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를 위한 미디어 씨앗, ‘청춘씨: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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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씨:발아>(이하 청춘씨). 청춘이란 씨앗이 싹을 틔운다는 상큼한 느낌을 준다. 얼핏 보고 다른 뜻이 떠올랐다면, 아마 그것도 맞을지도 모른다. 청춘씨는 20대 4명이 운영하는 프로젝트 미디어다. 20대에 소구할 수 있는 정치·사회 메시지를 담아 페이스북에서 입소문을 일으키는 콘텐츠를 만든다.

“‘특정 이슈를 잡고, 페이스북에서 바이럴을 내는 콘텐츠를 만들자’고 처음엔 단기 프로젝트처럼 시작했어요. 일단 해보자고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프로젝트성 기획을 이어왔습니다.” (박진영)

처음 다룬 콘텐츠는 정규직, 20대 일자리 문제였다. 청춘씨 내부 목표처럼 세운 마일스톤이 몇 개 있었는데, 예상했던 기간의 절반 만에 모두 달성했다. 탄력을 받아 시즌2를 시작했다. 9월 중순부터 12월까지 입시·교육 문제를 다뤘다. 계속 이어오면서 미디어 스타트업의 가능성을 가늠해볼 수 있게 됐다. 지난해 말부터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 졸업생들과 함께 새로운 미디어를 구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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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가 아닌 바이럴 콘텐츠 문법 차용

“할일이 없는 사람이 모여서 만들었어요(웃음). 진지하게 생각한 건 아니고요. 미디어를 보면 모든 콘텐츠 트렌드가 미국·일본을 거친 다음에야 한국에 오잖아요. 한국은 카드뉴스, 영상 등 모든 게 반박자씩 느리죠. ‘그럼 우리가 먼저 한 번 해보자. 아직 비어있는 시장이다. 이게 우리 포트폴리오가 될 수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구현모)

블로터 플러스 '지식 아카이브'

청춘씨가 초기 콘텐츠를 만들 때 참조한 대상은 기사가 아니다. 페이스북에서 잘 유통되는 콘텐츠의 포맷을 차용했다. 기존에 입소문 나는 공감물은 재미 요소만 있지만, 청춘씨는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아냈다. 박진영 씨는 “초기 콘텐츠는 패러디나 바이럴 포맷에 메시지를 우선 끼워넣고 먹히나 안 먹히나를 봤다”라며 “메시지가 새로운 게 아니었지만 (포맷과 메시지의) 시너지가 많이 났다”라고 말했다. 정밀하게 분석하고, 시스템적으로 콘텐츠를 만든 것과는 거리가 멀다. 자신의 문제를 담아내고, 다양하고 빠른 시도를 통해 감각을 익혀나갔다.

“<미스핏츠>가 조직이 커지면서 체계화가 됐어요. 그러면서 실험을 할 수 있는 여지나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죠. 물론 언론사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그런 조직이 마련돼야 하는 게 맞지만, 친구들과 재밌게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날것의 느낌이 나더라도 막 실험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박진영)

<미스핏츠>가 성장하면서 조직 구성원이 늘어났다. 규모가 커지면 정해져야 하는 것들이 생긴다. 글이 꾸준히 나올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하고, 사람이 한두명 없더라도 회의가 진행될 수 있어야 한다. 규칙이 생긴다. 규칙과 시스템이 자리 잡으면 활동은 일이 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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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씨:발아>에서 제작한 콘텐츠

청춘씨는 좀 더 자유로운 콘텐츠 제작을 위해 <미스핏츠>에서 나왔다. 조직이라는 개념이 없을 때 나타나는 단점들이 청춘씨 활동에서도 드러났다. 그러나 훨씬 유연하고 빠르게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할 수 있었다.

“모든 게 단순했죠. 저희가 데스크가 있는 조직도 아니고, 눈치를 볼 사람이 있는것도 아니니까 모두가 기획자가 될 수 있는 구조예요. 만나자고 약속을 잡고, 찍고, 진영이가 첫 편집을 하면 리세윤이 에프터이펙트 작업을 하고. 빠르면 이틀 만에 콘텐츠가 나올 수 있거든요.”(구현모)

청춘씨가 영상을 만드는 과정은 간결하다. 짧은 콘텐츠를 만들기 때문에 원본 영상이라고 해봐야 5분 정도다. 여기서 30초 내지는 1분, 혹은 더 짧은 콘텐츠를 만든다. 물론 편집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페이스북에서 돌아다니는 이런저런 바이럴 영상을 참고했기 때문에 기획에 드는 품도 적은 편이다. 또래끼리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아이디어를 내고 촬영할 수 있었던 게 효율적인 작업의 배경이다. 박진영 씨는 “사실 위에서 누가 ‘너네 잘하니까 지켜봐 줄게’ 이랬으면 안 됐을 거다”라며 “우리끼리 놀면서 재밌게 찍으니까 가능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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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씨:발아 박진영(왼쪽), 구현모

예상 독자는 ‘나’

“4명의 관심사가 다르고, 다들 배경도 달라요. 혜지는 지역에서 서울로 와서 자취하며 살고 있고, 리세윤은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남들보다 빨리 회사 생활을 경험했죠. 각자의 삶이 달라서 나머지 셋은 정확하게 그 감각을 공유하지 못해요. 그래서 각자가 내세우는 기획 선정에 크게 개입하지 않아요. 각자가 잘하면 잘 만들어지더라고요.”(구현모)

미디어가 범람하는 시대에 차별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예상 독자를 상정하고, 그 독자에 맞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게 중요하다. 청춘씨는 각자의 고민과 생각을 되짚고, 거기서부터 문제의식을 꺼낸다. 구현모 씨는 “저희는 제작자이자, 소비자이고, 누군가의 타깃이다”라고 말했다. 그래야 좋은 기획이 나올 수 있고, 당장 내 친구들이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다.

이는 장점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 ‘나’가 ‘예상독자’와 어긋나는 시점이 찾아오게 될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우려다. 구현모 씨는 “저희가 만약 결혼한다든지, 직장인이 된다든지 하면 어떻게 될까?’하는 고민이 있다고 말했다.

시너지가 적은 기존 미디어와 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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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씨의 콘텐츠가 입소문이 나면서 기존 미디어로부터 협업 요청도 많이 들어왔다. 다만 그 결과물이 썩 만족스럽지는 않다. 구현모 씨는 “언론사는 자본이 있고, 우리는 자본은 없지만 아이디어가 있어서 협업을 하면 잘 될 것 같은데 잘 안 된다”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기획 단계에서 아이디어가 걸러지는 문제도 있고, 청춘씨 팀 스스로도 콘텐츠를 제작할 때 ‘힘’이 많이 들어간다. 청춘씨의 콘텐츠가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그렇다고 뉴스 콘텐츠로 정의하기는 어려운  것도 이유 중 하나다.

현실적인 제약도 있다. 박진영 씨는 “해당 언론사와 협업하는 게 아니라, 해당 언론사에서 새롭게 뭔가 해보려는 사람들과 협업을 하는 셈”이라며 “할 수 있는 게 생각보다 많이 없다”라고 말했다. 기본적으로는 종이나 TV에 기반을 둔 언론사와 모바일에서 태어난 미디어라는 차이를 극복하기 쉽지 않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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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와 뉴스 경계를 허무는 미디어 스타트업

“사람들은 단순한 기사가 아니라 맥락을 해석하는 콘텐츠를 좋아합니다. ‘썰전’ 같은 거 인기 많잖아요. 사회적인 문제를 다룰 때, ‘너만 그런 게 아니다’, ‘다른 사람도 그렇다’, ‘많은 사람이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이유는 사회적인 구조에 있다’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죠”(구현모)

청춘씨가 그리는 모델은 언론사가 아니다. 아직 아무도 들어가지 않은 뉴미디어 시장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하는 게 목표다. 박진영 씨는 “보통 언론을 이야기하면 ‘권력감시’나 ‘탐사보도’를 이야기한다”라며 “하지만 우리는 ‘메시지를 준다’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라고 목표를 말했다. 청춘씨가 새롭게 준비하고 있는 미디어 스타트업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물건에서도 정치로 이어질 수 있는 흐름을 만들고자 한다. 예컨대 뷰티 아이템을 다루면서 여성이 얼마나 표준화된 아름다움에 갇혀 있는지를 짚어보는 식이다.

“우리가 물건을 만들면 비즈니스 모델이 뚜렷하겠지만, 콘텐츠를 만들고, 브랜드를 만드는 일이잖아요. 물론 생각하는 모델을 세우자면 세우겠지만, 그것보다는 ‘어떻게 예상 독자에게 영향력을 줄 수 있는 매체가 될지’, ‘어떻게 의미 있는 매체가 될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 이후엔 할 수 있는 게 많을 것 같아요.”(박진영)

스타트업을 시작할 때 비즈니스 모델은 핵심 요소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도 조직이 필요하고, 그 조직을 유지할 수 있는 물적 조건이 필요하다. 비즈니스 모델은 곧 이 순환고리를 의미한다. 그러나 청춘씨가 그리는 미디어 스타트업은 당장의 비즈니스 모델보다는 어떻게 영향력 있는 미디어가 될 수 있을지를 우선 생각한다. 그렇다고 생존의 문제를 대충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 언론처럼 생존을 위해 호소하기보다는, 어떻게 구매할만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한다.

“콘텐츠가 팔리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중요하지, 사람들의 감정에 호소할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언론계 안에서가 아니라 외부 시장의 시각으로 바라보려고요.”(박진영)