쿼츠>가 자사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채팅창’ 형태로 개편했을 때 전세계 미디어 업계는 신선한 충격에 빠졌다. 대부분의 대화가 인간 편집자에 의해 진행됐지만 메신저의 포맷을 모바일 첫화면에 도입했다는 것만으로도 관심은 집중됐다. <쿼츠>가 채팅봇을 뉴스 미디어가 어떤 방식으로 수용할지를 보여주는 신호탄이었다면, 페이스북 메신저 채팅봇은 인공지능이 뉴스 생산에 이어 뉴스 유통에도 관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페북 메신저 API에는?

Wit Console_BLOTER

페이스북은 언론사가 메신저 채팅봇을 쉽게 개발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두 가지를 준비했다. 하나는 메신저 수신/송신 API고 다른 하나는 봇 엔진이다. 두 가지 기술을 함께 활용하면 이미 누적된 기술을 없더라도 간단한 규칙이나 데이터 학습만으로 채팅봇을 운영할 수 있다.

수신/송신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응용 프로그램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는 응용 프로그램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운영체제나 프로그래밍 언어가 제공하는 기능을 제어할 수 있게 만든 인터페이스를 뜻한다. (출처 : 위키피디아)close는 말 그대로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사용자와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채팅창에 펼쳐질 대화 내용의 템플릿이나 버튼 모양도 설정할 수 있다. 사용자와 언론사 봇이 대화를 주고받는 방식을 이 API가 매개한다.

블로터 플러스 '지식 아카이브'

수신/송신 API보다 주목할 만한 요소는 봇 엔진이다. A라는 요청에 A’라는 답변을 내놓는 채팅 봇을 개발하려면 자연어처리 기술과 학습된 데이터가 필수적이다. 일부 대형 언론사가 아니라면 이 정도의 기술력을 보유하기란 쉽지 않다. 봇 엔진은 이 수고를 덜어주는 기술에 해당한다.

봇 엔진은 채팅 봇을 쉽게 제작할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프레임워크다. wit.ai에 접속할 수만 있다면 누구나 개발을 시도해볼 수 있다. 봇 엔진은 기계학습과 규칙 기반 방식으로 알고리즘을 설정하면 서서히 학습해가면서 정확성을 높여간다. 예를 들어, 사용자의 예상 질문과 봇의 답변을 쌍으로 입력해두면 이후 데이터에 따라 자동으로 학습해간다. 여기에 wit.ai에 누적된 질문과 답변의 쌍이 보태져 지능을 더해간다. 기계학습 방식에 따라 더 많은 대화가 오갈수록 개별 채팅봇의 정확도는 높아지는 형태다.

채팅봇이 등장한 배경과 광고

와이젠바움이 1966년 개발한 채팅봇 '일라이자'.(사진 출처 :

와이젠바움이 1966년 개발한 채팅봇 ‘일라이자’.(사진 출처 : The Knowledge Illusion)

사실 채팅봇은 새로운 개념도 발명품도 아니다. MIT 조지프 와이젠바움의 ‘일라이자’를 기점으로 잡으면 1966년대까지 그 역사가 거슬러 올라간다. 인공지능을 통한 가상의 자아를 만들어 인간과 대화를 담당하도록 하는 기획은 이미 인류에겐 익숙한 실험이다.

채팅봇은 PC 메신저 시대에서도 낯설지 않은 기술적 장치였다. 당시엔 주로 ‘채터봇’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들 채터봇은 야후 메신저나 MSN 라이브 메신저 등에서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었다. 초기에만 하더라도 귀엽고 앙증맞은 대화로 사용자들을 끌어 모으는 역할을 했지만 활성화된 이후엔 악성코드를 퍼뜨리는 진원지가 되면서 사용자들의 불쾌감을 불러오기도 했다.

물론 국내에서도 이러한 시도는 없지 않았다. MSN 채터봇으로 서비스됐던 ‘심심이’는 2002년 탄생한 이후 현재까지 살아남은 대표적인 국산 채팅봇이다. 이즈메이커가 2002년 개발한 ‘심심이’는 관심을 모았지만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음담패설 채팅봇으로 변질되면서 논란을 낳았다. 네티즌들이 욕설과 음담패설을 학습시키면서 정체성이 왜곡돼 간 것이다.

SKT의 인공지능 채팅봇 '일미리'

SKT의 인공지능 채팅봇 ‘일미리'(사진 출처 : gameai)

윤송이 박사의 실패작으로 기억되고 있는 SKT의 ‘일미리'(1mm)는 지금의 지능형 채팅봇과 가장 흡사한 모델이다. 일미리는 대기화면 채팅봇으로, 휴대폰을 열면 캐릭터가 사용자에게 말을 건다. 뉴스나 날씨 등 휴대폰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시간이나 장소에 맞춰 추천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용자들은 비싼 정보이용료나 네트워크 비용으로 인해 선택하지 않았고, 결국 출시 1년여 만에 서비스를 종료했다.

이처럼 채팅봇은 광고나 유료 콘텐츠와 비교적 잘 어울렸다. 채팅 상대의 선호를 학습해 최적화한 광고나 콘텐츠를 제시하기만 하면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메커니즘이어서다. 맞춤형 정보나 구매를 제안하고 싶은 광고주들이나 콘텐츠 유료 판매를 기대하는 언론사들엔 나쁘지 않은 선택지였다.

아이폰의 등장 이후 네이티브 앱으로 제작된 메신저가 다시금 인기를 얻게 되자, 인공지능 채팅봇은 다시 주목받는 아이템으로 등장했다. 특히 채팅봇을 이용한 광고 모델은 ‘챗버타이징’(Chatvertising)이라는 이름으로 곧장 시도되기에 이르렀다. 학습 데이터의 증가, 머신러닝 기술의 도약으로 채팅봇은 한층더 세련된 모습으로 수익에 한발짝 더 다가간 모습이다.

네이티브 광고와 채팅봇

IMG_4500언론사들이 채팅봇을 품으려는 건 기술적 과시나 혁신적 경험의 제공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엄연히 비용이 투입되는 작업인 만큼 반대급부, 즉 수익을 염두에 둔 행보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페이스북이 채팅봇의 개발을 지원하는 API와 봇 엔진을 개방한 것도 실은 광고 상품 개발과 관련이 깊다.

무엇보다 채팅봇은 폐쇄된 공간에서 사적인 대화를 통해 사용자의 정밀한 취향을 학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인간과 기계 간 대화라는 특성상 감시의 위협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상품 구매 추천이나 네이티브 광고 제안에 따른 거부감도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다. 도입 초기 로봇에 대한 긍정적 인식은 언론사가 디지털 수익을 확장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CNN 채팅봇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CNN 메시지 창에서 ‘차단‘ 버튼을 누르게 되면 ‘스폰서 메시지 차단’과 ‘메시지 모두 차단’ 버튼을 확인할 수 있다. 언론사나 페이스북이 필요할 경우 사용자들에게 스폰서 메시지를 발송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식으로든 메시지 기반의 광고가 제공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콘텐츠 퍼블리싱 플랫폼인 아웃브레인도 채팅봇을 광고 플랫폼으로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언론사들에 채팅봇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신 그 안에 스폰서 광고를 메시지 형태로 전달하는 전략을 구상 중이다. 존 로지오코 아웃브레인 부사장은 <디지데이>와 인터뷰에서 “장기적 안목으로, 우리는 이 시스템에 묶어둘 수익 전략이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유사한 모델로 광고를 시도하는 메신저도 있다. 익명 메신저로 유명한 킥이다. 킥에 입점한 기업들은 사용자들에게 브랜드 콘텐츠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광고 모델을 테스트 중이다. 마이크 로버츠 킥 모바일 개발 총괄은 같은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기업들은 이미 킥을 광고 플랫폼으로 사용하고 있다”라며 “대화는 더 깊은 경험을 제공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진화해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네이티브 콘텐츠+채팅봇=새 모바일 수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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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시장에서도 네이티브 광고의 성장세는 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위 그래프는 영국 시장조사기업 IHS기 지난 4월 내놓은 보고서의 일부.(자료 출처 : IHS 홈페이지)

메신저는 뉴스의 유통 채널로 무시할 수 없는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아니 페이스북 그 너머를 도모할 수 있는 핵심 유통 채널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BBC>가 왓츠앱, 라인 등을 통해 글로벌 전략을 전개할 때부터 메신저는 언론사에 놓쳐서는 안 될 채널로 인식돼 온 것이 사실이다.

더불어 메신저는 ’대화형 커머스‘라는 이름으로 모바일 상품 구매의 중심 채널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뉴스 자체를 상품으로 내놓을 수도 있고 연관 PPL 상품으로 추천할 수도 있다. 인간이 아니기에 이해충돌의 딜레마에서 부분적으로 자유롭다. 이런 맥락에서 언론사는 채팅봇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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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얘기했다시피 언론사는 모바일에 더 최적화한 광고 상품이 등장하길 고대하고 있다. 디스플레이 광고에 대한 기대는 낮아지는 반면, 네이티브 광고에 대한 바람은 커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어떻게 하면 사용자에 더 맞춤화한 기술을 바탕으로 더 높은 모바일 광고 수익을 얻을 수 있느냐는 모든 뉴스 미디어의 관심거리이자 숙제다. 채팅봇은 모바일 광고 상품에 목마른 언론사를 달래주는 유망한 상품이다.

2000년대 초 메신저봇이 실패한 전철을 밟지 않는다면 광고 채널로서 채팅봇은 매력적인 공간이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푸시 알림 피곤증’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다. 어차피 채팅봇의 제작은 손쉬운 프레임워크로 더 편리해질 것일 분명하다. 쉬우면 진입 장벽은 낮아지고 플레이어는 늘어나기 마련이다. 이로 인해 광고 알람이 넘쳐나고 스팸의 난무하는 공간으로 변질된다면 페이스북 채팅봇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을 수도 있다.

극단적 개인맞춤형 뉴스와 윤리

메신저 서비스 '킥'의 봇숍.(킥 사이트 캡처)

메신저 서비스 ‘킥’의 봇숍.(이미지 출처 : 킥 사이트)

끝으로 한 가지 더 상상해볼 수 있다. 알고리즘 뉴스 생산과 채팅봇을 통한 알고리즘 유통이 결합되면 극단적인 개인 맞춤형 뉴스 소비 행태가 등장할 수 있다. 채팅봇이 개별 뉴스 사용자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해당 사용자의 취향에 맞는 맞춤형 뉴스를 알고리즘이 제작하는 방식이다. 사용자 외에 어떤 내용도 공개되지 않는다는 폐쇄적 공간 조건은 자유로운 욕망의 표현과 대화를 가능케 한다. 가장 사적인 가상공간이기에 치밀한 개인 성향을 알고리즘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당연히 사용자 맞춤화한 뉴스를 제공할 수도 있고 광고도 내보낼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네이티브 광고의 ‘광고 표시’ 가이드라인의 역할이 애매해진다. 채팅창은 언론사 웹사이트나 신문, 방송처럼 공적 소통 공간이라는 성격에서 비켜나 있다. 공공의 감시 대상에서도 비교적 안전하다. 언론사들은  PC 메신저에서 광고성 스팸봇이 유행했던 것처럼 표시되지 않은 광고봇의 유혹에 빠져들 수도 있다. 나아가 광고와 콘텐츠의 분리라는 고전적 저널리즘 윤리 체계가 채팅창 내부에서도 강제돼야 하는지 논란이 일어날 공산이 있다. 개인 맞춤형 뉴스로 더 많은 사용자를 끌어모을 수 있다면 정형화된 제약 조건에서 벗어나 디지털 수익 모델 적용이 가능해진다.

인공지능을 입은 채팅봇이 혁신적이고 획기적인 것은 아니다. 지금은 채팅봇이 네이티브 광고라는 수익모델과 무료 네트워크 환경과 만나면서 잠재력이 확대됐다고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만약 2000년대 초 메신저 채터봇처럼 사용자를 불쾌하게 하고 스팸을 내보내는 혼탁스러운 상황으로 빠져든다면 채팅봇의 상업적 잠재력은 동력을 상실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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